108화
법사 새끼와 마왕 새끼는 끝까지 왜 싸웠는지를 말해주지 않았다.
“하운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도하운! 다친 곳은?!”
“우마훈! 내가 사고 치지 말라고 했지!!”
우다다, 복도 끝에서부터 차례대로 오빠와 도하인 그리고 우마한 길드장이 달려오고 있었다.
들려오는 놀란 목소리들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법사님, 총 내려놓고 빨리 원래대로 되돌려 놔.”
벽 한가운데가 뻥 뚫려버린 귀빈실의 모습을 오빠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해로운이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인다.
“해로운.”
내가 짜증스레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해로운은 귀빈실을 말끔하게 되돌려 놓기 시작했다.
오빠가 도착하기 전에 상황을 수습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마왕님께서 뚱한 얼굴로 말했다.
“이 정도는 짐도 할 줄 아느니.”
그러더니 말끔해진 방을 제멋대로 바꾸기 시작했다. 어떻게 말릴 새도 없었다.
그렇게 바뀐 방은.
“왓더, 퍽…….”
욕이 절로 나오게 리모델링이 되었다.
고급진 가죽 소파는 드래곤 머리가 장식으로 달린… 조금만 앉아있어도 허리가 나갈 것 같은 그런 소파로 바뀌어 있었고, 벽에는…….
“우오오! 이프리트시여!!”
저 커다란 걸 농발거미라고 부르던 것 같았는데.
빠르게 움직이는 커다란 거미를 향해 정령사님께서 불꽃을 일으키셨다.
그리고, 그 순간.
“하운아! 괜찮…아 보여서 다행인데 방이 괜찮지가 않네…….”
“…미친.”
오빠와 도하인이 헐레벌떡 들어오고야 말았다.
나는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는 벽에서 고개를 돌리고는 활짝 웃음을 지었다.
“괜찮아, 해로운이 원래대로 되돌려 줄 거야.”
“길마님, 나를 도대체 뭘로 보는 거야?”
해로운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불이 붙은 벽도, 기괴하게 리모델링된 방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다.
하지만…….
“흐아아악! 무림님, 헬프! 거미! 거미이!!”
“노옵! 싫어요! 저런 거 못 잡아!! 절대 못 잡는다고요!”
농발거미는 원래대로 되돌려 놓지 못했다.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렇게 소란으르하악!!”
뒤늦게 들어온 우마한 길드장이 자리에서 펄쩍 뛴다. 우마훈이 그 모습을 보고는 형님 높이뛰기 잘한다면서 감탄하신다.
감탄하고 있을 게 아니라, 네가 소환해 낸 거미 좀 잡아봐…….
영광의 검이라도 뽑아 들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용사님께서 혀를 차며 단검을 치켜드셨다.
그러곤 곧장 빠르게 움직이는 농발거미를 향해 단검을 날리셨다.
날아간 단검은 그대로 농발거미의 머리를 명중시켰다.
단말마도 없이 쓰러진 농발거미의 자태에 소란이 순식간에 잠재워졌고, 용사님께서는 농발거미의 머리에 꽂힌 단검을 뽑아 들고서는 말했다.
“저런 거미 하나 못 잡아서 뭐 하려고 그러니?”
“용사 누나… 누나한테 빌붙어서 살아도 되나요?”
“꺼지렴.”
“히잉.”
무림님의 우는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선 오빠와 도하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얘네를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참을 기다렸지만, 나는 둘에게서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 * *
“우마훈, 너 이제 행동거지 진짜 조심해야 해.”
하운에서 돌아가는 길. 우마한이 동생에게 하는 충고 어린 목소리였다.
그 충고 어린 목소리에 우마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래야 하느니?”
“그야, 너는 앞으로 해로운 씨와 함께 사람들한테 자주 얼굴을 보여야 하니까 그러지.”
“망할 법사 놈이랑 짐을 비교하지 말거라, 형님.”
“내가 언제 비교했다고 그래?”
우마한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에 우마훈은 뚱한 얼굴을 보일 뿐이었다.
우마훈과 해로운이 싸운 이유는 사소한 것이었다.
‘솔직히 마왕님이 드래곤 잡을 때 한 게 뭐야? 로운이는 스켈레톤 수천 마리를 땅속으로 모두 꺼지게 만들었죠!’
‘꺼지고 싶으냐?’
그렇게 시작된 싸움이었다.
이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우마한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우마훈. 앞으로 그 임금님 말투 되도록 쓰지 말도록 해. 사람들이 어떤 오해를 할까 벌써부터 두렵다, 두려워.”
“짐은 임금님 말투를 쓰지 않느니라. 임금님이 아닌데 어찌하여 임금님 말투라 부르는 건지 내 모르겠도다, 형님.”
“…….”
우마한은 우마훈의 머리를 진심으로 한 대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저 망할 동생을 설득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말투 안 고치면 신살자님께서도 곤란해하실걸?”
“!!”
우마훈이 크게 당황한 얼굴로 입가를 만지작거렸다.
* * *
|Pr. 마왕| : 도하운아.
|Pr. 마왕| : 아니, 하운아.
|pr. 마왕| : 하운.
|Pr. 마왕| : 도하운아, 하운아, 하운.
|Pr. 마왕| : 셋 중 뭐가 좋다고 생각하느니?
“……?”
마왕 새끼가 돌았나 보다.
|Pr. 마왕| : 그리고 또 물어볼 것이 있도다.
|Pr. 마왕| : 다나까가 좋을 것 같으냐 아니면 하오체가 좋을 것 같으냐?
|Pr. 마왕| : 짐은 개인적으로 하오체가 더 마음에 드는도다.
“…….”
하오체와 임금님체의 차이점이 도대체 뭔가 싶었다.
|Pr. 마왕| : 어서 말해줬으면 좋겠느니라.
계속해서 날아오는 메시지에 한 번만 더 메시지를 보내면 다시는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해줄 거라고 짤막하게 경고를 날렸다.
|Pr. 마왕| : 너무하느니!!
돌아오는 메시를,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이제 다 이해했어?”
“응.”
도하인의 물음에 나는 깔끔하게 정리된 보고서를 성의 없이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환’이란 길드를 대외적으로 알리자는 쪽으로 길드원들의 의견이 모아진 건 좋았다.
하지만 길드를 대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꽤 골치 아픈 일이었다.
일단, 준비할 게 너무 많았다. 증명해야 하는 일도 너무 많았다.
먼저 센터로부터 ‘길드’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가장 높은 등급인 S급 각성자가 세 명 이상 포함되어야 하며, 최소 일곱 명 이상의 인원을 길드원으로 두고 있어야 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 ‘S급 각성자’ 세 명이었다.
나는 옆에서 같이 보고서를 검토 중인 남자에게 물었다.
“해로운, 네 각성자 등급이 S급이라고 했지?”
“응, 우마한 길드장님께서 힘을 좀 써주셨지?”
센터에 뒷돈을 얼마나 찔러 넣어준 건지 궁금한 순간이었다.
어쨌든, 해로운이 S급 각성자니 필요한 S급 각성자는 두 명.
농발거미를 처치한 뒤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이 두 명을 누가 하느냐에 대해 의논했다.
그렇게 결정이 난 게 나와 마왕님이셨다.
“제가 해도 되는데!!”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
무림님께서 내려진 결정에 불만을 표출했지만, 학생은 학생답게 살아야 한다고 내 안의 유교걸이 그렇게 외쳐댔다.
어쨌든, 강하수는 회사로 돌아갔고 다른 길드원들은 하운이 제공해 준 방에서 쉬는 중이었다.
나도 쉬고 싶은데 해로운이랑 이렇게 길드 운영과 관련된 보고서를 읽는 중이었다.
“도하운, 꼼꼼히 봐.”
도하인을 빼먹을 뻔했네.
나는 눈가를 꾹꾹 누르고는 도하인에게 물었다.
“그냥, 해로운처럼 뒷돈 주고 각성자라고 증명받으면 안 돼?”
“안 돼. 너랑 그… 마왕?”
“우마훈.”
“이름은 됐고. 어쨌든, 걔랑 너는 센터의 고위 관료들이 볼 예정이거든.”
도하인의 말에 나는 뚱한 얼굴로 물었다.
“보기는 뭘 봐?”
“뭘 보기는, 너희가 각성자인지 비각성자인지 그 여부를 보는 거지.”
“어차피 비각성자라고 뜰 텐데.”
제일 문제는 이거였다.
‘귀환자’는 센터에서 어떤 검사를 받아도 비각성자로 뜬다는 것.
내 말에 도하인이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열심히 머리를 굴려봐야지. 그보다 해로운 씨.”
“넵.”
“우마한 길드장이 뒷돈 줘서 각성자로 인정받은 거였나 보네요?”
“하하, 그게… 어쩌다 보니…….”
해로운이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며 대답을 피한다. 도하인의 시선도 피했다.
도하인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해로운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겠는데, 나랑 형한테 그랬던 것처럼 그 인간들한테도 귀환자라고 밝힐 생각은 하지 마. 고리타분한 인간들이라서 믿지도 않을 거야.”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거든.”
귀환자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았다.
“그런데도 나랑 형한테는 잘도 귀환자라고 밝혔네?”
“믿어줄 것 같아서 그랬지.”
나는 보고서 읽기를 그만두고선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더는 속일 수도 없었고.”
내 말에 도하인이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려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마님? 어디 가려고?”
“잘래.”
“야! 뭘 잔다는 거야?! 지금 볼 게 얼마나 많은데!!”
도하인이 테이블 가득 쌓인 보고서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 쨍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지금, 글자에 멀미 느끼는 중이야. 잠깐만 자고 올게.”
“길마님! 나는!!”
“너는 계속 보고 있어야지. 30분만 자고 올 테니까 중요하다 싶은 건 정리해서 나중에 보여줘.”
법사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싱긋 웃음을 지어주고는 그대로 방을 뛰쳐나갔다.
방문을 닫기 무섭게 법사님의 애타는 메시지가 날아들어 왔다.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진짜 그렇게 가버리는 거야ㅑ?!!
|Pr. 9서클대마법사| : 도련님이랑 이 숨 막히는 정적! 진짜 숨 막혀서 법사 뒈질 것 같죠!!!
|Pr. 신살자(길드장)| : (૭ ᐕ)૭?
그렇게 나는 30분이 아니라 3시간을 자고 말았고, 각성자로 증명받기 위해 센터로 향하는 날은 성큼 다가오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