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107화 (107/168)

107화

“저는 반대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응, 그렇게 말하는 거 들었어.”

“오, 이프리트시여! 듣기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의견 존중은 어디 갔습니까!!”

정령사의 쨍한 목소리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네 의견도 존중할 거야. 나중에 오빠랑 이야기 나눌 때 너도 같이 갈래?”

“제가 거기는 왜 갑니까?”

“가서 네가 원하는 ‘계획’을 말해줬으면 해서.”

“…….”

씨익 웃음을 짓자 정령사님께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정령사님께는 미안하지만, 상황은 빠르게 해결할수록 좋았다.

나와 정령사의 대화를 얌전히 듣고 있던 길드원들 중 한 명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길마님, 나는?”

바로 법사님이셨다.

법사님의 해맑기 그지없는 물음에 나는 방긋 웃어주었다.

“도하인이 지금 너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법사님.”

“좋아! 나는 여기에 얌전히 있도록 할게, 길마님!!”

법사님께서 입을 다무시는 걸 마지막으로 드디어 이야기가 정리됐다.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려고 했다.

|Pr. 드래곤슬레이어| : 그런데 길드장님, 넌 나한테 물어볼 게 그거밖에 없어?

“……?”

느닷없이 날아온 메시지에 살짝 벌어졌던 입술이 도로 닫혔다.

“길드장? 왜 그러니?”

“아니, 아무것도. 잠깐 나갔다가 올게. 이야기들 나누고 있어.”

용사님이 이 미친 파티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겠냐고 물었지만 무시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바깥으로 나오기 무섭게 길드원들이 모인 귀빈실 안쪽에서 요란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야기 잘들 나누고 있네.

고양이의 안부를 묻는 게 아니었나? 드슬님께서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뚱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드슬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돌아왔다.

|Pr. 드래곤슬레이어| : 리카는 당분간 부탁할게.

|Pr. 신살자(길드장)| : 뭐?

|Pr. 드래곤슬레이어| : 움직이기가 힘들어서 그러는 거야.

그 말에 나는 입술을 오므렸다. 생각해 보니 드슬님, 지금 센터에 잡혀가 계시지? 뒤늦게 떠오른 것에 아차 하며 드슬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센터는 좀 어때? 우리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던데.

|Pr. 드래곤슬레이어| : 빨리도 물어보네, 길드장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Pr. 드래곤슬레이어| : 센터의 인간들이 자신들이랑 일해볼 생각이 없냐고 묻더라.

|Pr. 신살자(길드장)| : 그래서?

|Pr. 드래곤슬레이어| : 묵비권을 행사했지.

말이 왜 과거형인 거 같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드슬님께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지금도 계속 물어보고 있어?

|Pr. 드래곤슬레이어| : 아니.

다행이다. 우리 읽씹의 대왕인 드슬님의 위엄을 센터네 인간들도 알았나 보다.

|Pr. 드래곤슬레이어| : 센터에서 나왔거든.

나와서 그런 거였구나……. 그럼 당연히 못 물어보지, 이 망할 드슬님아…….

왜인지 허탈함이 몰려왔다. 그보다 드슬이 새끼, 센터에서는 어떻게 나온 거지? 오빠가 빼준 건가?

문득 드는 의문에 미간을 살포시 좁히는데 드슬님께서 이상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Pr. 드래곤슬레이어| : 센터에 그 녀석 있더라.

|Pr. 신살자(길드장)| : 그 녀석?

|Pr. 드래곤슬레이어| : 응, 그 녀석.

|Pr. 드래곤슬레이어| : 센터에 들어가면 볼 수 있을 거야, 길드장님.

|Pr. 신살자(길드장)| : 장난해?

이 망할 드슬이 새끼까 적진에 들어가라는 말을 아주 쉽게도 하네?

얼굴을 와락 찌푸리고 있는데 드슬님께서 웃음기가 섞인 듯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Pr. 드래곤슬레이어| : 그럼, 내가 데리러 갈 때까지 우리 리카 좀 잘 챙겨줘.

그게 끝이었다.

|Pr. 신살자(길드장)| : 저기요?

|Pr. 신살자(길드장)| : 야.

|Pr. 신살자(길드장)| : 야아ㅏ1!!!

망할 드슬이 새끼는 그 메시지를 끝으로 읽씹을 시전했다.

“망할 드슬이 새끼…….”

―웨오옹!!

아래서 들리는 신경질적인 울음소리에 나는 뚱한 얼굴로 말했다.

“네 주인 진짜 책임감 없다. 그치? 리카악!!”

어린 고양이라고 해도, 무는 입은 정말로 무지막지하게 아팠다.

애완동물은 주인 닮는다더니!

* * *

이시온은 욕설이 가득한 메시지를 무시하며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단테.”

나지막한 부름에 단테가 눈웃음을 지으며 이시온을 반겼다.

“볼일은 끝마치고 오셨습니까? 그보다 별일이십니다. 시온 씨가 아는 사람이 계시다니!”

“너는 내 인간관계를 어떻게 보는 거야.”

그 말에 단테가 놀란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시온 씨, 그 단어는 시온 씨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주변에 관계를 맺을 인간도 없지 않습니까?”

“…….”

이시온이 느닷없이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보이며 입을 뻐금거렸다. 그에 단테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 어서 가볼까요? 마몬께서 시온 씨를 위해 특별한 음식을 준비 중이랍니다.”

“…두부 가지고 장난치고 있는 거 아니야?”

단테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이시온이 짧게 혀를 차고서는 말했다.

“줘도 안 먹을 거니까 마몬에게 전화해서 당장 그만두라고 해.”

“시온 씨! 어찌 그런 잔혹한 말을 하실 수 있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음식 귀한 줄 모른단 말입니까!!”

“미쳤어? 소리 안 줄여?!”

이시온과 마몬이 있는 곳은 모든 게 복구된 강남 사거리 한복판이었다. 이시온의 말에도 단테는 울부짖으며 외쳤다.

“글로리아시여! 이 음식 귀한 줄 모르는 어린 양을 용서해 주소서!!”

“알았어, 먹을게! 먹는다니까?!”

이시온은 몰려드는 시선에 황급히 단테의 입을 막아버렸다.

“먹는다고, 이 미친놈아!”

그러면서 혹여나 누가 자신을 알아볼까 싶어 후드를 뒤집어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시온에게 입이 틀어막힌 단테가 눈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에 이시온이 질색하여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도하운이 왜 그런 미친놈들을 잘만 데리고 다니는지 알겠네.’

먼저 겪은 미친놈이 있어서 그런 거였다.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지.”

“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바뀐 신호등 불빛에 이시온이 다리를 움직였다.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보다 안 물어봐?”

“뭐를 말입니까?”

“내가 왜 센터에 잡혀갔고, 도하운과 드래곤을 죽이고 있었는지.”

이시온의 물음에 단테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모든 것은 글로리아의 뜻대로 행해질진대 제가 왜 이에 의문을 품어야 합니까?”

이시온은 역시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부럽군요.”

“…부러워?”

의아하게 되묻는 목소리에 단테가 이시온의 손을 덥석 잡고서는 걸음을 멈췄다.

“성녀님과 함께 싸우시다니요! 그 고운 손이 검은 어떻게 잡더랍니까? 또 어떻게 휘두르더랍니까?!”

목소리에서 광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이시온은 한쪽 눈가를 찡그리고선 단테에게 붙잡힌 손을 빼내었다.

“그런 거 신경 쓸 겨를도 없었어. 그리고 걔 손은…….”

곱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굳은살 하나 만져지지 않던 손이었다. 이를 떠올린 이시온이 얼굴을 찌푸리고는 짜증스레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

* * *

“길드장님, 그렇게 손으로 계속 놀아줬다가는 고양이가 당신 손을 장난감으로 인식할 겁니다.”

“아, 그래?”

그 말에 나는 고양이에게서 손을 거두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정령사님께서는 왜 나왔어?”

“너무 시끄러워서 말입니다. 해로운 놈이 마왕님께 시비를 걸어서 안이 지금 난리거든요.”

“난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용한데……?”

“해로운 놈이 소리 차단 마법을 펼쳐뒀거든요.”

나는 안이 얼마나 난장판일지를 상상해 보았다. 음, 그만 상상하자.

강하수가 문가에 기대고서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 시선에 나는 리카를 안아 들고서 물었다.

“할 말이라도 있어?”

내 말에 강하수가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그렇게 반대를 한 건, 당신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네가 지킬 게 많아서겠지.”

나는 정령사님의 말을 끊고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렇게 심하게 반대한 것도 아니었잖아.”

정령사님께서 할 말을 찾지 못한 얼굴로 입을 뻐금거리신다. 그 얼굴에 나는 정령사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말했다.

“강 대표님이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일은 없도록 만들어 줄게. 아니, 신상이 드러나지 않게 할 거야. 약속해.”

“…….”

내가 못 미덥나 보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정 못 미더우면 지난번에 하다가 만 언약을 마저 맺는 게 어때? 하나 더 남은 거 알지?”

“오, 이프리트시여!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계셨던 겁니까?!”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지!

짓궂음이 가득한 웃음을 보이는데 강하수가 작게 숨을 내쉬고선 말했다.

“언약은 필요 없습니다.”

오, 저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뭐가?”

콰앙―!!

“!!”

건물 전체를 울리는 폭발음과 함께 희뿌연 연기가 들이닥쳤다. 강하수가 손짓하며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시야를 가득 메웠던 연기는 삽시간에 사라졌다.

“엄므아! 로우니가 아쁘아 기절시켜써!!”

“길드장! 이 미친 새끼들 안 말리고 뭐 하고 있는 거니!! 최강! 너는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니?!”

“구경요, 구경!! 용사 누나도 여기 올라올래요? 형아들 싸우는 거 완전 잘 보임!”

용사님께서 무림이를 향해 엿이나 먹으라고 한다. 나는 난장판이 된 광경에 허탈하게 웃음을 흘렸다.

“길드장! 웃고 있지 말고 저 미친 새끼들 말려보라니까?!”

“미친 새끼라니! 용사님, 말 너무 심하죠!!”

“용사야, 짐은 미치지 않았도다.”

해로운의 뒤로는 붉은 마법진이, 우마훈의 뒤로는 검은 마법진이 펼쳐져 있다.

서로 총과 창을 겨누고 있는 모습에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정령사가 그런 나를 걱정 가득한 눈으로 보며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 다시 묻겠습니다만…….”

나는 손을 들어 입가를 한 번 쓸어내렸다.

“저분들을 대중에게 보여드릴 수 있겠습니까?”

“…….”

우리, 다시 생각해 볼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