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그래… 하운이 네 말대로 회사원 헌터 H 씨는… 아니, 해로운 씨는 신원 불명의 헌터가 아니지.”
“해로운, 그 새끼는 헌터가 아니라 귀환자……. 아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도하인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내게 말했다.
“해로운은 대중에게 하운에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사실이 아니지만.”
회사원 헌터 H 씨를 하운이 영입해 갔다는 유머를, 그때 바로잡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면서 도하인이 불퉁한 얼굴로 말했다.
“어쨌든 그 덕분에 해로운은 센터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거야.”
오빠가 도하인의 말을 넘겨받고는 미소를 짓는다.
“하운이 너도. 그리고 그쪽의… 우마훈 씨도요.”
“네놈은 누구인데 짐의 이름을…….”
“내 오빠다, 망할 마왕 새끼야.”
“불러도 되느니라.”
곧장 바뀌는 대답에 오빠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을 보였다가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 자리에 있는 하운이와 마훈 씨 그리고 해로운 씨까지는 센터의 눈을 피할 수 있어.”
“소위 뒤를 봐주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이 말 맞습니까, 도하준 길드장?”
우마한 길드장의 말에 오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우마한이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말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은 그렇지가 않죠. 대외적으로 소속되어 있는 곳이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센터가 건드린다는 건…….”
“센터는 언제나 인력 부족인 곳이거든.”
도하인이 비딱하게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세상에서 철밥통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은 직장이라서.”
특히나 강한 각성자들에게는.
덧붙이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 하고 멍청한 소리를 내었다.
죽기 살기로 심사를 통과해 각성자가 되었는데, 능력에 따른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매력적이지 않은 직장이 맞네.”
“그렇지? 그러니까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네 길드원들을 센터로 끌어들이려고 할 거야.”
도하인의 말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누구 마음대로 그러겠다는지 모를 일이었다.
“제일 먼저 강 대표님을 건드리겠네. 약점으로 잡을 구석이 넘쳐나시는 분이잖아.”
도하인의 말대로 강하수는 약점으로 잡힐 구석이 넘쳐나는 인간이었다.
먼저, 강하수가 대중에게 인식되는 이미지가 ‘각성자 위의 비각성자’라는 게 문제였다.
그간 숱하게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비각성자로 당당히 알려졌었는데,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걸 사람들이 안다면…….
아주 난리가 날 테지.
센터가 강하수에게 접근한다면…….
우리 정령사님께서 가지고 있는 힘을 대중에게 노출 시킬 거라고 한다든가, 뭐 그런 식으로 약점을 잡으려고 할 것 같았다.
스켈레톤을 처치하는 곳에 센터 소속의 헌터가 많이 있었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나는 짜증스레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오빠에게 물었다.
“하운이나 화랑 쪽에 속해있는 길드원이라고 거짓말해 줄 수는 없어?”
“길드는 의무적으로 소속 길드원들의 명단을 제출하도록 되어있어.”
“물론, ‘모두’의 이름을 싣지는 않습니다만…….”
목소리의 끝을 흐린 우마한이 이내 미안하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몬스터가 들끓던 곳에서 저나 도하준 길드장이나 서로 놀란 모습을 보여서요.”
“하지만, 하운이가 원한다면 명단을 조작해 볼게.”
“…….”
이 상황에서 “응, 그렇게 해줘.”라는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고개를 한 번 젓고는 오빠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길드원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결정해도 되는 거지?”
“물론이지.”
“그럼, 길드원들이랑 이야기 나누고 난 뒤에 결정할게.”
나 혼자서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나는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야! 너는 왜 나가는 거야?!”
도하인의 쨍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마왕님께서 내 뒤를 따라붙고 있었다.
마왕님께서 도하인의 말에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
“짐도 도하운이가 말한 ‘길드원’ 중 한 명이니라.”
그렇게 마왕님은 도하인을 비웃어 주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안쪽에서 도하인이 무엇이라 소리를 지르는 게 들렸지만, 마왕님도 그리고 나도 무시했다.
다시 문을 열어 도하인에게 우리 마왕님에게 일일이 화를 냈다가는 네 수명이 줄어들 것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그렇게 나는 아무 말 없이 길드원들이 모여있는 귀빈실을 향해 걸어갔다.
“도하운아.”
“왜.”
“괜찮으냐.”
그러나 들린 목소리에 나는 자리에 우뚝 서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안 괜찮아.”
이 빌어먹을 길드에 신입이 들어왔으면 했다. 이왕이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신입이.
그러니까… 이런 생각은 하면 안 되지만, 나보다 이세계에 더 오래 머물렀던 귀환자가 들어왔으면 싶었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생각에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그때, 머리 위로 커다란 손이 얹어진 게 느껴졌다. 뭔가 싶어 고개를 드니 마왕님께서 서툴게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뭐야?”
“천사님께서 짐이 괜찮지 않을 때마다 이렇게 해주셨느니라.”
마왕님은 그렇게 내 머리를 쓰다듬고서는 몸을 숙여 나와 눈을 맞추었다.
“이제 괜찮으냐, 도하운아?”
끈질기게 달라붙는 시선을 피하며 나는 뚱하게 말했다.
“…어디 사는 천사님인지 애한테 이상한 걸 가르쳐 주셨네.”
“!!”
마왕님께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너무 심하게 충격을 받으면 말을 못 한다더니, 마왕님이 딱 그 꼴이었다.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잡았다.
“가자, 마왕님. 애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
* * *
“얼굴만 안 알려지면 나는 상관없단다.”
“용사님 얼굴은 웬만한 헌터들한테는 이미 알려져 있을 텐데…….”
내 말에 용사님께서 짜증스레 얼굴을 구기셨다.
“가게 손님들한테 내가 그런 식으로 날뛰었다는 게 알려지지만 않으면 상관없다는 거란다, 길드장.”
아하, 그렇구나.
용사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공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저도요! 하림이 안전만 보장받을 수 있다면 상관없어요!”
“실험실로 붙잡혀 가지 않도록 해줄게. 그 전에, 네가 마법을 잘만 부리면 되지 않을까?”
“법사님께 종종 수업받고 있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법사한테서 마법 수업 받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저 자식이 거짓말을 치네?
얼굴을 와락 구기기 무섭게 이번에는 법사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로운이 누명만 벗겨줘요, 길마님! 그럼 길드고 뭐고 아무거나 다 할게!”
“네 누명은 오빠가 알아서 벗겨줄 거야.”
“앗싸~! 로운이 이제 범죄자 아니죠! 어디 사는 ‘도’ 씨로 시작하는 어떤 아가씨 때문에 로운이 온갖 고생을 다 했……. 쿠웁!”
나는 쿠션을 집어 던져 해로운 새끼의 입을 막아버렸다. 옆에 앉아있던 대공이 질색하는 얼굴로 해로운에게서 떨어져 앉았다.
“길짱님! 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
“길드 그거 사람들한테 알려지면 수업 합법적으로 빠질 수 있나요?”
무림이가 지금껏 본 적 없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나를 보고 있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 나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아마도?”
“예쓰!! 할래요! 저도 무조건 할래요!! 하겠습니다, 길짱님!!”
환호성을 내지르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길드를 대외적으로 알린다, 라는 것에 이렇게 태평하게들 나올 줄은 몰랐다.
“오, 이프리트시여! 다들 왜 그렇게 태평한 겁니까! 앞뒤도 재지 않고 뭘 하겠다고 말하는 겁니까!!”
아, 강하수 씨가 계셨지.
“대중에게 이 길드를 도대체 어떻게 알릴 생각입니까, 길드장님!”
이 빌어먹을 길드를 어떻게 알릴 생각이냐니…….
나는 마왕님을 한 번 쳐다보고는 방긋 웃음을 지었다.
“먼저, 마왕님을 얼굴 간판으로 내세워 볼까? 마왕님, 드라마 촬영 언제부터 재개한다고 했지?”
마왕님께서 출연하신다고 했던,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연이은 사건으로 촬영이 중단된 상태였다.
내 말에 정령사님께서 버럭 소리 지르신다.
“장난하십니까!!”
그 쨍한 목소리에 나는 불퉁하게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아니면 용사님을 간판으로 세우는 거지.”
“얼굴만 안 알려지면 상관없다는 내 이야기를 도대체 뭘로 들은 거니, 길드장?”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고 답해준 뒤 정령사님께 말했다.
“너희랑 이야기한 다음에 오빠랑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보려고 했어! 나는 ‘길드’란 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니까!!”
“일단, 귀환은 개판으로 돌아가고 있죠.”
나는 다시 한번 더 해로운 새끼를 향해 쿠션을 집어 던졌다.
안타깝게도 내가 던진 쿠션은 조준을 잘못하여 대공을 맞히고 말았다.
“무슨 짓이에요, 길마님!!”
“실수였어, 실수.”
나는 대공에게 빠르게 사과한 뒤 정령사에게 말했다.
“어쨌든 너는 반대란 거지?”
정령사가 내 말에 무언가를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구체적으로 계획이 세워지는 게 먼저입니다. 세워지는 계획을 보고 나서 결정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정령사가 나를 달래려는 듯이 말을 건네었다.
“제가 무작정 반대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계획이 세워지는 것을 보고 찬성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어차피 세워도 안 지킬 계획, 그냥 찬성하는 게 좋을 거 같죠. 그럴 거 같죠.”
“맞아요, 정령사 형아! 저도 신년 계획이 개학하기 전에 E○S 한 권씩 다 풀고 들어가는 거였는데, 지금 제 꼴을 보세요!!”
자랑이냐.
나는 짧게 혀를 차고는 정령사에게 말했다.
“그래, 네 뜻이 그렇다면야.”
하지만.
|신살자(길드장)| : 응답하라, 드슬님.
“…갑자기 드래곤 슬레이어님은 왜 부르시는 겁니까, 길드장님?”
나는 의아스레 묻는 목소리를 무시하고는 계속해서 드슬님을 불러댔다.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이 망할 드슬이 새끼가 답이 없다.
결국, 나는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신살자(길드장)| : 마왕님한테 진언 날리라고 할 거야.
“도하운아, 지금 당장이라도 날릴 수 있도다.”
“잠깐만.”
나는 3초의 시간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1초를 딱 세었을 때.
|드래곤슬레이어| : 왜.
드디어 답장이 돌아왔다.
나는 씨익 웃음을 지으며 귀환을 대외적으로 알릴지 말지에 대한 이야기를 메시지로 보내줬다.
|신살자(길드장)| : 어떻게 할래?
|드래곤슬레이어| : 마음대로 해.
좋아, 드슬님 의견도 수립했고.
나는 의문이 가득한 얼굴들을 보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귀환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으로 결정.”
“그게 뭡니까!!”
뭐기는, 민주 사회의 결정 방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