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오싹하게 인 소름을 박박 문지르며 이를 갈았다.
“누구, 무림이 새끼한테 진언 좀 날려줄 사람? 도대체 어디 있냐고 말이야.”
내 말에 용사님께서 눈살을 찌푸리셨다.
“네가 넣으면 될 것을 왜 우리한테 시키니, 길드장?”
“맞아요. 길마님이 넣으면 되잖아요.”
―맘마!
하림이의 목소리를 뒤이어 정령사님께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길드장님, 설마 진언 넣는 법 모르십니까?”
망할 길드원들 같으니라고.
진언 넣는 법을 모르는 게 아니라, 나는 진언을 못 날린다고! 진언만 날릴 줄 알아봐. 내 나긋한 목소리를 모두에게 날려버릴 거다. 그보다 하림아, 너는 언제 또 폴리모프를 푼 거야.
어쨌든, 이 순간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해달라고 하면 별말 없이 해주셨던 우리 마왕님이었다. 마왕님께서는 지금쯤 우마한 길드장한테 귀가 잡히고 있겠지.
|Pr. 마왕| : 도하운아, 괜찮으냐?
우마한 길드장에게 귀가 잡히고 있지 않나 보다. 그게 아니면, 귀가 잡히고는 있지만 내게 메시지를 보낼 정신머리가 있거나.
나는 괜히 코를 한 번 훌쩍이고는 마왕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안 괜찮아ㅠ
―안 괜찮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 게냐!! 내 지금 당장 도하운이에게로 가겠다!! 형님! 나를 말리지 말거라!!
“아악! 시발 망할 마왕 새끼!!”
이것들이 아주 쌍으로 지랄들이야! 이번에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무림님의 청량한 목소리는 어떻게 참을 수 있었지만, 마왕님의 그윽한 목소리는 몇 번을 들어도 참을 수가 없었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진 나를 보고는 대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으… 아프겠다.”
―맘마? 맘므아?!
하림이가 놀란 눈을 뜨고는 날갯짓한다. 대공이 그런 하림이를 꼭 끌어안으며 토닥였다.
“그대여, 그대의 엄마는 괜찮다네. 그러니 진정하게나.”
유대공, 저 새끼는 왜 갑자기 또 ‘그대’ 소리야?
나는 넘어진 의자를 바로 일으켜 세우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곧장 마왕님께 경고성 짙은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마왕님, 하운으로 오기만 해봐. 너 죽고 나는 사는 거야.
하지만 보낸 메시지에 돌아오는 답장이 없었다. 이 새끼, 설마 진짜 하운으로 오는 건 아니겠지? 아니, 이미 온 건 아니겠지?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혹시나 싶어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데 무림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Pr. 무림제일고수| : 길마님, 왜 답장이 없어욤?
나는 짜증스레 머리를 쓸어 올리며 무림이 새끼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답장이 없을 만한 일이 있었으니까 답장이 없었겠지!!
|Pr. 무림제일고수| : 왓더퍽!!!
|Pr. 무림제일고수| : 길마님한테도 그런 일이 있구나!!
아니, 이 새끼가?
나는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그보다 지금 어디야?
|Pr. 무림제일고수| : 모르겠어욤ㅠ아임 쏘 새드ㅠㅠ
|Pr. 신살자(길드장)| : 나는 너 때문에 새드다 시발ㅠ
|Pr. 무림제일고수| : 히잉ㅠㅠ
히잉이고 지랄이고 나발이고, 아무래도 무림이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말해줄 정신머리가 없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무림이와 함께 있다는 법사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지금 어디야?
|Pr. 신살자(길드장)| : 아니다. 뭐가 보여?
|Pr. 9서클대마법사| : 하운 길드원님들의 매서운 눈빛들이 보이죠! 법사 지금 완전 살 떨리죠!!
시발……. 이 새끼도 똑같잖아.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고는 망할 법사님과 무림이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Pr. 신살자(길드장)| : 몇 층인지는 알겠어?
|Pr. 9서클대마법사| : 1층으로 내려온 거 같은데?
|Pr. 신살자(길드장)| : 도대체 왜 거기까지 내려간 건데…….
|Pr. 9서클대마법사| : 무림님이랑 정신없이 떠들다가 정신을 차려보니ㅎ
“…….”
마왕님을 만나면 무림이와 꼭 언약을 맺어야겠다. 정신없이 나불대는 입을 다물게 만들어야지.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쉰 뒤 법사님께 다시 한번 더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여기 어디냐고 물어봐.
|Pr. 9서클대마법사| : 허어어억!! 법사는 내향적인 MBTI I유형 인간이죠ㅠ
|Pr. 신살자(길드장)| : 지랄ㄴㄴ
네가 I유형 인간이라니! 세상 모든 I유형 사람들한테 사과해, 법사 새끼야!!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법사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다.
|Pr. 9서클대마법사| : 여기 로비라는데.
“…….”
|Pr. 9서클대마법사| : 로비였죠!
|Pr. 9서클대마법사| : (૭ ᐕ)૭!!
“아오오! 망할 법사 새끼!!”
하운의 건물은 20층 이상의 높은 고층 빌딩이었다. 귀빈실은 오빠의 집무실과 가까운 최상층에 위치해 있었고. 그런데 그 최상층에서 어떻게 로비로 내려간 거야?! 암만, 무림이 새끼랑 정신없이 떠들고 있었다고 해도 그렇지!!
짜증스레 머리를 헤집고 있는데, 대공이 하림이가 쫑긋 세우고 있는 두 귀를 막고서는 내게 말했다.
“길마님! 욕 좀 그만 써요! 하림이가 그러다 배우겠다고요!!”
“내가 뭐.”
나는 뚱한 얼굴을 보여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랑 같이 법사랑 무림이 데리러 갈 사람.”
정령사님께서는 폰을 들어 화면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용사님께서는 꽂혀있는 잡지책을 들었다.
―맘마!
“하림이 기각.”
―웨오오옹!
“너도 기각.”
나는 물끄러미 대공을 바라보았다. 대공이 하림이와 고양이를 끌어안고서는 방긋 웃는다.
“저는 애들을 돌봐야 해서.”
“…….”
망할 길드원들 같으니라고.
* * *
화랑의 길드장인 우마한은 쥐구멍이 있다면 쥐가 되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하운은 어디 있느냐! 어서 도하운을 데리고 오너라!!”
라이벌 관계인 하운의 로비 한가운데서 하나뿐인 동생이 부끄럼 모르고 저렇게 외쳐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하운이 무슨 조치를 취해놨는지, 기자들이 보이지 않는 점이랄까.
“우마한 길드장 아니야……? 옆에는 누구야……?”
“우마한 길드장 동생인 거 같은데? 왜, 하운 아가씨랑 같이 드래곤을 잡았다는…….”
불행인 점은 하운의 로비에 모여있는 길드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우마한은 십 년은 늙은 얼굴로 우마훈을 쳐다봤다.
“도하운아! 짐이 왔도다!!”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목소리에 로비에 모여있던 하운의 길드원들이 미간을 좁혔다.
“임금님 말투…….”
“그러고 보니, 우마한 길드장의 동생이 사극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들었었는데.”
“과몰입이 저렇게 무서운 거구나.”
우마한은 저 미친 동생 새끼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머리를 굴려보았다. 이 정도 소란이면, 하운의 길드장인 도하준에게도 소식이 들어갔을 거다.
그러기 전에 저 미친 동생 새끼를 화랑으로 끌고 가야 했다.
“마훈아, 신살… 아니, 도하운 씨는 지금 바쁜 모양이니까…….”
“형님! 도하운이는 생각보다 바쁜 사람이 아니니라!!”
“그… 그러니?”
우마한이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그 물음에 우마훈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도하운아! 짐이 왔을진대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인 게냐!!”
드디어 그 애타는 목소리에 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 훈아! 너 미쳤어?!”
“왓더, 퍽! 형아, 미쳤어요?”
“해로운 씨! 그리고 최강 군!!”
해로운과 최강이었다. 헐레벌떡 뛰어오는 두 사람의 모습에 우마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보고 싶은 도하운은 보이지도 않고, 왜 망할 네놈들이 보이는 게냐?”
그에 해로운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마훈이, 너는 화랑에 얌전히 있을 것이지 왜 여기까지 온 거야?”
“도하운을 보러 왔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망할 법사 놈아.”
“…제발 그 법사란 소리는 우리끼리 있을 때 하자, 응?”
해로운의 말에 우마훈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도 우리끼리 있지 않으냐?”
“우리끼리 있지 않아! 저기 저 사람들은 안 보여?!”
우마훈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말했다.
“저 사람들은 짐의 주변에 있는 것 아니냐.”
“그럼 네 형과 무림님은 뭔데!”
“우리 형님께서는 짐의 뒤에 계시고, 무림 놈은 네놈의 뒤에 있지 않으냐. 내 눈에는 또렷하게 보이는 건 네놈뿐이니라.”
“…….”
묘하게 듣기 이상한 말이었다. 그 때문에 해로운은 주춤거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도하운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해로운! 최강!! 그리고 우마훈, 야!! 너 내가 분명히…….”
“도하운아!!”
그 목소리에 우마훈이 도하운에게로 달려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우마훈을 붙잡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도하운은 순식간에 자신을 끌어안은 우마훈을 보고는 당황하여 두 눈을 끔뻑였다.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우마훈이 도하운의 머리칼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도하운아! 걱정했지 않느냐!!”
“어… 그러니까…….”
그때였다. 도하준이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서는 잔뜩 성난 목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우마한 길드장! 이게 도대체 무슨 소란입니까! 연락도 없이 이렇게 남의 길드에 멋대로……!”
그러고는 보고 말았다.
“너……! 너어……!!”
바람 불면 날아갈까, 비가 오면 젖을까.
애지중지 귀하게 키워낸 여동생이, 웬 낯선 남자는 아니지만 빌어먹을 우마한 길드장의 동생 되는 놈의 품에 안겨있는 모습을 말이다.
“하운… 우리 하운이를……!!”
“오빠!!”
“형!!”
“보스!!”
도하준은 그대로 뒷목을 잡고서 쓰러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