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드래곤 슬레이어 ‘이시온’은 자신이 왜 센터(Center)에 붙잡혀 오게 됐는지를 되돌아보았다.
먼저 길드장님께서 BJ 헬반도인지 불반도인지 뭔지를 내 손에 맡겼었지.
“내 폰!!”
촬영 중이던 핸드폰은 두 동강으로 아주 깔끔하게 잘라내고서 말이지. 그런 다음에는…….
“둘이 얌전히 있어야 해!!”
그래, 어떻게 대답할 새도 없이 그렇게 말하고는 폭음이 들려오는 곳으로 사라졌지.
그다음에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더라.
“저 망할 년이 이게 얼마나 비싼……. 아아악!!”
머리가 반쯤 돈 것 같은 마왕이란 놈이 BJ 헬반도인지 불반도인지 뭔지의 팔을 뒤로 꺾어버렸지. 우드득,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도록 말이야.
그 소리 참 경쾌했는데…….
그런데 내가 왜.
“이시온 씨, 아직 시간을 더 드려야 되겠습니까?”
이곳에 잡혀있는 거지?
BJ 헬반도인지 불반도인지를 위협했던 건 마왕 새끼인데.
이시온은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우리 리카는 괜찮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센터 제5팀의 이수혁 팀장은 그 몸짓에 흠칫거렸다.
그야, 눈앞의 남자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나타났던 드래곤을 쓰러뜨린 세 명의 헌터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단 세 명만으로 드래곤을 무찌른 것만으로도 대서특필감인데 다친 사람도 없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지지고 있길래…….’
이수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수혁, 그에게 내려진 임무는 눈앞의 남자를 센터로 끌어들이란 것이었다,
‘세 명 중 한 명은 하운의 도하준 길드장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여동생이라 했고, 한 명은 우마한 길드장이 데리고 가버렸지. 듣기로는 형제 사이라고 하던데…….’
어쨌든 간에 두 명 모두 접근이 쉽지 않을 터였다. 센터로서는 아쉬운 일이었다. 그러니 남은 사람만이라도 센터로 끌어들여야 했다.
센터는 언제나 강한 각성자를 원하는 곳이었으니.
이수혁은 자신의 어깨에 놓인 짐이 참 무겁다고 생각하며 다시 입을 열고자 했다.
똑똑.
하지만 문을 두드리는 경쾌한 노크 소리가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이수혁 팀장님, 저 지한결입니다.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수혁이 잔뜩 긴장했던 얼굴을 풀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끼익, 문이 열리고 선한 인상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시온은 들어선 이의 얼굴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 모습이 눈에 보일 텐데도 남자, 지한결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센터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이시온 씨와는 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겠습니다.”
그 말에 이수혁이 환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부탁할게! 지한결 팀장!”
불유쾌한 소음과 함께 문이 닫혔다. 닫힌 방 안에는 이시온과 지한결, 둘뿐이었다.
지한결이 의자를 끌어안기 무섭게 이시온이 나른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었다.
“센터 소속인 줄은 몰랐는데.”
인사라고 보기에는 다소 어려운 말이었다. 이시온의 말에 지한결이 드러나는 표정 없이 말하였다.
“저도 이곳에서 당신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요컨대, 달갑지 않은 만남이란 말이었다.
“당신과 우마훈 씨, 그리고 도하운 씨를 촬영한 영상들은 계속 삭제 조치를 취하는 중입니다.”
“그건 우리 길드장님한테 말하지 그래?”
지한결이 도하운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다는 판단하에 꺼낸 말이었다.
지한결은 이시온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열쇠를 꺼내 이시온을 묶어두고 있던 수갑을 풀어주었다.
“…이래도 돼?”
“네, 됩니다. 상부랑 이야기 다 끝냈거든요.”
지한결은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 보호자도 오셨고 말입니다.”
“…보호자?”
이시온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시온의 물음에 지한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열었다.
“시온 씨, 여기 계십니까?”
“……!”
들리는 목소리에 이시온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당탕, 넘어지는 소리에 안으로 들어오던 남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여기 계시는 거 맞았군요!”
단발로 자른 검은 머리칼이 남자가 움직일 때마다 찰랑거리고 있었다. 남자는 지한결을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시온 씨를 보호해 주고 계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원하신다면 댁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어찌 그런 걸 부탁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 칠칠치 못한 시온 씨를 보호하고 계셔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 것을요!”
저 자식이.
이시온이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다가 그대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둘, 안면이 있는 사이 아닌가……?’
아지트를 공격해서 엉망으로 만든 게 지한결이다.
‘단테가 나를 찾으러 나간 사이, 저 녀석이 아지트를 공격했다고 했던가……?’
그래서 마몬이 상대를 했었다고 들었던 것 같다. 도중에 막는 게 벅차서 도망쳤다고 했었지. 그래서 서로 모르는 건가?
이시온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는 지한결을 쳐다보았다.
분명, 그 일에 대해 잊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처음 들어올 때 자신에게 알은체를 하지 않았겠지.
“시온 씨, 제가 데리러 온 게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요? 왜 그렇게 멍청하게 서있나요?”
“…가지.”
이시온이 생각을 멈추고는 단테를 따라나섰다. 지
한결이 복도로 나가려는 이시온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시온 씨.”
사실, 이시온은 센터에 남아 지한결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왕성으로 들어가기 전, 도하운과 지한결이 나눈 대화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 이시온은 걸음을 옮기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다시는 볼 일 없으면 좋겠네.”
나도, 그리고 우리 길드장님도.
지한결에게만 들릴 만한 작은 목소리였다. 그에 지한결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곤란할 것 같네요.”
* * *
“하아아…….”
나는 문에 기대고서는 참았던 숨을 터트렸다. 해로운 법사님께서도 나와 마찬가지로 문에 기대고서 크게 한숨을 내쉬는 중이었다.
“…두 분, 괜찮으십니까?”
오빠의 비서인 은율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해로운 법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그런 법사의 머리를 붙잡고서는 억지로 끄덕이게 만들어 줬다.
“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은율 씨.”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짓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율아.”
“억……!”
“길마님!!”
오빠가 기대고 있던 문을 열지만 않았으면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거다. 뒤로 기울어지려는 내 몸을 법사가 가까스로 붙잡았다.
“…길마님?”
“…….”
위쪽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나도 해로운 법사님도 애써 무시했다.
|Pr. 신살자(길드장)| : 법사, 이 망할 새끼야!!!
|Pr. 9서클대마법사| : 힛ㅎ
힛은 무슨 힛이야!!
나는 해로운의 팔꿈치를 있는 힘껏 꼬집어 주었다. 해로운의 얼굴이 새빨갛게 익는 건 금방이었다.
|Pr. 9서클대마법사| : 아프아ㅏ! 아프다고오ㅗ 진짜 아파ㅏ1!!
오빠가 있어서 차마 앓는 소리는 못 내는 모양이다. 나는 해로운을 향해 승리의 미소를 지어주었다.
“하운아, 그만 앉아있고 어서 일어나.”
“네에.”
나는 불쑥 내밀어진 오빠의 손을 잡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는 그렇게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는 은율에게 말했다.
“율아, 잠깐 들어올래? 하운이는 로운 씨랑 돌아가도 좋아. 가서 친구분들이랑 이야기 나누고 있어.”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율이 오빠의 뒤를 따라 들어갔고, 곧이어 문이 닫혔다.
“형! 도하운은 어디 가고, 왜 은율 형을 데리고 오는……!!”
도하인의 성난 목소리가 닫힌 문을 뚫고 들려왔다. 나는 한쪽 눈가를 찡그리고는 어깨를 움츠렸다.
오빠와 도하인한테 내가 ‘귀환자’인 걸 밝히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래, 거기까지만 좋았다는 거였다.
귀환자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떻게 귀환자가 되는 건지… 나는 이에 대한 설명은 모두 생략했다.
도하인은 불같이 화를 내며 제대로 설명해 달라고 닦달했지만…….
‘하인아, 그만.’
오빠가 그런 도하인을 말렸다. 정말이지, 오빠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길마님,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너 왜 바닥에 앉아있어?”
내 말에 법사님께서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리며 말했다.
“하준 형님이 길마님만 일으켜 세워줬으니까.”
무슨 그런 이유로 앉아있나 싶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눈살을 찌푸리니 법사가 뚱한 얼굴을 보이며 내게 물었다.
“그보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길마님, 계획은 세워두고 일을 벌이신 거겠죠? 그런 거겠죠?”
법사의 물음에 나는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원래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이 즐겁다. 그렇게 돈도 거덜이 나보고, 싸우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길마님?”
“없어.”
“야!!”
고막을 내지르는 목소리에 나는 두 귀를 막았다. 해로운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다다다 쏟아내기 시작했다.
“너는 아무 계획도 없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귀환자니 그런 소리를 한 거야? 아주 그냥 길마님이 귀환의 길드장이라고 말하지 그랬어?!!”
“말하려고 그랬어! 나랑 같은 귀환자들이 모인 길드가 있고! 내가 그 길드의 길드장이라고 말하려고 그랬다고!! 그런데 오빠가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잖아! 불만이면 네가 이야기하든가!!”
“뭐를!”
“뭐기는 뭐야! 우리 아가씨가 바로 귀환의 길드장이라고!!”
“그렇게 말하면 내가 못 할 줄 알아!!”
“못 할 줄 안다! 망할 법사 새끼야!!”
빼액 소리 지르기 무섭게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저… 두 분 이야기하시는 중에 죄송합니다만…….”
은율이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송구하다는 듯이 우리에게 말했다.
“안쪽까지 이야기가 다 들립니다.”
“…….”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렸고, 누가 잡을세라 빠르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길마님! 야!! 같이 가!!”
“망할 법사 새끼야! 그렇게 좀 부르지 마!!”
울분에 찬 나의 목소리가 복도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