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내 대답을 끝으로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정적이 찾아왔다. 이를 부순 건 하준이 오빠였다.
“그래, 하운이 너라는 거지…….”
오빠가 목소리 끝을 흐리며 나를 쳐다본다. 나는 애매하게 웃음을 지으며 오빠의 시선을 피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질문을 던진 건 도하인이었다. 도하인이 눈가를 일그러뜨리며 내게 물었다.
“네가 어떻게 드래곤 새끼를 잡은 거냐고!”
쾅, 테이블을 내리친 주먹이 아프지도 않나 보다.
도하인은 한 번 더 테이블을 내리치고는 붉게 달아오른 주먹을 풀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짓고 있던 웃음을 지우며 입을 열었다.
“영상 봤을 거 아니야.”
“도하운!”
나를 부른 목소리에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다행히도 답을 바라고 나를 부른 건 아닌 모양이다. 도하인이 크게 숨을 내쉬고선 내게 다른 것을 물었다.
“…나는 어떻게 치료해 준 거야.”
“뭐? 치료해 줬다니? 하인아, 그게 무슨 소리야? 하운이가 치료해 줬다니?”
이번에는 내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망할 도하인, 내가 치료해 준 일은 까맣게 잊은 줄 알았는데!
도하인이 오빠의 놀란 목소리에 목 언저리를 긁적이고는 말했다.
“던전 공략하다가 다쳤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하인아! 어디 다친 곳은 없다고 그렇게 보고를 받았었는데……!”
“그야, 도하운 저 녀석이 나를 치료해 줬으니까 그러지.”
도하인이 나를 보며 비딱하게 웃음을 짓는다.
“그래도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는 마, 형. 도하운이 꽤 대단한 각성자인가 보더라고, 흉터 하나 안 남았다니까?”
“…….”
여기서 하나 분명히 해둬야겠는데, 나는 ‘각성자’가 아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게 뭐가 중요하겠느냐마는.
“하운아…….”
앓듯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입술 안쪽을 꾹 깨물었다.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
느닷없이 나타난 메시지에 법사를 흘긋거렸다.
나와 눈을 마주친 법사가 눈웃음을 지으며 또 하나의 메시지를 내게 보내왔다.
|Pr. 9서클대마법사| : 도련님한테 도련님을 치료해 준 사람은 길마님이 아니라 나라고 할까?
“…….”
그러고 보니, 법사도 힐(Heal)을 사용할 줄 알았지.
대답이 없는 나에게 해로운 법사님께서 또 하나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Pr. 9서클대마법사| : 내가 한 거라고 하면 되잖아, 길마님.
해로운 법사님의 말이 맞다.
도하인한테 그때는 네가 잘못 본 거라고, 너를 치료해 준 사람은 내가 아니라 회사원 헌터 H 씨라고 말해도 되지만…….
|Pr. 신살자(길드장)| : 됐어.
|Pr. 9서클대마법사| : 。•́︿•̀。
속이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그보다 도하인이 속인다고 속아줄 사람도 아니었고 말이지.
법사님께 이 상황은 내가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하려는데,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상에 같이 있던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니, 하운아?”
“응?”
“영상에 같이 찍힌 한 명은 우마한 길드장의 동생이란 거 알아. 하지만 한 명은 누구니.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오빠의 말을 뒤이어 도하인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그 처음 보는 남자랑 꽤 합이 맞던데? 해로운이랑 같이 있는 줄 알았더니, 그 새끼랑 같이 있었던 거야?”
아니, 무슨 그런 미친 소리를!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 질렀다.
“아니! 내가 미쳤다고 걔랑 같이 있어?!”
“아니요! 하운 아가씨는 저랑 계속 같이 있었습니다!!”
내 뒤를 이어 해로운도 버럭 소리 질렀다. 나와 해로운의 말에 도하인이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아니면 아닌 거지, 둘 다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해……?”
나는 헛기침을 두어 번 터트리고는 말했다.
“네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니까 그러지.”
“내가 뭘?”
그런 게 있어!
나는 목구멍 바깥까지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키고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나는 해로운 씨 말대로 해로운 씨랑 계속 같이 있었거든?”
“맞습니다, 도련님. 아가씨는 제가 계속 보호 중이었습니다.”
해로운의 말에 나는 얼굴을 구기고는 짜증이 가득한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보호하기는 누가 누구를 보호해?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바보죠ㅠ?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ㅠㅠ?
옆에 앉아있는 도하인이 해로운을 한 대 쳐줬으면 좋겠다.
나는 주먹을 꽉 쥐며 대화가 끝나는 즉시 해로운 새끼의 머리를 한 대 쳐버리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해로운이 그런 나를 보고는 씨익 웃음을 짓는다.
정말이지, 얄미운 자식이다.
그렇게 주먹을 꽉 쥐고선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오빠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어쨌든. 그 사람은 누구니, 하운아? 친구 중에 그런 사람은 없잖니.”
당연하죠, 오빠. 친구 중에 드슬이 새끼 같은 놈이 있다면, 내 손수 멱을 따고 말리라!!
오빠의 말에 질색하고 있는데 도하인이 심기 불편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BJ 헬반도인지 뭔지 그 개새끼를 죽이려다가 센터에 잡혀갔다는 건 알지?”
아니, 몰랐는데. 그보다 드슬님! 왜 센터에 잡혀갔나 했더니!!
절로 앓는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참고로 우마한, 그 새끼 동생은 화랑 쪽에서 빼돌렸어. 그러니까 말해.”
“뭐를……?”
내 말에 도하인이 답답하다는 듯이 얼굴을 구기고는 말했다.
“센터에 잡혀있는 그 새끼랑 어떤 관계인지 말이야! 우마훈, 그 새끼랑 무슨 관계인지는 안 물어볼 테니까 그 새끼랑은 무슨 관계인지 말하라고!!”
잔뜩 성난 목소리에 나는 입술을 우물거리며 도하인에게 물었다.
“…걔한테 왜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 거야?”
“네가 뭐든 말해야 그 새끼를 빼돌려 주든지 할 테니까 그러지!!”
“…….”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그에 멍하니 입술을 벌리는데 오빠가 내 손을 조심스레 잡으며 물었다.
“하운아, 말해주기 힘든 거니?”
나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고갯짓에 오빠가 애써 미소를 그린다.
“…그래, 말해주기 힘든 거라면 됐어.”
“형! 되기는 뭐가 됐다는 거야! 안 돼!!”
오빠의 말에 도하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두 손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소리 지르듯이 말을 쏟아냈다.
“도하운, 너 언제부터 각성자였어? 센터에서 받은 검사에서는 분명 비각성자라고 떴잖아!!”
그야, 나는 ‘각성자’가 아니니까.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키며 나는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그런 내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도하인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버럭 소리 질렀다.
“그렇게 웃지만 말고 뭐든 말하라고!!”
“도련님, 화 좀 푸시고…….”
“해로운, 당신은 입 닥치고 있어!!”
도하인의 성난 목소리에 해로운이 깨갱 물러났다. 도하인이 다시 나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애초에 강 대표님 회사에서 휘말렸던 심사를 제외하고는……!”
돌연, 도하인이 말을 멈추더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나랑 형이 모르는 사이에 심사에 휘말리기라도 했던 거야?”
들리는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거야?”
돌발성 적합자 심사는 ‘인간성’을 시험하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일 수 있는가, 라는 그런 거 말이다.
그런 걸로 인간의 본성을 시험하려고 하다니, 절로 웃음이 나오는 시험이었다.
나는 눈물이 차오른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그 두 사람과는 아는 사이야.”
“길……!”
해로운이 튀어나오려는 말을 애써 주워 삼키고서는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Pr. 9서클대마법사| :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그만둬.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니,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Pr. 9서클대마법사| : 내가 수습해 볼게. 그러니까 길마님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있어. 응?
이런 메시지를 보낼 리가 없으니.
나는 해로운을 보며 방긋 웃음을 지어줬다. 해로운이 앓는 소리를 내고는 손을 들어 얼굴을 문지른다. 자포자기한 것처럼 보였다.
오빠와 도하인은 영문을 몰라 두 눈을 끔뻑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한 번씩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우마한 길드장의 동생도, 센터에 잡혀있다는 그 사람과도. 처음부터 아는 사이였다는 말이야.”
“뭐……?”
얼빠진 목소리를 뒤로하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해로운 씨와도 처음부터 아는 사이였어. 얼굴은 몰랐지만.”
오빠와 도하인이 동시에 해로운을 쳐다봤다. 몰려드는 시선에 해로운이 골치 아프다는 듯한 얼굴을 보인다.
“미안.”
사과를 한 대상은 도하인이었다. 내 사과를 받아 든 도하인이 얼굴을 찌푸렸다.
“뭐가 미안하다는……. 으아악!”
“하인아!!”
오빠가 놀라 소리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를 묶고 있던 사슬이 도하인의 발목을 잡아 천장 높이 들어 올려버렸으니까.
“뭐야?! 도하운, 이거 뭐냐고!!”
거꾸로 매달린 도하인이 경악하며 버둥거린다.
“하인아! 얌전히 있어! 그러다 떨어질라!! 하운아, 저게 도대체 뭐니!!”
그런 도하인을 오빠가 붙잡으며 내게 소리치고. 나는 놀란 오빠를 향해 눈웃음을 지어주며 말했다.
“괜찮아, 오빠. 내가 설마 도하인을 해칠까 봐?”
그러고는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모르쇠로 일관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커져버렸다. 더는 속일 수도 없고.
그러니까 부딪쳐 봐야지.
“각성자는 아니야. 그렇다고 비각성자도 아니지.”
모든 걸 드러내겠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귀환자(歸還者)야.”
보여줄 수 있는 패는 모두 보여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