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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100화 (100/168)

100화

내가 보낸 메시지에 곳곳에서 탄식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간단히 무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인이는요?”

“도하인 부길드장님께서는 지금 의무실에서 몸을 회복 중이십니다. 크게 다친 곳은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곧 깨어날 거라면서 말을 덧붙이는데,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깨어나자마자 나를 찾아올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가시죠, 아가씨.”

“네에…….”

재촉하는 목소리에 나는 애매하게 웃음을 짓고서는 은율을 따라나섰다.

해로운 법사님께서는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다가 뒤늦게 내 곁을 따라붙었다.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진짜 부딪쳐 볼 거야?

나는 초조함이 가득 보이는 얼굴을 흘긋거리고는 간단하게 답장을 보냈다.

|신살자(길드장)| : 몰라.

|Pr. 9서클대마법사| : 。•́︿•̀。

내 답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어쩌라고다.

이 빌어먹을 상황을 수습하는 건 나다. 내가 ‘길드장’이어서, 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상황을 수습하고자 하는 건, 내가 마주해야 했던 상황을 차일피일 미루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달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마주해야 했던 상황’이라는 건,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일도 포함되고 글로리아의 신관님들을 만나러 가야 했던 일도 포함이 된다.

이미 지나간 일을 생각해 봤자 무엇 하겠느냐마는.

|Pr. 9서클대마법사| : 그런데 길마님.

|신살자(길드장)| : 뭐.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한테 아가씨라고 부르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법사 슬프죠ㅠ

“……?”

이게 웬 생뚱맞은 메시지인가 싶어 법사 새끼를 쳐다봤다. 내 시선에 법사가 불퉁하게 입술을 삐죽인다. 그 얼굴에 나는 질색하고는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는 사람이 왜 너밖에 없어?

|Pr. 신살자(길드장)| : 하운 쪽 사람들은 나 보면 다 아가씨라고 부르거든?

이제 뒤에서 마음껏 헐뜯으면서 욕하겠지만 말이다.

나 때문에 평판 좋은 길드가 잔뜩 욕을 먹고 있으니… 욕할 만도 하지.

당장, 곳곳에서 느껴지는 날 선 시선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 시선들이 느껴지지 않는지, 법사는 팔자 좋게 계속 메시지를 보내왔다.

|Pr. 9서클대마법사| : 법사 실망했죠ㅠ완전 실망했죠ㅠㅠ

|신살자(길드장)| : 어쩔;

|Pr. 9서클대마법사| : •́ㅿ•̀

|Pr. 9서클대마법사| : 반응이 그게 뭐죠!

|Pr. 9서클대마법사| : 법사를 좀 예뻐해 달라!!

|신살자(길드장)| : 지랄ㄴㄴ

내가 너를 예뻐해 줄 일은 평생 없을 거라고 메시지를 보내려는데, 이 망할 법사 새끼가 먼저 선수를 쳤다.

|Pr. 9서클대마법사| : 헐! 길마님의 무심한 반응에 법사 지금 완전 화났죠!!

|Pr. 9서클대마법사| : ୧( ಠ Д ಠ )୨

아오, 진짜!

나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고는 팔꿈치를 들었다. 그러곤 곧장 법사의 옆구리를 세게 그리고 빠르게 찔러버렸다.

“악……!”

법사가 짧게 비명을 지르고는 옆구리를 부여잡는다. 법사의 비명에 멈춰 선 은율이 당황한 얼굴로 해로운에게 물었다.

“해로운 씨? 왜 그러고 계십니까?”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는 게 보기 좋았다. 나는 해로운을 향해 입꼬리를 올려주었다.

“어디 안 좋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힐러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은율 씨. 그리고…….”

해로운이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그 시선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Pr. 신살자(길드장)| : 허튼소리하면 알지?

|Pr. 9서클대마법사| : (૭ ᐕ)૭?

아오, 시발. 내가 말을 말지.

허튼소리하면 옆구리를 한 번 더 찔러주기로 하고, 나는 해로운에게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그에 해로운이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힐러라면 실력 좋은 분을 알고 계시니 불러주실 필요 없습니다.”

“잘 아시는 분인가 봅니다.”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해요. 숨기는 것이 워낙 많은 분이라서.”

“그렇군요.”

은율이 단조로이 답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이라도 주면 좋으련만, 은율은 곧장 문을 두드렸다.

“보스, 접니다. 아가씨와 해로운 씨를 모셔왔습니다.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예고도 없이 문이 열렸다.

“…….”

얼굴 위로 지는 그림자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오빠가 피곤한 낯을 하고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애써 화를 억누르고 있는 것만 같은 얼굴에 쭈뼛거리며 고개를 숙이려는데, 돌연 오빠가 눈웃음을 지었다.

“하운아, 오래 기다렸지? 빨리 부르고 싶었는데 처리할 일들이 조금 있어서.”

‘처리할 일들’이란 게 뭔지 예상이 가서 나는 애매하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그보다 오래 안 기다렸는데,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었는데.

오빠는 그렇게 미소를 짓고는 해로운에게 말했다.

“해로운 씨한테는 사과하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습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요.”

“아… 네에…….”

해로운이 어깨 쪽을 만지면서 애매하게 웃음을 짓는다. 오빠 역시 해로운을 따라 애매한 웃음을 짓고는 은율에게 말했다.

“율아, 너는 잠깐 밖에서 대기해 줄래? 필요하면 부를게.”

“네, 보스.”

“하인이 오면 안으로 들여보내 주고. 의무실에서 정신 차렸다고 연락 왔으니까 곧 올 거야.”

“네, 알겠습니다.”

아니요, 은율 씨! 도하인 찾아오면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마세요!!

이런 내 외침을 은율이 들을 리가 없었다. 오빠는 그대로 나와 해로운에게서 몸을 돌리며 말했다.

“하운이는 따라오고. 로운 씨도요.”

해로운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긴장했나 보다.

나 역시 목울대를 크게 움직이고는 오빠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야지. 그렇게 두 손을 싹싹 문지르는데 옆에서 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형님! 죄송합니다!!”

“?!!”

“로, 로운 씨……?”

“죄송합니다! 정말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이… 이 미친 새끼! 갑자기 그렇게 나가면 어떻게 해?!

나는 당황해하고 있는 오빠와 해로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다가 결심했다.

“오빠! 나도 잘못했어!!”

해로운 옆에 무릎을 꿇기로 말이다.

그렇게 나란히 무릎을 꿇은 우리 둘은 약속한 것도 아닌데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외쳐댔다.

“저는 말렸습니다! 정말 말렸는데……!”

“아니야! 거짓말이야!! 말리지는 않았잖아!!”

“그래도 돌아가자고는 했잖아!!”

빼액 지르는 목소리에 오빠가 한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린다. 그 몸짓에 나와 해로운은 나란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하운이가… 정말 단순히 가출했었다는 거란 말이죠?”

“그… 단순히 가출한 건 아니고요…….”

여기에는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다면서 해로운이 우물거렸다. 그에 오빠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말하지 못할 사정이라니, 그에 대해서는 하운이에게 묻겠습니다.”

아니야, 묻지 말아줘.

나는 다가올 미래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나저나 로운 씨, 우리 하운이와 꽤 친해졌나 보군요. 아님… 처음부터 친한 사이였던 걸까요?”

“…….”

해로운 법사님은 대답 대신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숙이셨다.

|Pr. 신살자(길드장)| : 야! 모르는 사이라고 해야지!!

|Pr. 9서클대마법사| : 하준 형님께 더는 거짓말 못하겠죠ㅠ법사의 양심이 콕콕 찔리고 있죠ㅠㅠㅠ

이상한 데서 양심을 지키려고 하고 있어!!

“해로운 씨.”

“모르는 사이야!!”

나는 오빠의 시선을 내게로 돌리며 외쳤다.

“진짜 모르는 사이였어! 그냥, 계속 같이 지내다 보니까…….”

“어디서, 어떻게 지냈다는 거니.”

“어… 그러니까…….”

나는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려보고자 했다.

“도하운.”

“그게…….”

“형! 도하운이랑 해로운 어디 있어!!”

쾅, 하고 문이 열리며 도하인이 들어왔다. 반갑지 않은 등장이었다. 도하인이 나를 보고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도하운, 너……! 아니, 근데 둘 다 뭐 하고 있는 거야?!”

그 외침에 오빠가 아차, 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도하운, 그만 일어나. 해로운 씨도요.”

“…….”

나와 해로운은 머뭇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자, 하운아. 괜찮죠, 로운 씨?”

“네? 네, 괜찮습니다. 당연히 괜찮죠.”

“뭘 앉아서 이야기해! 둘 다 그냥 서있으라고 해!!”

“하인아.”

나지막하게 타이르는 목소리에 도하인이 불퉁한 얼굴을 보이며 오빠의 옆에 앉았다. 오빠가 그에 미소를 짓고서는 우리에게 말했다.

“하운아, 괜찮으니까 자리에 앉아. 로운 씨도 괜찮으니까 자리에 앉으세요. 하인이 옆에요.”

도하인이 두 눈을 뾰족하게 세우고선 해로운을 노려본다. 해로운이 그 시선을 피하며 느릿하게 대답했다.

“…네.”

|Pr. 9서클대마법사| : 도련님 시선이 너무 무섭죠ㅠ

나는 내 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외면했다. 도하인의 날 선 시선이 나한테도 닿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해로운이 자리를 잡고 앉기 무섭게 오빠가 입을 열었다.

“그래…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까…….”

오빠가 목소리를 흐리더니 이내 나를 쳐다본다. 도하인도 오빠를 따라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하운아, 영상 속의 사람은… 네가 맞는 거지?”

들려오는 질문에 나는 입을 살짝 벌렸다가 이내 다물었다. 이대로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않고 싶었다.

하지만…….

“응.”

더는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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