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돌연, 드래곤 새끼가 날개를 뾰족하게 세워 들더니 목까지 길게 내뻗는다.
그 목이 향하는 곳을 쳐다보니, 밤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불빛들이 보였다.
빌어먹을 드래곤 새끼가 향하는 곳은 도심지에서 떨어진 주택가였다.
지금에야 어렴풋하게 보였지만, 이대로 날아가다가는 저 불빛들이 선명하게 두 눈에 담기는 건 금방일 것 같았다.
“…드슬님, 이렇게 나는 드래곤도 잡아본 적 있어?”
“혼자서는 잡아본 적 없는데.”
“드래곤 슬레이어잖아? 그 칭호 도대체 어떻게 얻은 거야?”
“당연히 드래곤 죽여서 얻었지. 봐놓고선 뭘 물어?”
“…….”
할 말이 없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선 영광의 검을 들었다.
“그 검으로 어떻게 하려고?”
“눈이나 이런 곳 찌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내 말에 드래곤 슬레이어님께서 헛웃음을 흘리며 비아냥거렸다.
“길드장님, 얘랑 같이 추락할 생각이야? 그냥 땅에 착지할 때를 기다려.”
“얘가 어디에 착지할 줄 알고?”
휑한 도로에 착지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100퍼센트에 가까웠다. 내 말에 드슬이가 눈가를 살짝 찡그리더니 묻는다.
“어디에 착지하든 길드장님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드슬님의 말이 맞다. 이 드래곤이 어디에 착지하든,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살릴 수 있다면, 살리고 싶은 것뿐이야.”
주택가에 착지하기 전에 막을 수는 있다.
나는 그 대답을 끝으로 영광의 검을 쥐고서는 일어섰다. 아직 휑한 도심지를 벗어나지 않았으니, 어떻게든 이 망할 드래곤 새끼를 떨어뜨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가 검을 들기도 전에.
쿠구궁!!
―끼에에에엑!
무언가가 드래곤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와 함께 드래곤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몸을 비틀었고, 나는 그와 함께 허공을 붕 뜨게 됐다.
“……!”
“도하운!!”
이래서 놀이 기구를 타면 함부로 일어서지 말라는 거구나. 까닥 잘못하면 목숨 날아가니까.
천만 다행히도 내 목숨은 날아가지 않았다.
“너, 진짜……!”
드슬님께서 가까스로 내 손을 잡고선 강하게 끌어당겼다. 드래곤 새끼의 비늘을 뚫고 들어가 있는 그의 검이 보였다. 드슬이가 한 손으로는 그 검을 쥔 채로 나를 끌어당겨 안고자 했다.
“야……! 나 놓치면 안 된다?”
“이 상황에서는 이러다 둘 다 떨어질 것 같으니까 놔달라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미쳤다고 그렇게 말해?”
나는 드슬이의 손을 놓칠세라 그 커다란 손을 꼭 쥐고선 아래를 쳐다봤다.
까마득한 높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절로 아찔해지는 높이였다.
―탕! 타앙!
법사님의 총성이 여러 차례 울려오는 게 들렸다. 우글우글하게 보이는 하얀 것들이 모두 스켈레톤들인가 보다. 그때, 드슬이가 나를 강하게 끌어안고선 말했다.
“도하운, 이상한 데 정신 팔지 말고 똑바로 붙잡기나 해. 이 녀석 몸 뒤집을 것 같으니까.”
“뭐? 여기서 몸을 뒤집는다고?!”
안전바도 없는데 어떻게 버티라고!! 이렇게 된 이상, 드슬이 새끼를 안전바 삼기로 했다.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모르겠지만 드슬이가 헛웃음을 흘린다. 그래도 나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머리를 감싸는 손길이 느껴지는 것과 함께 시야가 뒤집혔다.
―끼에에엑!!
여기서 나는 다짐했다.
에○랜드고 롯●월드고 두 번 다시는 가지 말자고.
―키아아악!!
거꾸로 몸을 뒤집었던 드래곤 새끼가 다시 몸을 바로잡는다. 나는 멈췄던 숨을 토해내며 드슬이 새끼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드슬이가 그런 나를 보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어땠어?”
“어땠기는……!”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길드장님의 세계에서는 이런 적 없었나 봐?”
“없었어!!”
있었다고는 해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질색하는 내 얼굴에 드슬이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린다. 그에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게 웃지만 말고 방법 좀 생각해 봐!”
“무슨 방법?”
“이 새끼 떨어뜨릴 방법!!”
드슬이가 쥐고 있던 검을 뽑아 들고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바로 숨을 끊는 방법이 제일 효과적이기는 한데……. 길드장님, 이 거리에서 떨어지면 살 수 있겠어?”
나는 아래를 흘긋거리고는 애매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마도?”
“아마도면 안 돼.”
드슬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는 주위를 둘러본다.
“저 빌딩에 부딪치게 한 후, 건물에 떨어뜨리자. 이 근방은 대피 명령 떨어져서 사람들 없는 것 같으니까 괜찮을 거야.”
드슬님의 말대로 대롯가에 늘어서 있는 빌딩에 불빛이라고는 들어와 있지 않았다.
야근의 민족이 이렇게 일찍 퇴근을 했을 리가 없으니…….
“좋아, 어떻게 떨어뜨릴 건데?”
“길드장님 말씀대로 눈을 찔러봐야지. 비늘이 꽤 단단해서 검이 제대로 안 들어가는 것 같으니 말이야.”
드슬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훌쩍 뛰어올라 머리 부근에 올라탔다. 그렇게 아래로 내려가기도 전에 드래곤 새끼가 몸을 틀었다.
쿵, 쿠웅―!
뒤에서 날아든 화염구가 우리가 가리킨 빌딩을 맞혔다.
우르르, 무너지는 건물에 나는 멍하니 입술을 움직였다.
“…뭐야?”
드래곤 새끼한테서 떨어질 뻔했던 드슬님께서 몸을 추스르고는 일어났다. 그러기 무섭게 드래곤 새끼가 입을 연다.
―끼에에에엑!!
드래곤의 입에서 브레스가 쏘아졌다. 달이 환한 하늘에 구멍이 뻥 뚫릴 만큼의 위력이었다.
“얘 갑자기 왜 이래?!”
“화난 거 같은데.”
“뭐?”
“화난 거 같다고!!”
드슬님께서 외치는 사이, 검은 기운을 띤 화염구가 또다시 드래곤을 스치고 지나갔다.
드슬이가 짧게 혀를 차고는 내가 있는 곳으로 단번에 걸음을 움직였다. 아무래도 드래곤의 눈을 찌르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나 보다.
“지금 저걸 날리는 놈 때문에 화가 난 것 같은데. 헌터라도 따라붙었나.”
드슬이가 후드를 뒤집어쓰고는 짜증스레 중얼거린다. 그 말에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떤 겁 없는 헌터가 나 홀로 드래곤을 처치하려고 하나 싶어서였다.
“도하운아!!”
그런데 그게 우리 마왕님일 줄은 몰랐지.
“…마왕? 쟤가 왜 여기 있어? 네가 스켈레톤이나 처리하라고 했잖아?”
“어… 그랬는데…….”
떨떠름하게 대답하는 것도 잠시, 드래곤 새끼가 돌연 날개를 접고선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키에에에!!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나와 드슬이는 서로를 붙잡고 납작하게 몸을 엎드렸다. 튀어나온 비늘을 잡는 건 잊지 않고 말이다.
“이 망할 도롱뇽아, 도하운이를 놓아주거라!!”
마왕님, 나 붙잡힌 거 아닌데!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비운의 공주님이 된 거 같잖아!! 그리고 도롱뇽이 뭐야, 도롱뇽이!!
마왕님의 탁월한 어휘 실력에 눈물을 흘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길드장님, 지금 높이에서는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대로 이 새끼는 놓치자고?”
“놓치자는 게 아니라 내려서 잡자고.”
드슬이가 그러고는 내게 손을 내민다.
“마왕님도 우리 때문에 일부러 빗맞히고 있는 것 같고.”
마치, 짜 맞추기라도 한 듯이 마왕님이 날리신 화염구가 다시 드래곤 새끼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끼에에엑!!
째지는 듯한 비명 소리를 뒤로하며 드슬이가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웃음을 지으며 내게 묻는다.
“여기서는 안 죽을 수 있겠지, 길드장님?”
“…응.”
나는 드슬이의 손을 잡고선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죽을 정도의 상처도 바로 치료해 줄게.”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몸이 뒤로 넘어갔다.
“이 미친 새끼야! 말은 하고 떨어져야지!!”
“새삼스레 뭘.”
휑한 도로가 빠르게 눈앞에 다가왔다. 나는 영광의 검을 손에 쥐고서는 착지할 준비를 했다. 드슬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어디 한 군데는 부러지겠지만 금방 회복시키면 되니까…….
그러니까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도하운이에게서 떨어지거라, 우중충한 놈아.”
“……?!”
바닥에 닿기 직전이던 발이 두둥실 떠올랐다.
내 손을 잡고 있던 드슬이가 휙, 날아오는 뭔가에 빠르게 고개를 틀었다.
“도하운아, 괜찮으냐.”
“…마왕님?”
가슴 아래로 내려온 검은 머리칼이 보였다. 그 주위에 떠다니는 마법진은 덤이었다.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는데 마왕님이 쥐고 계시는 창이 보였다. 드슬님을 향해 날아든 그것이었다. 그에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누구를 공격하는 거야!”
“우중충한 놈을 공격하고 있지 않느냐.”
“같은 편을 왜 공격해! 저 날파리 새끼를 공격해야지!”
내 말에 드래곤 새끼가 쿵, 하는 소리와 착지하고선 불을 내뿜기 시작했다.
―끼에에엑!!
와우, 어메이징.
무림이가 여기 있었다면 저렇게 말하면서 손뼉을 쳤을 거다.
마왕님께서 심드렁하게 그 모습을 구경하고는 내게 물었다.
“그래야 하느냐?”
“그래야 해! 그보다 왜 온 거야! 내가 해골바가지들이나 처리하라고 했잖아!”
“해골바가지들은 다른 놈들이 열심히 처리 중이다. 그리고 도하운아.”
성큼, 가까이 다가온 마왕님께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선 나와 시선을 마주 보았다.
“네가 애먼 놈 위에 그리 있으니, 내가 이리 나타난 것 아니겠느냐.”
“…….”
그래, 드래곤 새끼가 애먼 놈이기는 하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드래곤이 아니라 드슬님을 공격하면 어떻게 하냐고!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었다.
―키에에엑!!
그래, 여기서 마왕님이랑 입씨름해 봤자 뭐 하겠어. 입씨름도 상황 봐가면서 해야지.
“마왕님, 마법 좀 펼쳐줄 수 있어?”
“무슨 마법을 원하느냐?”
“저 새끼 좀 못 움직이게 막아줘.”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드슬님 주위로 마법진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