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그러니까 우마한 길드장의 동생분께서 가게 안에 계시다가 던전에 휘말린 거란 말입니까?”
“…네.”
“아르바이트생인 유대공 씨께서는 우마한 길드장의 아들을 데리고 우연히 가게 밖에 나와있다가 그 모습을 우연히 본 거란 말이고요.”
‘우연히’라는 말이 두 번 들어갔다. 유대공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쓰레기 버리러 나왔다가…….”
―왈! 와르왈왈!!
“개를 데리고 말입니까.”
“네…….”
도하준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으로 유대공과 그가 안고 있는 꽤 묵직해 보이는 강아지를 쳐다봤다.
도하준의 시선을 돌리게 만든 건 우마한이었다.
“도하준 길드장, 이제 그만하지 그러십니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중요한 일입니다.”
“당신 막냇동생이 지금 저기서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모르는데도 말입니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
중세 유럽풍의 성과도 같이 변한 던전은 조금 전, 진동을 멈춘 상태였다.
도하준이 굳게 다문 입술을 억지로 열었다.
“하인이라면 괜찮을 겁니다.”
아니, 괜찮아야 한다.
도하준은 뒷말을 삼키고선 떨리는 두 손을 숨기기 위해 주먹 쥐었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더 그 상황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유대공은 마음 같아서는 텔레포트를 이용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제2의 회사원 헌터 H 씨가 되겠지.
회사원 헌터 H 씨가 아니라 아르바이트생 헌터 U 씨가 될 거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상황이었다. 유대공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도하준의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제대로 말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유대공 씨.”
끝에 들리는 자신의 이름에 유대공은 결국, 도하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하필, 남매가 닮은 부분이 눈일 게 뭐람.
유대공이 울고 싶은 심정을 가득 담아 도하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Pr. 북부대공| : 길마니l임1!! 저 좀 살려줘요오ㅠㅠ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Pr. 북부대공| : 길마니이임!!!
쿠우웅―!!
“!!”
그 대신, 그에 화답하듯 던전을 비롯한 그 주위가 무너질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다들 대피해!!”
유대공을 취조하듯이 몰아넣던 것도 잠시, 도하준 역시 유대공의 대피를 돕기 위해 움직였다.
어쨌거나 도하준의 눈에 유대공은 평범한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 무섭게 유대공의 품에 안겨있던 강아지에게서 눈부신 빛이 번쩍였다.
“윽……!”
도하준이 한 손을 들어 눈을 가렸고.
“자, 잠깐! 림아! 여기서 이러면……!”
유대공은 당황하여 허둥댔다.
“아쁘아!!”
하지만 하림이는 유대공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폴리모프를 끝내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도하준이 그 모습에 멍하니 중얼거렸다.
“지금… 개가 사람으로……?”
그보다 지금 뭐라고? 아빠? 아빠라고 한 거 같은데……?
“아니요! 잘못 본 거예요!!”
유대공이 하림이를 끌어안고는 도하준에게서 멀어졌다. 그러나 도하준은 유대공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악……! 이것 좀……!”
“잘못 본 게 아니지 않습니까. 분명 개를 안고 있었을 텐데요. 그런데 그 아이는 뭡니까? 그리고 아빠라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
위협적으로 구는 목소리에 유대공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렇게 나오면 자신도 어쩔 수 없다.
‘길마님께는 죄송하지만, 그때처럼 기절시킬 수밖에…….’
이미 전적이 있는 몸.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려울 리 없었다. 사실, 그 한 번도 어렵지 않았었다. 유대공은 그렇게 도하준을 기절시키기 위해 주먹을 들려고 했다.
“아쁘아! 리미 칭구, 쩌기!!”
“?!!”
쿠르릉, 울리는 소리와 함께 멀쩡하던 던전이 무너지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렇게 무너지는 던전 위에서 커다란 생명체가 날아올랐다.
“드… 드래곤이다!!”
누군가 외친 목소리에 특종을 건질까 싶어 모여있던 몇 명의 기자들이 카메라를 내팽개치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드래곤.
혹자는 ‘괴수(怪獸)’라는 이름으로 따로 칭하여 분리하여야 한다고도 칭하는 몬스터.
그만큼 나타났다고 하면 인적으로도, 물적으로도 커다란 피해를 입히는 몬스터였다.
“…드래곤이 왜 저기에서.”
“도하준 길드장!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마한의 말에 도하준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암만 봐도 여동생과 연관이 있을 것 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놓쳐야 하다니.
“도하준 길드장!!”
하지만 상황이 급했다.
도하준은 결국, 유대공을 놓아주고는 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그가 멀어졌을 때.
“아쁘아! 엄므아, 쩌기! 엄므아도 쩌기 이써!!”
유대공은 저도 모르게 하림이의 입을 막아버렸다.
들었을까? 못 들었겠지?
우마한과 함께 빌딩을 오르려던 도하준은 제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서있었다.
망했다, 들었나 보다.
유대공은 부디 도하운이 자신의 명복을 빌어주기를 바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도하준은 하림이의 말을 듣고 멈춰 선 게 아니었다.
“하운이……?”
드래곤에게 매달려 가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멈춰 선 거였다.
* * *
―길마님, 괜찮아?!
―길드장님! 괜찮습니까?!
―도하운아!! 어디를 간 게냐! 보이지가 않는구나!!
―길짱님! 웨어어얼?!!!
―길드장, 장난치지 말고 빨리 내려오렴.
미치고 환장하겠다.
고막을 정통으로 내리치는 길드원들의 목소리에 혓바닥을 몇 번이나 씹었는지 모르겠다.
그보다, 용사님. 나도 마음 같아서는 내려가고 싶거든? 그런데 내려갔다가는 그대로 세상 하직이거든?
나는 귀를 후벼 파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는 메시지를 보냈다. 오랜만에 단체 메시지였다.
|신살자(길드장)| : 나는 괜찮으니까 다들 진언 좀 작작 보내!
―진짜 괜찮아?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하는 거 아니지?
“시발!”
진언 좀 작작 보내라고, 망할 법사님아!
욕지거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신살자(길드장)| : 괜찮다고!! 진짜 괜찮다니까!!!
사실 안 괜찮지만, 안 괜찮다고 말했다가는 무슨 난리가 날까 무서웠다.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선 길드원들의 주위를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신살자(길드장)| : 하인이는? 하인이는 괜찮아?
|정령사| : 도하인 부길드장님은 안전하십니다. 그런데 저희가 안전하지 못하군요.
|9서클대마법사| : 마왕성인지 던전인지 빠져나오기는 빠져나왔는데 완전 난리 제대로죠?
“……?”
남을 챙길 여유 따윈 없지만 그래도 밑을 내려다봤다.
“왓더, 퍽.”
망할. 무림님한테 이상한 게 옮아버렸다. 나는 자괴감 짙은 얼굴을 한 번 보였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도심지가 스켈레톤에게 완전히 점령당해 버렸다.
나타난 게 일반 던전이었다면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저건 ‘던전’이 아니었다.
|용사| : 어떻게 할까, 길드장.
|무림제일고수| : 헌터들 별로 안 보이는데요, 길짱님? 도와줄까요? 헬프?
|정령사| : 헌터라고 해봤자 센터에서 나온 던전 관리 소속 몇 명밖에 안 보이는군요.
|정령사| : 다들 말단들이라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입니다, 길드장님.
이건, 누가 와도 상황 파악을 못 할 거다.
남들 눈에는 던전이라고 보이는 게 갑자기 무너지지를 않나, 그 안에서 스켈레톤이 쏟아져 나오지를 않나.
그리고.
|북부대공| : 길마니이ㅣ임!! 드래곤이랑 뭐 하고 있는 거에여ㅕ!!!
드래곤까지 나타났으니…….
절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신살자(길드장)| :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대공님.
|신살자(길드장)| : 일단, 다들 안 보이는 곳에서 해골바가지들 좀 처리하고 있어봐.
|북부대공| : 여기에 우마한 길드장님하고 도하준 길드장님 계시는데요?
“아…….”
절로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와중에 마왕님께서 우리 형님 어디 계시냐고 묻는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마왕님!
나는 머리를 짚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는 메시지를 보냈다.
|신살자(길드장)|: 오빠랑 우마한 길드장만으로도 이 상황을 해결하기에는 벅찰 거야. 그러니까 다들 힘 좀 보태고 있어.
나는 고민하다가 짧은 메시지를 하나 더 덧붙였다.
|신살자(길드장)|: 금방 내려갈게.
나는 그 메시지를 끝으로 몸을 움직였다. 금방이라도 검이 빠질 듯이 위태롭게 꽂혀있는 게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키에에엑!!
“!!”
그렇게 드래곤 새끼의 머리 위로 다리를 올리려는데, 이 새끼가 갑자기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다시 날개를 활짝 펼쳐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우욱, 망할 새끼…….”
롤러코스터도 이렇지 않을 텐데, 에○랜드는 당장 이 새끼를 도입해야 한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토기를 애써 잠재우고는 다시 다리를 올리고자 했다.
“길드장님.”
“……?”
그러나 다리를 올리기도 전에 내밀어진 손이 보였다.
“너……?”
“빨리 올라오기나 해.”
짜증스레 찌푸린 얼굴에 나도 모르게 드슬님의 손을 덥석 잡았다.
드슬이 새끼가 이대로 내 손을 놓아버리면 어쩌나 했는데, 드슬님께서는 그대로 나를 드래곤 새끼의 머리 위로 올려주었다.
“뭐야? 언제 올라탄 거야?”
“올라타고 싶어서 올라탄 건 아니야. 그냥 습관적으로 몸이 움직인 것뿐이지.”
드슬님께서 손을 탈탈 털고선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왜 그러나 했더니 드래곤 새끼가 갑자기 날개를 접고는 하강하기 시작했다.
“아악! 이 망할 새끼가! 너 이렇게 될 줄 알았지?!”
튀어나온 비늘 하나를 잡지 않았으면 그대로 굴러떨어졌을 거다. 드슬이 새끼가 키득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그럼 몰랐겠어? 내가 잡은 드래곤이 얼마나 많은데.”
잡은 드래곤이 많으면 뭐 해. 인성이 파탄 났는데.
하강하던 드래곤이 다시 날개를 활짝 펼쳐 들고는 날아오른다. 도대체 이 새끼는 뭐가 불만이라서 이러는 걸까.
“먹이를 찾는 거야.”
“먹이?”
“어디에 맛 좋은 먹이가 많이 숨어있나, 그걸 찾고 있는 거지.”
“…….”
태연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찾은 것 같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