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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94화 (94/168)

94화

“몸을 짓뭉개는 것으로는 죽지 않나 본데? 이거 곤란하네.”

법사의 말대로였다. 머리를 베든, 팔다리를 베든 끊임없이 재생하는 놈을 무슨 수로 죽이나 싶었다.

이에 해결 방안을 제시한 건 용사님이셨다.

“…심장을 파괴해야 할 거란다.”

“심장을 파괴하면 그대로 죽어? 머리를 베든, 팔다리를 베든 계속 재생하는 놈이라고 했잖아.”

내 말에 용사님께서 자괴감 짙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원래라면 심장을 파괴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살아날 놈이지만…….”

용사님의 시선 끝이 향한 곳은 재생을 끝마친 마왕님이었다.

“…여기서는 완벽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구나.”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죠, 용사님?”

“신이 없으니까.”

목소리 끝에서 웃음기가 느껴졌다. 용사님은 검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켰다.

“저 녀석을 만든, 빌어먹을 신이 없으니까 말이지.”

그러니 죽을 수 있을 거라면서, 용사님께서 검을 고쳐 잡으신다.

“도와줄 수 있겠니, 너희?”

“그걸 말이라고. 그런데 용사님은 안 나섰으면 좋겠는데.”

“너야말로 안 나섰으면 좋겠구나, 길드장.”

씨익, 웃음을 보이는 얼굴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둘 다 안 나서는 게 어때?”

“좋은 생각이죠, 드슬님. 빌빌거리시는 우리 길마님과 마왕님께서 죽일 듯이 노리고 있는 우리 용사님은 그냥 얌전히…….”

있을 우리가 아니었다. 나와 용사님은 시선을 한 번 마주하고는 곧장 다리를 움직였다.

“…내가 말을 말지.”

법사님께서 허탈하게 중얼거리며 마법을 펼치신다. 우리를 향해 날아들던 무수한 창이 법사의 마법에 가로막혀 튕겨 나갔다.

―네놈들……! 감히, 나를……!!

“말하는 것만 보면 우리 마왕님인데 말이야.”

커다란 화염이 우리를 향해 들이닥쳤다. 이건 법사님께서 막기 어려울 것 같은데.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이 우습게도 천장에서부터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더니 화염을 집어삼켰다.

|Pr. 9서클대마법사| : 뭐 해, 길마님? 안 달리고.

나타난 메시지에 뒤를 흘긋거리니 여러 개의 마법진을 펼친 법사가 싱긋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드슬님께서 마법을 시전하고 있는 법사님을 호위하듯, 날아드는 창을 쳐내고 있었고.

나 역시 싱긋 웃음을 보여주고는 걸음을 박차 날아올랐다.

―쥐새끼같이……!

“그거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말인데.”

데키온의 마신님께서 그러셨나? 잘 모르겠다. 어쨌든 간에 나는 나를 잡으려 드는 사슬을 쥐새끼처럼 피하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마왕님, 뭐 잊은 거 없어?”

―!!

마왕의 코앞까지 파고든 용사님께서 검을 들어 올렸다.

―크윽……!

가까스로 용사님의 검을 피했지만, 팔 한쪽을 내어주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곧장 마왕님의 어깨를 올라탔다.

―네놈!!

시선이 마주치기 무섭게 뼛속부터 치밀어 오르는 고통이 느껴졌다. 나는 이를 으득 갈며 나를 묶고 있던 사슬을 풀었다.

“나도 마왕님이랑 똑같은 거 가지고 있거든…….”

마왕의 몸을 묶고서는 검을 들어 핏물과도 같이 붉은 눈에 찔러 넣었다.

―크아아아악!!

나를 떼어내려는 손톱이 살갗을 파고든다. 그럼에도 나는 마왕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플 거야. 드슬님께서 주신 성수를 검에 발라놨거든.”

비록, 남은 몇 방울을 발라놨다고는 하지만, ‘마왕님’과 같은 악(惡) 계열의 분들께는 꽤 큰 타격이 갈 테다.

“도하운!!”

뒤쪽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망할, 여기서는 한발 물러나야겠네.

나는 마왕의 몸을 묶고 있던 사슬을 풀고서는 곧장 용사님 곁으로 물러났다. 나를 덮치려고 했던 거대한 화염 덩어리는 법사의 마법에 먹혀 사라진 뒤였다.

“길드장님, 무모한 짓도 정도껏이야.”

“그렇게 무모한 짓은 아니었는데.”

드슬님께서 미간을 좁히고는 팔뚝을 타고 흐르는 핏물을 노려본다. 나는 애매한 웃음을 짓고서는 핏물을 닦아냈다.

[권능, ‘해독’이 활성화됩니다.]

옷에 남은 핏자국을 어떻게 지워내지, 하고 있는데 반갑지 않은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해독이라니, 갑자기 왜?

떠오른 의문을 해결해 준 건 용사님이셨다.

“길드장, 괜찮니? 아자젤의 손톱에는 독이 묻어있는데…….”

“…그래서 뜬 거였구만.”

“뭐?”

“아니, 아무것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용사님.”

나는 활짝 웃어주고는 검을 고쳐 잡았다. 그사이, 눈을 회복한 마왕님께서 우리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성녀 따위가 감히, 짐에게……!!

저 말도 데키온의 마신님께 들어봤던 것 같아. 괜히 마신님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길마님, 피해! 저건 못 막아!!”

법사의 외침과 함께 몸이 뒤로 들렸다. 용사가 내 허리를 잡고선 허공으로 던졌기 때문이다.

“너……! 이 망할 용사님이……!!”

마왕의 귀 양옆으로 솟아나 있는 뿔에서 거대한 구(球)가 만들어지는 것이 보였다. 파지직, 이는 전기가 붉은 마법진을 계속해서 파괴해 나가고 있었다.

“윽……! 용사님!!”

유리 바닥에 부딪힌 뒤통수를 아파할 겨를은 없었다.

엉거주춤하게 몸을 일으키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용사님을 불렀다.

“용사……!”

콰광―!!

거대한 파열음이 나의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두 눈을 제대로 뜨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떠야 했다. 찾아야 할 사람이 있었다.

“용사님……! 강인한!!”

자욱하게 이는 연기에 앞이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다 내 손을 덥석 잡는 커다란 것에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귀청아…….”

“놀랐잖아! 용사님은 어쩌고 왜 네가 여기 있어? 용사님이랑 같이 있었잖아!!”

“나도 던져졌어. 용사님 팔심이 꽤 좋더라고.”

태연하기 짝이 없는 소리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그러니까 지금, 용사님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괜찮지 않을까.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으니까 우리를 이렇게 던졌겠지.”

아니다, 아닐 거다.

그리고 싶지 않은 최악의 상황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길드장님? 왜 그래?”

드슬이가 내게 손을 뻗었지만 나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물러나 버렸다.

“…길드장님?”

피한 게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길마님, 여기서 왜 그러고 있어?”

그 순간,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연기가 걷어졌다.

또렷하게 비치는 광경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는 곧바로 용사님을 찾았다.

“용사……! 용사님……,”

용사님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가갈 수 없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마왕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은 용사의 모습은 패배자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아자젤, 내가 있을 곳은 여기란다.”

말하는 목소리의 끝이 떨리고 있어서인지, 용사님은 우는 것만 같이 보였다.

용사는 그대로 쥐고 있던 검의 손잡이를 힘주어 휘둘렀다. 허공에 흩뿌려지는 핏물이 투명한 유리 바닥에 자국을 만들어 낸다. 그와 동시에 마왕이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힘없이 쓰러졌다.

“…아자젤.”

쓰러지려는 그를 용사님께서 붙잡으셨다. 용사님의 어깨에 기댄 마왕님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

낭랑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용사님께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한이구나, 네 녀석.

이내 눈웃음을 지으며 웃으신다.

“그걸 이제 알면 어떻게 하니?”

너무 늦었다면서, 용사님은 마왕님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마왕님께서 웃음을 흘리곤 말했다.

―저 녀석들과 어울리지 말거라, 한. 그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야.

“나도 그러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서.”

붉은 눈이 나를 쳐다본다. 괜히 몸이 움찔거렸다. 이런 내 몸짓을 봤는지, 법사님과 드슬님께서 내 앞을 막으신다. 이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는데.

―겁쟁이구나, 성녀여.

“누구보고 겁쟁이래?”

날 선 목소리를 내뱉자 마왕님이 작게 웃음을 흘린다. 그사이, 마왕님의 몸은 조금 더 투명해졌다.

―한은 네게 어울리지 않아. 너뿐만이 아니라, 거기 있는 너희 모두에게.

“너랑도 어울리지 않거든.”

나는 드슬님과 법사님 사이를 비집고 나가 마왕님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법사와 드슬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다.

성큼성큼 걸어온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용사님께서 마왕님을 끌어안으신다.

“길드장, 아자젤은 이제…….”

“알아.”

이제 곧 죽어 사라질 것 같은 사람에게 검을 휘두를 생각 따윈 없었다. 나는 무릎을 굽히고서는 손을 들었다.

[권능, ‘안식’이 활성화됩니다.]

그러니까 이건 동정이다. 이 세계에서 이대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해 줬으면 하는 바람에 내가 내리는 축복이라고 봐도 좋다.

금방이라도 감길 것 같은 붉은 눈이 웃음기를 머금는다.

―성녀가 선사해 주는 안식이라니, 이건 또 새롭군.

“고맙게 생각해.”

나는 굽혀 세웠던 무릎을 바로 하고는 씨익, 웃음을 보였다.

“이제껏 네가 죽인 성녀들은 이런 거 안 해줬을 거잖아?”

다문 입술에서 많은 감정이 보인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여 주고는 걸음을 돌렸다.

“마지막 인사 잘해, 용사님.”

용사님이 에키나에서 어떤 삶을 살고 돌아왔는지 모른다. 그에 함부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 모두가 그랬다.

죽음을 맞이하고 돌아왔으나, 그 시간은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겪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시간. 오직, 귀환(歸還)의 사람들만이 겪은 시간.

해로운 법사님께서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든다.

나는 친절히 그 엄지를 접어주고자 손을 들었다.

쿠르릉―!

“?!!”

발아래가 쑥 꺼지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법사의 엄지를 으스러뜨릴 듯이 접어줬을 거다.

“으아악! 이건 또 뭐죠!!”

“시발! 또 뭔 난리야!!”

“…환장하겠네.”

우리는 제각기 다른 말을 내뱉으며 아래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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