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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92화 (92/168)

92화

무언가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굳었던 머리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을 땐, 용사님의 목을 움켜쥐고 있던 남자의 손을 베어낸 후였다.

뺨에 튀어버린 핏물을 닦아낼 새도 없이 나는 용사님을 데리곤 남자로부터 멀리 물러났다.

―호오?

흥미롭다는 듯이 잘린 제 손을 보는 것도 잠시, 남자가 다른 쪽 팔을 우리에게 길게 뻗기 시작했다.

노리는 건 내가 아닌 용사님이셨다.

뾰족하게 세워진 손톱이 마왕님의 창에 가로막혔다. 남자가 마왕님을 보고선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거 참 흥미롭구나. 네 녀석에게서 짐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만.

“짐은 하루 세 번은 씻고 있노라. 네놈의 썩은 내가 나지 않는단 말이다.”

―흐음?

마왕님께서 창을 크게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남자의 손톱이 불쾌한 소음을 내며 잘려나갔다.

투둑, 떨어지는 검붉은 핏방울에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저 남자는 마왕님께 맡기기로 하고, 나는 용사님을 살피기로 했다.

“용사님, 괜찮아?”

“…어떻게.”

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나는 곧장 성녀의 힘을 사용하며 대답했다.

“법사님 도움 좀 받았지.”

“법사가 실력 좀 발휘했죠?”

언제 일어났는지 모를 법사가 우리 뒤에서 검지와 중지를 들고선 흔든다. 그에 용사가 피식 웃음을 흘리고선 말했다.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쓸데없는 짓이라니, 우리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길드장님께서 오시지 않으셨다면, 제가 용사님을 구했겠지요.”

바닥에 쓰러져 있던 정령사님께서 먼지를 훌훌 털어내며 일어나셨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구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지랄하네, 네가 용사님을 구하기는 뭘 구해? 자기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고 날아왔던 주제에!!

정령사님과 부딪치셨던 법사님께서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지,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령사님, 양심 없죠?”

“길드장님, 용사님은 좀 어떠십니까?”

대답하기 싫어서 말 돌리는 것 좀 봐. 나는 헛웃음을 흘리곤 말했다.

“괜찮아, 그렇게 다친 곳도 없고. 그래서 말인데, 용사님. 저 새끼 뭐야?”

“…….”

“용사님?”

잘만 대답하던 용사님께서 입을 다물곤 마왕님과 대치 중인 남자를 노려본다. 나 역시 용사님의 시선을 따라가 남자를 쳐다봤다.

“…뭐야, 손이 다시 생겨났잖아?”

분명 내가 베어냈을 남자의 손이 흉터 하나 남지 않고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던 남자의 다른 쪽 손 역시 마찬가지였다.

치유 능력이라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암만 치유 능력이 뛰어나도, 저렇게 잘린 부분이 빠르게 돌아오지는 않는다. 의아해하고 있는데 용사님께서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뱉으셨다.

“재생한 거란다.”

“재생?”

“그래. 머리를 베든, 팔다리를 베든 곧바로 재생시켜 버리지.”

마왕의 창이 남자의 배를 꿰뚫어 버렸다. 그와 함께 무림님께서 남자의 목을 가격했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남자의 목이 옆으로 꺾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왓더, 퍽! 길짱님, 얘 좀 이상한데요?”

남자는 비딱하게 웃음을 지으며 상처 하나 없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왕님께서 황급히 창을 거뒀고 무림이 빠르게 다리를 움직여 우리 쪽으로 몸을 옮겼다.

“…도대체 저 자식 정체가 뭐야?”

“…….”

내 목소리에 용사님께서 다시 입을 다문다. 입만 다물었을까. 정처 없이 떨리고 있는 손을 주먹 쥐기까지 했다.

“용사님.”

“마왕이란다.”

“뭐……?”

“마왕이라고, 마왕.”

“짐은 여기 있다만.”

“아니, 너 말고.”

용사님께서 눈가를 찡그린 채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저렇게 나타났지 뭐니?”

분명, 웃고 있는 얼굴인데 괴로움이 느껴졌다. 들리는 목소리에서는 허무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용사님께서 주먹 쥐고 있던 손을 풀고는 제 머리칼을 끌어 잡았다.

“왜 이전과 똑같이 모든 게 리셋(Reset)이 된 채로 나타났는지 모르겠구나. 분명, 나는 그를 죽이지 않았는데. 내가 그냥 죽는 걸 선택했었는데…….”

머리칼을 헤집던 손이 떨어지고, 용사는 마왕을 노려보며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왜, 또 저런 모습으로 나타난 거야. 도대체, 왜.”

“…….”

마왕은 그런 용사를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이 내게로 향했을 때.

“커헉…….”

내장이 비틀어지는 고통과 함께 비릿한 맛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길마님?”

법사가 휘청거리는 내 몸을 붙잡는 게 느껴졌다.

괜찮다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 때마다 붉은 핏물이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도하운, 안 돼!!”

용사님께서 나를 끌어 잡고는 흔든다. 어지러운 시야에 흔들지 좀 말라고, 용사님을 밀어내고 싶었지만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권능, ‘치유’가 활성화됩니다.]

[권능, ‘해독’이 활성화됩니다.]

[권능, ‘정화’가 활성화됩니다.]

뭐야, 도대체 뭐에 당한 거야?

“길드장님! 정신 차리십시오! 갑자기 왜 그러는 겁니까?!”

나도 몰라! 용사님네 마왕 새끼랑 눈이 한 번 마주친 것뿐인데 이렇게 돼버리다니!

“길짱님! 왜 그래요? 왜 갑자기 죽으려고 그래요!!”

무림님은 좀 닥쳐!

나는 쿵쾅쿵쾅, 크게 울리는 심장 소리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게 노력하며 크게 숨을 들이켜 마셨다. 이내 두 눈을 감고서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용사님께서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나를 끌어안고서는 외치기 시작했다.

“아자젤, 그만! 제발 그만해!!”

―역시, 내 이름을 알고 있었군.

저쪽 마왕님의 이름이 ‘아자젤’이었구나. 그보다 용사님, 좀 답답한데. 계속해서 효과를 발휘한 성녀의 힘 덕분에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권능, ‘치유’가 활성화됩니다.]

[권능, ‘해독’이 활성화됩니다.]

[권능, ‘정화’가 활성화됩니다.]

아직, 몸을 움직이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그래도 움직여야 했다.

억지로 용사님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그 순간 ‘펑’ 하고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친…….”

쇳소리와도 같이 들린 목소리가 내 목소리였다는 걸, 나는 조금 뒤늦게 깨달았다.

‘아자젤’이라 불린 마왕님의 머리가 사라져있었다. 후두둑, 떨어지는 검붉은 핏물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머리가 사라진 마왕님께서 여전히 두 발 우뚝하게 서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보기 썩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머리를 베든, 팔다리를 베든 곧바로 재생시켜 버린다고 했지. 그 말이 거짓은 아닌 양, 마왕님의 머리가 곧바로 생겨났다.

―꽤 대단한 실력이구나. 짐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짐의 머리를 날려버리다니 말이야.

“…….”

이세계의 마왕님께서 손을 드신다. 기껏 회복되고 있는 몸이 또다시 악화할까 싶어 몸을 움츠리는데.

“법사……!”

법사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거슬릴 것 같으니 치워야겠군.

법사뿐만이 아니다. 우리 착한 마왕님도, 무림님도 그리고 정령사님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왜.”

사라지지 않은 건 드슬님뿐이었다. 그러게, 왜 저 새끼가 너만 여기 남겨둔 걸까?

―증인이 필요해서 말이다.

“…증인?”

―그래, 증인 말이다. 저 여자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봐 줄 증인이 필요해서 말이지.

그러면서 용사님을 가리키는데, 저 손을 한 번 더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드슬이가 나와 용사를 한번 흘겨보고는 입을 연다.

“그냥 지켜보고 있기만 하면 돼?”

드슬이, 너 이 개새끼가!

울컥, 올라오는 핏물만 아니었으면 그렇게 소리쳤을 거다. 이세계의 마왕 새끼는 입꼬리를 올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녀석을 선택하기를 잘했다고, 그런 말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마왕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했을 때.

“윽……!”

기껏 회복된 몸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비명이 나올까 싶어 입술을 꾹 깨물며 손톱을 세워 바닥을 긁었다. 용사님께서 피투성이가 된 내 손을 잡고서는 뭐라 소리친다.

“성녀의 힘을 봉인시켜! 그래야 저 새끼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단다!!”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인 줄 알아, 용사님?!

―선택해라, 용사.

우웅, 울리는 목소리가 시끄럽다.

―나와 함께 갈 건지, 아니면 여기서 저 녀석이 죽는 걸 지켜볼 건지.

희미하게 보이는 시야에 검붉게 펼쳐진 마법진이 보였다.

[두 개의 갈림길(Lv. ??), 지정 대상 ‘아자젤’과 ‘신살자’]

▷‘용사’가 ‘아자젤’을 선택하는 순간, 당신은 목숨을 구원받습니다.

▷‘용사’가 당신을 선택하는 순간, 당신의 목숨은 아자젤에 의해 거둬집니다.

이게 뭐야! 용사님께서 나를 선택하면, 그대로 나를 놓아줘야지!! 아자젤을 위한 선택이라니, 이름 따라가네!!

[‘드래곤슬레이어’가 ‘두 개의 갈림길’의 증인으로 참관 중입니다.]

증인이 왜 필요하나 했더니, 증인이 있어야만 마법이 펼쳐지나 보다.

용사님께서 황망한 얼굴로 마왕 새끼를 쳐다본다. 나는 그런 용사님의 손을 잡고서는 고개를 저었다.

“…도하운.”

안 돼, 가지 마. 네가 어떻게 돌아왔는데 또 가려고 해.

내 소리 없는 말들을 들었는지, 용사님께서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나는 자꾸만 미끄러지려는 용사님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용사님, 선택 안 할 거지?”

그렇게 물은 건 드래곤 슬레이어님이셨다. 언제 다가왔는지, 한쪽 무릎을 굽히고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

“이거 길드장님한테 좀 먹여.”

드슬님께서 품 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 내 옆에 두고는 입꼬리를 올린다.

“길드장님, 그렇게 누워있는 거 안 어울리는 거 알지?”

정말이지, 재수 없는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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