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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91화 (91/168)

91화

“도하인… 너, 왜 꼴이…….”

나는 우두커니 멈춰 서서는 도하인을 불렀다. 걸음을 떼고 싶었지만, 다리가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도하운? 도하운, 너 맞아?”

도하인이 눈가를 살짝 찡그리더니 이마를 타고 흐르는 핏물을 닦아낸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내달려 갔다.

이시온이 옆으로 비켜줬고, 나는 그대로 도하인을 끌어안았다. 느닷없이 내게 끌어안긴 도하인이 멍하니 묻는다.

“…진짜 도하운, 너야?”

“응.”

나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부여잡고는 성녀의 힘을 쏟아부었다.

“나 맞아, 이 멍청아.”

도하인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떠지더니 이내 일그러진다.

“도하운, 너……!”

“미안해, 내가 미안해.”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도하인이 할 말 많아 보이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지만, 튀어나오는 말은 없었다.

그저 가만히, 나를 꼭 끌어안기만 했다.

“집에 돌아가기만 해봐. 외출 금지로는 안 끝날 거야.”

간담 서늘한 말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도하인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든다. 곧이어 도하인의 눈이 다시 동그랗게 떠졌다.

“해로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도하인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내게 붙잡힌 도하인이 사납게 얼굴을 찌푸린다.

“무슨 짓이야!! 이거 안 놔?!”

“해로운은 아무 잘못 없어! 내 고집에 맞춰주고 있었던 것뿐이야!”

“고집은 무슨 고집……!”

도하인이 말을 멈추더니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너 설마 진짜 가출하고 있었던 거야?”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도하운!!”

도하인이 답답하다는 듯이 내 이름을 불렀지만, 이번에도 나는 아무런 답도 해주지 않았다.

도하인이 씩씩거리더니 대뜸 검지를 들었다.

“저 새끼랑은 왜 같이 있어?”

“설마 짐을 가리킨 게냐?”

도하인이 마왕님의 말을 무시하고는 내 뒤를 삿대질하며 소리 질렀다.

“그리고 저 새끼들은 또 뭐고!!”

우리 하인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앓는 소리를 내며 다 죽어가더니 아주 팔팔하다.

|Pr. 무림제일고수| : 길짱님, 자기소개 타임인가요?

|Pr. 신살자(길드장)| : 그런 거 아니니까 입 다물고 있어.

|Pr. 무림제일고수| : 넵.

무림이의 입을 다물게 한 뒤, 나는 도하인의 손목을 끌어 잡았다.

“하인아, 내가 나중에 설명…….”

“지금 설명해, 도하운.”

도하인이 내 손을 쳐내더니 한쪽 눈가를 찡그린다.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지금 제대로 설명하라고.”

“…….”

곤란했다.

지금이야 잠잠하다지만,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를 일이었다. 더욱이 용사님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

나는 입술을 벌렸다가 이내 다물었다.

“도하운.”

도하인이 대답을 재촉한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흔들림 없이 올곧은 눈동자에 나는 다시 고개를 떨궜다.

“도하……!”

비명과도 같이 들린 목소리가 끊겼다. 그와 함께 도하인의 몸이 내게로 풀썩 쓰러졌다.

“…도하인?”

“잠깐 기절시킨 거야, 길마님.”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법사가 눈웃음을 짓고 서있었다. 법사가 무릎을 굽히더니 나와 눈을 맞춘다.

“아가씨, 도련님이랑 말싸움할 시간 없잖아요.”

법사의 말이 맞았다. 지금은 도하인과 말싸움할 시간이 아니었다.

“용사님 찾아야지. 안 그래?”

행방을 모르겠는 용사님을 찾는 게 더 급한 일이었다. 나는 떨리는 입술을 꾹 깨물고는 도하인을 바닥에 눕혔다. 법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도하인의 주변에 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던전이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도련님은 무사할 거야. 내가 죽는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그런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재수 없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죠? 그러니까 길마님은 나를 최우선으로 지켜야 한다는 거죠?”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를 한 귀로 흘려듣고는 주변을 살폈다.

용사님은 분명 던전 안에 있다. 제일 아래층에서 발견된 스켈레톤만 하더라도 이를 알 수 있었다. 용사님의 흔적이라곤 그것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길짱님.”

“왜.”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무슨 시간제한 같은 거 있지 않았어요?”

“…….”

무림이의 말에 뒤늦게 20분 남짓 남아있던 시간이 떠올랐다.

나는 짜증스레 머리를 긁적이고는 시스템 창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무지 보이지가 않았다. 나만 이런 건가 싶었다.

“누구, 시스템 창 보이는 사람?”

“법사는 보이지 않죠.”

“짐도 보이지 않느니라.”

“…안 보여.”

“헐! 저만 안 보이는 줄 알았는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인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그럼, 지금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네.”

“시간 같은 거 몰라도 괜찮지 않아, 길드장님? 꼭 알아야 하는 거야?”

드슬이의 말에 나는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우리에게 들어온 ‘의뢰’는 없다. 그리고 이 던전은 타임 제한이 정해져 있는 ‘아웃브레이커 던전’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상했다.

타임 제한이 정해진 ‘아웃브레이커 던전’이 아닌데 ‘시간’이 표시가 됐다. 그런데 그 시간이 안에서는 또 보이지가 않는다.

나는 괜히 목 언저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세계가 좀 정상적이어야지.”

내 말에 드슬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데 동의하는 것 같았다.

나는 드슬이에게서 시선을 돌리고는 법사를 보며 물었다.

“우리가 들어온 지 대략 몇 분 흘렀는지 알겠어?”

“10분에서 15분 정도?”

“정확히 13분 27초 흘렀느니라.”

마왕님의 말에 나는 입술을 오므렸다. 나랑 똑같이 입술을 오므린 무림이가 놀라 외쳤다.

“우와! 마왕 형아,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계산하고 있었느니라.”

“쓸데없는 걸 계산하고 계셨네요?”

마왕님께서 무림이를 쏘아보신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림이는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나는 법사의 손목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남은 시간은 7분이라고 하고, 용사님 먼저 찾아보자. 숨겨진 공간이 있는 것 같으니까 다들 좀 찾아줘.”

신살자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짧게 혀를 차고는 법사의 손목을 놓아줬다.

“법사, 7분 지난 거 같으면 말해줘.”

“말해주면 뭐 해줄 건가요, 길마님?”

“아무것도 안 해줄 거야.”

법사가 불퉁하게 입술을 삐죽였지만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보다 법사의 시계가 작동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던전 내에서는 휴대폰은 물론, 시계도 작동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시계에 마법을 부리고 있었나 보다.

“다들 멍하니 있지 말고 빨리 움직여!”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드슬이가 입고 있던 후드 집업을 빼앗아 도하인 위에 덮어주었다.

“…동생을 아주 끔찍하게 아끼나 보네.”

“아주 끔찍한 동생이니까 끔찍하게 아끼는 거지. 부러우면 너도 내 동생 하든가.”

드슬이가 질색한 얼굴을 보이고는 법사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법사랑 사이 안 좋으면서 왜 굳이 법사가 있는 곳으로 가는지 모르겠다.

“마왕 형아, 여기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여기만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무림 놈아, 그림은 저기에도 그려져 있느니라.”

“아, 그래요? 쏘리, 제가 대충 보고 있어서.”

저 망할 놈이.

무림이의 귀를 잡아당기러 갈까 하는데 돌연 마왕님께서 창을 소환해 내셨다.

“저기, 형아? 지금 뭐 하시는……?”

무림이가 드물게 당황한 얼굴로 마왕님을 불렀으나.

콰―광!!

“왓더, 퍼억!!”

마왕님은 곧장 창을 휘두르며 그림이 그려진 벽을 파괴해 버렸다. 부서진 파편에 무림이가 머리를 부딪치고는 바닥을 구른다.

마왕님께서 그런 무림이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무림 놈아, 왜 그러고 있는 게냐.”

“마왕 형아 때문이잖아요! 혹 났을 거야! 혹 났을 거라고요!!”

“이마가 아주 곱고 매끄럽기만 하도다.”

“아, 그래요?”

바보들인가 싶었다.

반대쪽에 있던 법사와 드슬이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둘을 보고 있었다.

“그보다 도하운아.”

“보고 있어.”

나는 곤히 잠든 도하인의 이마를 살짝 눌러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우, 어메이징! 웬 빛이에요? 바깥에 해는 다 졌을 텐데?”

부서진 벽에서 환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왕님께서 창을 한 번 더 크게 휘두르며 벽을 완전히 부쉈다.

“아악! 마왕 형아, 제발 좀!!”

그 과정에서 무림이가 머리를 한 대 더 얻어맞았지만 말이다.

우리는 이마를 문지르고 있는 무림이를 뒤로하며 부서진 벽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서진 벽 안쪽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커다란 문이 보였다.

“누가 먼저 열어볼래? 당연히 길마님이 열어보겠죠?”

왜 물어봤냐, 망할 법사님아.

나는 법사를 흘긋거리고는 누가 봐도 최종 보스가 있을 법한 문을 살짝 밀어보았다.

끼기긱―!

살짝 민 것뿐인데 문은 활짝 열어젖혀졌다. 무림이가 길짱님 힘이 아주 장사라면서 엄지를 치켜준다. 그 엄지, 고이 접어줄까 보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흐어어억!!”

요란하게 비명을 지르며 날아오는 남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거리에 나는 강하수한테 네가 도대체 왜 여기에 있냐고 물을 틈도 없이 곧장 몸을 숙였다.

“어흑……!”

법사는 그러지 못하고 강하수와 부딪쳐 날아가 버렸지만 말이다.

“어… 어메이징……!!”

무림이가 놀란 눈을 보이며 감탄한다.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강하수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어떤 이유로 날아왔는지 모르겠다.

“강하수! 너 뭐야! 용사님은 어디 가고 왜 네가 여기에……!”

“도하운아!!”

뒤에서 날아드는 화끈한 열기를 피할 새도 없이, 몸이 옆으로 밀쳐졌다.

투명한 유리 바닥에 부딪힌 뒤통수가 꽤 얼얼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는 머리를 감쌌다.

“도하운아, 괜찮으냐?”

“마왕님, 다음에는 실드를 펼쳐주거나 해줄래?”

“그리하겠도다.”

그렇게 말해줘서 참 고맙네.

나는 마왕님을 살짝 밀어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무림이가 잔뜩 경계하는 얼굴로 앞을 쳐다보고 있었다. 드슬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두 명이 경계하고 있는 건, 뾰족한 귀를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그 양쪽 귀 위로 솟아나 있는 뿔은 덤이었다.

―흐음…….

남자가 나른한 목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기울이더니, 웃음을 짓는다.

―이 녀석의 동료들인가 보구나.

“…….”

남자의 손이 움켜쥐고 있는 가녀린 목이 보였다.

초점이 흐릿한 밝은 갈색 눈동자가 내게로 향했다.

“…길드장.”

금방이라도 사그라들 것만 같은 목소리에 나는 곧장 검을 뽑아 들었다.

《칭호, ‘검성(劍城)’의 봉인이 강제적으로 해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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