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몬스터도 안 나타나고. 그렇다고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없고. 용사 누나 위에 있는 거 맞아요? 길짱님 동생분도 위에 있는 거 맞고요?”
“맞을 거야.”
무림이가 그런 것 같지 않다면서 투덜거린다. 나 역시 계단을 오를수록 용사님과 도하인이 정말 위에 있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나선형의 계단을 오르면서 옆으로 통하는 길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통하는 길은 오직 하나, 북두칠성이 그려진 천장으로 향하는 길뿐이었다. 그런데 용사님을 비롯해서 도하인이 지나간 흔적이 보이지가 않는다.
“설마, 땅 아래로 꺼져있는 건 아니겠지…….”
“웃기는 소리를 하네, 길드장님.”
아, 맞다. 옆에 드슬이 새끼 있었지. 나는 짜증스레 눈가를 찡그렸다.
앞서가고 있던 법사가 난간이라곤 없는 계단 아래를 보며 말했다.
“까닥 잘못하면 떨어지겠는데, 길마님?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겠죠.”
“히잉, 그 해골바가지들 저도 부숴보고 싶었는데요!”
투정 어린 목소리에 나는 질색했다. 구더기가 들끓는 해골을 부쉈다가는, 그 안에 있던 구더기가 사방으로 날릴 거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얼굴이 왜 그렇게 안 좋아?”
“내 얼굴이 뭐 어때서.”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인데.”
“옆에 네가 있어서 그래.”
드슬이 새끼가 눈가를 찡그린다.
나는 혀를 날름 내밀어 주고는 두 계단을 성큼 올라가 마왕님 옆에 섰다.
마왕님께서는 손가락 끝으로 벽을 매만지며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그게 꼭, 무슨 흔적을 찾는 것 같았다.
“마왕님, 뭐 해?”
“구경 중이니라.”
함정이라도 있나 살피는 줄 알았더니 구경 중이었단다. 저기요, 우리 관광 온 거 아니거든요.
나는 짧게 혀를 차고는 다시 두 계단을 성큼 올라갔다. 그러기 무섭게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던 해로운 법사님께서 칭얼거렸다.
“길마님, 나 힘들어.”
“어쩌라고.”
“법사의 기력 좀 회복시켜 주세요.”
헉헉거리며 숨을 토해내는 게 꽤 힘들어 보이기는 했다. 하긴, 끊임없이 계단을 오르는 중이니 힘들 만도 하지.
하지만…….
“다른 애들은 멀쩡한데 너만 왜 그렇게 힘들어해?”
무림님만 하더라도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 멀리 앞서 걸어가는 중이었다.
내 말에 법사가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원래 파티에서도 법사는 작고 소중한 존재죠! 그리고 내 나이 좀 생각해 줘!”
“네 나이가 어때서. 그거 다 운동 부족이야.”
“운동 부족이라니! 길마님이 회사 들어가 봐!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나!!”
“하는 사람은 다 하던데.”
당장 우리 오빠만 하더라도 그랬다. 내 말에 해로운 법사님께서 불퉁하게 입술을 삐죽인다.
“내일 분명 근육통 올 거야. 무릎도 나갈 거야. 아직 창창한 20대인데 귀환의 길드장이란 사람 때문에 관절이 이렇게 갈리는구나.”
“…….”
거참, 찡찡거리네! 그리고 20대는 무슨, 내년이면 30대일 거면서!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고는 성녀의 힘을 사용했다. 그러곤 곧장 두 계단을 성큼 올라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발바닥 아래로 뭔가 꾹, 눌러졌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선 조심스레 발바닥을 들어 올리는데.
“왓더, 퍽!! 뭐예요! 누가 뭘 건드린 거야!!”
일정한 간격으로 벽에서 막대기가 튀어나왔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니 몸이 기울어지고 있는 법사가 보였다.
“엇……?”
“법사!!”
황급히 손을 뻗었다. 다행히 나는 아래로 떨어지려는 법사를 붙잡을 수 있었다.
“흐아악! 잠깐만! 길마님 잠깐만!!”
“잡았어! 잡았으니까 얌전히 좀 있어봐!!”
법사의 발목을 말이다. 한 손은 무슨, 두 손으로 법사의 발목을 잡고서는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길마님, 잠깐! 잠깐만 놓지 말고 있어봐! 아니다! 놔! 그냥 놔!!”
“뭐라는 거야!!”
떨어졌다가는 그대로 추락할 거 같았다. 다른 애들이라면 몰라도, 법사는 순발력이라곤 없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마왕님과 드슬이만 하더라도 튀어나온 막대를 피한 상태였고 말이다.
“제발 그냥 놔! 머리 피 쏠려서 뒈질 것 같다고!!”
“진짜 뒈지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있으라고!!”
“길짱님, 도와줘야 하는 시추에이션인가요?”
“그럼 어떻게 보이는데!!”
마왕님과 드슬이가 막대를 뛰어넘고서는 이쪽으로 뛰어 올라오는 게 보였다.
“길짱님, 근데요.”
“도와주려면 좀 빨리 도와줘!!”
이러다 놓칠 거 같았다. 아니면 나도 같이 떨어지거나.
“아, 진짜! 놔도 된다니까!!”
“……!!”
몸이 순식간에 앞쪽으로 쏠렸다.
“누나!”
“도하운아!!”
이 망할 법사 새끼가! 기껏 잡아주고 있었더니!!
마왕님의 마법이 펼쳐지는 게 눈에 보였다. 정말이지, 마왕님이 있어서 다행인 순간이었다.
잠깐, 마법?
“내가 놔도 된다고 했잖아! 왜 같이 떨어지려고 그래!!”
분명 중력을 따르고 있어야 할 몸이었다. 하지만 내 몸은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법사가 내 팔을 잡고선 가까이로 끌어당기며 타박했다.
“길마님, 내가 누구인지 자꾸 잊는 거 같은데…….”
“이… 망할 법사 새끼가!!”
“악! 아파!!”
네가 누구인지는 관심 없다, 망할 법사 새끼야. 나는 법사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고, 법사가 이마를 부여잡으며 소리 질렀다.
“그러니까 놔달라고 했잖아! 머리에 지금 쥐 나고 있죠! 아주 그냥 찌릿찌릿하죠!!”
“어쩌라고!!”
나는 너란 새끼를 잡느라 손목이 아주 찌릿찌릿하다! 물론, 그런 감각은 곧바로 사라졌지만 말이다.
“도하운아! 괜찮으냐?!”
“마왕님, 법사는 보이지 않나요.”
“네놈은 짐의 관심 밖이니라!”
“헐, 법사 슬프죠.”
나는 법사의 어깨를 밀어내고는 마왕님께 다가갔다. 마왕님이 나를 잡고선 계단에 내려주었다.
“길짱님, 그렇게 떨어지면 어떻게 해요? 아주 간담이 그냥……!”
“내가 떨어지고 싶어서 떨어졌어? 저 망할 법사 새끼 때문에 떨어졌지. 그보다 하려던 말이 있지 않아?”
“아, 그거요?”
무림이가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법사를 보고선 해맑게 웃음을 지었다.
“사형, 어차피 마법을 쓸 수 있는데 굳이 그렇게 잡고 있어야 하냐고 물어보려고 했던 건데요?”
“…….”
좀, 일찍 물어보지 그랬냐.
나는 짜증스레 머리를 헤집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주 꼴이 우습게 됐다.
그때,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드슬이가 해로운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아주 잘만 떠다니고 있네? 대마법사님?”
“왜? 부러워, 드슬님?”
“아니. 그런 건 하나도 안 부럽고, 왜 지금까지 마법을 안 쓰고 있었던 건가 해서.”
어, 그러네?
생각해 보니 저렇게 떠다닐 수 있는데, 왜 힘들게 계단을 오르고 있나 싶었다. 나는 환하게 웃음을 짓고선 해로운 새끼를 내 앞에 오도록 만들었다.
“왜, 길마님?”
“내가 왜 불렀을 것 같아, 법사님?”
“법사는 모르겠죠.”
이마의 혈관 하나가 투둑,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곧장 손을 들어 해로운의 뺨을 있는 힘껏 꼬집어 당겼다.
“당장 우리 모두에게 마법 써, 이 망할 법사 새끼야.”
해로운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나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이렇게 손쉽게 올라가는 방법이 있는데, 뭐 하러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해로운을 선두로 하여 천장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으아앙!
―으애애앵!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섬뜩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뒤를 흘긋거리니.
“와우, 어메이징! 길짱님! 저것들 처리하고 가면 안 되겠죠?”
“응, 절대 안 돼.”
용사님께서 산산이 부숴놨던 해골들이 제 몸을 맞추고선 계단을 올라오는 중이었다.
덜컥, 몸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스켈레톤의 입에 들어있던 구더기가 밖으로 쏟아진다.
―으아아앙!
으으, 징그러. 울음소리는 왜 하필 또 갓난아기의 목소리인데!
앞서 올라가고 있던 해로운이 몸을 돌리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하네.”
“뭐가?”
“쟤네, 이성이 있는 것 같아서.”
“이성?”
“응, 보통 몬스터들은 멍청해서 놓쳐버린 적을 쫓아야 한다거나 그런 게 없거든.”
그런데 저렇게 따라왔다면서 해로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몬스터에 대해 잘 아는 거 같네, 대마법사님?”
“법사 놈이니까 몬스터에 대해 잘 알겠죠? 그러는 드슬님은 하는 일도 없이 왜 따라왔는지 모르겠죠?”
“하는 일 없는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법사가 비딱하게 웃음을 짓기 무섭게 드슬이의 몸이 아래로 쑥 꺼졌다. 나도 함께 말이다.
“이 미친놈이! 이거 안 놔?”
“놓으면 나 죽어, 길드장님.”
죽기는!! 드슬이라면 충분히 몸을 움직여 저 계단으로 착지할 수 있을 거다.
나는 내 목에 팔을 두른 드슬이의 머리를 꾹꾹 밀어내며 외쳤다.
“네가 죽기 전에 내가 먼저 죽을 거 같거든? 해로운! 드슬이한테 빨리 마법 안 걸어?!!”
해로운이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드슬이 새끼를 본다. 그러기 무섭게 드슬이의 몸이 다시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말이다.
“이 미친 법사 새끼가!!”
“드슬님 참 착하죠? 먼저 가서 용사님이랑 우리 도련님 찾아주려고 저렇게 빨리 가다니.”
진짜 법사 새끼는 해로운 새끼다.
곧, 천장에 다다른 드슬이가 그대로 빨려가듯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무림이가 놀라 외쳤다.
“왓더, 퍽! 길짱님! 드슬 형아 사라졌는데요?”
“나도 봤어.”
“저 천장에도 술수를 부린 것 같도다.”
“도대체 그 술수란 게 뭔데?”
“함정 같은 거 아닐까, 길마님?”
그에 나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쫓아오고 있던 해골바가지들을 쳐다봤다.
일정한 간격으로 튀어나왔던 막대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다시 나타나지도 않고 있었다. 저렇게나 많은 스켈레톤이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말이다.
사람이랑 몬스터를 가려서 함정이 발동되는 건가.
“이상한 던전이네.”
내 말에 마왕님께서 “흐음.” 하고 말을 길게 늘어뜨린다. 왜 그러나 싶었지만, 곧 천장에 다다랐기 때문에 나는 의문을 지워버렸다.
“길마님, 어떻게 할 거야?”
“들어가 봐야지.”
“헐! 완전 두근두근해요!!”
긴장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쾌활한 목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눈앞에 닥칠 상황이 어떨지도 모르고 말이다.
들어간다는 말이 우습게도, 우리는 그대로 천장을 통과했다. 그렇게 바닥에 발을 디뎠다.
“길드장님.”
앞서 올라간 드슬이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선 앉아있었다. 드슬이 앞에는 누군가가 벽에 몸을 기대고 주저앉아 있었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는 붉은 핏물에 나는 멍하니 입술을 움직였다.
“…도하인?”
하나뿐인 동생이 고개를 든다. 그러고는 힘겹게 숨을 내쉬며 입술을 움직였다.
“도하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