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법사님께서 천사 닮은 누나가 설마 길마님을 가리킨 거냐면서 메시지로 묻는다. 나는 가볍게 법사의 메시지를 무시하고는 마왕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마왕님.
|Pr. 마왕| : 왜 부르느냐?
|Pr. 신살자(길드장)| : 여기에 왜 애를 데리고 왔어?
내가 보낸 메시지를 봤을 텐데도 마왕님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저 불퉁하게 두 뺨을 부풀리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해로운 법사님께서 무릎을 굽히고는 아이와 눈을 마주했다.
“마왕님 조카야?”
“우리 삼쵼이 마왕님이에요?”
법사님이 마왕님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지만 아빠가 아니라고 했는데!”
“아, 그건 말이야…….”
“네 아버지가 헛소리하는 것이니라.”
“…….”
마왕님의 말에 법사도, 마왕님의 조카도 할 말을 잃은 얼굴로 마왕님을 쳐다본다. 왜인지 우마한 길드장이 뒷목을 잡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법사가 짧게 혀를 차고는 마왕님한테서 고개를 돌린다. 그러고는 아이를 보며 방긋 웃음을 지었다.
“이름이 뭐야?”
“유빈이에요, 우유빈.”
낯이라고는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긴,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지.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는 듣지 못한 답을 듣기 위해 다시 질문을 던졌다.
“마왕, 아니. 우마훈, 애를 왜 데리고 왔냐니까?”
“아빠랑 엄마가 오늘 바쁘다고 해써요!!”
내 질문에 답해준 건 유빈이었다. 유빈이의 말에 마왕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래서 내가 맡아주기로 했느니.”
“그 두 사람이 순순히 너한테 맡기든?”
“아니요!”
이번에도 내 질문에 답해준 건 유빈이었다. 유빈이의 말에 이번에도 마왕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런데 애를 왜…….”
“나 말고 조카님을 돌봐 줄 사람이 없었느니라.”
“오늘 어린이집 안 하거든요!”
또랑또랑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참 해맑다. 아이는 내 품에 안겨있는 하림이를 보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물었다.
“누나, 그 강아지는 뭐에요? 누나가 키우는 거에요?”
“아, 얘는…….”
“리미 강아지 아니야!!”
“!!”
이런.
품에 안겨있던 림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의 모습을 취해버렸다.
“삼쵼! 강아지가 사람이 돼써요!”
“저건 강아지가 아니라 드래곤이니라.”
“드래곤?”
갈수록 가관이다. 나는 한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삼쵼! 쟤 눈도 빨개요!!”
“드래곤이라서 그렇느니라.”
“드래곤이 먼데요?”
“드래곤이란…….”
“드래곤 아니야!!”
나는 빼액 소리 지르고는 하림이의 두 눈을 손으로 덮어버렸다. 하림이가 답답하다면서 버둥거렸지만, 조금만 참아줘.
유빈이가 떨떠름한 얼굴로 마왕님을 쳐다보며 물었다.
“…누나가 아니라는데요, 삼쵼?”
“도하운이가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니라.”
마왕님, 제발! 제발 한 번이라도 나 좀 제대로 도와주면 안 돼?!
유빈이와 눈을 맞추고 있던 법사 새끼는 바닥에 엎드려서 끅끅거리며 웃고 있다.
저 망할 새끼.
나는 지랄맞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드래곤이 아니라, 혼혈이라서 그래. 유빈아, 미국 알아?”
“알아요! 근데 미국 호녈이면 눈이 빨개요? 크리스는 안 저런데?”
크리스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치원 친구 중에 미국 혼혈아가 있나 보다.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바보야?
바닥에 엎드려있던 법사 놈이 갑자기 시비를 건다. 두 눈을 뾰족하게 뜨고는 노려보자, 법사 새끼가 내 시선을 피하며 또 하나의 메시지를 보냈다.
|Pr. 9서클대마법사| : 마법으로 림이 눈 가리면 되는데, 길마님 바보 맞죠ㅠ?
진작 그렇게 해주고 말을 하든가!!
“엄므아!! 리미 답답해에!!”
“아, 미안.”
나는 두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려줬다. 림이가 두 눈을 비비며 입술을 삐죽인다. 그때 유빈이가 놀란 얼굴로 외쳤다.
“삼쵼! 쟤 눈이 찌저져 이써요! 이것도 호녈이라서 그러는 고에요?”
“혼혈이 아니라 드래곤이라서 그렇느니라.”
“…….”
시발, 이제 나도 모르겠다.
나는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어버렸다. 림이가 내 품에서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지만, 굳이 애를 붙잡지 않았다. 유빈이가 도도도, 방 안을 돌아다니는 림이를 보며 불퉁하게 말했다.
“천사 달믄 누나는 드래곤이 아니라 호녈이라고 그러고! 삼쵼은 드래곤이라고 그러고!! 뭐가 맞는 말인지 모르게써요!!”
유빈이의 투덜거림에 마왕이 무릎을 굽히고는 아이를 타이르기 시작했다.
“조카님아, 드래곤이면 어떻고 혼혈이면 또 어떻겠느냐. 그보다, 도하운이를 보거라. 조카님 때문에 곤란해하고 있지 않느냐.”
아니, 이건 너 때문인데.
저 빌어먹을 마왕님의 이마에 딱밤이라도 때려주고픈 심정이었다.
마왕님께서는 조곤조곤하게 말을 이어갔다.
“네 아버지가 그랬지 않느냐, 조카님아.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면 안 되느니라고.”
“그건 삼쵼한테 말하는 거였자나요!!”
“그걸 기억하고 있었느냐? 우리 조카님은 똑똑하기도 하느니라!”
아니, 여기서 왜 애를 칭찬하는 건데!!
답답해서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팔짝 뛰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고 있는데 하림이가 유빈이를 가리키며 외쳤다.
“엄므아, 나 쟤랑 놀고 시퍼!”
“놀든가.”
나는 용사님이 어느 순간부터 가져다 놓은 탱탱볼을 하림이 손에 쥐여줬다.
그게 실수였다.
“아야! 하림아!!”
“리미는 쟤한테 던지려고 그래써! 리미 잘못 아니야!!”
법사의 머리를 맞춘 탱탱볼이 통, 하고 튕겨 올라가 벽에 걸려있던 거울을 맞추고 말았다. 거울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아래로 추락한다.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에 나는 멍하니 입술을 벌렸다.
“엄므아! 저거 부서져써!!”
그래, 나도 보여.
“삼쵼! 저거 부서져써요!! 어또케요?”
“짐도 모르겠느니.”
그렇게 말하지 말고 원래대로 돌려놔! 용사님 오시기 전에!!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안에서 도대체 다들 뭔 짓 하고 있는 거예요!!”
용사님 대신 대공님께서 들어오셨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대공님의 모습에 하림이가 도도도 달려갔다.
“아쁘아!”
“림아! 도대체 뭐 하고 있었어?”
“아무것도 안 해써!!”
대공이 하림이를 안아 들고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내, 깨진 거울을 발견한 대공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소리 질렀다.
“저거 누가 그런 거예요!!”
“해로운이.”
“해로운 놈이 그랬느니라.”
“헐?!”
해로운이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으나 나도 마왕님도 그 소리를 무시했다.
“뭐 해요, 법사님! 사장님 보기 전에 어서 치워요! 원래대로 되돌려 놓든가!!”
“…여기 내 편 아무도 없죠.”
해로운이 시무룩한 얼굴로 마법을 펼친다. 붉게 펼쳐진 마법진에 유빈이가 입술을 잔뜩 오므렸다. 꽤 놀란 듯이 보였다.
“걔는 또 누구예요?”
“조카님이니라.”
“조카님? 혼자 온 거 아니었어요?”
“아니었느니라. 북부 대공아, 짐에게 그리 관심이 없느냐.”
“…그, 제가 마왕님께 관심을 가져야 하나요?”
대공의 떨떠름한 얼굴에 마왕님이 눈살을 찌푸리신다. 그때 깨진 거울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은 법사님께서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대공님은 하림이밖에 모르는 바보죠, 바보!”
“시끄…….”
“시끄럽단다, 해로운. 네 목소리가 아주 바깥까지 쩌렁쩌렁하게 들리는구나.”
대공님 뒤로 나타난 용사님의 얼굴에 해로운이 입술을 삐죽인다.
“그렇게 안 시끄러웠는데.”
뚱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내 귀에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용사님도 마찬가지셨나 보다. 얼굴을 찌푸리더니 짜증스레 목소리를 내뱉었다.
“너희들, 여기가 무슨 어린이집인 줄 아니? 그리고 애들보다 너희가 더 시끄러우면 어쩌자는 거니?”
억울했다. 나는 뭐 한 것도 없는데! 여기서 제일 시끄러웠던 건 마왕님이랑 법사 새끼랑 대공이었는데!
하지만 이런 내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전에 용사님께서 앞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고는 말하셨다.
“오늘은 다들 나갔다가 오렴. 나 원, 시끄러워서 손님들 다 나가버리겠구나.”
“사장님, 저도요?”
“그럼 너도 포함되지 않겠니, 유대공? 네가 아니면 하림이는 누가 돌보겠니?”
“길마님 있잖아요!!”
저 새끼, 육아를 나한테 떠넘기려고 하네.
“어쨌든, 나는 나가라고 했단다. 나가지 않겠다면 그렇게 계속 있으렴.”
“계속 있어도 되나요, 용사님?”
법사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 용사님께서 입꼬리를 끌어 올리신다.
“그래, 있어도 된단다. 뒷감당은 네 몫이니까, 해로운.”
분명 웃는 얼굴인데 들리는 목소리는 그렇지가 않았다.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해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말했단다. 알아서들 나갔다가 오라고.”
용사님이 등을 돌리기 무섭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도하운이 말 더럽게 안 듣는 길드원들과 한 마리의 드래곤, 그리고 궁금한 것이 많은 한 명의 아이를 데리고 공원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용사의 가게, ‘Vai tu, Echina’의 앞에 검은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
딸랑, 울리는 소리에 강인한이 그려낸 것처럼 반듯한 웃음을 지었다. 들어선 남자 역시 그려낸 것만 같은 미소를 지으며 강인한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저번에 카드 건으로 찾아온 적 있죠? 하운의 도하인입니다.”
“어서 오세요, 도하인 부길드장님.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옆에…….”
강인한과 눈을 마주친 강하수가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 얼굴에 강인한이 속으로 혀를 한 번 차고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를 건넸다.
“유명하신 대표님도 끼고서요.”
그 말에 강하수가 냉큼 강인한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알아봐 주셔서 영광입니다. 사장님.”
“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