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어떻게 할까.
해로운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해로운은 불편했다.
남들에게는 필요한 만큼의 관심만 줘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살아왔는데.
“해로운.”
해로운이 도하운의 머리칼을 가지고 장난치던 손을 멈췄다. 강인한이 한쪽 눈가를 찡그리고선 입을 열었다.
“허튼짓할 생각은 하지 말렴.”
해로운이 씨익 웃음을 지으며 손을 거뒀다.
“용사님, 눈치 100단이시네.”
듣기 좋은 칭찬은 아니었다.
* * *
“형! 아니야! 그 새낀 아닌 것 같아!!”
문을 벌컥 열며 들어오는 도하인의 말에 도하준은 기울이려던 술잔을 허공에서 멈추고는 물었다.
“…누가 아니야.”
“누구기는! 우마한, 그 능구렁이 같은 새끼지!! 우리를 도와주기는커녕, 기껏 모은 자료도 다 엉망으로 만들고 있잖아!!”
“…….”
막내의 말에 도하준은 둘째를 찾는 데 도움을 주겠다던 우마한을 떠올렸다.
규모로 따지자면 ‘하운’보다 커다란 길드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니, 도하준은 우마한의 도움으로 둘째를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크나큰 오해였다.
‘아, 죄송합니다. 비서가 그만 하드를 부숴먹어서 말입니다.’
기껏 빌려준 자료를 날려 먹지를 않나.
‘잠실 쪽을 수색해 달라고 했던 겁니까? 임실로 알아듣고 그쪽으로 길드원들을 보냈는데 말입니다.’
“…….”
말을 도대체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이상한 곳으로 인력을 보내지를 않나.
도하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커다란 한숨 소리에 도하인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우마한, 그 새끼가 도와준 뒤로 일이 더 꼬이고 있다고! 형, 내 말 듣고 있어?”
“…듣고 있어.”
도하준은 힘없이 답하고는 기울이다 만 술잔을 들었다.
“그만 마셔! 술도 못하면서!!”
이를 도하인이 뺏어 들고는 외쳤다.
“우마한, 그 새끼한테 그냥 꺼지라고 하자! 네 도움 따윈 필요 없다고, 그렇게 말하자고!!”
도하준은 이번에도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로 으르렁대던 두 길드가 사람 한 명 찾자고 힘을 합쳤다는 뉴스가 곳곳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좋은 일은 널리널리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마한의 작업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당신네 도움은 필요 없다고 나오면, 어떤 말들이 나올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하운이한테까지 피해가 가겠지.’
안 그래도 귀한 인력들을 낭비 중이라며 곳곳에서 떠들어대는 중이었다. 도하준이 얼굴을 한 번 문지르고서는 한숨을 토해내듯 말했다.
“하인아, 하운이 말이야. 그냥… 로운 씨와 도망간 거 아닐까?”
“해로운, 그 새끼 이름은 입에 담지도 마! 그리고 도망가기는 걔가 왜 도망가!!”
“하운이…….”
도하준이 말을 잠깐 멈췄다가 먹먹하게 잠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하운이 다시 돌아왔을 때 기억나? 언제든지 사라질 것처럼 굴었잖아, 애가.”
“안 나. 기억 안 난다고!”
거짓말이었다.
느닷없이 꺼낸 옛날 일에 도하인이 울 것만 같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도하인의 말에도 도하준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하인아, 나 그때 하운이 방문 앞을 몇 날 며칠이고 지켰었다? 애가 또 사라질까 봐.”
“형.”
“그런데 봐봐. 애가 이렇게 또 사라져버렸어.”
그에 도하인이 외쳤다.
“안 사라졌어! 걔 지금 한국에… 여기 서울에 있다고!!”
서울을 벗어나 다른 곳에 있는 건 아닌가 했다. 그러나 지난번에 모습을 보였던 해로운 덕분에 도하운이 서울에 있다는 것을 확신한 도하인이었다.
“그런데 왜 안 나타나?”
도하준이 도하인의 손에서 술잔을 뺏어 들고는 집어 던졌다. 요란하게 부서지는 파열음 소리와 함께 도하준이 성난 목소리를 내뱉었다.
“애가 왜 안 나타나냐고! 왜 봤다는 사람도 없다는 거야!! 현상금도 걸고, 기사도 뿌려대고 했는데 왜!!”
그 말에 도하인은 꿀이라도 입안에 한껏 머금은 것처럼 입술을 다물어버렸다.
“해로운 씨도 마찬가지야! 애를 납치했다면 뭘 달라고 말을 하든가! 그런 것도 없잖아!!”
그렇기에 도하준은 도하운이 해로운과 그저 도피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납득할 수 없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라서?
도하준은 머리를 가득 채우는 의문에 앓는 소리를 한 번 내었다.
형제간에는 적막만이 가득했다. 이를 부순 것은 도하인이었다. 도하인이 부서진 유리잔을 발끝으로 치우며 말했다.
“…내일, 강 대표님께 한 번 더 찾아가 볼게.”
도하준은 그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도하인은 말했다.
“그러니까 형은 술 좀 그만 마시고 눈이나 붙여.”
도하인의 말에 도하준은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문질렀다. 그 모습에 도하인이 속상하다는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망할 누나가 속은 더럽게 썩인다고 생각하면서.
* * *
|Pr. 정령사| : 아주 그냥 못 해먹겠습니다.
“……?”
느닷없이 나타난 메시지에 나는 물고 있던 과자를 우물거렸다.
|Pr. 신살자(길드장)| : 뭘 못 해먹겠는데?
|Pr. 신살자(길드장)| : 회사 굴리는 거? 그건 못 해먹으면 안 되잖아. 못 해먹으면 회사 도산할 텐데.
―장난하십니까!!
“악! 시발!!”
고막을 내리치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길마님, 갑자기 왜 그래?”
“갑자기 왜 그러겠어!”
괜히 해로운 법사님께 신경질을 낸 뒤 망할 정령사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이 ㅅㅂ새끼야! 내가 진언 좀 작작 날리라고 했지!!
|Pr. 정령사| : 그러게 누가 그런 이야기 꺼내랍니까? 도산이라니요! 그게 얼마나 민감한 단어인데!
|Pr. 신살자(길드장)| : 민감하고 자시고 도산 안 할 거잖아!
|Pr. 정령사| : 당연하지요!!
정령사는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고는 이번 분기 실적이 어떻고, 뛰어난 연습생이 얼마나 많은지를 내게 설명해 줬다. 관심 없는 이야기라서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Pr. 신살자(길드장)| : 그보다 뭘 못 해먹겠다고?
|Pr. 정령사| : 길드장님, 당신 뒤치다꺼리요!!
|Pr. 신살자(길드장)| : 네가 내 뒤치다꺼리를 뭐 하고 있다고;
내가 너희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다면 몰라.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과자를 다시 집어 들었다.
|Pr. 정령사| : 오, 이프리트시여!
|Pr. 정령사| : 지금 무슨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냐고 하셨습니까?
|Pr. 정령사| : 도하인 부길드장님께서 찾아오실 때마다 제가 얼마나 열심히 길드장님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중인데요!
집어 든 과자가 손안에서 부스러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가루가 잔뜩 묻은 손을 바닥에 털어내고서는 얼굴을 찌푸렸다.
“하준 형님이 정령사님한테 찾아오기라도 했대? 아니면 도련님이?”
“…너는 왜 말해주지도 않았는데 아는 거야?”
대공의 폰으로 놀고 있던 법사가 키득거리며 웃는다.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나는 짧게 혀를 찼다.
|Pr. 정령사| : 도대체 언제까지 밖을 나돌아다닐 겁니까!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도 되지 않아?”
정령사님과 법사님, 설마 둘이서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정령사님께 조금만 더 도하인을 상대해 달라고 부탁한 뒤 말했다.
“안 돼.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괜히 돌아갔다가 오빠랑 도하인이 괜한 일에 휘말리면 어떻게 해.”
“왜 가출했는지에 대한 변명거리를 생각하지 못해서는 아니고?”
나는 대답 대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갑 티슈를 집어 던졌다.
이를 능숙하게 피한 해로운이 짓궂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 길마님, 집에 돌아가면 외출 금지 또 당하는 거 아닐까 몰라.”
“시끄러.”
“마쟈! 시끄러버!”
아래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에 해로운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림이, 왜 일어났어?”
“로우니가 시끄러버서 일어나써!”
“로운이라니. 누가 그렇게 버릇없게 이름 막 부르래?”
해로운이 하림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는 묻는다. 하림이는 대답 대신 내가 던졌던 갑 티슈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아악! 야!!”
갑 티슈의 끝이 찌그러질 정도로 세게 해로운의 머리를 내리쳤다.
와우, 괜히 드래곤이 아니야.
“길마님! 얘 좀 봐!! 얘가 길마님한테서 안 좋은 것만 배웠잖아!”
“내가 뭐.”
어깨를 으쓱이고는 하림이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하림이는 냉큼 본모습으로 돌아가 내 품에 안겨들었다.
―맘마!
분명 말을 배운 것 같은데, 드래곤의 모습으로는 허구한 날 ‘맘마’만 외치고 있는 하림이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했지만, 인간의 모습으로는 잘만 말하고 있으니 상관없겠거니 싶었다.
“도하운아.”
끼익, 열리는 문과 함께 웬일로 머리를 틀어 올리신 마왕님께서 등장하셨다.
“마왕님, 왔어? 오늘은 좀 늦었네?”
“그러게. 마왕님 오늘 늦으셨죠? 내일까지 안 오는 줄 알고 법사는 기뻤는데 말이죠.”
마왕님이 험악하게 얼굴을 찌푸린다.
나는 하림이에게 법사의 머리칼을 뽑으라고 말해준 뒤, 마왕님께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서있어? 안으로 안 들어오고.”
“아.”
마왕님께서 바람 빠진 소리를 한 번 내더니 몸을 옆으로 비켜섰다.
“조카님아, 어서 인사를 하거라.”
“조카?”
마왕님의 조카라면…….
생각을 이어가기도 전에, 몇 번 봤던 어린아이가 쭈뼛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쎄요.”
“…….”
우마한 길드장님, 그리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우마한 길드장님의 부인님!
도대체 뭘 믿고 애를 또 우마훈한테 맡겼습니까!!
쭈뼛하게 인사를 건넨 아이가 나를 보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사 달믄 누나다!”
“…안녕.”
|Pr. 9서클대마법사| : 천사 닮은 누나?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