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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82화 (82/168)

82화

“유대공, 말한 적 있는 것 같지만 하림이는 인간이 아니란다.”

“그런 사랑 말고요!”

유대공, 이 망할 녀석은 뭐 잘했다고 씩씩거린다. 그러고는 하림이를 번쩍 안아 들며 물었다.

“그대여, 도대체 뭐가 그리 불만이오?”

―맘마! 맘마아!!

“악!”

하림이는 다시 한번 대공의 손을 깨물고서는 아래로 내려왔다. 그와 동시에 두 눈을 멀게 할 만큼 강한 빛이 하림이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나는 황급히 손을 들어 올려 두 눈을 가렸다.

“마이 아이즈!!”

“유대공!!”

“왜 저한테 그러세요!!”

법사님의 목소리를 뒤로 용사님의 짜증 섞인 목소리와 대공님의 억울함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정도 빛이 가신 후, 나는 조심스레 두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

눈앞에 보이는 건 검은 머리칼을 어깨 언저리까지 기른 네다섯 살 정도의 어린아이였다. 세로로 찢어진 붉은 눈동자를 가진 어린아이 말이다.

목욕하다 도망 나온 것만 같은 차림을 한 아이가 씩씩거리며 외쳤다.

“리미 바께 나갈래애! 나가고 시퍼어!”

소란이 가득했던 가게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직, 붉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만이 씩씩거리며 입을 열었다.

“리미! 바께……!”

나도 모르게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아이에게 입혀주었다. 그런데 이 망할 해츨링 놈이 가만있지를 않는다.

“시러어! 이거 시러어어!!”

“아… 아니야. 싫어하면 안 돼.”

답답하다면서 벗으려는 하림이를 꼭 붙들어 잡았다. 하는 짓을 보면 하림이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할 줄 아는 소리라고는 ‘맘마’ 밖에 없었잖아? 그런데 이렇게 난데없이 인간으로 폴리모프를 하면…….

“길마님, 우리 림이 천재인가 봐요.”

“야.”

왜 감격에 겨워하고 있는 거야?

대공님께서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이 사태를 해결할 생각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하림이의 뺨을 붙잡고는 이리저리 살펴봤다.

“우웅.”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말을 습득했고, 폴리모프를 하게 될 줄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더욱이, 드래곤은 폴리모프를 하면 성인의 모습으로 고정돼서 나타났다. 적어도 글로리아의 드래곤들은 그랬다.

“아쁘아! 리미 이거 시러어!”

“어, 어? 그, 그러니까…….”

감격에 겨워하고 있던 대공님께서 당황한 얼굴로 말을 흘렸다. 림이를 어떻게 불러야 좋을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대공, ‘그대’ 소리 하면 안 된다. 너.”

“유대공, ‘그대’ 소리는 집어치우렴.”

“대공님, ‘그대’는 안 돼.”

나를 비롯한 용사님과 법사님의 말에 유대공이 울상을 짓는다. 이건 다 너를 위해서야, 대공님.

“아쁘아! 리미 바께!!”

“그… 러니까.”

대공이 어두컴컴해진 밖을 쳐다보더니 이내 무릎을 굽히고선 말했다.

“림아! 지금 밖에 봐봐, 완전 어둡지? 안 돼, 못 나가. 밖에 엄청 위험해.”

“아니야아!!”

생후, 몇 달이지? 한 달은 좀 넘었으니…….

어쨌든 생후 한 달이 넘은 해츨링의 고집은 대단했다.

“엄므아가 지켜 줄 끄야!”

“엄마? 림이는 엄마 없는데?”

하림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유대공을 쳐다본다. 꽤 충격을 먹은 얼굴이었다.

대공, 너 이 미친 새끼가. 애한테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해! 없어도 있다고 해야지!

“아니야! 리미 엄마 이써!”

“그, 그래? 도대체 누굴까?”

유대공이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하림이를 쳐다봤다. 하림이가 올망졸망한 두 눈을 끔뻑이더니 오동통한 손가락을 든다.

“엄므아, 쩌기 이써.”

하림이의 손가락은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

멍하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으니 하림이가 활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웅!!”

아니, 잠깐만. 내가 왜 네 엄마야?

팔자에도 없는 엄마 소리에 당황해하고 있는데 하림이가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며 말했다.

“엄므아! 리미 바께! 바께 나가고 시퍼!!”

“…….”

망할, 귀여워.

* * *

결국, 나는 하림이한테 패배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공님과 법사님, 용사님도 림이한테 패배했다.

“저 꼬맹이 때문에 이 밤중에 무슨 난리라니.”

가게로 찾아온 경찰들을 돌려보낸 용사님께서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용사님의 티셔츠를 예쁘게 차려입은 하림이는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가게에서 키울 수 있겠어, 용사님?”

“그걸 왜 나한테 묻니? 하림이 아빠는 저 녀석이란다.”

내 물음에 용사님이 하림이와 손을 잡고 걷고 있는 대공을 가리켰다. 대공 역시 하림이와 마찬가지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용사님께서 짧게 혀를 찼다.

“저렇게 좋을까.”

“용사님, 법사가 예언 하나 해도 될까요?”

“아니.”

그 말을 들을 법사가 아니었다. 법사가 입꼬리를 끌어올리고는 예언이랍시고 입을 열었다.

“용사님네 가게에 조만간 애기들 장난감 가득 쌓인다에 법사의 손목을 걸죠!”

“시끄럽단다.”

용사님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법사가 키득거리며 웃는다. 나는 눈가를 꾹꾹 짓누르며 말했다.

“법사님, 조심해. 용사님이 너를 베이비시터로 고용할지도 모르니까.”

“헐, 완전 싫죠.”

“고용한다면 대공이 고용하겠지. 왜 내가 고용할 거라고 하니, 길드장?”

용사님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대공님 돈 없잖아.”

“아.”

용사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신다. 우리가 이렇게 영양가 없는 대화를 하는 사이, 대공은 하림이를 번쩍 안아 들고 있었다.

“하준 형님이 길마님 저렇게 놀아줬을 거 같죠.”

“그렇지?”

나랑 도하인이 겨우 한글을 떼고 있을 때, 오빠는 중학생이었다.

얼굴 한번 보기 힘든 부모님을 대신해서 우리를 돌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오빠가 고생 많았지.”

오빠는 나랑 도하인이 무슨 짓을 저지르든 웃고 넘어갔다. 콜라를 먹다가 바닥에 쏟아버려도, 요리하겠다고 설치다가 프라이팬을 태워 먹어도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하준이 오빠 진짜 많이 고생한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고생 많이 하고 계시죠. 가출 어른이 때문에.”

“시끄러.”

나는 얼굴을 와락 찌푸리고는 걸음을 조금 빨리했다.

“엄므아!”

“…그러니까 나는 네 엄마가.”

대공에게 안겨있는 하림이가 나를 향해 팔을 뻗는다. 두 눈을 올망졸망 뜨고 있는 모습에 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저 망할 해츨링이 귀여움을 무기로 들이미네. 결국, 나는 대공에게서 하림이를 안아 들었다.

“그래, 네 좋을 대로 불러.”

“우웅!”

하림이는 공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내 품에서 내려갔다. 그러고는 짧은 다리로 열심히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림아! 거기는 들어가면 안 돼!!”

들어가지 마시오, 라는 안내 푯말을 무시하고 뛰어 들어가려는 하림이를 대공이 급하게 붙잡아 든다.

하림이는 자신을 붙잡은 손에 버둥거리면서 아빠 밉다는 소리를 해댔다. 나는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구경했다. 정말이지,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길마님.”

“뛰어놀고 싶으면 림이랑 같이 뛰어놀아.”

“아니, 저기요? 도대체 법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거죠?”

“물로.”

법사가 불퉁하게 입술을 씰룩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길마님,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뭐.”

“자유로운 도비 씨랑 회귀자 씨랑 무슨 대화를 나눴길래 그렇게 지친 얼굴이야?”

티를 안 내려고 했는데 지쳐 보였나 보다. 나는 얼굴을 한 번 문지르고는 말했다.

“하림이 때문에 그런 거지, 걔들 때문에 그런 게…….”

나는 말을 멈추고는 멍하니 법사를 쳐다봤다.

“네가 지한결이 회귀자인 걸 어떻게 알아.”

해로운 법사님께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길마님, 정말 법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거죠?”

법사님께서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내게 가까이 들이밀며 웃음을 지었다.

“내가 괜히 대마법사겠어?”

다갈색 눈동자에 붉은 마법진이 그려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는 몸을 뒤로 뺐다. 법사의 눈을 가리는 손은 덤이었다.

“길마님, 나한테 뭐 숨길 거 있어? 왜 이래?”

법사가 그런 내 손을 아래로 내리고는 키득거렸다. 휘게 접힌 두 눈에 나는 질색하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지만 나를 끌어당기는 손에 다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뭐…….”

기울어지는 몸에 말을 잇지 못했다.

단단히 내 머리를 받치고 있는 허벅지에 나는 멍하니 시선을 들었다.

야살스럽게 눈웃음을 짓고 있는 얼굴에 다시 몸을 일으키려는데 해로운 새끼가 내 두 눈을 손으로 덮어버렸다.

“야! 뭐 하는 짓이야?!”

“잠깐 눈 좀 붙이고 있으라는 짓거리죠? 보니까 하림이, 지쳐 곯아떨어질 때까지 저러고 놀 거 같은데 편하게 자고 계셔요, 길마님?”

두 눈 위를 덮은 온기에 나는 뚱하게 말했다.

“베개 내놔.”

“길마님 머리를 바치고 있는 건 베개가 아니고 뭐지?”

나는 말 없이 해로운의 무릎을 인정사정없이 꼬집어버렸다.

“아, 악!”

내일 분명 멍이 들어있을 거다.

* * *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피곤하기는 했나 보다.

‘하긴, 그렇게 집을 나오고 계속 선잠만 자고 있던 것 같으니까…….’

해로운은 저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새근거리며 잠든 도하운의 머리를 손가락 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기껏 잠든 애를 깨울 생각이니, 해로운?”

“설마.”

깨웠다가는 반대쪽 무릎이 꼬집힐 거다.

해로운은 강인한에게 그린듯한 미소를 지어주고는 다시 도하운을 내려다봤다. 그 인간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어떻게 봐도 듣기 좋은 이야기를 나눴을 것 같지는 않다.

‘볼까, 말까.’

해로운은 도하운의 기억을 엿볼지 엿보지 않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엿보려고 했다가는, 처음 자신을 묶어버렸던 그 사슬이 저를 가로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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