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그러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덜컹, 현관문이 움직이더니 이내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문 잠겨있는데?”
“잠겨있다고요? 오, 이프리트시여! 그럴 리가 없습니다! 분명 열려있었단 말입니다!”
해로운과 강하수의 목소리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금장치란 잠금장치는 모두 작동시켜서 문을 꼭꼭 잠가버린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잠시만! 열어 줄……!”
“웨잇 어 미닛!!”
콰앙―!
폭발음과 함께 현관문이 벽에 처박혀 버렸다.
“…….”
미친.
한 발자국 잘못 내디뎠으면 문이랑 같이 벽에 처박힐 뻔했다.
문을 날려버린 무림이 새끼가 나를 발견하고는 해맑기 그지없는 얼굴로 물었다.
“길짱님, 안에 계셨네요? 그런데 왜 그러고 있어요?”
강하수와 해로운은 서로 시선을 마주 보더니,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고. 우마훈도 그 둘을 따라 걸음을 뒤로 물렸다.
집주인인 도비가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은 얼굴로 입술을 억지로 움직였다.
“이… 이 몸의 집이…….”
나는 도비한테서 고개를 돌린 뒤 소매를 걷었다.
“최강! 너 이리 와!!”
“싫어요! 노옵!!”
저 망할 길드원의 주먹 쓰는 버릇을 오늘 단단히 고쳐야겠다.
피곤하다.
망할 무림이 새끼, 날래기는 날다람쥐처럼 날래서 결국 잡지 못했다.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요? 날이 너무 늦었는데 말입니다.”
요리조리 내 손을 피해 도망 다니는 무림이를 잡은 건 정령사님이었다.
“맞아, 길마님. 이야기도 다 끝난 거 같은데 이만 돌아가죠?”
부서진 문을 원래대로 되돌려 준 해로운 법사님께서 무림이를 잡지 못해 씩씩거리는 내 어깨에 팔을 얹었다. 나는 그 팔을 쳐낸 뒤 말했다.
“지한결, 도비한테서 내 번호 얻어내서 문자 남겨줘.”
“한결 씨와는 같이 안 가?”
“쟤는 도비랑 더 이야기하게 내버려 둬.”
암만 봐도 지한결은 도비네 집에서 하루를 보낼 생각인 것 같았다.
“글로리아, 지하철이고 버스고 지금 시간이면 이미 다 끊긴 시간이다만.”
“강 대표님 차 얻어 타면 돼.”
“죄송하지만, 길드장님. 저는 마훈 군이랑만 따로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용사님네 가게로는 못 데려다주겠다며 정령사님께서 미소를 지으셨다.
“법사 놈 포털 타고 돌아가십시오.”
“헐! 법사는 포털 열어준다는 소리… 억!”
벌처럼 빠르게 법사의 옆구리를 찌르고는 말했다.
“그럼 무림님만이라도 집에 좀 데려다줘.”
“저 길짱님이랑 가면 안 돼요?”
“안 돼.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어서 집으로 돌아가.”
“흥.”
이게 ‘흥’은 무슨 ‘흥’이야? 나는 무림이의 뺨을 있는 힘껏 꼬집어주고는 정령사님께 보냈다.
그렇게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우리는 헤어지게 됐다.
법사의 포털은 언제나 그랬든 용사님네 가게가 자리 잡고 있는 거리 안쪽의 골목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품을 한 번 하고는 걸음을 옮기려는데 지금쯤 도로를 달리고 있을 정령사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다.
|Pr. 정령사| : 길드장님.
|Pr 신살자(길드장)| : 응?
|Pr. 정령사| : 무림 제일 고수님과는 언약을 맺지 않으셨습니까?
|Pr 신살자(길드장)| : ㅇㅇ
그러고 보니 밑도 끝도 없이 해맑기 그지없는 무림님과 언약을 맺지 않았다. 지금 하는 걸 보면 언약을 딱히 맺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령사님은 다르게 생각하는지 나에게 짜증이 섞인 메시지를 보냈다.
|Pr. 정령사| : 그럼, 무림 제일 고수님 입 좀 다무는 식으로 언약 좀 맺어주십시오.
“…….”
우리 무림이가 말이 좀 많기는 하지.
“길마님? 왜 그런 얼굴이야?”
옆에 있는 법사님보다는 덜한 것 같지만.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정령사님한테는 무림이가 너보다 더한가 보다.”
“응?”
해로운 법사님께서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신다. 나는 활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칭찬이야, 칭찬.”
“기분 좋아야 하나요.”
“좋아하든가.”
심드렁하게 대꾸한 뒤, 용사님네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불빛이 환하게 켜져있어야 할 용사님네 가게가 어딘지 이상했다.
“진짜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사장님께서 이미 신고했다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안 와? 경찰이든 헌터든 좀 와야 할 거 아니야!”
가게 앞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있었다.
나와 법사님은 걸음을 멈추고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Pr. 9서클대마법사| : 법사가 빠르게 길마님 얼굴 바꿔났죠.
|Pr. 신살자(길드장)| : 고오맙다.
우리는 멈췄던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용사님네 가게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지금 용사님의 가게는 내 삶의 터전이었다.
“잠깐만요. 지나갈게요.”
나는 모여있는 사람들 틈을 비집어 가며 겨우 용사님네 가게 앞에 도착했다. 유리문 안으로 보이는 가게의 상황이 한눈에 봐도 심각해 보였다.
도둑이 들어도 저렇게 엉망이 될 거 같지는 않은데. 아니, 애초에 가게에 도둑이 들면 용사님께서 있는 힘껏 때려잡겠지.
나는 조심스레 가게의 문을 열었고.
―맘므아!!
와장창!
옆을 지나쳐 가는 보이지 않는 브레스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아래로 떨어지는 걸 보며 나는 멍하니 입술을 벌렸다.
“와아아악!”
“꺄아악!”
바깥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하며 눈앞에 드러난 광경을 바라보았다.
―맘므마아! 맘므아아!!
몸이 좀 불어난 하림이가 바닥에 쓰러진 대공을 열심히 짓밟고 있었다.
“뭐, 뭐야? 길마님 괜찮아?”
나는 괜찮다. 그런데 대공님께서 괜찮아 보이지가 않는다.
“유대공! 정신 안 차리니!!”
그리고 용사님도 상태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가 않았다. 용사님의 목소리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대공님께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대공을 짓밟고 있던 하림이가 아래로 데구르르 굴러떨어졌다.
―맘마아!
대공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하림이에게 손을 뻗는다.
“그… 그대여……!”
―맘므아!!
“아악! 아, 잠깐만!! 림아!!”
하림이는 그 손을 그대로 깨물어 버렸다.
“유대공, 그 망할 드래곤 새끼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렴.”
“어떻게 데리고 나가요! 나가서도 브레스 쏘면 어쩌려고!!”
“내 가게를 이렇게 만든 건 괜찮다는 거니!!”
버럭 지르는 목소리에 대공이 울상을 지으며 하림이를 끌어안는다.
도대체 이 야밤에 무슨 난리인 건가 싶었다.
그때, 엉망이 된 용사님의 가게를 복구시키던 법사님께서 손을 까닥였다.
―맘마?
하림이의 목에 붉은 마법진이 펼쳐졌다. 대공이 하림이를 들고서는 이리저리 살피며 물었다.
“뭐, 뭐예요? 법사님! 림이한테 무슨 마법 걸으셨어요?”
“혹시 몰라서 림이 주변에 결계 좀 친 거뿐이야. 아까처럼 브레스 날리면 곤란하죠?”
―맘므아! 맘마!!
하림이가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앞발을 들어 제 목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대공이 애타는 목소리로 외쳤다.
“림이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마법 좀 풀어줘요! 애가 답답해하잖아요!”
대공의 애타는 목소리에도 법사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나는 그런 법사의 어깨를 가볍게 때리고서는 말했다.
“그러고 있지 말고 마법 풀어줘.”
법사는 그제야 하림이의 목에 걸어놓은 마법을 풀어줬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였지만 말이다.
“그대여, 괜찮소?”
“유대공, 그 망할 ‘그대’ 소리 그만하고 하림이나 진정시키렴!”
“계속 진정시키려고 하잖아요! 사장님 바보!”
“뭐라고 했니.”
“그대여, 도대체 뭐가 그리 불만이오?”
하림이는 말없이 두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릴 뿐이었다. 소리 내어 울고 있지도 않은데, 엄청 서러워 보인다.
나는 하림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두 팔을 펼쳤다.
“림아.”
―마마!!
“……?”
맘마에서 자음 하나가 빠진 거 같은데 착각이겠지.
대공의 품에 안겨있던 하림이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내게 날아왔다.
“그대여! 어찌 내 품은 거부하고 저자의 품으로 향하시오!!”
저기요, 유대공 씨?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거 같잖아.
내 품에 안겨든 하림이가 얼굴을 비비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나는 그런 하림이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공에게 물었다.
“림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사춘기가 찾아온 건 아닐 거다. 내 말에 대공이 바닥에 풀썩 앉으면서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모르겠어요. 배고프다고 해서 고기도 주고, 심심하다고 해서 놀아도 줬는데…….”
“애가 가게를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놨단다.”
용사님께서 쓰러져 있던 의자를 바로 세우고는 자리에 앉았다. 법사가 금이 간 벽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법사가 엉망이 된 가게 원래대로 되돌려 주고 있는 중이죠?”
“아주 고맙구나.”
“별말씀을.”
이런 상황에서 용사님과 법사님이 쓸데없는 신경전을 벌인다. 나는 하림이의 옆구리에 손을 끼고서는 들었다.
“림이, 도대체 왜 이래? 뭐가 이렇게 불만이야?”
―맘므아! 맘마!
“하늘을 날고 싶대요.”
“지금도 잘만 날고 있잖아.”
―맘마마!!
“길마님 바보라는데요.”
“뭐?”
아니, 이 자식이?
눈살을 찌푸리는데 하림이가 다시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다. 대공이 그 모습에 작게 숨을 내쉬고는 내게 다가왔다.
“대공.”
“네?”
나는 내게서 하림이를 빼앗아 안아 드는 대공을 보며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너, 지금 테이밍 제대로 안 하고 있지?”
테이밍, 다른 말로 하면 조련. 유대공이 내 시선을 피하며 애매한 웃음을 짓는다. 그에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렸다.
“야.”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하고 있어요!”
“그런데 애가 왜 이래? 왜 이렇게 날뛰어?”
“사랑으로 기르는 중이니까요!”
별 지랄맞은…….
빼액 지르는 목소리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