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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80화 (80/168)

80화

“도빈 씨…….”

지한결이 앓는 소리를 내고는 이마를 짚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웃는 낯을 보이며 말했다.

“죄송해요, 도빈 씨. 배려하지를 못했네요. 나중에 다시 차근차근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시’라니. 지한결은 도비한테 ‘회귀자’니 ‘귀환자’니 하는 것들에 대해 설명해 준 적이 있나 보다.

“네 그 사이비 같은 말들을 또 들으란 말인가?”

“사이비…….”

지한결이 입술을 꾹 깨문다.

지한결과 도비가 지난 세계에서 무슨 관계였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 * *

다 큰 성인 남자 둘이 그네에 앉아있었다. 늦은 밤이라 노는 아이들이 없어서 다행인 일이었다.

“와! 마왕 형아, 완전 굼떠!!”

“무엄한 놈이……!”

일행으로 보이는 다른 두 사람은 놀이터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앳된 얼굴의 남자만 열심히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무림님 체력 좋네.”

“그러게나 말입니다. 고3이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관악산을 열심히 뛰어다니더니 저렇게 체력이 좋나 봅니다.”

뚱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해로운이 혀를 차며 말했다.

“정령사님, 뒤끝 쩔죠?”

“뒤끝 쩐다니요! 제가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로운이는 모르겠죠.”

“아오!”

강하수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하하! 마왕 형아, 완전 웃기네요!”

최강은 우마훈을 저 좋을 대로 놀려먹는 중이었다.

긴 머리칼을 아래로 쭉 끄집어 내리기도 했고, 눈앞에서 깐족거리다가 우마훈이 잡으려 들면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했다.

“…….”

우마훈이 짓궂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최강을 말없이 노려봤다. 최강의 웃음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우마훈의 손에 기다란 창이 쥐어졌다.

“야! 말려! 저거 말려!!”

“마훈 군! 여기서 그러시면 안 됩니다!!”

그네에 앉아있던 해로운과 강하수가 스프링 튕기듯 우마훈에게 뛰어갔다. 다행히도 둘은 우마훈이 창을 휘두르기 전에 그를 붙잡을 수 있었다. 해로운이 최강을 붙잡고서는 그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무림님, 어른들 놀리는 거 아니죠? 마왕님 지금 무림님 때문에 빡쳤죠?”

“히힛! 저도 어른이었는데요?”

최강의 말에 해로운은 최강의 목을 꼭 끌어안고는 허리를 숙였다.

“아아! 알았어요! 안 놀릴게요!!”

최강이 앓는 소리를 내며 제 목을 끌어안고 있는 해로운의 팔을 두드렸다.

우마훈은 창을 쥐고 있던 손을 놓고는 팔짱을 꼈다. 강하수의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타박하듯 말했다.

“마훈 군은 뭘 또 그렇게 애한테 화를 냅니까?”

우마훈이 강하수의 말에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강하수가 그런 우마훈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마훈 군답지 않게 제 눈치를 보십니다?”

“…….”

강하수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우마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당신 잘못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하지만 너를 공격한 건…….”

“마훈 군이 아니었습니다. 아니었다면 아닌 겁니다.”

강하수의 말에 우마훈이 놀란 얼굴을 보였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강하수는 만족하고는 해로운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정령사 놈아. 아니, 강하수야.”

하지만 부르는 목소리에 강하수는 걸음을 멈추고선 고개를 돌렸다. 마왕님이 이름을 불러주다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왜 부르십니까?”

“…미안하도다.”

그러니까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라니까.

강하수는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키고선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그렇게 미안하면 앞으로 제 말이나 잘 들어주십시오.”

“도하운이 다음으로 잘 듣겠도다.”

우마훈의 말에 강하수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좋군요.”

어쨌든 말은 들어준다지 않나. 그것만으로도 펄쩍 뛸 만한 일이었다.

“해로운 씨! 이만 돌아갑시다!”

강하수의 말에 어느새 최강과 술래잡기를 하면서 놀고 있던 해로운이 뚱한 얼굴을 보였다. 해로운이 보이는 얼굴에 강하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휴, 당신 나이 좀 자각하십시오.”

“내 나이가 어때서?”

“말을 말지.”

강하수는 해로운이 자신과 동갑이었다는 것을 떠올린 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에 해로운이 빼액 소리 질렀다.

“정령사님! 야! 강 대표님!! 법사 무시했다고 길마님한테 다 이른다?”

“오, 이프리트시여! 밖에서 좀 그렇게 부르지 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지도 마시고요!”

“그러는 자기도 이프리트 찾아대고 있죠!!”

도하운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저 사람들 모른다면서 먼저 자리를 비켰을 거다.

* * *

“결국, 이 세계는 나 때문에 멸망했었다는 거네?”

“글로리아랑 당신은…….”

“같은 사람이라니까? 같은 사람이라고 보면 돼.”

나는 소파에 편히 등을 기대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늘의 별님들께서는 뭐 하고 계셨던 건지…….”

설마 세상이 멸망해 가는 동안에도 의뢰나 보내고 있던 건 아니었겠지.

내 말에 지한결이 성좌님들을 대변하듯 입을 열었다.

“그분들께서도 나서려고 했습니다만,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 나는 지한결이 내게 들려주었던 말을 떠올리고는 물었다.

“대신관들 때문에?”

“네.”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 새끼들은 또 어떻게 여기로 넘어온 거야…….”

나는 드슬님께서 내게 보내왔던 숫자를 떠올리고는 짧게 혀를 찼다. ‘7’이니, ‘8’이니 무슨 숫자놀이를 하나 했다.

그게 이 세계로 넘어온 신관들의 숫자를 나타낼 줄은 몰랐지.

글로리아는 하나의 대륙이 곧 하나의 나라였던 곳이다. 동쪽, 서쪽, 남쪽, 북쪽에 자리 잡은 신관에 대신관이 한 명씩 있었고 대륙 중앙의 중앙 대신전에 3명의 대신관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보다 위에 서있는…….

“성하.”

“네?”

“성하는 만난 적 없어? ‘글로리아’에 미친 듯이 집착하는 새끼인데.”

“…….”

“지한결?”

지금까지 잘만 대답해 주던 놈이 입을 다물어버렸다. 지한결이 입술을 살짝 벌리더니 이내 느릿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그런 분은 모릅니다. 제가 만난 건 ‘단테’, ‘마몬’ 그리고 ‘라헬’이라 불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하를 모른다는 건 의외였지만, 지한결의 입에서 나온 이름들은 모두 익숙한 이름들이었다.

그야, 지한결이 말한 저 세 사람은 중앙 대신전의 대신관들이었으니.

하지만, 내가 죽였는데. ‘글로리아’를 죽이고자 할 때면 가장 먼저 죽였던 새끼들인데. ‘성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혹시 몰라 직접 그 몸에 기름도 부어서 불태우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왜? 도대체 어떻게?

“…마법도 사용했었지.”

신관들은 마력이 아닌 성력(聖力)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마력을 움직여 사용하는 힘인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입가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을 이어가고 있는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도비가 입을 열었다.

“사이비 네 녀석이 한 말을 종합해 보면 글로리아, 저 녀석은 이 몸보다 강했다는 거군.”

“지금도 너보다 강하거든?”

“흠.”

뭐야, 그 반응은?

도비의 말에 지한결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도빈 씨도 강한 분이셨습니다. 지금은 미숙하게 다루는 힘을 그때는 아주 완벽하게…….”

“이봐, 사이비.”

도비가 언짢은 기색으로 지한결의 말을 끊고서는 짜증스레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 몸의 어디가 미숙하다는 거지?”

불현듯이 화랑의 건물 로비에서 정신이 나가버린 헌터들을 붙잡았던 도비의 얼음이 떠올랐다.

그거 바로 풀리고 또 풀리고 했었지.

어떻게 봐도 자신의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한결은 곧장 도비한테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도빈 씨. 제가 말실수를 했군요. 도빈 씨는 그 자체로도 완벽한 사람인데 말입니다.”

지랄한다.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지한결을 쳐다봤다. 지한결도 나와 똑같이 짜게 식은 눈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입은 웃고 있는 게, 세상 참 힘들게 살아간다 싶었다.

“그래서 그 대신관이란 녀석들은 어디 있다는 건가, 지한결.”

도비가 지한결의 아부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를 이름으로 부른다.

도비의 말에 지한결이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어디 있는지 찾았습니다만 놓쳤습니다.”

느릿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지한결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신관들이 그리 제압하기 어려운 새끼들은 아닌데……?

지한결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아, 그건 괜찮아.”

“네?”

되묻는 목소리에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우리 쪽 길드원이 걔들이랑 같이 있는 거 같아서.”

내 말에 지한결은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내가 말한 ‘길드원’이 누군지 아는 눈치였다.

그렇게 우리 사이에서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화도 끝났고, 애들 불러서 이만 돌아갈까 하는데 지한결이 나를 불렀다.

“…도하운 씨,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뭔데?”

“당신이 길드장으로 있다는 그 길드, ‘귀환(歸還)’이 맞습니까?”

“응.”

우리 길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으면서? 아니면, 그냥 ‘귀환자’에 대해서만 아는 건가?

하지만 그건 아닌 모양인지 지한결이 미심쩍은 얼굴로 내게 물었다.

“당신이 ‘길드장’으로 있는 것도 맞고요?”

“애들이 부르는 거 듣지 않았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귀환자들이 모인 길드에 대해 확실히 아는 눈치였다. 지난 세계에도 역시 ‘귀환’은 있었나 보다. 그렇기에 나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나도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지한결 씨.”

“네, 편히 물어보십시오.”

“이전의 세계에서 귀환의 길드장은 누구였어?”

내 물음에 지한결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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