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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77화 (77/168)

77화

비서의 말에 우마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우마훈에 의해 건물 밖으로 내보내졌을 때 함께 있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 나지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분명하게 기억나는데 말이다.

“길드장님?”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도하준 길드장은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까?”

“네, 기다리다가 지쳐 돌아가려는 찰나에 잘도 오셨군요. 우마한 길드장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우마한이 얼굴을 찌푸렸다가 곧장 풀었다. 잊지 말자, 눈앞의 남자는 은혜로운 ‘신살자’님의 가족분이다.

“죄송합니다, 도하준 길드장님. 처리할 일이 많아서 늦었습니다.”

“바쁘신 분께서 저는 왜 만나자고 한 걸까요? 저 역시 바쁜 사람이라 어서 길드로 돌아가 봐야겠는데요.”

“동생분을 찾으러 가야 하니까요?”

“…….”

도하준이 한쪽 눈가를 찡그리고선 우마한을 노려봤다. 우마한이 두 손을 들고선 웃음을 지었다.

“비아냥거릴 의도는 없었습니다. 놀릴 의도도 없었고요. 저 역시 동생을 둔 입장 아닙니까?”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우마한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서는 입을 열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도하준이 우마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평소라면 도하준과 똑같이 얼굴을 찌푸렸을 우마한은 친절하게도 말을 길게 풀어주었다.

“당신 동생 찾는 거, 도와드리겠다고 내가.”

신살자님, 당신에 대한 도하준 길드장의 걱정을 덜어드리면서 당신을 찾고자 하는 도하준 길드장을 방해하겠습니다!

도하운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당신 우리 오빠 혈압 올릴 작정이냐면서 멱살을 잡았을 것이다.

* * *

―웨옹.

사람 하나는 겨우 지나갈 정도의 골목길 사이에서 누군가 무릎을 굽히고 앉아있었다.

―웨애애옹.

가냘프게 고양이 울음소리 흉내를 내면서 말이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가 우유를 담은 그릇을 쓰레기 더미 가까이에 내밀었다.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잔뜩 털을 세우고 있는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남자는 어린 고양이와 눈싸움을 벌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 나오네.”

남자는 결국 무릎을 바로 펴고는 걸음을 옮겼다.

―웨옹.

“……?”

그러나 남자가 골목길을 벗어나기 전, 쓰레기 더미에 몸을 숨기고 있던 고양이가 남자의 발목에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남자는 아래를 흘긋거리는 불퉁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저기 놔둔 우유나 마셔.”

―웨애애옹!

앙칼진 목소리에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남자는 제 발목에 몸을 비벼대는 어린 고양이를 무시하려고 했다. 한두 방울씩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남자는 하늘을 한 번 쳐다보다가 애처롭게 우는 어린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웨오옹!!

다소 신경질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남자는 무릎을 굽히고선 고양이를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후드 속에 집어넣고는 중얼거렸다.

“괜찮겠지.”

두 사람 다 동물을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남자는 그렇게 다시 걸음을 옮겼다. 추적추적하게 내리는 빗방울에도 남자는 느리기만 했다.

―웨옹! 웨애앵!

그러다 아래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남자는 걸음을 조금 빨리 움직이기로 했다.

겨우 돌아온 아지트 앞에서 남자는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끄집어 내리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구두가 왜.”

가지런히 놓여있는 갈색 구두가 두 눈에 들어왔다.

보험 설계사라도 온 건가, 아니면 누군가 좋은 말씀이라도 전하러 온 건가.

전자든 후자든 두 사람이라면 쫓아내지 않고 안으로 들였을 거다. 그리고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겠지.

남자의 추측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것이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배웅은 괜찮으니 나오지 마세요.”

안쪽에 자리한 서재에서 나온 여자가 남자를 보고는 놀란 눈을 해 보였다. 그러나 이내 미소를 지으며 남자에게 인사했다.

“당신이 그 사람인가 보군요?”

알은척, 물어오는 목소리에 남자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얼굴에 여자가 웃음을 지었다.

“제가 아직 기억이 온전치 못해서 이렇게 인사드리는 점 양해해 주세요.”

“……?”

“다음에 만나면 제대로 기억해 낼게요.”

여자는 그렇게 인사를 하고는 아지트를 나가버렸다. 남자가 닫힌 현관문을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억 속에 없는 여자가 난데없이 알은척이라니, 암만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웨애옹!

“아, 그래.”

남자가 품에 안고 있던 고양이를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주었다. 그러기 무섭게 꽃무늬 일색인 버선발이 보였다.

“왔어, 시온 씨?”

이시온은 고개를 들어 저를 반기는 남자를 쳐다봤다. 머리를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남자가 사탕을 깨물며 물었다.

“저 고양이는 또 뭐야?”

이시온이 데리고 온 어린 고양이는 아지트 이곳저곳을 열심히 탐색 중이었다. 이시온은 남자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물음을 던졌다.

“…마몬, 방금 그 여자는?”

누구냐는 이시온의 질문에 대답해 준 사람은 마몬이 아닌 다른 이였다.

“곧 함께 움직일 분이십니다. 귀한 분이시니 잘 대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왜.”

이시온이 여자가 나온 서재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를 향해 얼굴을 찌푸렸다.

“단테, 이 멍청한 새끼야.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고 귀한 분이니 뭐니 그렇게 설명하면 어떻게 해?”

“귀한 분을 귀한 분이라고 하지요. 그럼, 뭐라고 부릅니까?”

너스레를 떠는 목소리에 마몬이 혀를 찼다. 이시온은 아지트 이곳저곳을 탐색 중이던 어린 고양이를 안아 들고서는 둘에게 말했다.

“여자는 불편해.”

“시온 씨는 여자가 불편한 게 아니라 그냥 사람 자체가 불편한 거 아니야?”

이시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Pr. 드래곤슬레이어| : 신입.

단테와 마몬에게는 보이지 않을 메시지를 누군가에 보내면서 말이다.

* * *

|Pr. 드래곤슬레이어| : 들어온다는데.

“……?”

드슬이 이 새끼는 도대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뭘까. 아니, 뭘 원하는 걸까.

신입이 들어오니까 알아서 처리하러 오라는 걸까? 아니면 신입이 들어온다는 걸 내게 자랑하는 걸까? 자랑하는 건 아닐 거다. 그렇기에 드슬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어쩌라고?

|Pr. 신살자(길드장)| : 나보고 그냥 얌전히 있으라고 했잖아?

|Pr. 드래곤슬레이어| :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Pr. 드래곤슬레이어| : 알아서 찾아간다고 말했지.

그게 그거지.

나는 입술을 씰룩이고는 리모컨을 들었다.

오늘 우마한 길드장이 ‘화랑’에서 일어났던 일과 관련하여 기자 회견을 연다고 들었다.

이번 기자 회견을 끝으로 ‘화랑’에서 일어났던 일과 관련된 것에는 그 어떠한 말도 올리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열심히 우마한 길드장의 모습을 찾는데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다. 이번에도 보낸 사람은 드래곤 슬레이어님이셨다. 하긴, 지금 메시지를 보낼 사람이 드슬님밖에 없기는 했다.

|Pr. 드래곤슬레이어| : 그래서 길드장님, 너는 지금 어디 있는데?

|Pr. 드래곤슬레이어| : 아직도 용사님의 가게야?

|Pr. 신살자(길드장)| : 안 알려줌.

|Pr. 드래곤슬레이어| : 야.

|Pr. 신살자(길드장)| : 뭐.

너에게 알려줄 의무 따위는 없다. 그러니까 어디 한번 알아서 찾아오라지.

나는 리모컨을 이리저리 누르다가 결국 전원을 꺼버렸다. 해외 드라마 채널만 끊임없이 나오니, 그냥 안 보고 말지.

짜증스레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데 앉아있는 소파 옆쪽이 푹 꺼졌다.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글로리아.”

“뭔데?”

나는 옆을 흘긋거리고는 다시 리모컨을 눌러 전원을 켰다.

“아, 쏟았다!”

그 순간 해로운 법사님의 낭패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유로운 도비 씨! 욕실 어디 있어?”

“욕실은 저기 있습니다, 로운 씨.”

답해준 건 자유로운 도비 씨가 아니었다.

입을 열려던 도비가 어이없다는 듯이 해로운이 서있는 쪽을 쳐다봤다.

“땡큐. 지한결이라고 했죠?”

“네.”

“고마워요, 한결 씨.”

해로운은 그대로 지한결이 가리킨 방향으로 사라졌다.

“한결 형아! 냉장고 열어봐도 돼요?”

“네, 열어봐도 됩니다. 아마도요.”

“안에 주스 있는데 마셔도 돼요?”

“네, 마셔도 됩니다. 아마도요.”

무림님께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잔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도비 새끼가 두 눈을 질끈 감더니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문지른다.

“이것은 무엇인고.”

“도빈 씨가 받은 트로피입니다. 조심히 내려놔 주세요, 마훈 씨. 그거 도빈 씨가 아끼는 거라서요.”

어느새 거실로 온 지한결이 도비 새끼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뒷말을 덧붙였다.

“아마도요.”

그 목소리에 도비 새끼가 크나큰 한숨을 토해냈다. 나는 멋쩍게 뺨을 긁적이고는 다시 TV를 꺼버렸다.

도비 새끼가 엉망이 된 집을 둘러보고는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도대체 왜, 단체로 우리 집으로 온 거지? 저 사이비 녀석도 데리고 말이다!”

먼저 도비의 말을 살짝 고쳐주자면, 용사님과 대공님은 가게에 남아 계셨다.

대공님은 따라오고 싶어 하셨으나, 용사님이 오늘은 꼭 장사해야 한다면서 대공님을 붙잡으셨다.

그래, 알바비 받으려면 열심히 일해야지.

또한, 정령사님께서도 이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 몸을 회복한 후, 곧장 ‘H-Entertainment’로 가버렸는데 그 후로 정령사님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냐는 메시지에는 꼬박 답을 해줬다.

해로운 법사님께서는 내기에서 졌기 때문에 쪽팔려서 얼굴을 보이지 못하는 거라고 추측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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