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어쨌든 우마한 길드장은 무조건 찾아야 했다. 마왕님 때문에 일어난 일을 어떠한 잡음도 없이 해결하려면 우마한 길드장이 필요하니까.
더욱이 화랑 내에서 일어난 일이니, 우마한 길드장이 대외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을 거다.
어쨌거나 원래 사람 찾는 건 정령사님 전문이지만, 정령사님은 저기 저렇게 누워계시니 차선책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Pr. 신살자(길드장)| : 법사님, 지금 ㅇㄷ?
그리고 내가 선택한 차선책은 해로운 법사님이셨다.
|Pr. 신살자(길드장)| : 아직도 어그로 끌고 있는 건 아니지?
|Pr. 9서클대마법사| : 그건 아니죠.
정말, 혹시라도 오빠나 도하인 혹은 다른 헌터들한테 붙잡혔으면 어쩌나 했는데 잘 피했나 보다.
|Pr. 신살자(길드장)| : 그럼 어디야?
메시지를 보내기 무섭게 닫혀있던 회의실 안쪽 문이 벌컥 열렸다.
“어디 있기는? 나 여기 있지, 길마님.”
“법사……?”
해로운 법사님께서 활짝 웃음을 지으며 회의장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네, 법사입… 억!”
“마훈아!!”
뒤따라 들어오던 이가 어깨를 밀치면서 보기 좋게 넘어져 버렸지만 말이다.
정령사님을 살피던 대공님께서 우당탕,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질색하는 얼굴을 보이셨다.
“으, 아프겠다.”
바닥에 그대로 얼굴을 박아버린 게 아파 보이기는 진짜 아파 보였다.
그사이 우마한은 우마훈의 두 뺨을 붙잡고서는 이리저리 살펴보는 중이었다. 우마훈이 놀란 눈을 보이며 입을 뻐금거렸다.
“형님?”
“뭐야! 너 꼴이 왜 그래?!”
우마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우마한 길드장님.
“헐? 사형, 왜 그러고 있어요?”
“못 본 척 지나가 주면 안 될까, 무림님?”
“오케이, 못 본 척 지나갈게요.”
“지나가란다고 진짜 지나가…? 법사 슬프죠…….”
울먹이는 목소리에 무림이가 키득거리며 웃는다.
나는 눈물겨운 상봉의 순간을 보내는 중인 우 씨 형제를 지나 법사님께 다가갔다.
“알아서 찾아왔네?”
“법사를 우습게 보지 말아줘요, 길마님.”
길마님이라.
우마한은 마왕님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쓰러져 있는 법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 일어나고 뭐 하고 있어?”
“나도 일어나고 싶은데 말이지.”
“땀은 왜 그렇게 흘리고 있고?”
법사가 고개를 뒤로 빼고는 난처한 웃음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한쪽 어깨를 손으로 가리는 꼴이 수상쩍기 그지없었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는 이 새끼가 왜 이러나 싶은데, 무림님께서 말하셨다.
“길짱님~! 사형, 길짱님네 형님한테 화살 맞았어요. 아마 그것 때문에 저러는 거 같은데요?”
“뭐?”
법사님께서 무림님한테 왜 ‘사형(師兄)’이라고 불리는지 모르겠지만, 누구한테 뭘 맞았다고?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해, 무림님…….”
법사 새끼가 어깨를 가리고 있지 않은 다른 손을 들어 얼굴을 문지른다. 앓는 소리는 덤이었다.
“왜요? 사실이잖아요!”
“사실이기는 한데…….”
“야, 손 치워.”
나는 법사의 말을 끊고는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법사가 내 눈치를 살피더니 어깨를 가리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길짱님한테 치료비 청구할 거라고 했어요.”
“뭐? 뭘 청구해?”
“아악! 아파, 진짜 아파!!”
나는 상처가 난 것으로 추정되는 부근을 손으로 꽉 잡았다. 법사 새끼가 요란하게 비명을 지르며 내 손목을 잡는다.
“아프다니까!”
“치료해 주는 거잖아.”
“이게 어떻게 치료해 주는 거야!!”
“지혈 몰라?”
“지혈은 무슨! 아아악! 알았어, 지혈! 알았다고!!”
엄살 한번 요란하다 싶었다. 나는 곧장 성녀의 힘을 사용해 법사의 상처를 말끔히 치료해 주었다.
아, 혹시 모르니까.
“…뭐 하는 거야?”
“오빠가 다루는 무기에 독이 있다는 걸 얼핏 들은 적이 있거든.”
“그래서?”
나는 굴러다니는 유리 조각을 들어 손바닥에 길게 상처를 냈다.
“마셔. 혹시 모르니까 해독해야지.”
치유는 말 그대로 어디 부러졌거나 상처가 난 부분을 치료해 줄 뿐, 독에 중독됐거나 하는 건 예외로 치는 힘이었다.
이건, ‘해독’이라는 또 다른 힘을 사용해야 했다.
법사가 떨떠름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꼭… 피를 마셔야 할까, 길마님? 독에 중독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놓고 나중에 빌빌대면 해독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아.”
내 말에 법사님께서 울상을 짓는다. 나라고 좋아서 손바닥에 상처를 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성녀’의 피에는 어떤 독에 중독되더라도 그 독을 해독시키는 힘이 있었다.
법사님께서 머뭇거리는 사이, 손바닥에 난 상처가 아물어버렸다. 다시 유리 조각으로 상처를 내려는 찰나 법사가 내 손을 끌고 가서는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비려.”
“시끄러.”
글로리아에서는 돈 주고도 못 사 먹는 만병통치약으로 불렸던 거를, 이 새끼가 귀한 줄 모르고!
“그래도 법사 지금 감동했죠.”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목소리에 나는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법사가 상처가 아문 자리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는 나를 보며 눈웃음을 짓는다.
“길마님께서 이렇게까지 나를 생각해 줄 줄이야.”
“뭐래.”
나는 법사한테서 손을 빼내고는 눈가를 찡그렸다.
“이 많은 인원을 네가 아니면 누가 옮기겠어?”
“응?”
“일하라고, 일.”
비딱하게 웃음을 짓는데 법사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버럭 소리 질렀다.
“헐! 너무하죠! 우리 길마님 법사 부려먹을 생각밖에 안 하죠!!”
“당연하지!!”
너는 내 영원한 포털 셔틀이다. 어쨌거나 법사 새끼는 순순히 내 말을 들어줬다.
“또 우리 가게니?”
“부탁할게, 용사님.”
“그 부탁이란 것 좀 작작 할 수는 없겠니?”
나는 용사님의 시선을 피하고는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이런 나를 구원해 준 건 같이 이동한 우마한 길드장이었다.
“죄송합니다, 용사님. 사례는 꼭 할 테니…….”
“용사…? 댁이 내가 ‘용사’인 건 어떻게 알고……?”
용사님께서 말을 흐리며 마왕님을 쳐다보신다.
마왕님은 용사님의 뾰족한 시선에 우마한 길드장 뒤로 몸을 숨겨버렸다.
우마한 길드장이 그런 우마훈의 머리를 손으로 꾹 누르며 고개를 숙이게 했다.
“여기, 우리 마훈이 좀 잠깐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까닥 잘못하면 마훈이가 모든 상황을 뒤집어쓸 수도 있어서…….”
그러고는 재킷 안을 뒤적거려 용사님께 두둑한 현금 다발을 건네셨다.
황금 일색인 지폐에 용사님께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눈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뭐, 어쩔 수 없네요.”
자본주의에 찌들어버린 용사님 같으니라고. 용사님께서 현금을 챙기는 걸 보며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
나에게로 향하는 시선에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마주친 시선에 우마한 길드장이 고개를 꾸벅 숙인다.
“감사합니다, 신살자님.”
시발, 역시 알아버렸구나.
나는 괜히 마왕님을 쳐다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허리를 바로 한 우마한 길드장이 면목이 없다는 투로 내게 말을 건넸다.
“그간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신살자님. 그리고 이 은혜는 모든 상황이 정리된 뒤 꼭 갚겠습니다.”
“괜찮아요. 그… 무례란 것도 없었는데요, 뭐…….”
“아닙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무례를 저질렀는데!!”
어떻게든 은혜를 갚겠다고 허리를 연신 꾸벅이는 모습이 참으로 곤란했다. 그때, 대공님과 무림님이 양쪽에서 속닥거렸다.
“길마님, 돈이요. 돈.”
“머니! 길짱님, 머니 이즈 뭔들 몰라요?”
“둘 다 꺼져.”
나는 대공님과 무림님을 법사한테 보내버린 뒤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오빠가 저 좀 걱정하지 않게 도와주실래요?”
“어떻게 도와주기를 원하는지…….”
“그건 우마한 길드장님께서 알아서 잘해주실 거라고 믿을게요.”
활짝 웃음을 보이자 우마한 길드장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누가 보면 어디 전장에라도 나가는 줄 알겠다. 그 정도로 결연한 얼굴에 그에 걸맞은 목소리였다.
“길드장님!!”
빵빵, 들려오는 클랙슨 소리와 함께 우마한 길드장을 찾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마한이 가게 밖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럼, 마훈이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에.”
제가 할 거라고는 구박밖에 없지만요. 빵빵, 울리는 클랙슨 소리에 우마한 길드장이 걸음을 옮겼다.
“신살자님 말 잘 듣고 있어.”
저기, 굳이 ‘신살자’라고 부를 필요는 없는데요.
우마훈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고선 우마한은 그대로 용사님의 가게를 나가버렸다.
사태를 수습하러 사라지는 모습에 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괜찮겠니, 길드장?”
“뭐가.”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말이 왜 있겠니?”
“무슨 말이야?”
“그 아우에 그 형일 수도 있다는 말이란다.”
나는 불퉁한 얼굴로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마왕님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설마.”
우마한 길드장님, 내 믿음을 배신하지 말아 주세요.
* * *
난장판이 된 ‘화랑’으로 돌아온 우마한은 먼저 사태를 수습하는 기사를 언론에 뿌렸다.
[특보] 말로만 듣던 지하 길드! 그 모습을 드러내다!!
물론 언론에 뿌려진 기사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길드, ‘화랑’의 주인에게 기사의 신빙성을 제대로 묻는 사람들 또한 그리 많지 않았다.
“잘 해결됐습니까?”
“네, 길드장님. 나 감독님께서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이후의 모든 드라마 제작 투자 지원을 대가로 입을 다물고 계셔주겠답니다.”
“지 작가님은요? 행방을 아는 분이 있답니까?”
“그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지 작가님의 가족분도 행방이 묘연하다고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