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권능, ‘신벌(神罰)’이 활성화됩니다.]
―크아아아악!
파지직, 이는 전기에 마신 새끼가 몸부림쳤다.
―이, 성격 더러운 성녀 놈이!!
여러 차례 신벌을 맞으신 마신님께서 잔뜩 독이 오른 얼굴로 나를 노려본다.
그 시선에 나는 보란 듯이 눈웃음을 지으며 다시 한번 더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
잔뜩 몸을 움츠린 모습에 나는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마신님, 쫄았어?”
―네놈!!
굴욕감 짙은 얼굴이 보기가 좋다. 그대로 들어 올린 손을 휘두르려는데, 마신님께서 처연한 얼굴을 보이신다.
“도하운아.”
“…마왕?”
빌어먹을 마신 새끼가 순순히 물러났을 리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
창에 꿰뚫려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마왕의 손이 내 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도하운 씨!”
그러나 곧장 앞을 가로막는 불길에 마왕의 손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대로 걸음을 뒤로 물리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 이름은 또 어떻게 알고 있는 거래?”
“당신 이름을 어떻게 모릅니까? TV만 틀면 당신에 대해 다들 떠들어 대고 있는데요.”
지한결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아침이고 저녁이고 뉴스만 틀면 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알 만했다.
―네 녀석은 또 누구인고.
신벌에 비명을 질러대던 목소리는 어디 가고, 근엄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앞을 가로막고 있던 불길이 수그러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얼굴에 나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또 어떻게 목줄을 걸어야 잘 걸었다고 칭찬을 들으려나.”
“칭찬은 무슨!!”
내 혼잣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지한결이 소리 질렀다.
“저자는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닙니다!”
“알아.”
그리고 우리 마왕님은 원래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어.
“아는데 왜 그러고 있는 겁니까? 어서 죽여야 합니다!!”
“야.”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정령사를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양, 끌어안고 있는 지한결이 보였다.
언제는 내 멱살을 붙잡고 흔들어대더니, 지금은 겁에 질려서 꼼짝도 못 하고 있는 얼굴이다.
나는 작게 실소를 흘린 뒤 짜증스레 말했다.
“네가 뭔데 내 길드원을 함부로 죽여라, 마라야?”
손에 쥐어져 있던 영광의 검을 꽂혀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보낸 뒤 주먹을 쥐었다.
“안 죽여. 절대 안 죽일 거야. 죽인다 해도 죽일 놈은 저 마신 새끼야. 마왕님이 아니라.”
내 말에 반응한 건 지한결이 아닌 엉뚱한 분들이었다.
[성좌, ‘사탄보다 더 대단한 지옥의 군주’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의뢰를 수행하지 않을 생각이냐고 다그칩니다.]
[성소(聖所), <염화 지옥>의 모두가 성좌, ‘사탄보다 더 대단한 지옥의 군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웬일로 조용하다 했더니, 입 다물고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성소(聖所), <에덴>이 귀환(歸還)의 일 처리에 의문을 품습니다.]
[성소(聖所), <올림포스>가 저래 보여도 의뢰는 잘 처리해 준다며 귀환(歸還)의 편을 들어줍니다.]
[성소(聖所), <아스가르드>가 그렇지는 않다면서 고개를 내젓습니다.]
저기요, 뭐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내가 너희 의뢰도 잘 처리해 준 걸로 기억하는데! 그리고 그렇게 불만이면 진작 너희가 내려와서 마신 새끼를 몰아내지 그랬냐. 하여튼 일은 안 하는 놈이 입은 잘도 나불거리지.
시야를 빼곡하게 채우기 시작하는 메시지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데 눈앞의 마신님께서는 내가 다른 이유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하하! 이제야 짐의 위대함을 깨달았느냐, 성녀여!
우리 마왕님이 부끄러움이란 걸 알았으면 쪽팔려서 바깥으로 뛰어내렸을 말을 아주 잘도 지껄이시는 마신님이셨다.
[칭호, ‘신살자(神殺者)’의 두 번째 족쇄가 느슨하게 풀어집니다.]
[칭호, ‘신살자(神殺者)’의 세 번째 족쇄가 느슨하게 풀어집니다.]
나는 씨익 웃음을 지으며 마신 새끼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마신이 가까이 다가오는 나를 향해 두 팔을 펼쳤다.
―그때와는 다른 짐의 위대함을 맛보아라!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하늘에 계시는 별님들도 마찬가지인지 눈살을 찌푸린다느니, 두 팔을 문지른다느니 하는 그런 메시지를 내게 보내왔다.
[성좌, ‘사탄보다 더 대단한 지옥의 군주’가 흥미를 보입니다.]
좀 특이한 취향을 가진 분도 계셨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별님들의 구경거리가 된 건 그리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절대 권능, ‘성문(星門)’이 활성화됩니다.]
이건, 몇 번을 경험해도 마찬가지일 거다.
【‘성문(星門)’ 개방】
[파괴된 차원, ‘글로리아(Gloria)’의 ‘중앙 대신전’을 불러옵니다.]
[하늘의 권좌에 앉아있는 별들의 눈이 가려집니다!]
내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번에도 같잖은 재주를 부리는구나!
파괴된 신전을 배경으로 벼락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점점 내게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들에 나는 비딱하게 웃음을 지었다.
[절대 권능, ‘멸(滅)’이 활성화됩니다.]
까맣게 물들어 있는 벼락이 나를 향해 내리치는 찰나.
【멸(滅)】
그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네, 네놈……!
“내가 분명 말했지?”
쥐고 있던 주먹을 펼치고는 영광의 검을 다시 쥐었다. 한 걸음, 순식간에 마신 새끼 앞에 다가선 후 무릎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될 거라고.”
퍽, 살갗을 강타하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왔다. 지한결이 검을 도대체 왜 들었냐고 소리 지르면서 묻는다.
왜 들었기는, 검성(劍城)의 힘을 사용하려고 들었지. 나는 손에 들렸던 영광의 검을 놓고는 다시 다리를 움직였다.
[권능, ‘신벌(神罰)’이 활성화됩니다.]
마신 새끼의 복부를 발길질하기 무섭게 푸른 전격이 마신 새끼를 향해 내리쳤다.
―커헉……!
나는 그대로 마신 새끼의 목덜미를 잡고는 있는 힘껏 바닥으로 엎어쳤다.
―커흑!
마신 새끼를 노리면서 공격하는 거지만, 어쨌든 몸은 마왕님의 몸이었다. 피를 토해내는 모습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적당히 봐주면서 하자니, 이 빌어먹을 마신 새끼가 마왕님의 몸에서 사라지려고 하지를 않았다.
【멸(滅)】
분명, 마신 새끼를 마왕님의 몸에서 소멸시키려 하고 있는데 말이지.
처음 마신 새끼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보다 더 많은 힘이 이 세계로 넘어온 게 분명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그때와는 달리 ‘케로베로스’라는 신물(神物)을 이용한 것 같지도 않은데, 도대체 어떻게 다시 넘어 온 거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데 마신 새끼가 내 손을 잡고는 키득거렸다.
―이 녀석의 몸은 이미 짐의 것이니라.
“지랄하지 마.”
이미 마신 새끼가 차지했다면, 처음 검을 부딪쳤던 그때 내 목을 노리던 창을 멈추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짓씹듯이 이름을 불렀다.
“우마훈.”
마신 새끼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것을 보며 나는 그의 멱살을 잡고선 물었다.
“이대로 마신한테 먹힐 거야?”
―빌어먹을 성녀 놈이……!
“너, 마신한테 안 먹힐 거라고 의뢰도 열심히 뛰었잖아. 수련의 결과를 보여줘야지.”
―무슨 헛소리를……!
“너는 닥치고 있어.”
―크아아악!!
마신 새끼의 이마를 바닥에 쿵, 소리 나도록 누르며 신벌을 먹였다. 파지직, 이는 전기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네 형, 내가 찾아주고 다쳤다면 치료도 해줄 테니까 마신 새끼 좀 몰아내 봐.”
―크으, 윽……! 성녀……! 빌어먹을 성녀 놈아……!!
고개를 들려는 얼굴을 더욱 강하게 내리눌렀다.
“정령사님도 내가 다 치료해 줬어.”
발버둥 치던 마신 새끼가 잠잠해졌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선 달래듯이 이름을 불렀다.
“응? 마훈아.”
내 아래에 눌린 마신 새끼가 돌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네놈! 네놈이 감히 나를 배반하려 드는 것인 게냐!!
발악하는 목소리에 나는 내리누르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을 줬다.
이 빌어먹을 마신 새끼한테 한 번 더 신벌을 먹여야 하나 고민할 때, 익숙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먹먹하게 잠긴 목소리에 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정말 그래 줄 것이냐, 도하운아?”
나는 마왕님의 머리를 누르고 있던 손을 치우고선 미소 지었다.
“응, 당연하지.”
부서진 신전이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나는 마왕님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어뜨려 주었다.
마왕님이 틀어막혔던 숨을 겨우 토해내는 것처럼 울음을 터트린다.
그러니까 너한테 우는 얼굴은 안 어울린다니까.
* * *
“와! 사형 저기 좀 봐요! 사람들 다 쓰러져 있어요!!”
“그러게. 길마님이 쓰러뜨리고 지나갔나 보다.”
“역시 길짱님.”
최강이 몸을 부르르 떨고는 계단을 올랐다. 비상문이 열려있는 쪽은 핏물이 흥건해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곳은 도하운이 올라간 길이었다.
어쨌든 최강과 해로운은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사형.”
“왜요, 무림님.”
해로운이 화살을 맞은 어깨 쪽을 매만지며 물었다.
“뭐가 그리 궁금하세요.”
“궁금한 건 없는데요.”
“그런데?”
최강이 계단을 올라가다 멈추고는 손가락을 들었다.
“저기, 저 사람은 왜 저러고 있는 걸까요?”
“……?”
독이라도 품은 듯 거무죽죽한 넝쿨에 묶여있는 사람이 보였다.
“…우마한 길드장님?”
고개를 떨구고 있던 남자가 힘겹게 얼굴을 들었다.
“해로운 씨?”
해로운이 한달음에 계단을 올라가선 우마한을 살폈다.
“괜찮으세요? 도대체 여기서 뭐 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러는 해로운 씨야말로 여기서 뭐 하고 계시는 겁니까?”
되돌아온 질문에 해로운은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