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지금 뭐라고 했나, 사이비? 네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의 작가님이란 말인가?”
“아니요. 제 동생이요.”
“…….”
나와 도비 새끼는 나란히 입을 다물었다. 남자는 방긋 웃음을 지었고 도비 새끼는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사이비답게 말 한번 헷갈리게 잘하는군.”
“아, 헷갈리게 만들 생각은 없었는데……. 죄송해요, 도빈 씨.”
미안함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보다 안내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상황이 좀 급박해서요.”
내게 묻는 목소리에 용사님과 대공님이 얼굴을 찌푸리며 남자를 쳐다봤다. 그와 동시에 내게 두 사람이 보낸 메시지가 나타났다.
|Pr. 용사| : 같이 움직일 생각이니, 길드장?
|Pr. 북부대공| : 저 사람들이랑 같이 움직일 거에여? 싫은데ㅠ
나도 싫단다, 대공아.
나는 앞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고는 빨갛게 빛나는 제한 시간을 쳐다봤다.
【00:21:01】
너희는 뭔데 따라오려는 거냐, 우리의 정체를 아는 거냐 등등 피어나는 질문을 할 여유 따윈 없었다.
|Pr. 신살자(길드장)| : 일단 같이 움직이자.
발목을 붙잡을 것 같으면 버리자는, 그런 메시지는 굳이 보내지 않았다.
대공님은 몰라도, 용사님이라면 저 두 사람이 귀찮게 구는 즉시 어떻게든 처리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쩌적, 갈라지는 얼음 소리에 나는 곧장 비상구 문을 열었다.
“따라와.”
* * *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찾아! 무조건 찾아야 해!!”
곳곳에서 들려오는 성난 목소리에 해로운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와, 사람들 진짜 무섭죠.”
“형아, 진짜 대단하네요? 저렇게 많은 사람을 어떻게 상처 하나 안 입히고 따돌려요?”
해로운은 식은땀 하나 흘리지 않은 말끔한 모습인 최강을 쳐다봤다.
분명 함께 이리저리 도망 다녔는데, 얘는 왜 이렇게 멀쩡하지? 나이가 나이라서 그런 건가?
해로운은 식은땀을 닦아내고는 웃음을 지었다.
“내가 좀 대단한 사람이야.”
최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자신을 치켜올려 주는 모습에 해로운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도 이제 들어가자.”
“들어가도 돼요? 길짱이 따라서 들어오란 소리는 안 했잖아요?”
“길짱?”
“길드 일짱님.”
“푸훕.”
저 소리를 듣고 기겁했을 도하운의 얼굴이 떠올랐다. 해로운은 자신을 가로막은 검은 막의 이곳저곳을 두드리며 물었다.
“나는 뭐야?”
“으음.”
최강이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냥 형아라고 부를래요.”
“싫어. 길드 내에서 너한테 형아가 얼마나 많은데.”
“뭐야, 설마 제가 막내예요?”
“응.”
“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여기 있죠.”
해로운은 마왕님께서 마법 한번 참 견고하게도 펼쳐놨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형아라고 부르는 거 싫어. 저는 남들과는 다른 특별함을 원하죠.”
“야라고 불러도 돼요?”
“야.”
최강이 부루퉁하게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이내 활짝 웃으며 해로운에게 물었다.
“그럼, 사형(師兄)이라고 불러도 돼요?”
“사형? 뭐… 형아만 아니면 되니까 상관없지. 아, 찾았다.”
해로운의 눈에 미세하게 금이 간 부분이 들어왔다.
“길마님은 도대체 이걸 어떻게 뚫고 들어가셨대.”
뚫고 들어간 게 아니란 것을, 해로운은 알 수 없었다. 최강의 눈에도 미세하게 금이 간 부분이 들어왔다.
“부술까요? 저 이거 부술 수 있는데.”
“안 돼. 부쉈다가 마왕님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그 말을 해로운은 내뱉지 못했다.
와장창―!
눈앞에서 부서진 검은 막에 해로운은 황망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히힛.”
최강이 그런 해로운을 향해 막을 부순 주먹을 들어 ‘V’를 그렸다.
“잘했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랑의 건물이 쿠궁, 울렸다.
해로운은 최강에게 잘한 거 같니, 라는 시선을 보냈으나 최강의 눈에는 ‘우리 친구 참 잘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최강은 더욱더 활짝 웃음을 지었다. 해맑기 그지없는 얼굴에 해로운이 이마를 짚었다.
“아… 눈치 더럽게 없는 부사수 보는 거 같죠.”
“부사수가 뭐예요?”
“군대 가면 알아서 배울 거니까 지금 알 필요는 없어.”
“저 군대 안 갈 건데요.”
퍽이나 안 가겠다.
게이트가 열리고 던전이 열리는 세상에서도 군대는 여전히 존재했다. 어쨌거나 검은 막은 해로운과 최강이 들어가기 알맞은 크기로 부서졌다.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해로운 씨.”
말아야 하는 것 같다.
해로운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검은 막 안으로 들어서려는 걸음을 멈췄다.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도하준의 날 선 시선이 최강을 향했다가 해로운에게 닿았다.
“그 아이와 한패였습니까.”
해로운이 곤란하다는 듯,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그와는 반대로 도하준은 얼굴을 굳힌 채 해로운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당신이 왜 모습을 드러냈고, 이 사태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묻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도하준이 괴롭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 하운이, 어디 있는지만 말해주십시오.”
해로운은 형님의 여동생분은 지금 저기서 열심히 날뛰고 있습니다, 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Pr. 무림제일고수| : 어케 해여?
|Pr. 9서클대마법사| : 어떻게 하기는, 안으로 들어가야지;
|Pr. 무림제일고수| : 오케바리!!
최강은 그대로 자기가 부서뜨린 검은 막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은, 도하준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꼴이었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등을 돌려버리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 최강의 모습에, 해로운과 도하준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먼저 입을 연 건 해로운이었다.
“아니, 잠깐만요! 이건… 그러니까!”
“해로운, 당신……!”
도하준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활시위를 당겼다. 저를 향하는 뾰족한 화살에 해로운은 뒤를 흘긋거렸다. 최강이 부서뜨린 검은 막이 점점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도하준과 싸울 수는 없다.
그러니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
“해로운!!”
삼십육계 줄행랑이었다.
도하준이 활시위를 놓는 것과 동시에 해로운은 검은 막 안으로 쏜살같이 뛰어 들어갔다.
“윽……!”
어깻죽지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에 해로운이 얼굴을 찌푸렸다.
“사형, 괜찮아요?”
“아니, 더럽게 아프죠.”
쿵, 울리는 소리에 해로운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닫힌 검은 막을 도하준이 두 손으로 내리치고 있었다.
해로운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가 어깻죽지에 꽂힌 화살을 뽑아 들었다.
“아, 미친. 진짜 아파.”
“그렇게 보여요.”
최강은 자신이 다친 것처럼 오만상을 찡그렸다.
해로운이 상처가 난 어깻죽지를 강하게 누르며 투덜거렸다.
“길마님한테 치료해 달라고 할 거야. 치료비도 청구할 거야.”
해로운은 힐(Heal)을 사용할 수 있으나, 스스로를 치료할 수 없다는 큰 단점이 있었다.
해로운의 말에 최강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길짱님이 치료해 주는 건데 치료비도 청구할 거예요? 사형, 이상한 사람이네요?”
“너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기분 진짜 이상하다.”
“히힛.”
“왜 웃어.”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잖요? 그래서 웃는 건데요?”
“…….”
해로운은 저 얼굴에 침을 한번 뱉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지마는.
쿠―웅!
눈앞의 건물이 쓰러질 듯 흔들렸다. 해로운이 한숨을 토해내고는 걸음을 옮겼다.
“어서 길마님이나 찾으러 가자.”
* * *
“시발! 망할 마왕 새끼!!”
마신을 욕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나는 마왕님을 욕했다. 눈앞에 뚫린 구멍 앞에서 나는 아래를 향해 소리 질렀다.
“용사님! 대공님! 야!! 뭐라고 대답 좀 해봐!!”
“도빈 씨는 찾지 않는 겁니까?”
“내가 그 새끼를 왜 찾아!”
느닷없이 뚫려버린 구멍에 용사님과 대공님이 붙잡을 새도 없이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도비 새끼도 함께 말이다.
하필, 곁에 남은 건 이름도 모르겠는 ‘사이비’라고 불리던 녀석이었다.
“용사님! 대공……!!”
|Pr. 용사| : 괜찮으니까 그만 부르렴.
“!!”
날아든 메시지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Pr. 용사| : 옆에 사이비인지 뭔지랑 같이 있는 거 아니니? 아주 우리가 귀환자라고 동네방네 알리렴.
“…….”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사이비의 눈치를 살폈다.
사이비는 내 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뻥 뚫린 위쪽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Pr. 용사| : 유대공과 도비인지 도빈인지 연예인 헌터랑도 같이 있으니까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Pr. 신살자(길드장)| : 걱정 안 했는데.
|Pr. 용사| : 시끄럽단다.
용사님께서는 먼저 올라가라는, 짧은 메시지를 보내고는 연락을 끊어버렸다.
어쨌거나 세 사람 모두 무사한 것 같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하지만 사이비와 단둘이서 움직이는 건 그리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은근슬쩍 사이비에게 물었다.
“야, 도비 새끼 찾으러 안 내려가 봐?”
사이비가 나를 흘긋거리고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냥 둬도 괜찮을 사람입니다.”
사이비는 그렇게 간단히 대꾸하고는 가볍게 걸음을 박찼다.
“어? 야!!”
그러고는 뻥 뚫린 위쪽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니, 저 새끼가?
“안 오시겠다면 먼저 가겠습니다.”
위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싶었다. 나 역시 가볍게 걸음을 박차고는 위층으로 몸을 옮겼다.
먼저 가겠다던 사이비는 우두커니 자리에 멈춰있었다. 나를 기다려주는 그런 모양새는 아니었다.
“야, 여기서…….”
뭐하는 거냐고, 그렇게 부르려는데 불유쾌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