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나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대공님을 쳐다봤다. 대공님께서 불안하다는 듯이 나를 본다.
너 이 자식, 나를 못 믿다니.
나는 보란 듯이 ‘신살자’의 힘을 사용했다.
[권능, ‘진리의 눈’이 활성화됩니다.]
이 세계의 신이라고 해도 ‘신’이다. 그 힘을 내가 쫓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는 검은 기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 기운을 따라가면 마왕님 앞에 도착할 수 있겠지.
그렇게 나는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죽어! 죽으라고!!!”
“악!”
“와아악! 놀래라!!”
퍽, 울리는 소리와 함께 대공에게 달려들었던 사람이 고꾸라졌다. 대공님께서 쓰러진 사람을 쳐다보더니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신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직, 용사님만이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서 태연할 뿐이었다.
“너희 뭐 하니?”
“뭐 하기는요! 저 사람이 갑자기 달려들었잖아요!”
“그래서 대공님이 주먹을 휘둘렀잖아! 완전 잘했어!!”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공님을 칭찬했다.
우리 대공님, 보기보다 힘이 세나 보다. 건장한 성인 남성을 단번에 기절시키다니!
“길드장, 쓰러진 사람 걱정은 안 하니?”
나는 쓰러진 사람을 발로 슬쩍 건드려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은 거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몰라 성녀의 힘으로 몸을 살펴줬다.
“그런데 이상하네.”
“뭐가 이상하다는 거니?”
나는 용사님의 말에 대답해 주는 대신 쓰러진 사람 곁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대공이 위험하다면서 나를 말리려 들었지만, 나는 괜찮았다. 그보다 중요한 건.
“이 사람한테서 마왕님의 기운이 느껴져.”
“마왕님의 기운이 느껴진다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쓰러진 사람을 살폈다. 사실, 살필 필요도 없었다.
진리의 눈을 통해 보니, 조금 전에 봤던 검은 기운이 그 사람의 몸을 완전히 잠식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신 새끼가 벌인 일이겠지.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럼, 길드장.”
“응?”
“저 녀석들한테서도 마왕의 기운이 느껴지니?”
옆에 있던 대공이 헛숨을 들이삼키는 게 느껴졌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집어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아니야,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닌데…….”
“죽여야 해. 죽여야지 내가…….”
검은 기운에 잠식된 사람들이 통로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게 두 눈에 들어왔다.
“마왕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니, 길드장?”
“응, 그렇다고는 했는데…….”
찾기도 했고 말이지. 하지만 저걸 어떻게 뚫어. 용사님께서 검을 가볍게 돌려 잡고는 내게 물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벨까, 라고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하지 마, 용사님.”
용사님이라면 저 사람들을 아주 손쉽게 제압할 것 같았다. 내 말에 용사님께서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는 검을 아래로 내렸다.
나는 용사님한테서 시선을 돌려 대공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 움직임 좀 멈춰줄 수 있어?”
“가능하기는 한데 모두는 못 멈춰줘요!”
법사님이라면 몰라도 자신은 그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다며 대공님께서 마법을 펼치셨다.
그와 동시에 통로를 빼곡하게 막고 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으… 으아악!!”
“죽어! 죽으라고, 제발!!”
대공의 마법에 걸려든 사람들이 어떻게든 그 마법에서 벗어나고자 발악한다. 대공의 마법이 비켜난 사람들은 저마다의 무기를 들고선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용사님께서 검의 손잡이 부분으로 사람들의 급소를 때려 그들을 기절시켰다. 나는 용사님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어 주고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열대여섯 명의 사람들에게 사슬을 휘둘렀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더니?”
짜증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제압을 해도 달려드는 사람들은 끝이 없었다.
무슨 길드에 사람이 이렇게 많나 싶었다.
우리 길드처럼 소수 정예면 얼마나 좋아! 제대로 정신머리 박혀있는 사람은 얼마 없지만! 아니, 하나도 없지만!!
달려드는 사람들이 모두 헌터라면 신살자의 힘을 마음껏 사용할 텐데, 개중에는 일반인도 섞여있었다. 그 때문에 힘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대공의 마법에 멈춰있던 사람들도 피를 토해내며 몸을 움직이는 게 보였다.
“대공님! 마법 왜 이렇게 약해!!”
5서클이라면서!
“약한 거 아니거든요!”
대공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사람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면서 씩씩거렸다.
“그러게 법사님 데리고 오지!!”
“어그로 다 끌었으면 들어오라고 해.”
나는 어디선가 날아온 칼날을 피하면서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으아아악!!”
“살고 싶어서, 나도 살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제압했다 싶으니, 또 어디선가 사람들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우마한 길드장님, 댁네 길드원들 왜 이렇게 많답니까.
나는 주먹을 꽉 쥐며 이를 갈았다.
“길드장, 그냥 다 밀어버리면 안 되겠니?”
용사님께서 검의 손잡이를 고쳐 잡는다. 용사님, 나도 마음 같아서는 그냥 다 바닥에 처박아 버리고 싶어.
【00:25:04】
그냥, 다 처박아 버릴까.
얼굴을 굳히는데 돌연 주변의 공기가 삽시간에 차가워졌다.
서늘함을 넘어 오싹하게 이는 기운에 뭔가 싶어 경계를 드러내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 나간 녀석들을 봐주면서 제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만.”
“너……?”
핏물이 가득했던 화랑의 로비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우리에게 달려들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닥에서부터 일어난 얼음에 다리가 얼어붙은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우리를 향해 손을 뻗어댔다. 그 시끄러운 목소리들 사이로 짜증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사원 헌터이니 뭐니, 너를 납치했다는 녀석이 바깥에서 난리를 치고 있더니.”
도비 새끼가 비명을 내지르는 사람들을 무심하게 쳐다보자 그들의 입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았다.
“글로리아, 그 녀석은 네 녀석의 동료인 거겠지?”
그는 다시 시선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Pr. 용사| : 길드장, 저 새끼 그 새끼 아니니?
나타난 메시지에 나는 동그라미 두 개를 용사님께 보내줬다.
|Pr. 북부대공| : 대애ㅐ애박!! ‘H-Entertainment’ 소속 연예인들은 다 헌터라더니!!!
|Pr. 북부대공| : 그런데 왜 나타난 거래여, 길마님?
나는 대공이 보낸 메시지를 그대로 입에 담아 물었다.
“너 뭐야?”
“도빈, 내 이름을 말해줬던 거로 기억한다만?”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고는 다시 물었다.
“네가 왜 여기 있냐고.”
도비 새끼가 어디 동네 마실 나온 것처럼 가볍게 대꾸했다.
“대표님께서 여기 계시니, 그분을 모시러 왔다.”
“네가?”
애사심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네가? 강하수의 얼굴을 냅다 문에 박아버렸던 네가 말이야?
차마 입 밖으로 전하지 못한 물음을 집어 삼키는데 도비 새끼가 입을 열었다.
“너라면 대표님을 바로 찾을 거로 생각했다만…….”
“찾았어. 저 사람들 때문에 발목이 잡혔던 것뿐이야.”
“그런 것 같더군. 사이비 녀석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사이비……?”
잠깐만, 사이비라면.
불현듯이 떠오르는 게 있었다. 바삭, 얼어붙은 잔해가 누군가에 의해 짓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도빈 씨, 이름으로 불러주시더니 다시 사이비로 부르시는 건가요?”
또라이에게도 친구가 있네, 라는 서하의 말이 떠올랐다. 나타난 남자는, 카페에서 도빈을 데리고 사라졌던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순해 보이는 인상을 지닌 남자가 미소를 그린다. 두 눈에는 짙은 경계를 드러낸 채.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인사를 드리네요.”
그렇게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말없이 나타난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자의 경우,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게 맞는 표현 같지마는.
“아, 풀려버렸군.”
도비의 목소리와 함께 가래가 들끓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곧, 그 목소리는 서늘하게 내려간 온도와 함께 갑자기 나타난 얼음에 가로막혀 버렸다.
용사님께서 검을 치켜들었다가 다시 내리며 짜증스레 말했다.
“도와준 건 고마운데, 제대로 걸어주면 안 되겠니?”
“발동 시간이 짧아서 풀린 것뿐. 이 몸은 스킬을 제대로 걸었다만.”
“저쪽에 제대로 안 걸린 거 같은데요.”
대공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에서 쩌적,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도비 새끼가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입을 열었다.
“오해할 것 같아서 말하겠는데, 이 몸은 잘났을 뿐이지. 무적은 아니다.”
어쩌라고. 그보다 스킬이나 다시 걸어줘.
다행히도 도비가 내 마음의 목소리를 들었나 보다. 쩌적, 갈라지던 얼음이 새롭게 생성되어 사람들을 붙잡았다.
“그래도 도빈 씨 덕분에 가는 길이 편해졌군요.”
바닥은 얼어붙어 아주 미끄러웠다.
용사님이 미끄러지려는 대공님의 팔을 붙잡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 눈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우마훈 씨가 계시는 곳을 찾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을까요?”
“응, 맞아.”
나 역시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한테 한 말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
언제 어디서부터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나는 ‘사이비’라고 불린 남자를 훑어보며 물었다.
“그보다 우리 마훈이는 어떻게 아는 걸까?”
걔는 아직 TV에 모습을 안 비췄는데 말이지.
정령사님이 뿌린 기사에서도 우마한 길드장의 동생이라고 나왔지, 사진은 실리지 않았다고 들었다.
내 물음에 남자가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 수밖에 없죠.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작가니까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