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하지만 무림이의 손을 이렇게 계속 꺾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사슬을 풀어 무림이의 손을 묶어버렸다.
무림이가 자신의 손을 묶어버린 것들을 보더니 놀란 눈을 보였다.
“와우, 이거 뭐예요? 족쇄 같은 건가?”
“편하게 생각해.”
신기하다는 듯이 사슬을 이리저리 만져대는데, 꺾였던 손이 아프지도 않나 보다. 그러고 보니 빨갛게 부어있던 뺨도 어느 정도 가라앉은 것 같다. 무림이가 가지고 있는 힘인가 싶었다.
그때, 옆에 있던 법사는 울상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무림님도 이렇게 길마님께 잡혀버렸죠.”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그러나 보다. 하지만, 나는 법사님을 안다.
“의뢰 뛸 사람이 보자…….”
나는 열 손가락을 모두 펼쳤다가 하나씩 접어보았다. 나는 제외하고, 마왕님과 대공님. 용사님과 정령사님 그리고 법사님. 마지막으로 무림이를 포함하면…….
“여섯 명이네.”
“완전 좋죠!”
법사님께서 쾌재를 부르신다. 나는 짧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법사 새끼는 해롭다.
그때, 자신의 손을 묶고 있던 사슬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있던 무림이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법사를 불렀다.
“형아! 형아도 길드원이죠?”
“네에, 길드원이랍니다.”
“법사님이에요? 법사님 맞죠? 그런데 형아 얼굴도 어디서 많이 봤는데…….”
나는 꾸깃꾸깃하게 접었던 신문을 펼쳐 들고는 내 사진 옆에 작게 난 사진을 무림이에게 보여줬다.
“얘?”
“네! 맞아요!”
무림이가 신문 속의 사진과 법사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형아는 실물이 더 잘생겼네요? 사진이 실물을 못 담네~! 못 담아~!”
무림이의 말에 법사가 싱글벙글 웃는다. 아주 입꼬리가 귀까지 찢어질 것 같았다.
“이야, 무림님 말 잘한다? 사회생활 잘하겠는데?”
“히힛, 그런 말 많이 들어요.”
둘이서 죽이 아주 척척 맞는다. 그보다 사회생활이고 자시고.
“너 고등학생 맞지?”
“네, 맞아요. 역시 길드 일짱, 모르는 게 없어.”
네 교복이 고등학교 교복이니까 그런 거다! 무림이 새끼야. 네 체육복에도 ‘낙악고’라고 적혀있었고.
어쨌든 도망치지 않겠다더니, 무림이는 상자가 가득 쌓여있는 곳에 가서 털썩 앉아버렸다.
“몇 학년이야?”
“올해 3학년이요.”
노란색 명찰은 몇 년도에 입학한 학생들의 것이라며 무림이는 묻지도 않은 것을 말해줬다. 무림이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법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3학년이 여기서 뭐 하고 있죠? 방학이라 수업이 빨리 끝난 건가?”
“수업 짼 건데요.”
“아…….”
법사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렇지. 수업 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일이지.”
“그쵸? 형아도 그렇게 생각하죠?!”
“응, 나도 고등학생 때 수업 많이 쨌어. 대학생 때도 수업 많이 쨌고.”
“헐! 대학생도 수업 쨀 수 있어요?”
“그럼, 같은 학생이잖아.”
“와우!!”
지랄한다.
법사는 무림이한테 다가가더니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해주듯 은밀하게 속닥거렸다. 나한테 다 들릴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어디 회사 들어가잖아?”
“네.”
“그렇게 수업 째는 것처럼 일 내팽개치고 도망가면 안 된다?”
“왜요?”
“잘려.”
법사는 엄지를 들고선 목을 긋는 시늉을 보였다. 무림이는 두 손을 들어 입을 가리며 놀란 얼굴을 했다.
법사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보이더니 말을 이었다.
“일을 내팽개치고 싶을 땐, 반차를 내는 거야.”
“반차?”
“응, 반차란…….”
“애한테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 법사님.”
대화가 산으로 가려고 한다. 나는 법사의 말을 끊고서 무림이를 부르려고 했다.
“이상한 거라니! 완전 중요한 거 가르쳐주고 있죠!!”
법사 새끼가 빽, 소리 지르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소리 지른 것도 잠시, 법사가 불퉁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길마님, 이왕 이렇게 말이 나온 거 우리도 반차 도입하자.”
“뭔 개소리야?”
“오전에 의뢰 뛰면 오후는 쉬는 개념으로, 어때?”
“드슬이 불러와서 너희끼리 의논해.”
나는 반차고 뭐고 파업할 거다.
법사가 입술을 삐죽이더니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보기 처량한 모습이었지만 내 알 바는 아니었기에 나는 무림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는 수업 짼 게 자랑이야?”
“당연히 자랑 아니죠! 그렇게 수업 쨌다가 잘못 걸려서 삥을 뜯기고 있었으니까요!”
자랑 아니라면서 엄청 자랑스럽게 말한다 싶었다.
“하지만 그때 일짱님이 딱! 나타나셔서 저를 이렇게 딱!”
“구해준 거 아니야.”
“넵.”
애초에 네가 알은척 안 했더라면 이 사달은 나지도 않았을 거다. 무림이도 그걸 아나 보다.
“쳇, 알은척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저렇게 투덜거리는 걸 보니까 말이다.
“그런데 길짱님.”
“길짱?”
“길드 일짱님이요. 줄임말 몰라요? 역시 옛날 사람이네.”
“죽을래?”
“아니욥.”
무림이는 단번에 고개를 숙이고는 내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의 배를 꼭 끌어 잡더니 울상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저 배고픈데 나중에 혼나면 안 돼요?”
“뭐……?”
“저 급식도 안 먹고 수업 짼 거란 말이에요!”
“…….”
얼척이 없어서 절로 입이 벌어졌다. 법사도 나랑 똑같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급식 소리 오랜만에 들어보죠.”
나와는 다른 의미로 말이다.
무림이 새끼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는 울먹였다.
“그리고요.”
“또 뭐.”
“저 편의점 가서 라면 먹고 싶은데 걔들한테 돈 뜯겨서 돈이 없어요.”
“그래서……?”
올망졸망한 두 눈이 나에게로 향했다.
“아임 헝그리.”
“…….”
진짜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7.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는 건지
“그래서 우리 가게로 데리고 왔다는 거니?”
“네, 용사님.”
무림이와 나눌 이야기도 있고 하니 편한 곳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 ‘편한 곳’은 용사님의 가게였다.
용사님께서 내 뒤에 서있는 무림이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전취식은 곤란하단다, 길드장.”
무전취식이라니! 내가 가오가 없지, 돈이 없지는 않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음을 지으며 옆에 있는 법사님의 옆구리를 찔렀다.
“법사님, 돈 있지?”
“우리 길마님, 법사의 코 묻은 돈을 빼앗아 가시려고?”
“코 묻은 돈은 무슨.”
나는 법사에게 손을 내밀었고, 법사가 뚱한 얼굴로 겉옷 주머니 안에서 5만 원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나는 법사가 내민 돈을 빼앗듯이 받아 들며 눈웃음을 지었다.
“갚을게.”
문득, 우마한 길드장이 줬던 백지 수표가 떠올랐다. 그건 내 방 서랍장 안쪽에 고이 모셔져 있지. 진짜 급할 때, 몰래 찾아가서 들고 와야겠다.
그렇게 용사님께 돈을 건네려는데 법사가 뚱한 얼굴로 말했다.
“그거 어차피 하준 형님 돈이죠.”
“…….”
아니, 너 이 자식이?
두 눈을 부릅뜨자 법사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훔친 거 아니죠! 교통비로 받은 거 비상금으로 가지고 있던 것뿐이죠!!”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법사가 내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운다. 나는 짧게 혀를 차고는 고개를 돌렸다.
“야! 너 뭐 먹을 거야?”
내 뒤에 서있었던 무림이는 어느새 하림이에게로 가있었다. 하림이는 대공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중이었는데, 암만 손님이 없어도 그렇지. 저렇게 내버려 둬도 되나 싶었다.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골라도 돼요?”
“하나만 골라.”
“저 자라나는 어린이인데.”
“어쩌라고.”
무림이가 메뉴판을 쓱 훑어보더니 뚱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하나 더 고르면 안 돼요?”
“양심 어디 갔냐?”
“냠냠.”
“…….”
어이란 것이 머리에서 가출해 버렸다.
법사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고, 나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무림이가 내 눈치를 살피더니 브런치 세트 메뉴 하나를 골랐다.
“칫.”
아주 작게 제 불만을 소리 내며 말이다. 그 불만 어린 목소리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칫?”
“형아! 걔 형아 용이에요? 이름이 뭐예요?”
무림이 새끼가 날래게 자리를 벗어났다.
멍하니 입을 벌리는데, 법사님께서 내가 손에 쥐고 있던 5만 원을 뺏어갔다.
“용사님, 계산은 미리 할게요.”
용사님께서 해로운에게서 5만 원을 뺏어 들다시피 가져가고는 내게 물었다.
“도대체 저런 애를 어디서 데리고 온 거니?”
나는 용사님한테서 영수증과 거스름돈을 받아 들며 말했다.
“우연히 만난 거야.”
“운도 좋구나.”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나는 카운터에 기대며 무림이가 나를 피해 도망친 쪽을 쳐다봤다.
“형아, 얘 이름이 뭐냐니까요?”
“하, 하림이인데…….”
“하림이!”
―맘마!!
무림이가 두 손을 뻗자 하림이가 활짝 웃으며 무림이의 품에 안긴다. 해맑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그에 용사님께서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아주 제집처럼 뛰어다니는구나. 고등학생 같은데 방학했다니?”
“아니, 수업 짼 거래.”
“나 참.”
용사님께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대공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무림이가 쾌활하게 소리를 질렀다.
“와! 신기해!! 형아도 마법사예요?”
“으, 응…….”
“그런데 빗자루질은 왜 하고 있어요? 마법으로 청소하면 될 거 같은데!”
“그렇게 섬세하게 다루지는 못하거든…….”
아무래도 대공이 엉망인 무림이의 교복을 마법으로 깨끗하게 만들어준 거 같았다.
무림이가 깨끗해진 교복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대공은 빗자루를 꼭 쥐고선 울상을 짓고 있었다. 왜 저러나 했더니 대공이 보낸 메시지가 연달아 나타났다.
|Pr. 북부대공| : 길마니ㅣㅁㅠ
|Pr. 북부대공| : 얘 좀 데리고 가줘여ㅠㅠ
“……?”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사이 깨끗해진 교복의 구경을 끝마친 무림이가 대공에게 바짝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