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그런 내가 걱정됐나 보다.
“도하운아, 괜찮으냐?”
마왕님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에 나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보다 마왕님은 집에 안 가봐도 돼?”
“안 가봐도 되느니.”
되기는 뭐가 돼.
곧장 돌아온 대답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중단됐던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촬영도 곧 재개된다고 들었다. 나는 하림이를 끌어안으며 마왕님께 말했다.
“곧 바빠질 텐데 돌아가서 쉬는 게 어때?”
마왕님께서 내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우마한 길드장이 걱정할 텐데?”
“형님께서 늦게 돌아와도 된다고 했느니.”
“뭐? 진짜?”
우마한 길드장이라면 마왕님께서 어디서 어떻게 입을 놀리나 노심초사할 텐데 그렇게 말했다고?
마왕님께서 내 생각을 읽었는지 모르겠으나,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님께 너를 만나러 간다고 했더니 그럼 늦게 들어와도 된다고 했느니라.”
“…….”
아니, 이 미친놈이? 우마한 길드장한테 나를 만나러 간다고 말하면 어떻게 해?
“그런 표정 짓지 말거라, 도하운아. 형님께서 네 모든 편의를 봐주고 돌아오라, 그리 말했느니.”
“…우마한 길드장이 그렇게 말했다고? 도대체 왜?”
“그건 나도 모르겠느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마한 길드장. 설마 내가 귀환의 길드장인 걸 알게 된 건가?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마왕님, 너 혹시…….”
[귀환(歸還)의 ‘정령사’님께서 구조 요청을 보냈습니다.]
“…….”
하지만 나타난 메시지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힌다.
“도하운아?”
―맘마?
하림이가 내 품에서 빠져나가 마왕님 머리에 앉고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마왕님, 정령사님한테 이게 도대체 몇 번째냐고 네 일은 네가 좀 알아서 하는 게 어떻겠냐고 진언 좀 날려줄래?”
법사라면 길마님 진언 날릴 줄 모르냐고 징징거렸을 텐데, 마왕님은 이번에도 두말없이 내 부탁을 들어줬다.
“정령사 놈아, 도하운이가 이게 도대체 몇 번째냐고 네 일은 네가 좀 알아서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진언을 날리라고 하느니라.”
―아악! 저도 알아서 하고 싶습니다! 길드장님께 도움을 구하고 싶지 않다고요!!
결과는 가혹했지만 말이다.
“악! 시발!! 망할 정령사 새끼!!”
나는 귀를 부여잡고 펄쩍 뛰었다. 마왕님과 하림이가 멍하니 입을 벌리고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 시선들을 무시하며 정령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진언! ㅅㅂ아!!
|Pr. 정령사| : 그러게 왜 마왕님을 시켜서 진언을 날리고 그러십니까!!
내가 진언을 날릴 수 없으니까 그러지!
나는 이를 으득 갈며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의뢰 끝내고 일 보러 간 거 아니었어?
|Pr. 정령사| : 아니ㅣ었습니다1!!
|Pr. 정령사| : 지금 웬 미친 헌터한테 쫓기ㅣ고 있습니다!! 귀신같이 저를 찾아내고 이ㅆ다ㄴ말입니다1!!
한눈에 봐도 꽤 다급해 보이는 메시지였다.
웬 미친 헌터라니. 관악산에 정신이 나간 헌터가 출몰한다는 소린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정령사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겉옷을 챙겨 들며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좌표 불러.
|Pr. 정령사| : 37°44', 126°59’
기다렸다는 듯이 메시지가 날아왔다. 야밤에 관악산 등산이라니. 다행인 건 비는 그쳤다는 거다.
―맘마! 마암―마!!
하림이가 마왕님의 기다란 머리칼을 입에 물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마왕님께서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고 하림이를 본다. 그래도 애를 잡으려고 들지는 않았다.
나는 하림이를 마왕님의 머리에서 떼어내고는 물었다.
“마왕님, 나랑 등산하러 갈래?”
“짐은 등산 따윈 하지 않느니라.”
그래,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그럼, 좌표 보내줄 테니까 여기로 포털이나 열어줘. 나 겉모습도 좀 바꿔주고.”
말하기 무섭게 커다란 마법진이 나타났다.
“모습은 어떻게 바꿔주기를 원하느냐?”
“천사님만 아니면 돼.”
나는 크게 하품을 하는 하림이를 소파에 내려놓고는 걸음을 옮겼다. 마왕님께서 그런 내 뒤를 따르신다.
등산 따윈 하지 않는다면서 잘만 따라오네. 그보다 우리 정령사님, 별일 아닌 걸로 부른 거면 갈궈야지.
그렇게 포털을 나왔고.
“캐치 유!!”
“?!!”
주먹이 날아들었다.
느닷없이 날아든 주먹은 코앞에서 멈췄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와우! 어메이징!! 오늘로 벌써 두 번째야!!”
마왕님께서 언짢은 얼굴로 그 손을 막고 있었으니 말이다. 주먹을 막아낸 마왕님의 손이 잘게 떨리는 게 보였다. 마왕님이 막아내기에는 꽤 벅찬 힘인 것 같았다.
“마… 마훈.”
“물러나 있거라, 도하운아.”
“도하운?”
주먹을 날린 놈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짧게 혀를 차고는 마왕님을 뒤로 끌어당겼다. 그와 함께 나에게 주먹을 날렸던 놈도 몸을 뒤로 뺐다.
마왕님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왜 이러는 것이느냐?”
“괜히 싸우려고 하지 마.”
“도하운아. 먼저 덤빈 것은 저놈이니라.”
“그렇습니다! 먼저 덤빈 것은 저 학생이지 않습니까!!”
뒤쪽에서 빼액, 들려오는 목소리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나는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목소리의 주인을 불렀다.
“…강하수.”
강하수가 머리칼에 붙은 풀잎을 떼어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뒤로 물러나 있던 놈이 강하수를 보고는 활짝 웃으며 그를 반겼다.
“어? 아저씨!! 그대로 놓친 줄 알았는데!!”
“아저씨 아닙니다!!”
강하수가 씩씩거리며 내 옆에 섰다.
얼굴이고, 옷이고 곳곳에 흙탕물이 튄 게 썩 보기 좋은 꼴은 아니었다.
분명, 의뢰를 뛰러 나갈 때만 해도 멀쩡했었는데 말이지. 아무래도 저기서 방긋 웃고 있는 놈이랑 관련이 있는 거 같았다.
“쟤가 네가 말한 미친 헌터야?”
“네, 맞습니다!!”
“…어려 보이는데.”
아무리 많게 잡아도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아니, 고등학생이 맞는 것 같았다. 입고 있는 파란 체육복에 ‘낙악고(落岳高)’라 적혀있는 마크가 그려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고등학생이 ‘헌터’라니,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다.
나는 마왕님과 정령사님을 뒤로 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너 각성자지?”
호기롭게 주먹을 날렸던 남고생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일 뿐이었다. 그 웃음에 나는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말했다.
“그렇게 힘을 쓰는 걸 보니 헌터 쪽에서 일을 하나 본데, 우리는 아무런 힘도 없는 일반인들이거든.”
“거짓말하면 나쁜 어린이인데.”
“우리 어린이 아닌데.”
“그럼, 어른이.”
“…….”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내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멍하니 입을 뻐금거리고 있자 남고생이 눈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들었다.
“저쪽에 있는 형아는 허공에서 불을 일으키고 있었고, 누나랑 누나하고 같이 있는 형아는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났잖아요?”
나는 정령사를 빤히 쳐다봤다.
|Pr. 정령사| : 아무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Pr. 신살자(길드장)| : 그걸 변명이라고!!
정령사는 입술을 삐죽일 뿐, 별다른 메시지는 보내지 않았다. 답답하게 이는 속에 주먹을 들어 가슴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누나랑 형아들, 아무런 힘도 없는 일반인들 아니잖아요?”
비아냥거리듯이 묻는 목소리에 나는 눈가를 찡그리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공격하면 안 될 텐데.”
“공격한 거 아니고 힘 좀 겨뤄보려고 한 건데.”
저게 진짜 한마디도 안 지려고 하네? 그리고 은근슬쩍 말을 놓기도 한다. 이건 내가 먼저 놨으니까 할 말이 없기는 하지만.
어쨌든 보자, 고등학생이면…….
부모님 소환보다 선생님 소환이 무서운 법이다. 나는 씨익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너, 낙악 고등학교 학생이지?”
“왓더, 퍽! 어떻게 알았지?”
“…….”
체육복 보고 알았다.
남고생이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체육복의 마크를 가려보라고 말해줄까 하다가 포기했다.
“너, 선생님께 확 전화해 버린다?”
“우리 담임 번호는 어떻게 알고 전화할 건데요?”
“네 담임한테 전화할 필요도 없이 교무실로 바로 전화할 건데?”
“뭐라고 전화할 건데?”
저게 또 은근슬쩍 말을 놓네?
나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뭐라고 전화해야 좋을지 모르겠지, 누나?”
“시끄러! 그냥 너희 학교에 재학 중인 헌터 관리 좀 제대로 하라고 하면 되거든!!”
내 말에 남고생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도하운아, 저 녀석 미친놈인 것 같으니.”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도하운아, 너는 함부로 하지 않느냐.”
나는 말없이 마왕의 정강이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왜 때리느니!!”
마왕님이 울분에 차 물었지만 당연히 무시했다.
“강 대표님, 의뢰는?”
“진작에 끝냈지요.”
“도하운아!!”
울부짖는 목소리도 당연히 무시다. 하지만 남고생은 그 목소리를 무시하지 못했다.
“도하운…….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아침 7시 뉴스, 저녁 9시 뉴스에서 많이 들어봤을 거다. 오늘 뉴스에서는 오빠가 내 친구 배서하를 데리고 나왔더라.
회사원 헌터 H씨께 보내는 편지라면서 게이트에서 보여줬던 그 정의로운 모습을 다시 보여줬으면 한다고 편지를 읽었더랬지.
“아, 맞아! 뉴스에서 많이 들어봤는데? 그런데…….”
남고생이 두 눈을 홉뜨더니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저렇게 생겼던가?”
나는 남고생의 말을 간단하게 부정했다.
“아니, 네가 아는 도하운은 이렇게 안 생겼어.”
“아닌데. 저렇게 생겼던 거 같은데.”
마왕님이 나를 어떻게 바꿔주셨는지 모르겠지만, 마법이 제대로 안 걸린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