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보기만 해도 배부르게 먹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웃고 있는 내가 이상했나 보다.
―맘마?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모습에 나는 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보기 좋아서 그래.”
―맘마!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몰라도 림이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고기를 다시 뜯어 먹기 시작했다.
나는 웃는 걸 멈추고 내 몫의 음식을 들었다.
이러면 안 되지만 여기에서 지내는 게 너무 익숙해졌다.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오빠랑 도하인이 사방팔방으로 찾고 있을 거다. 그걸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안녕하세요, 성녀님. 오랜만입니다.”
이건, 빨리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를 공격했던 칼 단발의 인사, 그리고 폭발. 폭발은 마법으로 일어난 게 아니었다. 즉, 헌터가 사용하는 힘과 비슷한 거였다.
하지만 하늘에는 분명 ‘글로리아’의 마법이 펼쳐지고 있었다. 법사가 그걸 막고 있었지마는.
글로리아의 마법을 사용하면서, 내가 성녀였던 걸 아는 헌터가 ‘이’ 세계에 몇이나 될까.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맘마!
접시를 들고 있는 손에서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하림이가 내가 먹을 고기에 코를 박고 있었다.
찹찹,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래, 네가 먹어라.”
나는 하림이가 먹기 편하게 접시를 내려놓았다.
쏴아아―
흐리다고는 생각했는데 결국 비가 내린다. 어쩌면 이미 내리고 있던 빗줄기가 강해진 것일 수도 있었다.
“꿉꿉하네.”
지내는 데 익숙해졌다고 여긴 방이 새삼스레 불편하게 느껴졌다.
* * *
“…….”
이시온은 멍하니 입술을 벌리고 있었다. 흠뻑 젖은 데다가 온몸에 퀴퀴한 썩은 내를 풍기고 있었지만, 씻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소위, ‘아지트’라고 불리던 곳이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소파는 찢어진 채 나뒹굴고 있고 TV도 반으로 쪼개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거실의 넓은 창문 역시 산산이 조각나 빗줄기가 안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
이 수라장 한가운데에 서있는 사람은 이시온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너 뭐야?”
보여야 할 녀석들은 보이지 않고, 이 수라장을 만든 것으로 보이는 웬 남자가 이시온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시온은 두말하지 않고 검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에 남자가 씁쓸하게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도 이쪽에 붙으셨나 보군요?”
“……?”
영문 모를 소리에 이시온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구시렁댔다.
오늘, 일진 한번 더럽게 사납다고.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시온이 수상쩍은 남자를 향해 달려들기도 전에, 그가 부서진 창밖으로 뛰어내렸기 때문이다.
이시온이 황급히 창가로 다가갔지만, 남자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시온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뭐야?”
“신경 쓸 거 없어, 시온 씨.”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이시온이 소스라 끼치게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검은 들지 않았다.
“마몬.”
목소리의 주인이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잿빛으로 머리를 물들고 있는 남자가 담배를 물며 이시온에게 다가갔다. 이시온이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느릿하게 물었다.
“…단테는?”
“집 알아보러 갔지. 여기에 더 머물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방금 저 녀석 때문에?”
이시온의 물음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이시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야?”
도망친 남자가 누구인지 물어보는 소리였다. 남자가 이를 귀신같이 알아듣고는 말했다.
“시온 씨 목표에 도움이 많이 될 사람?”
남자, 마몬의 말에 이시온이 한쪽 눈가를 찡그렸다.
“…너희도 나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을 텐데.”
성녀를 비롯하여 많은 칭호를 가지고 있는 귀환의 길드장, 도하운. 그녀의 목을 치는 것.
그게 이시온과 그가 손을 잡은 이들의 목표였다.
이시온의 말에 마몬은 눈웃음을 지어줄 뿐이었다.
“그보다 어디 갔었던 거야?”
화제를 돌리는 질문에 이시온은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마몬이 말했다.
“성녀님은 실종이라고 했으니, 성녀님 주변을 돌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알 거 없어.”
이시온은 불퉁한 얼굴로 그리 대답했으나, 마몬은 대수롭지 않게 그렇냐면서 넘겼다.
이시온이 연락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이전에도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개 상처가 가득한 모습으로 돌아오고는 했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래서 단테는?”
비교적 멀쩡한 모습이었다.
마몬이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부동산 투어 중이라니까? 집 알아보러 갔다고 말했잖아.”
그 말에 이시온이 너는 왜 여기 있느냐는 눈빛을 보냈다. 그 시선에 마몬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나는 시온 씨한테 메모라도 남기려고 돌아온 거고.”
이시온은 두 명 모두 쓸데없이 행동 하나는 참 빠르다고 생각했다.
아지트를 습격한 놈과 싸운 것 같지는 않은데, 미리 피했던 건가.
“그 녀석이랑 싸웠었어. 나만.”
마몬이 이시온의 생각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말했다. 마몬의 말에 이시온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단테는 뭐 하고?”
“시온 씨 찾으러 나가 있었지? 단테 새끼 부를 것도 없이 내가 쫓아내려고 했는데, 그 녀석 생각보다 강하더라고.”
그래서 도중에 단테 새끼한테로 도망쳤었다고, 마몬은 웃으면서 덧붙였다.
너스레를 떠는 마몬의 모습에 이시온은 꺼림칙함을 느꼈다. 분명, 그 남자에 대해 아는 것처럼 말하지 않았나? 그런데 생각보다 강했다, 라니.
‘이상한데.’
하지만 이시온은 제가 느낀 것을 굳이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사이 마몬은 쓰러져 있던 소파를 바로 세우고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단테 새끼가 집 구해올 때까지 우리는 여기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자, 시온 씨.”
이시온은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사라지게 하고는 입을 열었다.
“마몬.”
“응?”
“너희 같은 애들, 몇 명이라고 했었지?”
“우리?”
이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몬은 이시온이 웬일로 자신들에 대해 궁금해한다고 여기면서 답해주었다.
“위에 성하님과 성녀님을 제외하면 일곱 명이었지?”
마몬이 손가락을 몇 번 접었다가 펼치기를 반복했다. 그러고는 이시온에게 웃으면서 물었다.
“성녀님께서 이끌고 계시는 그곳도 일곱 명이라고 했지? 성녀님이랑 시온 씨 포함해서. 아, 성녀님을 제외하면 일곱 명이라고 했나?”
이시온은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에 마몬이 씨익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부럽네. 이곳에서 ‘7’은 행운의 숫자라던데.”
이시온은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 * *
|Pr. 드래곤슬레이어| : 7
“……?”
뭐야, 갑자기.
나는 내 무릎을 베개 삼아 잠든 하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Pr. 드래곤슬레이어| : 혹은 8
드슬이 새끼,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그보다 드슬이 새끼한테 개인 메시지를 받을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Pr. 드래곤슬레이어| : 아닐 수도 있고.
|Pr. 신살자(길드장)| : 뭐가 아닐 수도 있고야?
돌아오는 답이 없다.
|Pr. 신살자(길드장)| : 야.
|Pr. 신살자(길드장)| : 저기요?
|Pr. 신살자(길드장)| : 망할 드슬이 새끼님?
불러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내 맞은편에 정자세로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남자를 불렀다.
“마왕님, 드슬님께 진언 좀 날려줄래?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마왕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계셨다. 법사님은 씻고 싶다면서 집으로 가셨다.
법사님네 집 주변으로 ‘하운’의 헌터들의 쫙 깔려있다지만, 그들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나다고 한들 법사의 마법은 따라잡을 수 없었다.
어쨌든, 법사님은 자리를 비우고 계셨고 나는 마왕님과 함께였다. 마왕님께서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더니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도하운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진언을 날려보라고 하느니라.”
그렇게 말하고는 잘했냐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렇기에 나는 방긋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잘했어.”
마왕님께서 뿌듯한 웃음을 지으신다. 그 웃음 앞으로 잔뜩 성난 메시지 하나가 날아왔다.
|Pr. 드래곤슬레이어| : 정보를 알려주는 거잖아! 나를 제외하고 일곱일 수도 있고 여덟일 수도 있다고!!
정보라니, 드슬이 새끼가 나한테 알려줄 만한 정보는…….
|Pr. 신살자(길드장)| : 올ㅋ?
|Pr. 드래곤슬레이어| : 그리고 무슨 생각으로 나를 놓아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이제 아지트 옮길 거야.
아니, 잠깐.
“그럼, 안 되지!!”
법사님 돌아오면 바로 찾아갈 생각이었단 말이야!
“뭐가 안 된다는 것이느냐?”
―맘마?
마왕님께서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물었고 내 무릎을 베개 삼아 자고 있던 하림이가 놀라 날개를 퍼덕거렸지만, 둘에게 반응해 줄 겨를은 없었다.
|Pr. 드래곤슬레이어| : 그러니까 쫓아올 생각 하지 마, 길드장님.
무조건 쫓아갈 거다.
나는 이를 갈며 마왕님께 포털 좀 열어달라고 말하려 했다. 법사님이 찾으셨다는 놈들의 근거지는 어디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Pr. 드래곤슬레이어| : 내가 알아서 찾아갈 테니까.
하지만 뒤늦게 날아온 메시지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도하운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내 목을 노리려 찾아오겠다는 건지, 이렇게 정보를 전해주려 찾아오겠다는 건지. 드슬님의 생각을 도무지 모르겠다.
하지만 왜인지 후자를 위해 나를 찾아오겠다는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손을 들어 얼굴을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