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법사의 말에 정령사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소리 질렀다.
“정말 아~주 고맙습니다!!”
해로운 법사님께서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포털을 여셨고, 정령사는 씩씩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서서히 닫히는 포털을 보며 나는 법사에게 물었다.
“의뢰 내용 읽어봤나 봐?”
“응, 의뢰 장소 관악산이더라.”
오, 공기 좋고 물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정령사님께는 어울리는 장소였다.
“비가 올 것 같으니.”
마왕님의 말에 창밖을 쳐다봤다. 먹구름이 한가득 하늘을 채우고 있는 게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뒤늦게 정령사님이 걱정이 되기는 무슨, 운디네의 힘을 빌려 알아서 하시겠지.
그렇게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길마님, 잘 거야?”
“잘 거야.”
그러니까 조용히 해라, 법사님아. 하지만 법사님은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법사랑 안 놀아줄 거야?”
“내가 너랑 왜 놀아?! 나가!!”
나는 머리맡에 있던 쿠션을 집어 던졌고, 이를 날래게 피한 법사는 키득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도하운아, 불을 꺼주겠느니라.”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방이 어두컴컴해졌다. 그와 동시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해골 하나가 어슴푸레 빛을 밝히기 시작했다.
마치, 무드 등처럼 말이다. 문제라면 그 생김새가 매우 조악하다는 걸까.
“…마왕님, 원래대로 돌려놓고 너도 나가.”
나는 그렇게 모두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 * *
우르릉, 하늘을 울리는 소리에 드래곤 슬레이어는 고개를 들었다. 날이 흐리다 싶더니 기어코 비가 쏟아질 건가 보다.
그래도 드래곤 슬레이어, 이시온은 걸음을 빨리하지 않았다.
이내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고, 이시온은 비 맞은 강아지처럼 처량한 모습으로 거리를 거닐게 되었다. 도하운이 봤다면 혼자 감성 영화 찍냐면서 웃어댈 꼴이었다.
“아…….”
정처 없이 걸음을 옮기던 이시온이 돌연 자리에 멈춰 섰다. 입고 있던 옷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시온이 입고 있던 옷은 저녁마다 자리를 비웠던 해로운의 것이었다.
“…괜찮겠지.”
설마 이걸 가지고 마법을 발동시키지는 않을 거다. 이시온은 괜히 총탄에 맞았던 어깨 부근을 어루만지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Pr. 9서클대마법사| : 드슬님!
“……?”
하지만 나타난 메시지에 이시온은 다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비 오는데 조심히 들어가라는, 그런 살가운 말을 건네기 위해 메시지를 보낸 건 아닐 거다. 그렇기에 이시온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게 화근이었다.
―우리 드슬님, 법사의 메시지를 무시하다니 아주 배짱도 좋죠?
“……!!”
고막을 정통으로 내리치는 해맑은 목소리에 이시온은 귀를 부여잡으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엄마, 저 사람 이상해.”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시온은 그제야 이곳이 대로 한복판이란 것을 깨달았다.
‘망할.’
몰려드는 사람들의 시선에 이시온은 인적 드문 골목길로 황급히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곧장 해로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Pr. 드래곤슬레이어| : 이게 무슨 짓이야?
|Pr. 9서클대마법사| : (૭ ᐕ)૭?
|Pr. 드래곤슬레이어| : 아니, 무슨 짓이냐니까?
돌아오는 답장이 없다. 이시온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일로 이 망할 법사가 연락한 걸까.
|Pr. 드래곤슬레이어| : 옷 때문에 그래?
|Pr. 드래곤슬레이어| : 바로 돌려줄 테니까 장난 그만 치지?
그 시각, 해로운은 드래곤 슬레이어로부터 돌아온 메시지에 그제야 그에게 옷을 빌려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덜너덜한 옷차림새가 영 보기가 좋지 않아 빌려줬던 건데 이렇게 될 줄이야.
“…그냥 가지라고 해야겠다.”
아끼던 옷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돌려받기는 싫었다.
그렇게 해로운이 뚱한 얼굴로 카운터에 기대고 있을 때, 유대공이 카운터 주변을 쓸기 시작했다.
“법사님, 청소에 방해되니까 잠깐 나가 계세요.”
“대공님, 너무해! 밖에 비 오는데 나가라고 하죠?”
“비 그쳤잖아요!”
―맘마!!
해로운은 유대공의 빗자루질에 우는소리를 한 번 내고는 가게를 나와 도롯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는 사이에 드래곤 슬레이어로부터 날아든 메시지가 가득 쌓여있었다.
|Pr. 드래곤슬레이어| : 야.
|Pr. 드래곤슬레이어| : 다짜고짜 진언을 날려놓고는 잠적하는 거야?
|Pr. 드래곤슬레이어| : 옷 때문에 이러는 거라면 바로 돌려준다니까?
|Pr. 드래곤슬레이어| : 진짜 뭐 하자는 짓이야?
하나같이 잔뜩 성이 난 것처럼 보이는 메시지였다.
해로운은 여기서 상대방을 어떻게 하면 더 짜증이 나게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해로운은 짧은 답장을 보냈다.
|Pr. 9서클대마법사| : 예쁜 짓.
드래곤 슬레이어, 이시온은 돌아온 메시지에 눈살을 찌푸렸다. 눈살을 찌푸렸을 뿐만 아니라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이시온이 그렇게 욕설을 내뱉고 있을 때, 해로운은 ‘그나저나 우리 드슬님,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구나.’라고 감탄하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돌아올 답장을 기대하면서 메시지를 보냈다.
|Pr. 9서클대마법사| : 옷은 드슬님 가지시라죠? 드슬님이 입던 옷은 죽어도 다시 안 입을 거죠!!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더는 돌아오는 답장이 없었다. 몇 분이 흘러도 그랬다.
|Pr. 9서클대마법사| : 。•́︿•̀。
|Pr. 9서클대마법사| : 드슬님, 법사를 무시하죠?
정답이었다.
드래곤 슬레이어, 이시온은 해로운 9서클 대마법사를 무시하기로 했다.
그게 심신에 이로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로운은 무시한다고 되는 인간이 아니었다.
|Pr. 9서클대마법사| : 이렇게 법사를 무시하면 법사는 진짜로 화낼 거죠!!
|Pr. 9서클대마법사| : ୧( ಠ Д ಠ )୨
“미친놈.”
이시온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고는 걸음을 옮겼다. 대로로 나갈까 했지만 남들 눈에 또 못 볼 꼴을 보일 것 같았다. 이시온은 그렇게 건물 외벽을 탔다.
그래서는 안 됐는데 말이다.
“윽……!”
왼쪽 어깻죽지에서 느껴지는 불에 덴 듯한 통증에 이시온은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다행히 추락한 장소가 쓰레기봉투를 차곡차곡 모아둔 곳이었다.
퀴퀴하게 올라오는 냄새에 이시온이 이를 갈며 통증이 느껴지는 어깻죽지를 잡았다.
“망할 법사 새끼가……!”
―무시하면 내가 화낸다고 했잖아.
귓가에 들려오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이시온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해로운에게 진언을 날렸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글쎄, 뭘까?
되묻는 목소리에 이시온은 얼굴을 찌푸렸다. 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닌 것 같았다. 이시온의 생각대로 해로운은 그에게 답을 바란 것이 아니었기에 곧장 제 말을 이었다.
“아, 그래. 당부야. 드슬님 어깨에 내가 남긴 마법이 있다는 걸 잊지 말라는 당부.”
―길드장님 건드리지 말라는 소리를 살벌하게도 하네.
“그렇게 들렸으면 유감이고.”
해로운이 씨익 웃음을 보였다.
뒤늦게 가게에서 쫓겨난 우마훈이 그 웃음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해로운 놈아, 음흉하게 웃지 말거라. 보기 흉하니라.”
“보기 흉하다니! 로운이 빈정 상했죠!!”
그에 우마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네놈이 빈정 상하든 말든 그건 짐이 알 바가 아니리라.”
“마훈이, 말 너무 심하죠!!”
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둘을 한 번씩 흘긋거렸다.
해로운이 우마훈과 작은 말다툼을 벌이는 동안 이시온은 고통이 사라진 어깨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시온이 눈가를 찡그리며 갑작스레 연락이 끊긴 해로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부디, 이 메시지를 끝으로 더는 연락할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Pr. 드래곤슬레이어| : 잘 알아들었으니까 그만 연락해, 이 망할 법사 새끼야.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에 해로운이 눈웃음을 지었다. 우마훈이 이를 보고는 가게를 향해 버럭 소리 질렀다.
“도하운아! 해로운 놈이 보기 흉하게 웃고 있도다!!”
“야! 길마님은 왜 불러!!”
“너희! 가게 앞에서 소란 작작 피우렴!!”
둘은 그렇게 강인한 사장님에 의해 가게에서 멀리 쫓겨났다.
* * *
망할.
문밖에서 들려오는 용사님의 목소리에 잠이 달아나고 말았다.
법사님과 마왕님이 무슨 사고라도 친 모양이다. 나는 졸린 눈을 한 번 비비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졸음도 쫓을 겸,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노크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누군가 했더니 머리에 하림이를 얹고 있는 대공님이셨다.
“길마님! 림이 좀 봐주세요!!”
“내가 왜…….”
―맘마!!
봐줘야 하냐고, 그렇게 대공님께 묻기도 전에 림이가 날아와서는 내 얼굴에 찰싹 붙고 말았다.
“그게, 오늘 예약한 단골손님이 동물을 싫어하거든요.”
“얘는 드래곤이잖아.”
드래곤도 동물이라면 동물이기는 하지만…….
나는 얼굴에 들러붙은 림이의 목덜미를 잡아 내게서 떨어뜨렸다.
“드래곤이라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강아지로 보이니까요! 부탁 좀 할게요!”
대공은 그렇게 말하면서 먹음직스럽게 익은 고기가 담겨있는 노란 그릇 하나와 커다란 접시를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았다.
“림이 맘마랑 길마님 맘마, 여기 두고 갈 테니까 알아서 챙겨 드세요! 림이 맘마는 꼭 챙겨주시고요!!”
“…….”
“그대여! 맘마 맛있게 드시게!!”
탁, 닫히는 문에 나는 내 맘마를 쳐다봤다. 대공 새끼, 자기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자각도 못 하고 있겠지.
―맘마! 마암―마!!
림이 먹이는 내가 안 챙겨줘도 될 것 같았다. 노란 그릇에 코를 박고는 알아서 고기를 뜯어 먹고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