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그런 거 아니거든!!”
“아야!”
나는 정령사 옆에 몸을 기대고 선 법사의 등을 소리 나게 때렸다. 정령사가 꼴좋다고 웃는다. 법사가 입술을 삐죽이더니 갑자기 손가락을 튕겼다.
그 소리에 정령사가 몸을 크게 움찔거렸다. 자기한테 마법이라도 걸어버릴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법사는 정령사에게 마법을 건 게 아니었다.
붉은 마법진이 좁디좁은 방을 감싸더니 5평 남짓했던 방이 순식간에 넓어졌다.
“오.”
나는 입술을 오므리며 감탄했다. 정령사도 같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런 거 보면 망할 법사 놈이 재주 하나는 참 좋습니다.”
법사가 ‘망할’은 왜 붙이냐면서 투덜거린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말했다.
“진작에 이럴 걸 그랬죠?”
“진작에 이러지 그랬어?”
내 말에 법사가 불퉁하게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길마님이 별말이 없어서 괜찮은 줄 알았죠!”
괜찮은 줄 알았다니, 그동안 갑갑해서 죽는 줄 알았다. 나는 소파에 다시 몸을 눕혔다.
하지만.
“이런 건 짐도 할 수 있도다.”
우웅, 소리와 함께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작은 창으로 들어오던 햇빛이 암막 커튼에 가려졌다. 순식간에 어두워진 방을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촛불이 밝히더니 거미줄 쳐진 해골이 벽 곳곳에 걸리기 시작했다.
“…와우, 귀신 나올 것 같죠.”
“에○랜드 귀신의 집도 이러지는 않을 겁니다…….”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나는 얼굴을 문지르며 한숨을 토해내듯이 말했다.
“원래대로 돌려놔.”
마왕님께서 불퉁하게 입술을 씰룩이고는 펼친 마법을 거두었다. 햇볕을 가리던 암막 커튼이 사라지면서 방이 다시 환해졌다.
“길마님, 그런데 있잖아.”
“왜.”
법사님께서 나한테서 뺏어간 과자를 입안에 집어넣으며 우물거렸다.
“길마님이 쫓으시는 그 자식들, 내가 찾은 거 같은데?”
“…뭐?”
법사가 얼마 남지 않은 과자를 입안에 털어 넣고는 해맑게 웃음을 보인다.
“내가 찾은 거 같다고.”
“…….”
법사, 너 이 새끼!
“잘했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좋아, 길마님. 나를 더 칭찬해 줘.”
“…….”
법사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면서 어깨를 편다. 그 모습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해로운 법사님께서는 그런 나를 보며 뚱하게 말했다.
“법사가 들킬 위험도 무릅쓰고 적진을 파고든 거였는데, 우리 길마님 칭찬에 너무 인색하죠?”
“칭찬이고 자시고, 그 녀석들은 어떻게 찾은 거야? 내가 찾는 녀석들인 건 또 어떻게 알았고?”
내 물음에 법사가 싱긋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세트장에서 길마님을 공격했던 새끼의 얼굴을 법사가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죠?”
“걔를 기억하고 있었어?”
“응, 칼 단발이었던 애. 아주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지.”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거 같았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추적 불가능하다더니.”
법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우연히 발견한 거야. 마왕님이랑 의뢰 뛰러 나갔다가 발견한 거라서.”
법사의 말에 잠자코 있던 마왕님께서 입꼬리를 올리며 법사한테 물었다.
“그건, 그놈을 발견한 데 짐의 공도 있다는 말이느냐?”
“그건 아니고.”
그 말에 마왕님께서 법사를 향해 날이 가득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물론, 법사는 마왕님의 시선을 못 본 척 간단하게 무시했다. 괜히 둘 사이에 끼게 된 정령사님께서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마왕님과 법사님께서는 사이가 참으로 좋지 않습니다.”
“법사는 마왕님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데, 마왕님이 자꾸 법사의 신경을 건드리시죠!”
사이좋게 지낼 생각도 없으면서 거짓말하기는. 그리고 네가 마왕님의 신경을 건드리는 거겠지.
해로운 법사를 뒤이어 마왕님께서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정령사 놈아, 짐이 법사 놈과 사이좋게 지내야 할 이유라도 있느니?”
“그, 그건 아닙니다만…….”
정령사는 얼떨떨한 얼굴로 마왕님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에 법사가 불퉁한 얼굴로 소리쳤다.
“마왕님, 너무하시죠! 법사는 마왕님이랑 친하게 지낼 생각뿐인데!”
“시끄럽도다.”
그래, 시끄럽다.
법사는 마왕님의 말에 당신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이 들리지 않냐면서 깐죽거리기 시작했다. 저러다 또 마왕님께 멱살을 잡힐 것 같아서 나는 법사님께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내가 찾고 있는 녀석들이 모여있는 곳을 알아냈다는 말이지?”
“응. 원한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갈 수 있어.”
법사의 말에 나는 테이블을 두드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괜찮아.”
하지만 그렇게 답하기 무섭게 각기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법사가 눈살을 찌푸렸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정령사는 버럭, 소리 질렀다.
“도하운아,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느니.”
마왕님께서는 엄하게 타이르듯이 진중한 소리를 내게 전하셨다. 마왕님의 말에 법사가 놀란 눈을 보였다.
“마왕님, 그런 말도 알아?”
진심으로 놀란 듯이 보였다.
마왕님께서 얼굴을 와락 찌푸리신다. 언짢아 보이는 그 얼굴에 나는 말했다.
“법사님, 마왕님은 순백의 미가 넘칠 뿐이지 바보는 아니야.”
법사가 “오오.” 소리를 내며 마왕님에 대해 한 가지 알게 됐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님께서는…….
“칭찬이느냐?”
“칭찬이야.”
“고마…….”
“고마워할 필요 없어.”
여느 때와 같은 반응을 보이셨다. 나는 마왕님의 말을 가볍게 끊고는 말을 이었다.
“저쪽은 우리를 잘 몰라. 그때 분명히 이곳에도 ‘용사’가 있냐고 물어봤었으니까.”
그래, 분명히 그랬었다.
다짜고짜 나타나 폭발을 일으켰던 놈이 여기에도 ‘용사’가 있냐고 물어봤었으니까.
우리 길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그렇게 물어보지 않았을 거다. 내 말에 정령사가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물었다.
“드래곤 슬레이어님께서 저희 정보를 팔지 않았다는 겁니까?”
“그런 셈이지. 팔았다면 ‘용사’가 있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
“…의외군요.”
“그렇지?”
방긋 웃으면서 말했지만, 정령사는 내 대답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어쨌든 저쪽은 우리를 몰라.”
여기서 중요한 건, ‘나’에 대해서는 아는 것 같다는 거다. 아니, 확실히 아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기다려야지.”
나는 씨익 웃음을 보였다.
“저쪽의 패가 모두 드러나기를 말이야.”
드슬님께서 정보를 알려주시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을 것 같으니까 열심히 캐봐야지.
“그러다 당하면?”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해로운 법사님께서 답지 않게 진중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당하기는 뭘 당해.”
그럴 일이 있다고 해도, 저쪽이 노리는 건 ‘우리’가 아니라 ‘나’뿐일 거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너희가 당할 일은 없을 테니.
나는 뒷말을 삼키고선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보이는 미소를 법사를 비롯한 모두가 미심쩍게 쳐다봤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성좌, ‘문하시중 진주 강씨’로부터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
나타난 의뢰에 주위가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이를 깨뜨린 건 정령사님이셨다.
“아, 일하러 갈 시간이군요.”
“그래. 일하러 갈 시간이네, 정령사님?”
“…….”
어딜 도망가시려고?
나는 방긋 웃으며 정령사를 쳐다봤다. 법사도, 그리고 마왕님도 나와 똑같이 정령사를 쳐다본다.
정령사가 모여든 시선에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저 지금 할 일 많습니다!”
“일주일에 의뢰 일곱 번 뛴다던 분이 누구였더라?”
“그, 그건……!”
“정령사님이셨죠?”
법사의 말을 마왕님이 거들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니라, 정령사 놈아.”
“마왕님께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매우 이상하군요.”
정령사의 말이 칭찬인 줄 알았는지 마왕님께서 도도하게 고개를 치켜드신다.
정령사가 얼굴을 한 번 문지르고는 버럭 소리 질렀다.
“어쨌든 안 됩니다! 그동안 도하인 부길드장님께 시달리면서 일이 많이 밀려있단 말입니다!!”
“무슨 일이 그렇게 밀려있는데?”
심드렁한 내 물음에 정령사가 절박함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먼저, 나 감독님과 드라마 촬영 건으로 이야기를 나눠봐야 합니다.”
“무시하면 되느니.”
“오, 이프리트시여! 나 감독님 연락을 줄곧 무시하고 계셨습니까? 그러니까 저한테 그렇게 연락이 오지요!!”
마왕에게 빼액, 소리 지른 정령사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다음에 도비 군과도 이야기를 나눠봐야 합니다. 도비 군이 계속 찾아왔었는데 계속 돌려보내고 있었단 말입니다.”
도하인 부길드장님 때문에 말이지요.
짜증스레 덧붙이는 말에 나는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어차피 그거 다 의뢰 끝내고 할 수 있는 일들이잖아?”
“길마님 말이 맞죠? 의뢰 끝나고 다 할 수 있는 일들이죠?”
“그렇느니라.”
법사의 말에 마왕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두 분께서는 이럴 때 죽이 아주 척척 맞습니다.”
그야, 네가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법사님이나 마왕님이 의뢰 뛰러 나가야 하니까 말이지.
마왕님이라면 수련이니 뭐니 하면서 나갈 수도 있겠지만…….
“마훈아. 정령사님이 우리 둘 보고 죽이 척척 맞다는데, 하이파이브 한번 할까?”
“꺼지거라.”
“…….”
오후에 법사님이랑 의뢰 뛰러 나가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의뢰를 뛰러 나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자, 그럼 정령사님? 어서 의뢰 뛰러 가시죠?”
“크흡…….”
내 말에 정령사가 울먹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대로 소파에 몸을 눕혔다.
“정령사님,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오, 법사 새끼가 웬일로 저렇게 마음씨 고운 소리를…….
“법사가 포털 열어 줄 테니까요!!”
하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