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아니야, 괜찮아.”
도하준은 얼굴을 한 번 문지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고갯짓에 은율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촬영장에서 테러가 일어난 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테러는 수습된 지 오래였지만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보스, 그래도 도하운 님은 해로운 씨와 함께 무사히 계실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어떻게 걱정이 안 돼!!”
도하준이 책상을 내리치며 버럭 소리 질렀다. 이내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웅얼거렸다.
“미안해. 미안해, 율아. 너한테 화를 낼 게 아닌데, 동생 하나 못 찾는 스스로가 한심해서…….”
“…아닙니다, 보스. 제 생각이 너무 짧았습니다.”
은율의 말에 도하준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동생과 동생의 경호를 맡았던 보디가드가 사라졌다.
금방 돌아올 거라 믿었건만 벌써 일주일이 넘어갔다.
위치라도 추적하고 싶지만, 둘의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카드는 잘만 긁고 있는 것 같아서 무사한 것 같기는 하지만…….
“도대체 어디서 뭘 하길래.”
99만 원이란 거액을 긁었단 말인가. 도하준은 부스스한 머리칼을 헤집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카드가 긁힌 곳을 찾아가 봤지만 영문을 모르겠다는 말만 듣고 돌아왔다. 혹시 몰라 CCTV도 확인해 봤지만 카드가 긁힌 시간대에 찍힌 것이 없었다.
“하운아…….”
도하준은 앓듯이 동생의 이름을 부르고는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어떻게 찾은 동생인데, 이렇게 또 잃어버리다니.
“보스.”
“잠깐만, 잠깐만 이러고 있을게.”
“그게 아니라, 도하인 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 소리에 하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은율은 말없이 그에게 전화를 건넸다.
“하인아?”
―형, 나 강 대표님 만나고 나오는 길이야.
도하인의 말에 도하준이 다급하게 물었다.
“강 대표님이 뭐라셔? 하운이랑 로운 씨 본 적 있다고 하셔?”
―아니, 이번에도 허탕.
들려오는 목소리에 도하준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강 대표님,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파고들 수 있겠어?”
―당연하지.
막냇동생의 대답에 도하준은 곁을 지키고 있던 은율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하준이 말없이 내민 손에 은율은 빽빽하게 적힌 종이 여러 장을 그에게 내밀어 주었다.
[…특이한 점은 20■■.6.19~20■■.6.26까지 행방이 묘연했다는 점으로…….]
일주일이라는 공백.
보고서에 적힌 내용에 도하준은 얼굴을 굳혔다. 어디 있는지 모를 여동생이 사라졌던 1년간의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도하준은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었다.
“…조심해, 하인아.”
―응.
도하인의 짧은 대답을 끝으로 통화는 종료됐다.
* * *
|Pr. 정령사| : 이 사태를 도대체 어떻게 처리할 겁니까?!
난데없이 날아온 메시지에 나는 이름 모를 과자를 베어 물었다.
|Pr. 정령사| : 메시지 무시하고 있는 거 다 압니다.
귀신같은 놈. 나는 물고 있던 과자를 꿀꺽 삼킨 뒤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알아서 처리할 거라니까?
―알아서 처리하기는 무슨!!
“악……!!”
이 미친 정령사님은 잊을 만하면 진언을 날리네? 고막을 때린 목소리에 귀가 얼얼했다.
|Pr. 신살자(길드장)| : 이 망할 정령사님아!!
|Pr. 정령사| : 그러니까 좀 제대로! 생각을 깊이 해서 대답을 하란 말입니다!!
분에 찬 메시지에 나는 뚱하게 입술을 삐죽였다.
|Pr. 정령사| : 지금 당신 때문에 제가 얼마나 곤란한 입장에 처해있는지는 아십니까?!
“내가 어떻게 알아…….”
정령사는 듣지 못할 말을 퉁명스레 내뱉으며 나는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사실, 정령사가 꽤 곤란한 입장에 처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촬영 중에 일어났던 습격이 끝난 후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이 강하수였으니까.
그것도 다친 곳 없이 멀쩡하게 나타나서 꽤나 이슈였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언론은 우마한 길드장의 회복 소식에 곧장 초점을 맞춰줬지만 말이다.
나와 해로운 법사님에 관한 건 하운 쪽에서 막고 있나 보지.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나는 과자를 한 움큼 집어 들고는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Pr. 정령사| : 오늘도 도하인 부길드장님께서 왔다 가셨습니다!
우리 동생님께서는 할 일도 없으시지. 며칠 전에는 오빠가 용사님네 가게를 방문했었다.
해로운 법사님께서 내 흔적을 모두 지워줘서 망정이지, 안 그랬다가는 용사님도 꽤 곤란해졌을 거다.
나는 그렇게 과자를 우물거리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Pr. 정령사| : 눈 밑이 아주 거무죽죽한 게 보기 얼마나 안쓰럽던지요!!
“…….”
왜인지 목이 막혀 나는 반쯤 남아있던 주스를 단번에 비웠다. 아, 이거 법사 건데.
|Pr. 정령사| : 도대체 언제까지 밖에 나돌아 다니실 겁니까!!
언제까지라. 솔직히 나도 이렇게 오래 나돌아 다닐 줄은 몰랐다.
드슬이 새끼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글로리아’와 관련된 걸 불게 만들 생각이었는데…….
|Pr. 신살자(길드장)| : 알아서 돌아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Pr. 정령사| : 길드장님, 당신 걱정 안 합니다!! 제 신변을 걱정하고 있는 거지요!!
이 망할 길드원 같으니라고.
나는 강하수와의 대화를 끝내기로 했다.
|Pr. 신살자(길드장)| :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메시지 그만 보내.
―길드장님!!
“아악! 시발, 진짜!!”
고막을 때린 목소리에 나는 귀를 후벼 파고는 버럭 소리 질렀다.
“돌아갈 거야! 돌아갈 거라고!!”
물론, 메시지도 같이 보냈다.
“한 번만 더 메시지 보내면 제2의 회사원 헌터 H 씨로 만들어 버릴 줄 알아!!”
이것도 메시지로 함께 보냈다. 내 경고가 똑바로 먹혔는지 정령사로부터 더는 메시지가 날아오지 않았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켜 마셨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도 이렇게 밖을 나돌아 다닐 줄 몰랐다.
망할 드슬님, 뭐 좀 물어보려고 했더니 다시 기절할 게 뭐람.
법사 새끼의 마법이 꽤 강력하게 먹혔는지, 드슬이는 내가 ‘글로리아’의 ‘ㄱ’도 꺼내기 전에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 후로 계속 저렇게 정신이 들었다 나갔다를 반복…….
“…….”
해야 하는데 너 왜 깨어있니?
드슬이 새끼가 지친 낯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원맨쇼?”
“닥쳐.”
들려오는 말을 간단히 부정하고는 나는 손에 묻은 과자 가루를 털어냈다.
성녀의 힘을 쓸까 하면 제정신을 차리고, 뭐 좀 물어보려고 하면 정신을 놓아버려서 저걸 어떻게 하면 좋나 했더니 저렇게 정신을 차려버리네?
나는 얼굴을 와락 찌푸리고는 입을 열었다.
“잠은 잘 자셨나 모르겠네.”
“잘 잔 걸로 보이나 보네.”
드슬이 새끼가 사슬이 묶여있는 손목을 내게 보여준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여 줬다.
“잘 잔 거 같으니까 몇 가지 좀 물어볼게.”
“내가 답해줄 것 같아?”
드슬이 새끼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저 새끼는 자기가 유리한 것 같을 때만 말이 많아지는 것 같아.
저걸 어떻게 요리하지 싶은데 문이 벌컥 열렸다.
“도하운아.”
“마왕님, 내가 노크하라고 했지?”
“잊어버렸느니.”
우마한 길드장이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용사님네 가게로 달려온 마왕님이 안으로 들어오셨다.
드슬이 새끼가 눈살을 찌푸리며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마왕?”
“짐을 불렀느냐?”
“……?”
드슬이 새끼가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과연, 이 세상에 마왕님한테 당황하지 않는 인간이 있을까 싶다.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크나큰 한숨을 토해낸 뒤에 말했다.
“어쨌든 잘 왔어, 마왕님.”
“조금 전에는 혼내지 않았느냐?”
“그건 혼낸 게 아니라 노크 좀 하고 다니라고 당부한 거지.”
“그런 것이었느냐?”
나는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려는 욕을 애써 집어삼켰다.
“…그런 거야.”
내 말에 마왕님이 이제부터 잘 지키겠다고 말한다.
지금 그 말을 몇 번째 하는 줄 아냐? 이 망할 마왕님아?
나는 이를 갈고는 입을 열었다.
“의뢰는?”
“잘 처리하고 왔느니.”
“그런데 법사는 어디 갔어?”
내 말에 마왕님께서 어깨를 으쓱이신다.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건 아니었지만, 돌연 갑작스레 나타난 의뢰에 마왕님과 법사님을 함께 보냈는데…….
“그 망할 놈은 짐에게서 찾지 말거라, 도하운아.”
아무래도 대판 싸우고 왔나 보다. 우리 길드원님들, 제발 좀 사이좋게 지내줬으면 좋겠다.
“알았어. 어쨌든 금단의 언약이니 뭐니 하는 것 좀 걸어줘.”
“알겠느니.”
그래도 마왕님께서 내 말은 잘 들어줘서 다행이다.
[금단의 언약(Lv. ??), 지정 대상 ‘신살자’와 ‘드래곤 슬레이어’]
[갑(甲): 신살자 → 을(乙): 드래곤 슬레이어]
똑같은 메시지 창을 받았는지, 드슬님께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그에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지금부터 세 가지를 물어볼 거야.”
“내가……!”
“답해줘야 할걸?”
나는 세 개의 손가락을 펼쳐 들며 미소 지었다.
“대답 안 해주면 혀가 잘릴 거거든. 내가 장난으로 말하는 거 같지?”
내 말에 드슬이 새끼가 경계심 가득한 얼굴을 보인다. 나는 작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너랑 나한테 마법을 걸어준 사람은 ‘마왕’이야. 자애롭고 인자한 ‘성녀’가 아니라.”
“성녀도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느냐?”
마왕님, 제발…….
나는 속에서부터 들끓어 오르는 분노를 식힌 뒤에 드슬님께 질문을 던졌다.
“너에게 ‘나’를 알려준 새끼들이 누구야?”
“…….”
드슬님은 말없이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 날카로운 시선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다시 물었다.
“그래, 질문을 바꿔서 나를 알려준 녀석들은 ‘글로리아’와 관련된 녀석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