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감격에 겨운 것 같기도 했고, 황홀감에 잠긴 것 같기도 했다.
“대공, 너 말이야. 드슬이 새끼랑 아는 사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요!”
아니면 아닌 거지 성질은.
“둘 다 그만 놀고 집중하렴.”
용사님께서 짧게 혀를 차고는 검을 고쳐 잡았다. 그와 함께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미, 미친.”
대공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미친 드슬님께서 살갗이 헤집어지는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공님의 마법을 부수려 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상하네.”
드슬이 새끼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궤적에 따라 그의 핏방울이 마구잡이로 튀었다.
|Pr. 북부대공| : 기, 길마님 어케해여? 저 사람 진짜 미친 거 같은데??
대공이 마법을 풀지, 말지를 내게 묻는다. 나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고는 드슬이 새끼를 노려봤다.
정신이 좀 온전치 못한 놈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상하단 말이야.”
음울하게 중얼거린 목소리에 그를 막아두고 있던 금색의 마법진에 금이 쩌적 가더니 갈라진다.
강제로 마법이 파괴당하면 시전자의 몸에 무리가 간다. 이건 어딜 가나 만국 공통 사항일 거다.
불현듯이 떠오른 사실에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대공에게 외쳤다.
“대공! 마법 풀어!!”
하지만 대공이 마법을 채 풀기도 전에 그의 마법을 깨부순 피로 범벅이 된 손이 내 앞으로 들이닥쳤다.
“이상하지? 엘로시아는 나 따윈 손쉽게 제압했었는데.”
눈웃음 짓고 있는 얼굴에 나는 새된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미친놈.
얼굴을 움켜쥐려는 손을 붙잡았다. 맺힌 핏물에 손이 미끌거렸지만 이 망할 손을 놓칠 수는 없었다.
“헉…….”
“대공!”
―맘마!!
마법이 부서진 충격으로 대공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이 손을 놓쳤다가는, 망할 드슬이 새끼는 대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를 거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하림이가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대공의 주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그 모습에 나는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불렀다.
“용사님!!”
“말 안 해도 안단다!”
용사가 대공을 가볍게 안아 들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드슬이 새끼가 마음에 안 든다는 눈으로 그 뒤를 좇는다.
“야.”
드슬이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했다.
감정의 움직임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그 시선에 나는 곧장 사슬을 움직였다.
하지만 사슬의 끝이 드슬이 새끼를 붙잡기도 전에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는 걸음을 뒤로 물렀다.
“세 번은 안 통해.”
“아, 그러세요?”
나 역시 너란 새끼를 세 번은 안 놓칠 거란다.
나는 검을 고쳐 잡고는 땅을 박찼다. 그대로 드슬이 새끼를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이, 망할 새끼가!”
내 검을 막을 줄 알았던 드슬이 새끼가 가까스로 이를 피하고는 바닥에 흩어져 있던 잘게 부서진 파편 조각들을 내게 집어 던졌다.
흙먼지에 잘게 부서진 뭔지 모를 가루가 눈에 들어가 따끔거렸다. 시야가 금방 흐릿해졌고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오, 시발!”
치사하게 이렇게 나오기냐!
눈을 비빌 새도 없이 목을 노리며 들어오는 검에 나는 곧장 검을 들었다.
캉―!!
날 선 소리에 나는 눈가를 찡그렸다.
흐릿한 시야를 어떻게든 다잡으려고 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눈이라도 비비고 싶은데 망할 드슬이 새끼 때문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사슬로 눈앞의 망할 새끼를 옥죄려고도 해봤지만.
“안 통한다니까.”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드슬이 새끼는 사슬이 나타나기 무섭게 저 멀리 걸음을 뒤로 물렀다. 진짜 얄밉게 구네.
드슬이 새끼가 물러난 틈을 타 나는 눈두덩이를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성녀의 힘으로 상처가 나지는 않았을 텐데 안에 들어간 흙먼지 때문인지 계속 따끔거린다.
|Pr. 용사| : 유대공은 괜찮단다.
이 와중에 날아온 메시지가 참 반갑다.
|Pr. 신살자(길드장)| : ㄱㅅ
|Pr. 신살자(길드장)| :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애 상태 좀 지켜봐 줘.
|Pr. 용사| : 안 도와줘도 되겠니?
|Pr. 신살자(길드장)| : ㅇㅇ
눈을 한 번 깜빡이자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봐, 길드장님.”
“내가 길드장인 건 알고 있나 봐?”
나는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는 망할 드슬이 새끼를 향해 씩씩거렸다.
흐릿했던 시야갸 겨우 돌아오고, 비웃음을 한가득 보이고 있는 드슬이 새끼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알고 있으니까 공격했겠지.”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지?
순순히 인정할 줄은 알았지만 그래서 더 짜증 난다. 드슬이 새끼가 검을 한 번 돌려 잡고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신살자인 것도 알고, 검성인 것도 알아. 성녀인 것도 알지.”
“…알려준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고 있을까?”
사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답은 쉽게 나왔다.
‘글로리아’의 마법을 사용하던 새끼가 알려줬겠지. 드슬이 새끼는 내 물음에 그저 소리 없이 웃고 있을 뿐이었다.
“이 중에서 신살자가 필요해.”
“내가 필요하다는 소리를 뭘 그렇게 소름 돋게 해?”
“아니, 길드장님 너 말고.”
날이 서려있는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그보다 뾰족하게 날 선 무언가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간단하게 이를 쳐내고는 눈앞에 들이밀어진 남자의 구둣발을 피했다. 허공에서 들리는 소리를 보니, 막았다가는 뼈도 못 추렸을 것 같았다.
“왜 이번에는 사슬을 움직이지 않을까?”
발길질을 한 번 하고는 또 저 멀리 도망간 드슬이 새끼가 비아냥거린다.
“혹시 내가 멀리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 줘?”
“더럽게 말 많아졌네.”
단답 일색이던 놈이 왜 저렇게 말이 많아진 거야? 말 많은 새끼는 법사 새끼만으로도 충분한데.
드슬이 짜증이 가득한 내 얼굴을 보더니 입꼬리를 올린다.
“길드장님, ‘신살자’를 주면 다시는 안 건드릴게.”
“미친놈아. 나를 어떻게 줘?”
“아니, 길드장님 너 말고.”
대화가 계속 제자리인 것 같다.
드슬이 새끼도 이를 인지했는지 턱을 한 번 쓸더니 검지를 들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길드장님이 가지고 있는 칭호, ‘신살자’를 내게 달라고.”
“그걸 어떻게 줘?”
애초에 줄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한 거야?
어쨌든 이걸로 확실해졌다. 저 새끼와는 대화가 안 통한다. 나는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푸른 궤적이 드슬이 새끼를 향해 날아갔고, 드슬이 새끼는 땅을 박차고는 이를 피하고자 했다.
―맘마?
“……!”
네 적이 누구인지 잊고 있었지, 망할 드슬이 새끼야.
“림이! 브레스!!”
부디 우리 귀여운 새끼 드래곤이 내 말을 알아들었기를 바란다.
―맘―마아!!
다행히 하림이는 내 말을 알아들었다. 허공에서 곧장 땅으로 내리치는 브레스에 돌풍이 일었다.
바람이 잠잠해지고 나는 드슬이 새끼의 흔적을 찾고자 했다.
죽지는 않았을 거다.
“쿨럭……!”
배에 구멍은 뚫렸을 테지만 말이다. 나는 기침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땅에 처박힌 드슬이 새끼가 피가 철철 흐르는 복부를 감싸고는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창백하게 질려있는 얼굴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얕게 파인 곳으로 내려가 드슬이 새끼 앞에 섰다.
―맘마……?
드슬이의 주변을 맴돌던 하림이가 내 머리 위에 앉는다.
나는 하림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고는 드슬이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그러고는 성녀의 힘을 사용해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드슬이 새끼의 상처를 치유해 줬다.
아주, 느리게 말이다. 내가 이 새끼 뭐가 예쁘다고 단번에 치료해 주겠어?
그래도 내가 힘을 사용할 줄은 몰랐는지, 드슬이 새끼가 얼굴을 찌푸리고는 나를 쳐다봤다.
“왜…….”
“왜기는 왜야. 죽으면 곤란하니까 그렇지.”
알아낼 게 수십 가지인데 이렇게 죽으면 안 된다.
드슬이 새끼는 배에 뚫렸던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되기 무섭게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 이러다 한 대 칠까 무섭다.
후―웅!
“…….”
말이 씨가 된다더니. 아니, 이 경우에는 말로 하지도 않았는데 씨가 돼버렸잖아?
나는 코앞에서 멈춘 핏물이 가득한 주먹에 혀를 짧게 찼다.
사슬에 온몸이 묶인 드슬님이 이를 아드득 간다. 그 소리에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드슬님, ‘신살자’라는 내 칭호를 그렇게나 가져가고 싶어? 그럼 말 좀 해봐. 어떻게 해야 너한테 줄 수 있는지.”
“…목.”
“목?”
“목을 내놔.”
“…….”
이 시발 새끼가.
상처를 치유해 줬다고 해도 완전히 치유해 준 건 아니어서 드슬이 새끼는 여전히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고민했다.
주먹을 들어 내상을 한 번 더 입힐까, 그냥 외상을 입힐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헉……!”
나는 전자를 선택했다. 정확히는, 병 주고 약 주기를 선택했다.
드슬이 새끼의 온몸은 사슬로 꽁꽁 묶여있었기 때문에 한 번 상처 난 곳을 두 번 더 때리는 건 쉬웠다.
헛숨을 들이켜 마신 드슬이 새끼가 거세게 기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드슬이의 머리칼을 움켜쥐고는 성녀의 힘을 사용했다. 그게 드슬님께는 꽤 굴욕적이었나 보다.
“너……! 내가 꼭……!”
“네가 꼭 뭐.”
독기가 잔뜩 오른 모습에 혀라도 날름 내밀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어떻게든 제 몸을 옥죄고 있는 사슬을 풀 기세였다.
“드슬님, 내가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드슬님께서는 내가 무엇을 묻든 절대 말해주지 않겠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봤자였다.
“엘로시아, 라는 이름 말이야.”
드슬이 새끼가 몸을 크게 움찔거리더니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 이름, 감히 입에 담지 마.”
“내가 왜?”
“너……!”
철컹거리며 사슬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푸른 전격이 사슬의 주위로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