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환하게 웃고 계시는 얼굴에서 오싹하게 소름이 돋았다. 나는 용사님의 시선을 피하며 답장을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ㅈㅅ염.
돌아오는 답이 없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며 용사님을 쳐다봤다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용사님께서 타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왕님께서는 여전히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계셨다.
“도하운아.”
“알아, 조용히 해.”
나는 마왕님의 입을 다물게 하고는 어서 이 상황이 수습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는 중에 용사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다.
|Pr. 용사| : 따라오렴.
어디로 따라오라는 걸까. 설마 뒷골목으로 데려가려는 건 아니겠지.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느냐?”
“용사님께서 따라오래.”
“용사? 용사라면 너와 함께 마신을 처치한 녀석 아니더냐!!”
마왕님의 놀란 목소리에 상황을 수습 중이던 대공님께서 화들짝 놀라며 우리 쪽을 쳐다본다. 다행히 마왕님의 목소리는 대공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대공에게 고개를 살짝 까닥여 주고는 말했다.
“그렇지.”
“그 녀석이 여기 있느냐?”
“저번에 가게 왔을 때 못 봤어? 이 가게가 용사님네 가게야.”
마왕님이 입술을 살짝 벌리고는 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용사님이 운영 중인 가게가 신기한가 보다.
“구경은 나중에 해. 저기 용사님께서 기다리고 있잖아.”
용사님께서 가게 안쪽에 있는 문을 열어놓고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재촉에 마왕님께서 마지못해 걸음을 옮기셨다.
그런데 용사님,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 거지? 대공님께서 용사님한테만 우리가 보이게끔 했나?
“자, 손님들. 여기 보세요!”
―맘마!
“헐, 귀여워.”
맘마 몬스터가 왜 안 보이나 했다. 손님들한테는 저 맘마 소리가 개 짖는 소리로 들리겠지.
나는 대공과 맘마 몬스터를 뒤로하고 용사님이 열어놓은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달칵, 문이 닫히기 무섭게 짙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용사가 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짜증 섞인 얼굴을 보였다.
“길드장, 지금 이게 뭐 하자는 짓거리니?”
“아, 그게 말이야…….”
“마왕이 들고 있는 그 녀석들은 또 누구고?”
용사님의 물음에 마왕님께서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셨다.
“용사야, 나를 알아보느냐?”
“알아보지 못하는 게 등신이지.”
“감히 짐에게 등신이라니!!”
“너한테 한 소리 아니란다.”
용사님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마왕님이 짐짝처럼 들고 있는 법사와 정령사를 보며 말했다.
“그 녀석들 저기 눕혀.”
용사가 가리킨 곳은 낡은 소파였다. 마왕은 용사의 말에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고는 법사와 정령사를 던지듯이 소파에 눕혔다.
“살살 해! 너 때문에 저렇게 된 거잖아!!”
“왜 때리느냐! 일어나면 사과할 것이니라!!”
이 자식이 뭐 잘했다고 버럭 소리를 질러?
나는 마왕님의 등을 찰싹, 소리 나게 한 번 더 때리고는 용사한테 말했다.
“미안. 생각나는 곳이 여기뿐이라서.”
“됐고, 법사 옆에 저 남자는 또 누구니? 길드장, 네가 데리고 온 걸 보면 길드원 같은데……. 얼굴이 좀 익숙하구나?”
“정령사야. 본명은 강하수.”
잠깐, 멋대로 이름을 말해줘도 되나? 하지만 강하수는 TV를 즐겨본다면 얼굴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인물이라서…….
“아, 강하수. 그 헌터들만 있다는 연예 기획사 대표님?”
“정답.”
역시 용사님께서 바로 알아보셨다. 용사가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잘난 대표님께서도 귀환자셨구나. 그런데 그 대표님께서 법사와 사이좋게 왜 저러고 있니?”
“아, 그게…….”
“사장님! 상황 다 정리했어요!”
벌컥, 문이 열리며 대공님이 등장하셨다.
갑작스러운 대공님의 등장에 나도 용사도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북부 대공아, 살이 좀 찐 것 같구나.”
오직 마왕님만이 태평하게 대공에게 말을 건넸다. 마왕의 말에 대공이 빼액, 소리 질렀다.
“무슨 소리예요! 살 하나도 안 쪘거든요? 먹는 거 다 림이한테 가고 있거든요?”
―맘마!!
맘마 몬스터도 같이 데리고 왔구나. 대공이 씩씩거리며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법사님이랑 옆에 있는 사람은… 강하수 대표님 아니에요?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어요?”
“그야 같은 길드원이니까.”
“네?!”
나는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비어있는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도비 새끼 잡으러 여기 왔었을 텐데? 만난 적 없어?”
“네, 처음 보는데요?”
하긴, 만났으면 대공이 유명 인사를 만났다며 길드 메시지에 난리를 부렸을 것 같다.
“끊긴 말이나 하렴, 길드장.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아, 잠깐만요. 저 길마님께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겠어요.”
휴대폰을 꺼내 들었던 대공이 한 손을 살짝 들고는 말했다.
그러고는 내게 화면을 내밀며 물었다.
“이거 길마님이랑 마왕님이 한 짓이에요?”
대공이 우리가 한 짓을 어떻게 아나 싶었는데 보여준 화면에 나는 끙, 앓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속보]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촬영 중에 테러… 다수 부상
[속보] 화랑의 우마한 길드장, 현재 위독
“순 거짓말을 하고 있느니. 형님께서는 정신을 놓았을 뿐, 위독한 상태가 아니니라.”
법사님께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어디로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마왕님께서는 제 형님의 상태를 보고 내게 왔었나 보다. 그러니까 저렇게 말하겠지.
“길드장, 너 도대체…….”
“내가 한 짓 아니야.”
용사님께서 무슨 무뢰배를 보듯이 나를 보고 있길래 황급히 저 일을 벌인 범인을 말해줬다.
“드슬이 새끼가 한 짓이야.”
“드슬이……?”
“드래곤 슬레이어님이요? 그 사람이 또 길마님 앞에 나타났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여 줬다. 내 고갯짓에 용사가 눈가를 찡그리며 내게 물었다.
“그럼 법사와 정령사는? 쟤네도 드슬이 놈이 그런 거니?”
“아니, 저건 마왕님이.”
“……?”
용사님과 대공님께서 마왕님을 쳐다보신다. 마왕님은 두 사람의 시선을 무시하며 딴청을 피웠다. 자기가 잘못한 건 알아서 다행이다.
대공이 탄식하며 말했다.
“마왕님… 아무리 그래도 팀킬이라니요.”
“실수였느니.”
용사가 애들 두 명을 기절시킨 게 어떻게 실수였냐고 묻는다. 마왕은 이번에도 고고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말했다.
“실수였느니.”
“…….”
말이 통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용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물러났다.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는 마왕한테 말했다.
“마왕님, 마왕님은 이만 돌아가 봐.”
“싫도다.”
“싫기는 뭐가 싫어. 우마한 길드장 위독하다잖아.”
내 말에 마왕이 미간을 좁힌다.
“도하운아, 내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하였느냐? 형님은 그냥 정신을 놓은 것뿐이니라.”
“…….”
아니, 그래도요.
어이란 것이 가출할 것 같아서 나는 이마를 짚었다. 그런 내 모습을 마왕님께서 빤히 쳐다보시더니 입을 열었다.
“형수님이 곁을 지키고 있을 것이니라. 조카님도 같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보라고. 네 형수님과 조카님께서 얼마나 불안해하시겠어?”
마왕이 불퉁한 얼굴을 보인다. 나는 마왕을 가까이 부르고는 반듯한 이마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우마한 길드장 일어나는 거 보고 찾아와.”
“…….”
마왕님께서 이마를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말 잘 들으니까 얼마나 좋아.
이내 마왕은 좁디좁은 방에서 사라졌다. 마왕님이 떠나고 평화가 좀 찾아오나 했더니 용사님께서 물으셨다.
“이 두 사람은 어떻게 할 거니?”
“깨어날 때까지만 여기에 좀… 어떻게 안 될까? 돈은 낼게.”
탄내가 가득한 겉옷 안쪽 주머니를 뒤적여 폰을 꺼냈다. 케이스를 벗긴 후 안에 들어있던 블랙 카드를 용사에게 건넸다. 용사는 곧장 이를 가져가고는 비딱하게 웃음을 짓는다.
“내가 얼마나 긁을 줄 알고?”
“적당히 긁어주시겠지.”
내 말에 용사가 기가 찬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용사님, 나는 당신을 믿어요. 설마 백 단위가 넘어가지는 않겠죠.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길마님?”
“어떻게 할 거냐니? 뭐를?”
“뭐기는요, 드슬님이죠.”
대공의 말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망할 드슬님을 두 번이나 놓쳐버렸다.
자존심에 금이 간 건 물론, 이대로 있다가는 그 미친놈이 무슨 짓을 또 저지를지 모를 일이었다.
“당연히 잡아 족치러 가야지.”
짜증이 가득 서려있는 내 말에 대공이 숨을 들이마셨다. 어느새 대공의 머리 위에 올라가 앉아있는 맘마 몬스터도 대공과 똑같이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그 귀여운 모습에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니까, 대공님.”
“뭐, 뭐예요. 왜 그렇게 부르는 건데요?”
대공이 불길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눈웃음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하림이 좀 이용할 수 있을까?”
―맘마?
“안 돼요!!”
내 저렇게 나올 줄 알았지. 용사님께서 하림이를 꼭 끌어안는 대공의 모습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방을 나갔다. 카드 긁으러 가나 보다.
“우리 림이 털끝 하나라도 손대려고 해봐요!!”
“걔한테 있는 건 비늘뿐이잖아.”
“아, 진짜!!”
대공이 자신의 머리 위에 앉아있던 맘마 몬스터, 하림이를 꼭 끌어안으며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 날 선 시선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대공님, 생각해 봐.”
“생각은 무슨! 우리 림이는 절대 안 돼요!!”
완강하게 거부하는 태도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 림이 불쌍하네.”
―맘마?
“뭐, 뭐가 불쌍하다는 거예요?”
대공이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 시선에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대공님, 생각을 해봐. 이 험난한 세상을 저 작고 귀여운 림이가 헤쳐 갈 수 있을지.”
“헤쳐 갈 수 있거든요! 제가 옆에 있어줄 거거든요!”
―맘마!
림아, 너는 뭘 알고 대답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