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여기! 누가 여기 좀 도와줘요!!”
“으, 흐윽…….”
폭발에 휘말렸던 모양인지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스태프가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꽤 심각한 상처라 곧장 성녀의 힘을 사용하려고 했다.
“길마님, 스톱.”
나를 붙잡는 손만 아니었으면 그랬을 거다. 해로운이 내 어깨를 붙잡고서는 말했다.
“저 사람은 내가 치료할 테니까 길마님은 정령사님이랑 같이 있어.”
“네가 무슨 수로?”
“우리 길마님, 머리 안 좋죠? 법사가 괜히 ‘9서클 대마법사’가 아니겠죠?”
깐죽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법사의 손을 쳐냈다.
법사가 키득거리며 내 어깨를 두어 번 가볍게 두드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강 대표님, 하운 아가씨랑 같이 있어주세요.”
법사의 능글맞은 목소리에 강하수도 나와 똑같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뭐가?”
“하운의 도하준 길드장님과 도하인 부길드장님, 그리고 화랑의 우마한 길드장님도 지금 이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까?”
정령사의 말에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오빠와 도하인이 무너진 잔해에 깔린 사람들을 구조 중이었다.
하지만…….
“우마한 길드장이 안 보이는데?”
그리고 우마훈도 보이지 않았다.
내 말에 정령사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럴 리가요? 분명 제 옆에 계셨는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진짜 안 보인단 말이야. 우마훈도 안 보여. 네가 한번 찾아보든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정령사를 중심으로 살랑이며 일기 시작했다.
|Pr. 신살자(길드장)| : 이ㅣ미친놈아;
지금 상황이 암만 아수라장이라고 해도 이렇게 대놓고 힘을 사용하다니!
정령사는 잠깐만 기다려 달라는 짧고 간결한 메시지를 보내고는 정령이 깃든 바람을 주변에 풀었다.
맑고 청량한 기운이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촬영장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기운 속에 성녀의 힘을 실어 넣었다.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오빠와 도하인을 도우면서 사람들을 치료 중이던 법사 새끼가 날 선 메시지를 보내왔다.나는 그 메시지를 무시하고는 우마한의 흔적을 쫓고 있는 정령사를 쳐다봤다.
정령사가 미간을 살포시 좁히더니 나를 본다.
“…우마한 길드장님께서는 지금 여기 계십니다. 마왕님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지만요.”
“뭐?”
설마 폭발이 일어나던 그 짧은 순간에 우마한 길드장이 마왕님을 대피시킨 건 아니겠지?
마왕님이 혼자 도망갈 성격은 아니니, 그럴 가능성이 꽤 높아 보였다.
“그럼 우마한 길드장은 지금 어디 있는데?”
정령사가 멋쩍은 얼굴로 뺨을 긁적이더니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가리키는 기다란 손가락은 덤이었다.
“저 위에 계십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 싶었는데, 하늘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쿠구구궁―!!
“꺄아악!!”
“폭발이다! 또 폭발이……!”
정령의 힘이 깃들어 있던 바람 속에 실어 넣었던 성녀의 힘인 ‘치유’ 덕분인지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많은 사람이 촬영장 바깥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길드장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그만…….”
“아니.”
나는 하늘에 펼쳐진 푸른 진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이를 악물었다.
“못 가.”
“못 간다니요?!”
정령사가 펄쩍 뛰며 억지로라도 나를 끌고 나가려 했지만 나는 정령사의 손을 뿌리치고는 말했다.
“저 위에 드슬이 새끼 있어.”
“네? 드슬이라니, 드래곤 슬레이어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법사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돌아본 시선에 맞닿는 눈이 있었다.
|Pr. 9서클대마법사| : 갈 거야, 길마님?
나타난 메시지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의 고갯짓에 법사가 웃음을 보이더니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붉은 마법진이 내 주위에 펼쳐졌다. 포털을 열어준 법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보내려던 찰나였다.
후―웅!
빠른 속도로 추락하는 뭔가가 보였다. 뭔가 싶었더니 정신을 잃은 우마한 길드장이었다.
“법사!!”
“어라.”
우마한은, 정확히 법사를 향해 떨어지는 중이었다.
저 얼빠진 새끼가 ‘어라’는 무슨 ‘어라’야!! 9서클 대마법사라며! 마법 펼치든가, 피하든가 하라고!!
“해로운 씨!!”
잔해에 파묻힌 사람이 없나 확인하고 있던 오빠가 다급하게 해로운 법사 새끼를 불렀다.불행히도 그 목소리에 법사 새끼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저거 어떻게 하냐고 받아야 하냐면서 내게 메시지를 보낼 뿐이었다.
받았다가 팔 날아갈 일 있냐.
“저 멍청한 법사 놈이!”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내 그 바람은 해로운을 덮쳤고, 위로 올라가 추락하고 있던 우마한을 감쌌다.
|Pr. 신살자(길드장)| : 이 미친 정령사님아, 제2의 회사원 헌터 H 씨가 되고 싶은 거야?
|Pr. 정령사| : 초자연적인 형상이 우마한 길드장님을 구했다고 하면 되지요――^^
|Pr. 신살자(길드장)| : 그걸 누가 믿어?
당장 오빠의 다급한 외침에 달려온 도하인이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를 나와 강하수에게 보내는 중이었다.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하며 강하수 뒤로 걸음을 옮겼다. 강하수가 의아하게 나를 쳐다봤지만, 곧 도하인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도 도하인의 시선은 금세 우리 둘에게서 떨어졌다.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어서 다행이다.
“로운 씨, 괜찮습니까? 우마한 길드장은요!”
“저는 괜찮아요! 우마한 길드장님은… 괜찮으신지 모르겠네요!”
해로운의 말에 나는 정령사의 어깨 너머를 쳐다봤다.
우마한 길드장에게 힐을 시전 중인 법사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법사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오빠와 도하인이…….
“법사!!”
정령사가 미쳤냐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보다 급한 일이 있었다.
“모두 이동시켜!!”
오빠와 도하인 뒤로 불꽃이 튀고 있다.
그 사이로, 하늘 위에서 시답잖은 일을 벌이고 있어야 할 드슬이 새끼가 검을 치켜들고 있는 게 두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성검(聖劍), ‘영광의 검’이 주인의 부름을 기다립니다.]
뒤로 손을 뻗고는 손끝에 잡히는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칭호, ‘검성(劍城)’의 봉인이 강제적으로 해제됩니다.》
드슬이 새끼가 오빠와 도하인을 향해 검을 휘두른 것과 동시에 푸른 진이 그 주위로 번쩍였다. 주위에 펼쳐진 글로리아의 마법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곧이어 붉은 마법진이 글로리아의 마법을 부서뜨렸고, 나는 손에 쥐어진 검을 휘둘렀다.
“하운아!!”
“도하운……!”
오빠와 도하인의 놀란 목소리가 내게 닿았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콰―앙!!
중앙에서 맞부딪친 힘이 커다란 폭발음을 만들어 냈다. 들이닥친 바람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눈가를 가로막았다.
“오, 이프리트시여! 저는 왜 여기 남아있는 겁니까!!”
희뿌옇게 차올랐던 흙먼지가 살랑이며 불어오는 바람에 단번에 흩어졌다.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정령사가 울상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법사는?”
“여기 있죠!”
허공에서 나타난 법사가 가볍게 땅을 디디며 웃음을 보였다. 정령사가 나타난 법사를 보며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망할 법사 놈이! 길드장님께서 모두 이동시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왜 여기 남아있는 겁니까!! 왜!!”
“그 ‘모두’에 정령사님도 포함되는지 몰랐죠?”
능청스레 대답하는 목소리에 정령사가 뒷목을 잡는다. 나는 사이좋은 길드원들을 뒤로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가라앉은 흙먼지 속에서 정말 보고 싶던 또 한 명의 길드원께서 모습을 드러내셨다.
“…….”
폭발로 인해 부서진 소품이 발에 밟힌다.
촬영장을 엉망으로 만든 폭발의 주범은 아마 눈앞의 드슬이 새끼일 거다. 그리고 저 새끼는 감히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까지 해치려 들었다.
나는 검을 고쳐 잡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저 새끼를 어떻게 잡아 족쳐야 하나 싶었다. 우선 어디로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야겠지.
[권능, ‘전진(前進)’이 활성화됩니다.]
가볍게 걸음을 내딛고선 코앞에서 놀란 얼굴을 보이는 드슬이 새끼를 향해 나는 비딱하게 미소 지었다.
“안녕, 드슬님.”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이 개새끼야.
카―앙!!
빠르게 움직인 검이 드슬이의 검에 가로막혔다. 밀려나지 않는 몸에 나는 곧장 다리를 움직였다. 하지만, 이를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망할 드슬님께서 빠르게 몸을 뒤로 빼며 이를 피했다.
“길마님, 허공에 발길질 완전 잘하죠!”
“닥쳐!!”
저 망할 법사님은 도와주지 못할망정 남의 속을 긁어대고 지랄이야!!
뒤로 물러났던 드슬이가 검을 고쳐 잡고는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법사가 왜.”
“그러게. 나도 어쩌다 저 새끼랑 같이 붙어 다니게 됐는지 모르겠네.”
짜증 섞인 내 말에 드슬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챙―!
곧장 들어온 검에 나는 급히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들어 이를 막아냈다.
“이, 개새끼가! 사람 말하고 있는데……!!”
가까이서 마주 본 드슬이의 얼굴은 표정 변화 없이 그저 고요하기만 했다.
다만, 나를 담아내고 있는 검은 눈동자에서 알 수 없는 욕망을 읽어낼 수 있었다.
|Pr. 9서클대마법사| : 도와줄까?
|Pr. 정령사| : 길드장님―^^지금 밀리고 계시는 건 아니겠지요?
날아든 메시지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막아내고 있던 검을 크게 휘둘렀다. 푸르게 인 궤적을 드슬이가 재빨리 몸을 틀어 피해낸다. 몸놀림 하나는 정말 날래다.
저 날다람쥐 같은 새끼를 어떻게 잡아야 할까.
답은 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