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어쨌든 간에 우마훈은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길드 중 하나인 화랑의 주인, 우마한의 하나뿐인 동생이었다.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아 걱정했지만, 헛소문이었던지 우마훈의 출연이 확정되자마자 ‘화랑’은 곧장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제작을 지원해 주기 시작했다.
화제성은 물론, 예상치 못한 제작비까지 얻게 됐다.
드라마는 그야말로 승승장구, 탄탄대로를 걷는 중이었던 거다.
아쉬운 점이라면 우마훈이 맡은 ‘왕훈’의 분량이 짧다는 것이었다.
나 감독은 왕훈의 분량이 늘어나기를 원했지만 드라마의 메인 작가가 이를 거절했다.
“…아쉬워, 아쉽단 말이지.”
“네?”
“아니, 그냥 혼잣말이야. 그보다 준비해. 이제 슛 들어갈 거야.”
“네, 감독님.”
나 감독은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현장을 둘러보았다. 멀찍이 떨어져 무시무시한 기세로 서로 노려보고 있는 특급 카메오들이 보였다. 그 살벌한 기세에 배우들이 기가 죽어 물러나 있다.
“해로운아, 따뜻한 코코아가 먹고 싶도다.”
기가 죽지 않은 사람은 우마훈, 단 한 사람뿐이었다.
“저놈은 크게 될 놈이야…….”
나 감독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대본집을 들었다.
“자, 다들 스탠바이! 슛 들어갑니다!”
그렇게 촬영이 시작됐다.
“왕훈! 드디어 길고 길었던 우리의 악연을 끝낼 때가 되었다!!”
“악연이라니 우습구나. 인연이 되었을 것을 악연으로 바꾼 것은 네놈이니라.”
나지막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나 감독은 감탄했다.
극단에서 배우 일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한 게 아까울 지경이었다.
나 감독은 모를 거다. 우마훈이 제대로 된 대사를 내뱉게 하려고 도하운이 얼마나 많은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지 말이다.
어쨌거나 촬영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우마한 길드장님! 대사 없다니까요?! 그냥 동생분 옆에 가만히 계시면 되는데 왜 그러세요!!”
“죄송합니다, 나 감독님. 도하준 길드장님의 시선이 너무 불순해서요.”
“듣기 거북하군요, 우마한 길드장님. 제가 당신을 공손하게 쳐다봐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화랑의 우마한과 하운의 도하준이 맞부딪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거다.
1황자 왕훈과 2황자 왕현이 맞부딪치기 직전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되어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화랑과 하운의 세력 싸움을 사극 버전으로 연출하게 생겼다.
나 감독은 두 사람의 사이가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카메오로 출연을 제의한 것이다.
이유는 하나, 오직 화제성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렇게나 안 좋을 줄 몰랐다.
도하준이 우마한과 우마훈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쥐고 있던 검을 두 손으로 뚝, 부서뜨렸다.
“아, 이거 부서뜨려 버렸군요. 죄송합니다, 나 감독님.”
“…….”
촬영을 위한 소품이라고는 해도, 최대한 진검과 비슷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런 것을 저렇게 간단하게 부서뜨려 버리다니.
나 감독이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때였다. 뚝, 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다른 쪽에서 또 들려왔다.
“저도 부서뜨려 버렸군요. 죄송합니다, 나 감독님. 하지만 무기가 너무 부실한 거 아닙니까?”
우마한이 도하준을 향해 피식, 비웃음을 흘리고는 부서뜨린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
나 감독은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펼치는 기 싸움에 고개를 떨궜다.
* * *
“하준 형님, 저렇게 유치할 줄 몰랐죠?”
“시끄러.”
나는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잇값 못하고 유치한 짓거리를 펼치고 있는 분들께 카메오 출연을 제안했던 감독님께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계셨다.
이번 촬영이 아주 단단히 망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으셨나 보다.
|Pr. 마왕| : 우리 형님이 돌아버리신 것 같으니.
“…….”
날아온 메시지에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마왕님을 쳐다봤다. 마왕님께서는 나와 비슷한 눈으로 자신의 형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쟤가 저런 눈을 보일 수 있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잠시 쉬었다가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화랑과 하운의 긴장 상황은 한 스태프의 말에 풀어졌다. 우마한과 오빠는 서로 빤히 쳐다보고는 동시에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스태프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을, 나는 똑똑히 봤다.
“도하운! 잘 봤냐? 어땠어?”
“어땠기는…….”
줄곧 오빠의 옆에 서있던 도하인이 내게 다가오며 묻는다. 그 물음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너는 오빠 좀 말리지 그랬어?”
“내가 형을 왜 말려?”
왜 말리기는!
스태프들이 오빠와 우마한을 흘긋거리며 수군거리고 있다.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도하인에게 속닥거렸다.
“화랑과 하운의 두 길드장이 나잇값 못하고 서로 싸우려 들었다고 기사 뜨면 좋겠어?”
내 말에 도하인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거 걱정하고 있었어? 걱정하지 마. 형이랑 우마한 길드장, 하도 싸워대서 이제 기사로도 안 내.”
빌딩 하나는 부서져야 기사로 나올 거라고 도하인은 덧붙였다.
도대체 얼마나 싸워댔길래 저런 말이 나오는 건가 싶었다. 끙, 앓는 소리를 내는데 법사님께서 메시지를 보내셨다.
|Pr. 9서클대마법사| : 하준 형님이랑 우마한 길드장, 서로 사이 안 좋은 줄 몰랐어?
|Pr. 신살자(길드장)| : 저렇게 안 좋을 줄은 몰랐지;
저렇게 안 좋을 줄 알았다면 마왕님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을 거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는데 다시 촬영을 시작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도하운.”
“왜.”
“저 새끼 보지 말고 나랑 형이 어떻게 하는지나 보고 있어. 알겠냐?”
도하인의 나지막한 경고에 나는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주었다. 도하인이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지만, 오빠의 부름에 이내 내게서 걸음을 돌렸다.
“아직도 저 장면 촬영 중입니까?”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강하수가 내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네길래 이를 받아 들며 말했다.
“오빠랑 우마한 길드장이 계속 기 싸움 해서 NG 나는 중, 그보다 회사 간 거 아니었어?”
강하수가 법사에게는 딸기 스무디를 건네며 말했다.
“도비 군이 할 말이 있다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해서요. 최대한 늦게 가볼 생각입니다.”
“그래도 돼?”
“저의 심신 건강을 위해서 그래도 됩니다.”
강하수의 얼굴에 인자한 미소가 걸렸다. 그가 내보이는 미소에 나는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여기 있으면 심신 건강을 오히려 더 해칠 거 같은데.
“그보다 오늘 안으로 촬영 끝낼 수 있답니까?”
“법사는 불가능하다고 보죠.”
NG를 외치는 감독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 같네.”
같은 장면을 지금 몇 번째 보는 건지 모르겠다.
|마왕| : 누가 내 형님을 좀 치워줬으면 좋겠느니.
“…….”
마왕님의 인내심이 끝에 다다른 것 같다.
결국 나는 계속되는 NG로 다시 가지게 된 휴식 시간에 오빠와 도하인에게 말했다.
“우마한 길드장이랑 계속 그런 식으로 굴면 나 화랑 인턴십에 지원할 거야.”
“하운아!”
법사가 귀환 길드장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길드원들 내팽개치고 도망갈 생각이냐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무시했다.
어쨌든 효과는 굉장했기 때문에 몇 번이나 NG가 났던 장면은 순식간에 오케이를 받고 넘어가게 됐다.
그렇게 왕훈과 왕현이 서로 목숨을 건 전투를 그리는 마지막 촬영에 다다랐다.
카메오들의 출연은 끝났기 때문에 우마한 길드장도 오빠와 도하인도 이제 촬영장에서 벗어나도 되는데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지리도 할 일이 없나 봅니다, 도하준 길드장.”
“여기 계시는 분께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마한 길드장님.”
촬영은 끝났지만 우마한과 오빠의 기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얼떨결에 두 사람 사이에 낀 정령사가 내게 살려달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당연히, 이를 무시했다.
어쨌든 집에 가서 도하인을 붙잡고 저 두 사람 사이가 왜 저렇게 안 좋은지 물어봐야겠다.
“자, 슛 들어갑니다!”
촬영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와 함께 정적이 찾아왔다. 왕훈과 왕현의 검이 서로 맞부딪치는 순간이 촬영의 끝이라고 했던가.
|Pr. 신살자(길드장)| : 마왕님, 살살 해야 해. 진심을 다하지 말고, 알겠지?
|Pr. 마왕| : 알겠느니.
돌아온 대답에 만족해하며 나는 마왕님께서 검을 치켜드는 걸 지켜봤다.
황자들을 따르는 무리가 서로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갔고 곧이어 왕훈과 왕현도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둘의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콰―앙!!
커다란 폭발음이 촬영장을 뒤흔들었다.
쾅, 콰광―!!
연쇄적으로 일어난 폭발에 앞을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아아아악!!”
하지만 들려오는 비명에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고 짐작할 뿐이다.
“하운아!”
“도하운, 어디 있어!!”
애타게 나를 찾는 목소리에 나는 연기가 자욱한 곳을 향해 소리 질렀다.
“나 지금 로운 씨랑 같이 있어!!”
“아가씨는 걱정하지 마세요, 길드장님!”
곧 오빠와 도하인이 해로운 법사님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말라고 내게 외쳤다.
알겠다고 답하려는데 돌연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며 촬영장에 뿌옇게 가라앉았던 연기를 걷어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일으킨 바람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여기에 단 한 명밖에 없었다.
|Pr. 신살자(길드장)| : 정령사님, 네가 한 짓이야?
|Pr. 정령사| :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걷힌 연기에 강하수가 콜록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는 게 보였다. 강하수가 나와 법사를 발견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Pr. 정령사| : 차라리 도비 군을 만나러 갈 걸 그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실없는 소리를 잘도 한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