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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46화 (46/168)

46화

쨍그랑―!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을 마시려던 도하인이 손에 쥐고 있던 잔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었다.

“하, 하운아. 뭐라고……?”

도하인에게 물을 따라주려고 했던 오빠가 물통을 쥐고는 파르르 떤다. 어찌나 격하게 떨고 있는지 물통 안에 들어있던 물이 식탁에 마구잡이로 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말하면 안 됐나 보다.

* * *

나는 오빠한테 마왕님의 매니저 일을 하고 싶다고 했고.

“절대 안 돼!!”

도하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버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오빠가 크나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하운이도 사회생활을 경험해 보는 게 좋겠지.’

그렇게 나는 허락을 받았다. 다만.

“하운 아가씨.”

망할 해로운 법사 새끼와 함께 매니저 일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버렸다.

나는 얼굴을 와락 찌푸리며 법사 새끼를 쳐다봤다. 법사가 내 시선에 주변에 마법을 치고선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우리 길마님. 보는 눈이 참 매섭죠? 그보다 도대체 하준 형님이랑 도련님께 뭐라고 말한 거야?”

“도련님은 또 누구야?”

“도하인 부길드장님.”

우리 하인 놈, 종놈에서 도련님으로 신분 상승하셨다.

법사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좋아하는 연예인 생겼다고 했는데?”

하지만 내 말에 법사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뭐? 누구? 길마님, 연예인한테 관심 있었어?”

“아니? 나 연예인에 관심 없는데.”

“…관심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말한 거래?”

나는 괜히 뺨을 긁적이며 입술을 씰룩였다.

“그렇게 말하면 마왕님 매니저 하는 거 편하게 허락받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랬지.”

비록 편하진 않았으나 어쨌거나 허락은 받았으니 목적 달성이다. 법사가 두 눈을 홉뜨며 내게 물었다.

“길마님, 설마 하준 형님이랑 도련님께 좋아하는 연예인을 마왕님이라고 말한 거 아니지?”

“그렇게 말했는데?”

법사 새끼가 끙, 앓는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난리를 부리시지.”

“……?”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니 법사가 이마를 짚으며 내게 물었다.

“마왕님이 누구 동생이야, 길마님?”

“우마한 길드장 동생이잖아.”

“그럼 우리 길마님은 누구 동생이지?”

“우리 오빠 동생이지.”

“그래, 길마님은 하운의 도하준 길드장님의 동생이시지?”

법사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가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할 말 있으면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말하고 싶은 게 뭐야?”

짜증 섞인 내 목소리에 법사가 울상을 지으며 곧장 목소리를 내뱉었다.

“길마님, ‘하운’이랑 ‘화랑’이랑 사이 안 좋은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왜 안 되는데?”

“왜 안 되기는!!”

탕, 법사가 테이블을 소리 나게 내리쳤다.

“금쪽같은 동생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원수나 다름없는 놈의 동생이라는데! 난리가 나고도 남지!!”

“…….”

나는 오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도하인은 확실히 화랑의 우마한 길드장을 싫어한다.

하지만 오빠는…….

“공과 사는 구분하는 사람인걸. 그리고 나한테 사회생활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면서 허락해 준 게 오빠야.”

“우리 길마님은 하준 형님 속이 어떤지 하나도 모르죠!”

“시끄러! 그리고 내가 말했지? 우리 오빠한테 ‘형님’ 소리 붙이지 말라고!!”

법사가 딸기 프라페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까먹었죠. 법사 기억 안 나죠.”

“야!!”

빽, 소리 지르는 나를 향해 법사가 입술을 삐죽인다.

저 얄미운 입술을 한 대 때릴까 하는데 똑똑,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두 분께서는 무슨 대화를 그리 나누시길래 둘 다 연락을 안 받습니까?”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강하수가 얼굴을 와락 찌푸리고 있었다. 법사가 딸기를 콕 집어 입안에 넣고는 말했다.

“정령사님이 데리러 오실 줄 알고 일부러 안 받았죠?”

법사의 말에 강하수가 질색하는 얼굴로 말했다.

“해로운 씨, 그러지 말고 면허 좀 따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촬영장에 데려다주는 것도 오늘이 끝인데, 저 없이 길마님을 어떻게 데리고 다니려고 그러는 겁니까?”

강하수의 말에 해로운은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나는 빨대로 얼음이 다 녹은 아메리카노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쟤가 저렇게 깐죽거려도 나 잘 데리고 다녀.”

“어떻게 말입니까?”

“포털로.”

“법사가 열심히 포털 셔틀 중이죠?”

강하수가 할 말을 잃은 얼굴로 우리를 쳐다봤다.

“…두 분 모두 참 잘나셨습니다.”

“법사가 좀 잘났죠.”

“…….”

법사의 능글맞은 목소리에 정령사는 레몬을 한가득 입에 털어 넣은 사람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왕님은?”

“촬영장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촬영 시작하려면 한 시간 넘게 남지 않았어?”

“마왕님은 좀 빨리 오시더라고요.”

연기가 싫지는 않다더니, 재미를 붙였나 보다. 이러다 의뢰 내팽개치는 건 아니겠지?

[성좌, ‘바르고 고운 말 사나이’로부터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

어쩜, 의뢰 들어오는 타이밍이 이렇게 뭣 같을 수가 있을까.

법사와 정령사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내 눈치만 보고 있지, 의뢰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삼키며 대공님을 부르려고 했다.

어차피 법사도, 정령사도 지금 상황에서 의뢰를 뛰러 가기에는 살짝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마왕’님께서 의뢰를 받으셨습니다.]

|북부대공| : 마왕님은 저의 구세주세여ㅠㅠㅠ

“…….”

머지않은 시간에 촬영에 들어가셔야 할 마왕님께서 의뢰를 받아 드셨다.

그보다 대공, 너 이 새끼! 용사님이랑 같이 며칠 동안 잠수 타더니 이렇게 나타나기냐!!

이 답도 없는 길드원들의 모습에 나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쉬고서는 걸음을 옮겼다.

다행인지 모를 일이나 마왕님께서는 강해지기 위한 수련을 멈추지 않으실 건가 보다.

* * *

오는 길에 도로가 막혀 시간을 꽤 허비해 버렸다. 촬영에 늦으면 어쩌나 했는데 감독님께서도 일이 생겨 늦으신단다.

그렇게 마왕님을 찾아 천막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우마훈! 너 또 어딜 돌아다니다 오는 거야!!”

“의뢰를 처리하고 왔느니.”

“의뢰는 무슨 의뢰!!”

나를 우뚝, 멈춰 세우게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 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죠?”

법사의 말에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천막의 끝을 잡았다.

“마훈아, 제발! 형이 말했잖아? 이제는 한 가지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하지만 귀에 똑똑히 들린 ‘형’이라는 말에 잡고 있던 천막을 놓쳐버렸다.

“두 가지 모두 집중하면 안 되느냐?”

“안 돼! 그러다 두 가지 모두 놓쳐!!”

“짐은 놓치지 않을 것이니라.”

“아악! 넌 도대체 애가 왜 그렇게 자신감이 넘쳐!!”

분에 찬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잔잔한 미소를 걸치며 멍한 얼굴로 서있는 강하수에게 물었다.

“우마한 길드장이 왜 여기 있어?”

강하수가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그러게 말입니다. 설마 매니저 구했다는 소식에 길드장님을 보러 오셨나……?”

정령사의 말에 법사가 뚱한 얼굴로 구시렁거렸다.

“내 이럴 줄 알았죠.”

이럴 줄 알기는 뭐가 이럴 줄 알아!!

나는 짧게 혀를 차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우마한 정도면 해로운이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 정도는 바로 간파할 거다.

얼굴에 마법이라도 덮어씌우라고 할까? 마법은 간파하지 못할 거 같은데…….

그렇게 법사님께 마법 좀 부려서 네 얼굴 좀 가려보라고 할 참이었다.

“도하운!!”

“하운아.”

나를 부르는 도씨 집안, 두 남자의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잘못 들은 걸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뻣뻣하게 굳은 목 관절을 억지로 움직여 보았다.

“도하인……? 그리고 오빠도……?”

하지만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듯이, 씩씩거리며 걸어오는 도하인이 보였다. 그 옆에서 같이 걸어오고 있는 오빠의 모습도 말이다.

“도하준 길드장님과 도하인 부길드장님이 아닙니까? 저분들께서 여기는 왜…….”

정령사가 황망한 얼굴로 중얼거리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외면한 곳에는 법사님께서 계셨다.

“법사가 말했죠, 길마님?”

망할 해로운 법사님께서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내게 소곤거렸다.

“아주 난리일 거라고.”

그렇게 말 안 했잖아!!

나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고는 법사를 노려봤다. 법사는 딴청을 피우며 내 시선을 무시했다.

이렇게 된 이상, 오빠와 도하인이 우마한 길드장을 만나지 못하게 앞에서 차단한다!

“도하준 길드장……?”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천막 안에서 우마한 길드장이 모습을 드러내셨다.

환장하겠네! 마왕님 혼내고 있지, 왜 나온 거예요!!

우마한 길드장의 등장과 함께 숨 막힐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건 잠시뿐이었다.

우마한이 나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

“아…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우마한의 얼굴이 더욱 안 좋아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다정하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운아.”

오빠가 입꼬리만 끌어 올린 채 서있었다. 도하인이 오빠의 옆에서 오라는 듯 손짓한다.

우마한의 얼굴은 좋지 않은 것을 넘어 썩어있었다.

그때 법사 놈이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웃음을 보였다.

“아가씨, 가시죠?”

|Pr. 9서클대마법사| : 법사는 평화주의자죠!

날아든 메시지에 나는 눈가를 찡그리고는 법사를 쳐다봤다.

|Pr. 신살자(길드장)| : 뭐라는 거야?

|Pr. 9서클대마법사| : 우리 길마님, 지금 상황 안 보이죠ㅠ? 눈은 장식이죠ㅠㅠ?

이게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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