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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44화 (44/168)

44화

나는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만날 때마다 무슨 어둠의 자식처럼 올 블랙을 선보이셔서 저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다.

“왕훈!! 입이 있으면 어디 한번 해보아라!”

검을 치켜들며 외치는 왕현의 모습에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냈다.

‘마왕’과 ‘마훈’이 합쳐져서 ‘왕훈’이 되어버린 건가.

법사랑 정령사가 끅끅거리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나는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마왕님을 쳐다봤다.

옥좌 위에 앉아 나른하게 웃음을 흘리고 계시는 마왕님께서 입을 여신다.

마왕님께서 연기라니!

“그럼 하늘 아래 태양이 두 개일 수 있느냐?”

“…….”

대사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묻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왕현의 얼굴을 보니 진심으로 묻는 소리인가 보다.

내 저럴 줄 알았지.

당황해하는 왕현을 보며 ‘왕훈’을 연기하고 계시는 마왕님께서 느릿하게 일어나셨다.

“그리고 이 몸의 형제는 오직 한 명뿐이니라.”

감독님, 저거 안 멈춰요? 설마 애드립으로 아는 거 아니시죠?

촬영이 계속되는 사이, 왕훈은 왕현의 앞에 다다랐다.

왕훈이 제 목을 향하고 있는 검을 손등으로 밀어내며 입꼬리를 올린다.

“우마한이라고 아느냐? 우리 형님이니라.”

“아……?”

왕현이 얼빠진 소리를 내는 것을 끝으로 촬영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컷! NG!! 엔지이이!!! 마훈 씨!!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왜!!”

물론, 그 침묵은 감독님의 고함에 금방 부서졌다.

정수리 부근이 휑한 감독님께서 몇 없는 머리칼을 헤집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나 참, 진짜 환장하겠네!!”

“나 감독, 그렇게 화를 냈다가는 머리카락이 더 빠질 것이니라.”

“으아아악!!”

“감독님, 진정하세요!!”

마왕님의 일침에 감독님의 얼굴이 빨갛게 타버리셨다. 감독님께서 검지를 중지같이 드시고는 외쳤다.

“얼굴 때문에 산 줄 알아, 인마!!”

“짐의 얼굴이 좀 잘났느니. 형님께서도 볼 건 얼굴밖에 없으니 간수 잘하라고 하셨느니라.”

“아아악! 말이 안 통해!!”

“자, 잠깐 쉬었다가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을 맡은 감독님이 꽤 이름이 알려진 분이라고 알고 있는데, 저런 분도 화나게 하다니…….

“마왕님, 리스펙.”

법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여러 의미로 존경한다, 마왕아.

그렇게 난장판이 된 촬영장을 구경하고 있는데 강하수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변명하듯이 말했다.

“대본 리딩 때는 발성 위주로만 봐서 말이지요. 미처 저런 건 살피지 못했습니다…….”

“마왕님을 주조연으로 발탁했다는 것부터가 문제죠?”

“그러니까요……. 저는 진짜 말렸단 말입니다…….”

강하수가 크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 대표!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하지! 그보다 저 인간 좀 어떻게 해봐!! 진도가 안 나가잖아! 진도가!!”

“아이고, 감독님. 제가 잘 타일러 보겠습니다. 이렇게 큰 무대는 처음이라 애가 긴장했나 봅니다!”

마왕님께서는 전혀 긴장을 안 한 것 같은데요, 대표님.

감독님의 호통 소리에 강하수는 웃는 낯을 보이며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음료를 감독에게 건넸다.

|9서클대마법사| : 왜 우리 거는 없죠?

|북부대공| : 뭐가 없어여?

|정령사| : 그런 건 제발 개인 메시지로 물어봐 주십시오.

감독님께서는 구시렁대면서도 음료를 받아 들고선 촬영장을 나갔다. 멀어지는 감독님의 모습에 법사가 소곤거리며 묻는다.

“정령사님, 우리 거는?”

“갈 때 사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좀! 좀 얌전히 계십시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정령사가 법사의 어깨를 찰싹, 소리 나게 때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마훈 군!”

어깨에 걸치고 있던 붉은 도포를 웬 남자에게 건네주고 있던 우마훈이 우리를 보고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도하운이 아니냐!! 그리고 법사, 네 녀석도 있구나!!”

법사, 라는 말에 시선이 집중됐다. 해로운 법사님께서 커다란 손으로 얼굴을 덮고서는 고개 숙였다.

“…시발, 마왕님 입 좀 닫아줄 사람?”

아무도 없었다.

“마훈 군, 저는 보이지도 않나 봅니다?”

“안 보였느니.”

“…….”

정령사의 머리에서 무언가 뚝,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그보다 다들, 여기까진 무슨 일로 찾아왔느냐?”

나는 마왕님의 풀어진 저고리 앞섶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앞부터 여미지? 보기 흉해.”

“흉하다니!!”

마왕님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후다닥, 저고리를 여미셨다. 법사가 키득거리며 웃는다.

“마훈 씨 연기하는 거 구경하러 왔는데 더럽게 못하죠!”

법사의 깐족거림에 우마훈이 얼굴을 찌푸린다. 나는 법사의 귀를 잡아당기며 정령사에게 물었다.

“대표님, 설마 얘 연기 가르치라고 나 데리고 온 거 아니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강하수 대표님께서는 10년은 더 늙은 것 같은 얼굴로 마왕님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번에 방영될 회 차부터 마훈 군이 등장하면서 다른 인물과 합을 맞추는데 말이지요.”

“오, 이게 말로만 듣던 스포인가요? 법사는 스포 완전 좋아하죠!”

“너는 제발 입 좀 닥치고 있어!!”

나는 법사의 귀를 놓아주는 대신 촐싹거리는 입을 소리 나게 때려주었다. 법사가 아프다면서 펄쩍 뛰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세게 때려줄 걸 그랬다.

정령사가 짜게 식은 눈으로 법사를 한 번 쳐다보고는 내게 말했다.

“근데 그 인물이 ‘하운’입니다.”

“그게 왜?”

오빠가 이끌고 있는 길드, ‘하운’ 때문에 ‘하운’이란 이름은 꽤 흔해졌다.

드라마에서 본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 없는 이름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령사는 내 말에 얼굴을 한 번 문지르고는 한숨을 토해내듯이 말했다.

“…보시면 압니다.”

도대체 왜 저러는지, 나는 다음 촬영이 시작되면서 곧바로 알 수 있었다.

* * *

신인 배우, ‘연바른’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배우였다.

분명 싹수없기로 유명한 ‘도비’와 합을 맞추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상대역이 바뀌게 됐다.

하지만 연바른은 괜찮았다.

“전하, 저를 잊으셨습니까? 그날의 약속을 잊으신 겁니까?”

바뀐 상대역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도비보다 훨씬 더 대하기가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바른은 몰랐다.

“하운.”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에서 연바른이 맡은 역할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멸문당한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

“떠나가는 여름날의 구름을 보며 제게 그리 이름을 지어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마훈이 맡은 ‘왕훈’은 혹시 모를 위험을 피해 신분을 숨기고 평민으로 살아가던 황자.

그러던 중에 왕훈은 모든 것을 잃었던 하운을 만나게 됐고 그녀에게 그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운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저는 전하의 곁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비의 자리를 원하는 게 아니어요.”

모두가 숨죽이고선 연바른의 연기를 지켜보았다. 연바른이 제게 모여드는 시선에 남몰래 쾌재를 부르며 대사를 읊조렸다.

“저는 단지, 전하의 뒤를…….”

“가당치도 않은 소리!!”

“!!”

줄곧 옥좌에 앉아만 있던 왕훈이 노기 짙은 목소리를 내뱉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대본에는 없던 장면이었다. 연바른이 헛숨을 들이마시고는 우마한을 한 번, 그리고 감독을 한 번 쳐다봤다.

감독은 숨죽인 채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연바른이 침을 꿀꺽 삼켰다. 눈앞의 왕훈을 맡은 신인 배우가 애드립을 치는 건가 보다.

연바른은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머리를 굴려보았다.

“도하운이는 고작 비(妃)의 자리에 머무를 여인이 아니니라!!”

“네……?”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이 얼빠진 소리가 나왔다.

우마훈은 얼굴을 와락 찌푸리며 연바른에게 삿대질하며 물었다.

“도하운이는 마신도 물리친 신살자이니라!! 그런 여인이 어찌 그런 자리에 머무를 수 있겠느냐?”

“아, 아니…….”

“네 녀석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냐?”

“아…아니요…….”

연바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 * *

시발.

날것 그대로의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정령사는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막고 있다. 나는 그런 정령사를 빤히 쳐다보며 소리 없이 물었다.

너 이 새끼, 나를 엿 먹이려고 데리고 온 거냐?

이 와중에 법사 새끼가 작게 손뼉 치며 감탄했다.

“와우, 마왕님 정말 대단하죠. 또 한 건 했죠?”

“…….”

그래 거하게 한 건 했네!!

“우! 마! 후―운!!”

감독님께서 대본집을 집어 던지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셨다.

“우마훈, 너 이 자식! 너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올래?!!”

“감독님! 진정하세요! 우마한 길드장님 동생분이세요!!”

“화랑! 화랑이 투자 중이에요! 투자자 동생분!!”

자본주의의 힘은 강했다. 감독님께서는 들리는 말에 뒷목을 부여잡고는 크게 숨을 토해내셨다. 감독님의 혈압 상승에 지대한 공을 세우신 마왕님께서 고개를 갸웃거리신다.

“나 감독, 왜 그러는지 모르겠느니. 나는 도하운을 모욕하기에 한마디 한 것뿐이니라.”

아니야, 나는 모욕당한 적 없어.

“그 도하운이 누군데! 누구야 도대체!!”

마왕님께서 손을 드신다.

|Pr. 신살자(길드장)| : 나 가리키면 너 진짜 죽는다.

보낸 메시지에 마왕님께서 방향을 트셨다.

“나……?”

옆에 계셨던 법사님께서 얼빠진 소리를 내셨고, 정령사님께서는 법사로부터 한 걸음 떨어지셨다.

마왕의 손가락 끝이 향하는 곳을 본 감독이 빼액 소리 질렀다.

“당신이 도하운이야? 마훈 씨랑 도대체 무슨 사이야, 당신!!”

“네? 저요? 마, 마훈 씨랑요?”

법사가 잔뜩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봤다.

|Pr. 9서클대마법사| : 어떠ㅓㄱ하면좋죠? 법사 지금 굉장히 당황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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