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43화 (43/168)

43화

법사 새끼가 신이 나든지 말든지는 알 바 아니고 나는 정령사의 어깨를 붙잡고는 흔들었다.

“야! 거기는 왜 가냐니까?”

“잠깐만요! 저 운전 중이지 않습니까?!”

끼익, 소리를 내며 차가 비틀거리자 나는 짧게 혀를 차고는 정령사 새끼를 놓아주었다. 신난 얼굴로 휴대폰 화면을 두드리고 있던 법사가 갑자기 나를 보더니 검지를 입술에 대며 말한다.

“하운 아가씨, 잠깐만 쉿.”

저 망할 ‘아가씨’ 소리 좀 안 했으면 좋겠다.

“…하운 아가씨? 둘이 같이 왜 있나 했더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정령사가 얼이 빠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여 주는 것으로 답해주었다. 법사가 폰을 귀에 가져다 대고는 환히 웃으며 입을 연다.

누구한테 전화를 걸길래 저렇게 웃나 했더니.

“네, 하준 길드장님. 접니다.”

통화의 상대는 우리 오빠였다. 법사가 룸미러로 나를 보고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지금 강하수 대표님을 만나서 잠깐 이동 중이거든요.”

법사가 잠깐 침묵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잠깐만요. 대표님 바꿔드리겠습니다.”

법사는 친절하게도 강하수의 귀에 직접 폰을 가져다 대주었다. 강하수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법사 새끼를 쳐다봤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아이고~! 도하준 길드장님, 안녕하십니까? 저 강하수입니다.”

통화의 상대는 보지 못할 웃음을 가득 지으며 강하수가 말했다.

“네, 그게 말이지요. 하운 양과 심사에 휘말렸을 때 약속한 게 있거든요. 네네, 애먼 데 가지는 않고요. 드라마 촬영하는데 구경 좀 시켜주려고요.”

강하수가 잠깐 침묵하더니 다시 웃음을 얼굴 가득 띠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하운 양 바꿔드릴게요.”

강하수의 말에 법사가 내게 폰을 내민다.

나는 얼굴을 와락 찌푸리고는 법사에게서 폰을 받아 들었다.

―하운아.

“응, 오빠.”

대답하기 무섭게 망할 길드원들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Pr. 9서클대마법사| : 법사는 가고 싶죠!!

|Pr. 정령사| : 부탁합니다, 길드장님!! 일주일에 의뢰 3번 뛰겠습니다!! 아니, 5번!!

법사의 메시지는 무시하고 정령사에게는 답장을 보내줬다.

|Pr. 신살자(길드장)| : 그 말, 꼭 지켜라^^

메시지를 받아 든 정령사가 끙, 앓는 소리를 낸다. 나는 그 소리를 무시하며 오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강하수 대표님은 어쩌다 만난 거야? 오늘 약속 같은 거 없다고 했잖아.

“내가 깜빡 잊고 있었어. 왜, 요새 도하인이 푹 빠져있는 드라마 있잖아.”

―두 번째 태양이니, 그거?

“응. 도하인 때문에 나도 같이 보고 있는데 강하수 대표님이 심사 무사히 끝나면 촬영장 구경시켜 준다고 했거든.”

내 말에 강하수가 안도하듯 숨을 내쉬었고 법사 새끼는 좋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그랬구나……. 알겠어, 하운아. 해로운 씨 옆에 꼭 붙어있어야 해. 알겠지?

“어… 해로운 씨…….”

나는 말을 흐리며 앞을 쳐다봤다.

“좀! 운전하는 데 방해됩니다! 옆에 얌전히 좀 있으십시오!!”

“헉! 고작 이걸로 방해된다고 하다니! 정령사님 운전 실력 완전 형편없죠!!”

“아오, 진짜!”

저 새끼 옆에 꼭 붙어있어야 된다니. 꼭 그래야 하는 걸까, 오빠?

―하운아?

“응… 알았어…….”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대답해 주고는 해로운에게 전화를 넘겼다. 내게서 전화를 넘겨받은 해로운이 눈웃음을 지으며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도하준 길드장님! 네, 걱정하지 마시고요. 아가씨 잘 살피고 있겠습니다. 네, 일 편히 보고 계세요!”

뚝, 끊긴 전화에 정령사가 곧장 입을 열었다.

“아가씨라니! 길드장님, 법사 놈이 도대체 왜 당신을 그렇게 부르는 겁니까?”

“법사 놈이라니! 법사 상처받았죠!!”

정령사가 질색하는 얼굴로 법사를 쳐다본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쟤랑 나랑 피고용인, 고용주 관계.”

“네?”

“정확히 말하면, 우리 길드장님은 고용주님의 의뢰 대상이시죠.”

“네에?”

정령사의 얼빠진 목소리에 나는 답해주는 대신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무슨 일인지나 빨리 말해.”

“아… 법사 놈 때문에 정신없어서 말해준다는 걸 잊고 있었군요.”

“법사 놈이라니! 그렇게 부르지 마시죠!!”

“시끄럽습니다!!”

둘 다 시끄럽다. 차에서 좀 내려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운전할 사람이 없으니 곤란해지려나.

법사의 페이스에 휘말릴 뻔했던 정령사가 정신을 차리고는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게 말입니다. 심사가 일어나기 전에 도비 군이 찾아왔던 거 기억합니까?”

“드라마 못 하겠다고 찾아왔던 거? 응, 기억해.”

정령사가 수년은 늙은 것 같은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

“심사 때문에 난리 난 언론 좀 잠재우고 봤더니 도비 군이 그새를 못 참고 감독님이랑 대판 싸워버렸더군요.”

“드라마 못 한다고?”

“네, 하차하겠다고 그렇게 싸워버렸답니다.”

“자유로운 도비 군은 정말 자유로웠죠.”

나와 강하수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해로운 법사 새끼를 째려봤고 법사는 입술을 삐죽이며 입을 다물었다.

강하수가 크게 한숨을 내쉬고선 말했다.

“대역이라도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감독님이 화를 내셨는데 말이지요…….”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추자 강하수가 핸들을 가볍게 두드린다. 그러다 말고 그는 머리를 헤집더니 살짝 짜증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도비 군이 정말 대역을 찾아왔지 뭡니까?”

“그래도 친한 연예인이 있었나 보네?”

“아닙니다. 도비 군은 친구 없습니다.”

“…….”

정령사의 단호한 목소리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신호가 떨어지고, 정령사가 다시 기어를 넣으며 차를 몰았다.

법사는 그사이 물 한 통을 꺼내고는 목을 축이는 중이었다.

“단역 배우로 활동 중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어, 잠깐.

올라오는 불길함에 나는 정령사의 입을 막고자 했다. 하지만 내가 그 입을 막기도 전에 정령사님께서 말씀해버리셨다.

“그게 마왕님이셨습니다.”

“푸흡!!”

법사가 마시고 있던 물을 뿜고 말았다.

“콜록! 컥, 크흡, 흡, 누, 누구?”

“…마왕님요, 마왕님! 휴지 꺼내서 뱉어낸 거 닦으십시오!!”

법사가 입가를 닦고는 수납공간에서 휴지를 꺼낸다.

그보다, 뭐? 도비가 마왕을 대역으로 내세웠다고? 그것도 드라마 조주연 자리의 대역으로?

‘성녀’의 힘 덕분에 두통이 찾아올 리가 없는데 머리가 지끈거리는 거 같았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물었다.

“마왕님이 도대체 왜……. 아니 그보다 걔가 도비 새끼 대역을 서는 게 가능해?”

“감독님도, 작가님도 보자마자 오케이 사인 내렸습니다.”

“도대체 왜?”

내 말에 정령사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분위기가 마음에 든답니다. 화면도 잘 받고, 발성도 웬만한 배우 못지않고…….”

“법사도 화면 잘 받는데 말이죠!”

“시끄럽습니다.”

정령사의 단호한 말에 법사가 불퉁하게 입술을 삐죽인다. 법사 새끼가 삐쳤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그보다 마왕님께서 의외의 재주가 있으셨나 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왕님 형님분께서는 반대 안 하셨어?”

“안 하셨습니다. 드디어 할 줄 아는 거 찾았냐면서 쌍수를 들고 환영하던데요?”

“…….”

우마한 길드장님!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게 아니라 반대했어야죠!! 당신 동생이 어떤 주둥아리를 가지고 있는지 알면서!!

그 지옥의 주둥아리가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입을 놀릴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나는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물었다.

“근데 그 드라마, 거의 끝나갈 때 됐잖아?”

“아직 끝나려면 멀었습니다. 시청률이 워낙 좋아서 다섯 편 더 편성됐고요.”

그 시청률, 마왕님의 등장으로 반토막이 나겠다.

“스토리는 어떻게 가는데? 대역이라고 해도 도비 새끼랑 마왕님은 누가 봐도 다른 얼굴이잖아. 헌터가 스킬이라도 걸어준대?”

“그건 아니고요. 사실 도비 군은 가짜 황족이었고, 진짜는 따로 있었었다…로 간답니다.”

“그 진짜가 마왕님이고?”

“네.”

저렇게 스토리를 만드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도착했습니다.”

매끄럽게 도로를 달리던 검은 SUV 차량이 인파로 우글거리는 곳에 정차했다.

“길드장님.”

정령사가 나를 보고는 간절함 가득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그러니까 뭘?

* * *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

케이블 TV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드라마로 쌍둥이로 태어나 운명이 갈라져 버린 두 황자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중이었다.

도비 새끼가 맡은 건 맏이이자 황태자인 ‘왕호’였다.

그리고 그와 대적하는 이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형제여!!”

황자로 태어났으나 노비의 아들로 살아가야 했던 2황자 ‘왕현’이었다. 하지만 그에 맞서는 건 도비 새끼가 아니었다.

“도비 새끼 어디 갔어?”

“쉿.”

강하수가 눈가를 찡그리고는 주의를 준다. 나는 입술을 삐죽이고는 왕현과 대적 중인 남자를 쳐다봤다.

붉은 도포를 어깨에 걸치고 하얀 저고리의 앞섶을 풀어 헤치고 있는 게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싶었다. 암만 봐도 아닌 것 같다.

나랑 같이 남자를 보고 있는 법사 새끼도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는 정령사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Pr. 신살자(길드장)| : 저 사람이 마왕님이라고?

정령사가 미간을 좁히며 나를 쳐다본다.

나는 어서 대답해 달라고 검지를 들어 옥좌에 앉아계시는 마왕님을 가리켰다.

정령사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답장을 보냈다.

|Pr. 정령사| : 네― 마왕님 맞습니다――^^

헉, 대박.

|Pr. 정령사| : 감독님과 작가님께서 저 모습을 보시고 바로 오케이를 외치셨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