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별님께서 강탈당하셨다는 악보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보면대에 끼워져 강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것이, ‘어서 나를 우리 주인님께 데려다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곧장 악보를 잡으려다가 손을 거두고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뭐 이상한 일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별님들로부터 워낙 많은 엿을 얻어먹은 터라 의심이 들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그리고 나는 곧장 그 말을 후회했다. 그래, 그런 말을 하면 꼭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
[귀환(歸還)의 ‘정령사’님께서 구조 요청을 보냈습니다.]
“…….”
날아든 메시지에 나는 악보를 잡으려던 손을 놓고는 곧바로 녹음실을 나왔다. 여기서 악보를 잡았다가는 의뢰는 종료, 그리고 ‘신살자’의 칭호는 강제로 봉인당한다.
사용할 수 있는 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더욱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 힘이 필요했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정령사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Pr. 신살자(길드장)| : 야, 뭔 일이야?
하지만 돌아오는 답이 없다.
|Pr. 신살자(길드장)| : 정령사님?
|Pr. 신살자(길드장)| : 강하수?
|Pr. 신살자(길드장)| : 아저씨?
|Pr. 신살자(길드장)| : 저기요?
몇 번이나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나는 짧게 혀를 차고는 머리를 헤집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일어나기는 했나 보다.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으면 그만 좀 하라고 진작에 진언이 날아왔을 텐데.
나는 그대로 비상구 문을 열어젖히려다가 문득 복도가 휑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중 유독 까맣게 그을린 곳이 있었다. 신벌로 인해 전격이 내리친 곳이었다.
나는 그곳을 두 눈에 담다가 시선을 돌리고는 문을 열어젖혔다.
“…우리 정령사님, 괜찮으실까 모르겠네.”
그보다 이 새끼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00:21:23】
정령사는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너무 쉽게 찾을 수 있어서 문제였다.
“…….”
화르륵―
뺨에 튄 불꽃이 상처를 만들었지만 금세 아물었다. 나는 손을 들어 상처가 났던 자리를 매만졌다. 흉터 하나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지워진 상처에 나는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후―웅!
순간 날아든 불기둥에 나는 몸을 틀었다.
“아!”
하지만 겉옷에 불씨가 튀어 불이 붙고 말았다. 황급히 불을 끄긴 했지만 끝부분이 까맣게 타버렸다. 이거, 도하인이 사준 건데.
불현듯이 떠오르는 우리 집 막내의 얼굴에 나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내게 불기둥을 날린 분의 이름을 불렀다.
“강하수 씨.”
“…….”
대답이 돌아올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이걸 원한 건 아니었는데.”
강하수의 몸을 휘감고 있던 불꽃이 커다란 새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천장을 뒤덮은 불꽃에 타버린 마감재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매캐한 연기에 숨을 내쉬는 게 힘들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권능, ‘정화’가 활성화됩니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애써 웃음을 보이며 정령사를 향해 메시지를 날렸다.
|Pr. 신살자(길드장)| : 저기, 님?
돌아온 건, 강하수의 삿대질이었다. 강하수의 손가락 끝이 나를 향하기 무섭게 커다란 새가 쏜살같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아오! 시발!!”
사슬을 움직여 봤지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불꽃으로 이루어진 새를 그대로 통과해 버렸다. 가까스로 망할 새대가리를 피했지만, 천장에서 떨어진 마감재가 나를 덮쳤다.
“이… 시발.”
마감재에 붙은 불꽃에 살갗이 타들어 갔다.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에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사슬을 움직여 나를 덮쳤던 마감재를 치웠다.
그와 동시에 불길에 타오르고 있는 커다란 새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
나는 주먹을 쥐고서는 그대로 망할 새대가리를 쳐버렸다. 아니, 쳐버렸다는 말은 알맞지 않다. 때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권능, ‘신벌(神罰)’이 활성화됩니다.]
파지직, 푸른 전격이 작게 일어나는가 싶더니 곧 불길이 일고 있는 로비에 세찬 전격이 여러 번 내리치기 시작했다.
콰과광―!!
여러 번 아래로 내리친 전격에 새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불길은 허공에서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로비 이곳저곳이 검게 그을렸지만 괜찮다.
“…….”
이 건물의 주인 되시는 분이 멀쩡하게 서있으니 말이다. 타닥, 타들어 가는 불꽃에 마감재가 또 한 번 바닥으로 떨어진다.
정령사는 자신의 옆으로 우수수 떨어진 것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나는 짧게 혀를 차고는 걸음을 내디뎠다.
“강하수 씨, 정신 안 차리지?”
강하수가 느릿하게 눈동자를 움직인다. 그와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웃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이어 거센 돌풍이 들이닥쳤다.
“아, 저게 진짜!!”
제대로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짜증이 나 죽을 것 같은데 바람에 실린 불꽃이 계속 상처를 만들어 낸다.
따끔거리는 통증이 느껴지기 무섭게 상처는 흔적도 없이 지워졌지만, 기분이 더러운 건 지워지지 않는다.
이를 으득 갈며 강하수, 저 새끼를 어떻게 조져야 잘 조졌다고 소문이 날까 싶은데 목을 향해 다가오는 손이 보였다.
살짝 입술을 벌렸다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강하수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
놀란 눈을 보이는 그에게 비웃음을 한번 보여주고는.
[절대 권능, ‘법칙 위의 절대자’가 활성화됩니다.]
잦아든 바람에 그대로 그를 바닥으로 세게 엎어 쳐버렸다.
“컥……!”
밭은 숨을 내뱉는 그를 보며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제 좀 정신 차리시지, 정령사님?”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길드원이라고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거든. 아니, 솔직히 유쾌하기는 했다.
조금 더 세게 엎어 칠 걸 그랬나?
정령사는 가슴 부근을 부여잡고는 거세게 기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침을 토해낸 뒤 쌕쌕거리며 숨을 내쉰 정령사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든다.
“기…길드장님?”
한 번 더 충격 요법을 가해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이다. 조금 아쉽기는 했다. 역시, 조금 더 세게 칠 걸 그랬다.
“길드장님이 왜 여기에…….”
강하수가 말을 하다 말고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꼴은 또 왜 그럽니까?”
놀라 묻는 목소리에 나는 비딱하게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네가 이랬잖아.”
“제가요?”
“응, 네가요.”
강하수가 입을 뻐금거리더니 크게 탄식했다.
“오… 이프리트시여.”
“이프리트 그만 처부르고 불 좀 잡아봐.”
내 말에 강하수가 뒤늦게 불길에 타오르고 있는 로비를 보고는 경악하며 외쳤다.
“오! 이프리트시여!! 이것도 제가 이런 겁니까?!!”
“응, 네가 이랬어.”
이프리트 그만 부르라니까 계속 부르네. 이프리트가 그렇게나 좋나?
하긴, 그렇게나 좋으니까 이렇게 불장난을 한 거겠지.
심드렁하게 로비에 붙어있던 불길이 꺼져가고 있는 걸 보고 있는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흑… 심사 끝나면 파괴된 곳들 원래대로 돌아옵니까?”
“아마도 그럴걸?”
“크흡, 흡, 듣던 중 다행이군요.”
“나는 아마도라고 했어.”
“돌아온다고 믿으렵니다.”
강하수가 눈가를 세게 닦고는 몸을 일으키려다 아야, 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가슴 부근을 부여잡는 모습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에게 성녀의 힘을 사용해 주었다. 강하수가 가슴 부근을 꾹꾹 누르고는 내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인사는 됐고,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내 말에 강하수가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분명, 세이렌을 찾았고 곧바로 처리하려고 했는데…….”
강하수가 말을 흐리더니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그대로 홀려버렸군요.”
도대체 어떻게 홀려야 이런 불장난을 벌일 수 있는 걸까. 나는 검은 재가 묻은 손을 털어내며 물었다.
“그래서 그 세이렌은 어디서 봤는데?”
“여기서 봤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사라진 건지 모르겠군요.”
결국 놓쳤다는 말이었다. 나는 줄어들고 있는 시간을 보고는 눈가를 찡그렸다.
남은 시간은 10분 남짓. 이 짧은 시간에 육지로 올라오신 망할 인어님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리의 눈’을 사용해 봤지만. 세이렌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이는데 살랑이며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졌다.
강하수의 손에 불투명한 형체를 지닌 바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 형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노움인지 뭔지만 길을 알려줄 수 있다며?”
“그렇다고 했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길을 찾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강하수가 손을 한 번 털어내자 그의 손에 모여들었던 바람의 정령들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이내 닫혀있던 비상구 문이 활짝 열렸다. 강하수가 내게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보인다.
“흔적을 쫓는 거지요.”
말 한번 잘한다 싶었다. 정령사님께서 먼저 걸음을 옮기셨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그보다 길드장님, 다친 곳은 없습니까?”
“없어. 없으니까 이렇게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는 거잖아.”
“그렇지만 옷이…….”
“그렇게 신경 쓰이면 내가 입고 있는 옷이랑 똑같은 거 구해다 주든가.”
이제 신경 끄겠지 싶었는데 강하수가 곧장 물었다.
“입고 있는 옷이 뭡니까?”
정말 사줄 모양이다. 하지만 이건 사주지 못할 거다.
“이거? 도하인이 사다 준 건데 한국에 사이즈별로 100벌만 풀린 한정판이라고 했어. 참고로 2년 전에 사다 준 거야.”
“그 귀한 걸 어디서 구해 옵니까! 그보다 뭐요? 2년 전에 사다 줬다고요? 안 크고 뭐 했습니까!!”
아니, 이 자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