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홀려 죽어버리다니! 무슨 심사가 이렇답니까?”
짜증스레 외치는 목소리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 이래.”
돌발성 적합자 심사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가 아니라 살기밖에 없다. 오직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는 심사란 거다.
이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심사는 통과할 테니.
문제는, 심사를 통과하고 나면 꼼짝없이 센터에 끌려가 이것저것 검사받게 될 거라는 거다.
이게 왜 문제냐면, 우리 같은 귀환자는 심사를 통과해 봤자 ‘적합자’라고 시스템이 인식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하수가 숱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적합자가 아닌 일반인이라고 알려지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정령사가 나와 같은 것을 걱정하는 모양인지 내게 물었다.
“안 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마지막 줄 안 읽었어? 홀려 죽는다잖아.”
나는 짧게 혀를 차고는 길드에 들어왔던 의뢰를 살폈다. 믿었던 대공님과 용사님께서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아직도 의뢰를 안 받으셨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S급 성물, ‘망령을 부르는 악보’가 알 수 없는 존재에게 강탈당해 H-Entertainment에서 열리고 있는 <돌발성 적합자 심사>에 흘러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곳에서 강탈당한 S급 성물 ‘망령을 부르는 악보’를 찾아주세요.]
▷ 길드 보상: ‘하늘에서 떨어진 좌천사’의 1개 군단의 지휘권
그래도 이 경우에는 다행이라고 여겨야겠지. 심사 후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 나는 의뢰를 받아들였고.
【00:42:11】
▷ 실패 시: H-Entertainment의 건물이 붕괴됩니다.
실패할 시에 일어날 일에 두 눈을 끔뻑였다.
칭호, ‘신살자’에 가해졌던 봉인의 일부가 해제됐다니 뭐니 그런 메시지가 나타났지만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의뢰 나타난 거는 왜 받았습니까? 법사 놈이나 마왕님이 받을 텐데요.”
나는 말없이 정령사에게 의뢰를 보냈다. 정령사가 뭐 하는 짓이냐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정령사’님께서 의뢰 공유에 응하였습니다.]
“…….”
나와 함께 의뢰를 공유하게 된 정령사님께서 눈알이 빠질 듯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신다.
“이… 이게 지금…….”
입을 쩍 벌리고서는 나를 쳐다보는 얼굴에 나는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의뢰 실패하면 너나 나, 우리 둘 중 하나가 건물 파괴하는 모양인데? 세이렌한테 결국 홀려서 말이야.”
“…….”
정령사의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날파리라도 들어가면 어쩌나, 그런 걱정이 들 때였다.
화르륵―
미, 미친.
커다란 불길이 정령사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령사의 몸을 휘감은 불길 사이로 맺혀있는 물방울이 보였다.
와, 정령사 새끼. 저런 것도 할 줄 알아?
정령사의 능력에 새삼스레 감탄하고 있는데 강하수가 한 손을 들어 얼굴을 문지르고는 걸음을 내디뎠다.
“멍하니 서있기만 할 겁니까? 세이렌인지 뭔지 처치하러 가야지요. 악보도 찾고요.”
“건물 무너진다니까 바로 움직이는 것 좀 봐.”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제가 먹여 살려야 할 군식구가 몇인데!”
네가 먹여 살리냐. 네 소속 아티스트들이 먹여 살리는 거겠지.
나는 튀어나오려는 말을 집어 삼키고서는 텅 빈 건물을 둘러보았다.
H-Entertainment는 중견 연예 기획사라고 하지만 규모가 꽤 있는 곳이었다. 즉, 굉장히 넓은 곳이라는 말이었다.
제한된 시간,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뭍으로 기어 나오신 세이렌도 처치해야 하고 악보도 찾아야 한다.
“악보는 금방 찾을 수 있어.”
“무슨 수로 말입니까?”
나는 손을 들어서 내 눈가를 톡, 건드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권능, ‘진리의 눈’이 활성화됩니다.]
정령사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 눈살을 살짝 찌푸린다.
“…신살자의 힘입니까?”
“응. 별님의 힘이 담긴 건 쫓을 수 있거든.”
“그러니까 세이렌은 제게 맡기겠다?”
“오, 대표님 똑똑해.”
나름대로 칭찬을 해준 건데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 정령사의 얼굴이 썩어 들어간다.
나는 그 얼굴을 무시하며 정령사를 지나쳐 지고하신 별의 힘이 느껴지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악보는 내가 찾으러 갈 테니까 대표님은 세이렌 좀 찾으러 가줘.”
악보를 찾으러 갔다가 세이렌을 맞닥뜨리면 곤란은 무슨, 횡재하겠지만 그러지 않을 경우에는 따로 떨어지는 게 훨씬 나았다.
나는 비상구 계단 문을 열어젖히기 전에 강하수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홀리지 않게 조심해, 정령사님.”
“당신이나 조심하십시오!!”
버럭 소리 지르는 정령사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 * *
“죄송합니다, 로운 씨.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미처 로운 씨를 생각하지 못했네요.”
“아닙니다! 그보다 걱정이 크시겠어요, 하준 길드장님.”
“…….”
도하준은 폴리스 라인이 쳐진 H-Entertainment 사옥을 한 번 쳐다보고는 지친 미소를 보였다.
“괜찮을 거라고 믿습니다.”
얼떨결에 도하준을 따라오게 된 귀환의 9서클 대마법사, 해로운은 잘게 떨리고 있는 도하준의 손을 못 본 척하며 웃음을 지었다.
“네, 괜찮을 겁니다.”
해로운의 말에 도하준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런 말이 돌아올 줄은 알았다. 하지만, 들려온 목소리에서 확신이 느껴졌다.
도하준은 눈앞의 남자를 쳐다봤다. 해로운은 그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모양인지, 폴리스 라인이 쳐진 건물을 쳐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Pr. 9서클대마법사| : 님
|Pr. 9서클대마법사| : 님아?
돌아오지 않는 답장에 해로운이 도하준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폰을 들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시늉을 한 그는 즐거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렇게 연락을 안 받지? 슬프게?”
|Pr. 신살자(길드장)| : 너이시바ㄹ새끼야ㅑ1!!!!
진언을 날리고서야 돌아온 메시지에 해로운이 키득거리며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Pr. 9서클대마법사| : 우리 길마님, 아주 멀쩡하죠?
|Pr. 신살자(길드장)| : 그래, 아주 멀쩡하다! 이 ㅅㅂ아!!!!
|9서클대마법사| : (૭ ᐕ)૭?
|신살자(길드장)| : 아오!!!!!
혈압 올라가는 소리가 절로 들리는 메시지에 해로운은 다시 한번 더 웃음을 터트렸다.
* * *
“법사 새끼, 갑자기 왜 지랄이야!”
계단을 오르는 중에 진언을 받아 발을 삐끗해 버렸다. ‘성녀’의 힘으로 곧바로 멀쩡해졌지만, 난데없이 법사 새끼의 촐싹대는 목소리를 들었더니 열이 뻗친다.
바람 쐬러 나왔다가 이게 뭐 하는 짓거리인지.
“아! 짜증 나!!”
문을 있는 힘껏 열어젖히며 소리 질렀다. 그래도 법사 새끼의 목소리 덕분에 심사 후에 ‘적합자’로 센터에 가는 걸 어떻게 처리할지 대충 정리가 됐다.
도착한 곳은 F17, 두꺼운 문이 띄엄띄엄 있는 곳으로 보아 녹음실이 자리한 곳인 듯했다.
정말 더럽게 넓은 곳이다.
빨리 별님이 강탈당한 악보나 찾아주고 정령사에게 가야지, 그렇게 지고하신 별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하려고 했다.
벌컥―
닫혀있던 문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열리고.
―아, 아아…….
머리 가죽이 벗겨지거나, 무언가에 가격당한 듯 보고 있기만 해도 괴로워지는 몰골을 한 것들이 열린 문에서 쏟아져 나오지만 않았더라면 그랬을 거다.
더욱이, 그것들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볼 수 없는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아아, 성녀님……!
―왜…왜 저희를 버리셨나요!!
글로리아에서의 나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뻗어대고 있고 말이지.
“…왜 건물을 부숴먹는지 알겠네.”
나는 감흥 없는 눈으로 내게 손을 뻗으며 다가오는 것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괜찮은데… 정령사님이 홀리시려나?”
그건 좀 곤란하다.
[권능, ‘성역(聖域)’이 활성화됩니다.]
쿠―웅!
짓누르는 무게감에 나를 향해 다가오던 것들이 바닥에 처박혔다.
―성…녀……!!
나는 후드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멈췄던 다리를 다시 움직였다. 가까이서 보니 모습이 투명하게 비치고 있다. 망령을 부르는 악보라더니, 이건 그냥 악귀를 불러온 거잖아?
―서, 성녀……!
바닥에 처박힌 채 한쪽 눈만이 남아있는 남자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은 나를 붙잡지 못하고 그대로 통과해 버리고 말았다. 아래를 보니 무수한 손이 나를 붙잡고자 움직이고 있었다.
거머리같이 들러붙으려고 하는 꼴이 아주 가관이었다.나는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고는 다시 다리를 움직였다.
“…어디 한번 열심히 해봐.”
어차피 잡을 수 없을 거다.
나는 거머리처럼 달라붙으려 하는 것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별의 힘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고, 난장판이 된 녹음실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
―흐, 흐흐흐.
발목을 붙잡는 손길에 나는 눈가를 찡그리며 시선을 내렸다. 머리가 터진 여자가 내 발목을 강하게 틀어쥐고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아… 뭣 같게 만드네.”
손톱이 얼마나 긴지 살갗을 파고 들어가 상처를 만들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나를 잡을 수 있게 된 건지 모르겠다.
나는 짧게 혀를 차고는 다리를 털어 여자의 손을 뿌리쳤다.
[권능, ‘신벌(神罰)’이 활성화됩니다.]
내리치는 푸른 전격은 덤이었다. 신벌에 맞은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사라진다. 손톱을 세워 칠판을 긁어내는 것만 같은 그 소리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으…으어…….
―노하셨다, 글로리아께서 노하셨다…….
나를 붙잡고자 손을 뻗어대던 것들이 이제 저들끼리 뭉쳐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다. 나는 그들을 향해 피식, 비웃음을 흘려주고는 녹음실 안쪽으로 걸음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