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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38화 (38/168)

38화

오, 그래도 상관이라 이건가.

고개를 살짝 숙이는 도비 새끼의 모습에 나는 입술을 살짝 벌렸다. 강하수가 작게 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그래서? 급한 용무라니 뭡니까? 너무 급한 게 아니면 손님들 배웅을 하고 듣고 싶은데요.”

“급한 용무입니다.”

강하수의 미소가 살짝 일그러졌다. 나와 도하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상황을 구경 중이었다. 강하수가 이번에는 크게 숨을 푹 내쉬었다.

“도비 군…….”

“대표님! 정말 급한 용무입니다!!”

도비 새끼가 다급하게 강하수의 말을 자르더니 소리 질렀다.

“대표님, 정말 이 몸을 그 막장 드라마에 계속 출연시킬 작정입니까!!”

“…….”

도비 새끼가 출연 중인 드라마라면, 요새 한창 인기를 몰고 있는 퓨전 사극 드라마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을 말하는 걸 거다.

쌍둥이로 태어난 두 형제가 황위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게 주된 스토리인데…….

근데 그게 왜 막장이라는 거지? 막장일 게 하나도 없는데?

“어째서 이 몸이 황제가 되지 못한다는 겁니까!!”

아, 네가 황제가 되지 못해서 막장이라는 거야?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참고로 도비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 중 첫째 역할을 맡았다.

“…2황자가 결국 황위에 오르나 보군요.”

도하인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 주연 배우에게 스포를 당해버렸네.

멍청한 얼굴로 서있던 강하수가 도하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는 우리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이고! 잠깐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정령사야, 우리 그냥 이대로 보내주면 안 될까?

하지만 정령사는 우리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김 실장님, 도비 군 지금 드라마 촬영하다 나온 겁니까?”

“네? 네……. 죄송합니다.”

김 실장, 이라고 불린 남자는 일전 도비 새끼가 용사님네 가게에서 추태를 부렸을 때 그와 함께 있던 남자였다. 연예인 잘못 만나 참 고생이구나 싶었다.

정령사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한다.

“도비 군, 받은 대본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렇게 무작정 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제가 몇 번이나 말했지요. 도비 군을 자유롭게 나돌아 다니게 두는 이유는…….”

“압니다! 저와 회사에 득이 돼서라는 것! 하지만, 대표님. 생각을 해보십시오! 이 몸의 이미지가 뭡니까!”

강하수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간결하게 대답했다.

“안하무인(眼下無人)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런 제가! 황제가 되지 못한다니……!!”

“…….”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잠깐만, 안하무인인 네가 황제가 되면 그대로 폭군이 되는 거 아니야?

안타깝게도 이걸 생각하는 건 나뿐인 것 같았다.

강하수가 끙, 앓는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감독님이랑 작가님하고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강하수의 말을 끊었다.

“대표님. 나 감독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요.”

“아… 네, 알겠습니다.”

정령사가 탄식과도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얼굴을 한 번 문지르고는 아차, 싶은 얼굴로 우리에게 말했다.

“도하인 부길드장님, 그리고 하운 양. 정말 죄송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돼서…….”

배웅해 주기가 곤란해졌다는 뜻을 도하인은 곧바로 알아들었다.

“아닙니다, 대표님. 저희끼리 갈 수 있습니다. 모쪼록 상황이 잘 해결됐으면 합니다.”

나는 후드를 푹 눌러쓰며 대충 고개를 꾸벅였다. 괜히 도비 눈에 띌까 무섭다. 그렇게 종종걸음을 치며 도비 새끼 옆을 지나가려 할 때였다.

“대표님! 이 몸에게 패배자란……. 어?”

망할 도비 새끼가 말을 하다 말고는 고개를 홱 돌린다. 뒤통수에 따갑게 느껴지는 시선에 나는 더욱 걸음을 빨리했다.

“이봐! 네 녀석은 글…….”

“러먹은 우리 도비 군! 자, 감독님께 사과하고 이야기하러 갑시다!!”

대표님, 나이스.

나는 뒤를 흘긋거리며 엄지를 치켜세워 줬다. 정령사가 빨리 가기나 하라며 눈치 준다. 나는 그런 그에게 혀를 날름거려 주었다.

“도하운, 안 오고 뭐 해?”

“지금 가!”

도하인의 재촉에 걸음을 내디디려 할 때였다.

[성좌, ‘하늘에서 떨어진 좌천사’로부터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눈앞에 뜬 메시지에 고개를 살짝 돌렸다. 정령사는 도비 새끼를 처치하느라 바빠 보였다.

뭐… 의뢰를 처치할 사람이야 널리고 널렸으니……. 특히 요즘 마왕님께서 아주 열심히 일하신다.

|Pr. 마왕| : 형님께서 놓아주지 않느니.

“…….”

우마한 길드장한테 잡혀갔다더니 그대로 감금당했나 보다.

그럼, 마왕님 다음으로…….

|Pr. 9서클대마법사| : 법사는 지금 하준 형님이랑 같이 있죠! 의뢰받기 참 곤란하죠!!

“…….”

어째 오빠를 부르는 호칭이 가벼워졌다, 법사 새끼야? 오빠는 얘한테 도대체 뭘 쥐여다 준 거야?

나는 짧게 혀를 차고는 의뢰를 살펴보기로 했다. 맡아줄 생각은 없다. 그냥 살펴보기만 할 생각이다.

의뢰는 용사님과 대공님이 아직 남아있으니 두 분께서 알아서 처치해 주실 거라 믿는다. 나는 이제 도하인이랑 바람 쐬러 나가야 하니까 말이다.

[성좌, ‘하늘에서 떨어진 좌천사’가 길드, 귀환(歸還)에게 H-Entertainment에 떨어진 S급 성물, ‘망령을 부르는 악보’를 찾아주기를 요청합니다.]

“…….”

그런데 괜히 살펴본 거 같다.

아니다, 헛것을 본 거다. 도비 새끼랑 마왕 새끼한테 시달리느라 정신적으로 피곤해서 헛것을 본 게 분명하다.

나는 그렇게 미간을 꾹꾹 누르며 잘못 본 거라고 치부했다.

그런데…….

핏―!

“뭐야?”

“왜 갑자기 정전이…….”

“대표님? 어디 계십니까?”

H-Entertainment 사옥 내부를 환하게 밝히고 있던 불빛이 모두 나가버리고 말았다.

도하인이 쯧, 혀를 차고는 폰을 꺼내 들었다. 환하게 밝혀지는 불빛에 얼굴을 가득 찌푸리고 있는 도하인이 보였다. 도하인은 내 팔을 끌어 잡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대낮에 난데없이 정전이야?”

“그러게. 대낮인데…….”

왜 이렇게 어둡지.

도하인이 내가 삼킨 뒷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우뚝,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보이는 거라곤 없는 넓은 창밖을 향해 느릿하게 고개를 돌린다.

“…도하운.”

“응.”

내 팔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허탈하게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삼키며 허공에 나타난 메시지를 쳐다봤다.

[‘돌발성 적합자 심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뭣 같네, 진짜.

얼굴이 절로 찌푸려진다. 그러나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풀어낼 새도 없이 도하인이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도하운!!”

“……?!”

“이거 가지고 있어. 이것도, 그리고 이것도!!”

“어? 어어?”

눈 한 번 깜빡인 사이에 내 양팔에는 온갖 잡다한 것이 가득 안겨있었다.

도하인이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내 어깨를 끌어 잡고는 외치기 시작했다.

“도하운! 얌전히 있어! 그냥! 그냥 얌전히……!! 구해줄 테니까!! 내가 꼭……!!”

도하인의 마지막 말이 내게 닿기도 전에 동생은 잔상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도하인뿐만이 아니었다.

H-Entertainment 사옥 곳곳에 있던 사람들이 빠르게 사라졌다. 소속되어 있는 연예인 전부가 헌터라더니, 그 모습을 이렇게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선별 작업이 끝나고 남은 사람은…….

“저… 길드장님?”

나와 나의 길드원뿐이었다.

강하수가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묻는다.

“제가 아직 상황 파악이 잘 안 돼서 그러는데, 우리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되기는…….”

아주 그냥 뭣 됐지.

[돌발성 적합자 심사, ―세이렌의 진혼곡 연주회― 시작합니다.]

허공에 나타난 붉게 쓰인 글자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강하수도 이를 보고는 내게 외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제 소속사 건물에서 심사가 열린 겁니까?!”

당혹감이 가득한 목소리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청와대에서도 열리고, 국회의사당에서도 열리는 게 돌발성 적합자 심사인데 네 소속사 건물에서 열리지 말란 법은 없잖아?”

돌발성 적합자 심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열릴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벌써 두 번째다. 지난 심사에서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고.

“…이렇게 자주 열리지는 않는데.”

“네?”

“아니, 그냥 혼잣말.”

나는 도하인이 쥐여준 것들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비어버린 건물을 둘러봤다.

“근데 네 소속사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거야?”

H-Entertainment에 소속된 연예인들 전부가 헌터라는 건 안다. 하지만 강하수를 제외한 소속사 관련인들이 전부 심사에서 제외되어 버리다니.

그런 내 물음에 강하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를 제외한 모두가 ‘각성자’입니다. 소속 연예인들이 헌터이다 보니 이래저래 문제가 일어날 일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식구들을 구성하게 됐다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강하수의 목소리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가 물었다.

“…그럼, 그 도비 새끼의 매니저분도?”

“네, 김 실장님도 심사를 통과한 전력이 있는 분입니다. 만난 적이 있나 보군요?”

세상에, 연예인 잘못 만난 불쌍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심사를 통과한 적합자일 줄은 몰랐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고개를 젓고 있는데 강하수가 물었다.

“그보다 이거, 꼭 해야 되는 겁니까?”

강하수는 심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리는 시스템 창을 가리키고 있었다.

[뭍으로 올라온 세이렌이 망혼을 달래기 위한 연주회를 열고자 합니다. 연주회가 열려 망혼이 몰려들기 전에 세이렌을 처치하세요.]

▷ 홀려 죽어버리거나 살아 나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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