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Pr. 신살자(길드장)| : 정령사님, 잘 들어.
잘 듣는 게 아니라, 눈 씻고 잘 봐야 하는 거겠지만 어쨌든!
|Pr. 신살자(길드장)| : 자, 이제부터 센터를 침입한 새끼는 드슬이 새끼다.
정령사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나를 본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놀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정령사가 이상했나 보다.
“…강하수 대표님?”
도하인이 손을 들어 정령사로부터 내 시선을 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경계심 가득한 그 몸짓에 정령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네? 아니, 잠깐만요! 하운 양 얼굴에 뭐가 묻어있는 거 같아서 말입니다!”
내 얼굴에 묻어있는 거라곤 미처 털어내지 못한 과자 가루뿐이었다. 나는 입가에 묻은 과자 가루를 손으로 슥 닦고는 도하인을 보며 배시시 웃음을 보였다.
도하인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내 눈가를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도하인이 손을 내리기 무섭게 다급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Pr. 정령사| : 드래곤 슬레이어님을 파실 생각입니까? 오, 세상에. 그분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Pr. 신살자(길드장)| : 나한테 칼빵을 놓은 죄.
강하수가 다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쳐다본다. 나는 눈가를 한번 툭 건드려 주었다.
내 손짓을 알아들은 강하수가 고개를 숙이며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날아드는 메시지는 변함없었다.
|Pr. 정령사| : 칼빵이라니! 도대체 그분한테 뭘 가지고 협박하려 들었길래 칼빵을 맞습니까?!!
“아니……!”
“……?”
헉, 나도 모르게 소리 내고 말았네. 도하인이 의아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 시선을 모른 척, 무시하며 몇 개 남지 않은 과자를 집어 들었다.
“여기 과자가 너무 맛있네!!”
“…강하수 대표님, 나갈 때 이것 좀 얻어 갈 수 있을까요? 저희 누나가 먹성이 좀 좋습니다.”
“네? 네, 물론이지요.”
젠장, 나는 이렇게 먹성 좋은 도 씨네 둘째가 돼버렸다.
“그보다 대표님? 침입자에 대해 할 말 없습니까? 도하운? 너도 본 거 없어?”
화살이 이번에는 나한테도 돌려졌다. 나는 눈동자를 데굴 굴리며 머리도 같이 굴려보고자 했다.
“어… 나는…….”
“하운 양은 본 게 없을 겁니다. 일행분들과 줄곧 안에만 계셨거든요. 그렇지요, 하운 양?”
“네……? 네.”
정령사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어준다.
저 새끼 왜 저러지. 나한테 뭘 뜯어내려고 저런 웃음을 보여주는 거지.
경계심을 풀지 않고 나 역시 정령사를 마주 보며 어색하게 웃어주는데 메시지가 나타났다.
|Pr. 정령사| : 드래곤 슬레이어님께 칼빵 맞았다고 했지요?
|Pr. 신살자(길드장)| : ㅇㅇ
|Pr. 정령사| : 그럼, 그분을 직접 만났을 테니 드래곤 슬레이어님 인상착의 좀 말씀해 보십시오.
“……!”
정령사, 너 이 새끼!
감격에 겨워 정령사를 쳐다보니 정령사가 한쪽 입꼬리만 슬며시 끌어 올린다. 나는 그 재수 없는 웃음을 이번만큼은 너그럽게 넘어가 주기로 했다.
정령사의 말에 뭔가를 생각하는 거 같던 도하인이 턱가를 한 번 쓸고는 미간을 좁히며 정령사에게 묻는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대표님께서는 뭔가를 보셨나 봅니다?”
“네, 사실 그분이 침입자가 맞는지 긴가민가해서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수상쩍은 사람을 보기는 했었습니다.”
도하인의 눈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수상쩍은 사람이라니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물론이지요.”
나는 정령사의 대답에 맞추어 드슬이 새끼의 인상착의를 메시지로 전달해 주었다.
“조금 음침한 인상이었습니다. 뭔가를 막 중얼거리는데…….”
정령사가 말을 멈추고서는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Pr. 정령사| : 진심입니까?
|Pr. 신살자(길드장)| : ㅇㅇ
정령사는 침을 꿀꺽 삼키고서는 애매한 웃음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성녀니, 검성이니… 뭐 그런 것들을 중얼거렸습니다.”
정령사의 말에 도하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작은 수첩에 정령사의 말을 받아 적던 도하인이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말했다.
“성녀나 검성을요? 성녀라면 힐(Heal) 계열 각성자들을, 검성은… 그렇게 별명이 붙여진 각성자가 몇 있기는 한데…….”
“뭔가 어둠의 자식 같았습니다. 아래위로 꽁꽁 싸맨 게… 그래도 그 새끼 사연 있어 보였다는군요!”
“예……?”
“…….”
정령사, 저 또라이 새끼. 메시지로 보낸 걸 그대로 읽어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그래도 정령사는 자신의 실수를 곧장 알아차리고서는 말을 고쳤다.
“아,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었다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말이 헛나갔네요. 하하.”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에 도하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정령사의 말은 믿는 것 같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그렇게 안도의 숨을 내쉬는데 망할 하인 새끼가 또 곤란한 질문을 내던졌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강하수 대표님. ‘정령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
그냥 좀 넘어가자, 망할 동생님아!!
찾아온 적막에 정령사가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별일 아니었습니다. 제 취미가 등산인데 소속사 식구들이 그런 저를 보고 ‘정령사’니 뭐니 그렇게 부르거든요.”
“…네?”
도하인이 당혹감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기요, 정령사 씨?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산에 올라가서 얼마나 자연 친화적으로 굴기에 정령사니 뭐니 그렇게 부른다는 거야?
그대로 입을 다물어 줬으면 하는데 정령사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우마한 길드장님의 동생분께서 그걸 알고 저를 그렇게 불렀나 봅니다.”
“…….”
마왕님이 그걸 어떻게 알아.
도하인 역시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나 보다. 우마한 길드장님의 동생분이 ‘마왕’이라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눈치 100단, 도하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대답이 됐을까요? 됐으면 좋겠군요, 도하인 부길드장님.”
도하인의 말을 끊은 정령사의 목소리에서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도하인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모르게 그런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나는 눈가를 살짝 찡그리며 정령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저기요, 정령사님.
|Pr. 신살자(길드장)| : 목소리에 힘 실어 넣지 마시죠? 우리 집 막내가 쫄았잖아!
|Pr. 정령사| : 계속 물어보지 않습니까? 이렇게라도 해서 입을 다물게 해야지요!!
|Pr. 신살자(길드장)| : 도비 새끼 입이나 다물게 해.
|Pr. 정령사| : 도비 군은 백 번 천 번 입을 다물게 해도 소용이 없단 말입니다!!
“…….”
저걸 자랑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씩씩거리고 있는 얼굴을 보니 자랑은 아닌 거 같다.
나는 소파에 편하게 등을 기대며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알겠으니까 재주껏 대화 좀 끝내봐.
|Pr. 정령사| :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잔뜩 성이 난 것 같던 얼굴은 어디 가고, 정령사가 부드럽게 미소를 내보이며 입을 열었다.
“도하인 부길드장님? 하실 말씀 끝났으면 이만 일어나도 괜찮을까요?”
“네? 아… 네. 제가 대표님의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군요. 죄송합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강하수 대표님께서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보이며 도하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하인도 가식적인 웃음을 보이며 강하수의 손을 맞잡았다.
남들이 보면 훈훈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지만 나는 안다. 눈앞에 비치는 광경은 철저한 자본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도하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도하운, 그만 일어나.”
“네에.”
나는 어기적거리며 도하인의 뒤를 따랐다. 정령사가 배웅해 주겠다며 문을 열어준다. 아니, 열어주려고 했다.
“대표님! 이 몸의 말을 좀 들어주십시오!!”
퍽―!
“……!!”
벌컥 열린 문이 그대로 정령사, 강하수의 안면을 강타하고 말았다.
강하수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붙잡았고, 도하인이 헛숨을 들이마시며 내 앞을 막아섰다.
“대표님! 대표……. 왜 그러고 계시는 겁니까?”
“빈 씨!! 대표님 사무실에 그렇게 막무가내로 쳐들어가면 어떻게 해!!”
익숙한 이름에 나는 도하인의 어깨 너머를 살폈다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망할 도비 새끼가 문 앞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강하수가 얼굴을 한 번 문지르고는 화를 애써 가라앉힌 목소리를 느릿하게 뱉어냈다.
“…도비 군.”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강하수의 말 한마디에 사무실의 공기가 웅― 진동하기 시작했다.
착각일까 싶었지만 도하인이 식은땀을 흘리는 걸 보니 착각이 아닌 모양이다.
|Pr. 신살자(길드장)| : 님, 진정해.
|Pr. 정령사| : 이걸 어떻게 진정합니까!! 코가 사라지는 줄 알았단 말입니다!!
왜 나한테 성질이람.
나는 입술을 삐죽이고선 정령사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따라 해.
|Pr. 신살자(길드장)| : 후―하, 후―하.
|Pr. 정령사| : 뭐 하는 짓입니까?!
정령사가 지금 놀리는 거냐면서 잔뜩 성이 난 메시지를 보냈지만 이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라마즈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게 효과가 있었나 보다. 방을 울리던 공기가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도비 군.”
“…네, 대표님.”
강하수가 방긋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제가 용무가 있으면 분명 ‘노크’를 하고 들어오라 했을 텐데요?”
“너무 급한 용무라 미처 살피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