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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36화 (36/168)

36화

어디서 무슨 사고를 치려고 그러나 했더니…….

“도하준 길드장님의 여동생분은 왜 만난 겁니까?”

“도하준……?”

“하운의 길드장님 말입니다.”

강하수는 은근슬쩍 떡밥을 던졌고.

“알 것 없습니다, 대표님.”

도비는 떡밥을 물지 않았다. 그는 마왕과 닮았지만 가장 안 좋은 건 닮지 않은 사내였다.

강하수는 속으로 혀를 차고는 도비의 드라마 촬영이 이루어지는 사극 세트장 앞에 차량을 멈춰 세웠다.

“곧 김 실장님이 도착하실 겁니다. 그때까지는 사고 치지 마세요, 도비 군. 아시겠죠?”

사고 치지 마라, 그 목소리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져 도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강하수는 도비의 고갯짓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아, 김 실장님 도착했네요. 자, 도비 군. 촬영 잘 끝내고 오세요.”

도비는 이번에도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촬영을 잘 끝내고 오라는, 마지막 말에서 절로 침을 꿀꺽 삼키게 만드는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비가 뒤늦게 얼굴을 찌푸리며 강하수를 노려봤다.

숱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미 ‘일반인’인 것으로 판명된 강하수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입가에 걸치고 있었다.

도비는 쯧, 혀를 차고는 강하수의 차량에서 내렸다.

“도빈 씨!!”

강하수는 도빈, 예명 도비가 자신의 매니저에게로 성난 걸음을 옮기는 걸 보고는 다시 차를 몰았다. 사극 세트장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전화가 울린다.

강하수는 이를 블루투스로 연결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네, 말씀하세요.”

―길드, 하운의 부길드장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아이고, 벌써 찾아오셨네.”

센터의 침입자와 관련하여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던가. 강하수는 괜히 찔리는 마음을 숨기며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내보였다.

“금방 갑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해주세요.”

―네, 대표님.

강하수는 몰랐다.

이때, 액셀을 최대한 천천히 밟아 최대한 늦게 소속사 건물에 도착했어야 했음을.

* * *

[H-Entertainment]

이제는 보기만 해도 지겨운 이름이 벽면에 크게 걸려있다. 바람 쐬러 나간다는 곳이 여기일 줄은 몰랐는데.

“대표님께서 금방 도착하신답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천천히 와도 괜찮다고 전해주십시오.”

도하인이 꾸민 게 분명한 웃음을 입가에 걸치고서는 말했다.

그 가식 넘치는 웃음에 두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나고 말았다. 나는 돋아난 소름을 문지르며 구시렁거렸다.

“나한테는 조금만 늦어도 잔소리면서…….”

“너랑 대표님이 같아? 그리고 조용히 해. 여기 놀러 온 거 아니니까.”

망할 하인 새끼! 바람 쐬러 가자면서 일하러 오는 게 어디 있어!! 여기 오는 줄 알았으면 집에 콕 박혀있었을 텐데!!

불퉁하게 입술을 삐죽이는데 하인 놈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대표님이랑 이야기 끝내고 남산 타워나 올라가자. 너 높은 곳 좋아하잖아.”

“남산 타워보다 더 높은 곳.”

“야.”

“스킬 사용해 줘.”

평소에는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뛸 놈이 끙, 앓는 소리를 내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활짝 웃으며 도하인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도하인은 그런 내 엄지를 고이 접어주었고 이에 질세라 나는 다시 엄지를 치켜들었다. 물론, 도하인은 또다시 내 엄지를 접어주었다.

그렇게 도하인과 손장난을 치고 있는데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아이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빨리 온다는 게 그…….”

강하수 대표님께서 도하인의 옆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는 헛숨을 들이켜 마신다. 나는 눈웃음을 지어주며 메시지를 날렸다.

|Pr. 신살자(길드장)| : 정령사님, 하이ㅎ

|Pr. 정령사| : 뭐머ㅓㅂ니까1!!! 길드장님께서 여기에는 왜 있습니까!!!!

강하수의 눈이 빠질 듯이 크게 떠졌다. 나는 그를 향해 한껏 비웃음을 날려주었다.

|Pr. 신살자(길드장)| : 동생 따라온 건데 무슨 문제라도?

|Pr. 정령사| : 동새애애앵~?

날아든 메시지에 나는 어깨를 으쓱여 주었다. 때마침 도하인이 강하수를 조심스레 불렀다.

“저… 강하수 대표님?”

말을 하다 말고 우리를, 정확히는 나만 빤히 쳐다보는 게 이상해 보였나 보다. 그 부름에 강하수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네, 네네! 정신을 잠깐 다른 곳에 둬버렸네요!! 저, 그쪽에 있는 아가씨는…….”

와우, 저렇게 능청스럽게 나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도하인이 미소를 그리며 나를 강하수에게 소개해 줬다.

“제 쌍둥이 누나인 ‘도하운’입니다. 일전, 센터에 침입자가 있었을 당시에 대표님과 함께…….”

“네, 네!! 기억나네요! 아이고, 제가 깜빡하고 있었네요!! 반가워요, 하운 양! 이렇게 또 만나네요.”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 얼굴을 향해 나는 활짝 웃으며 엿을 날리기로 했다.

“네, 반가워요. 오랜만이네요, 아저씨.”

“…….”

정령사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옆에 앉아있는 도하인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정신을 차리고 내 말에 반응한 건 정령사였다.

|Pr. 정령사| : 아저씨라니요!!! 댁이나 나나 같은 20대거든요!!!

H-Entertainment의 대표 이사, 강하수는 젊은 나이에 대표직에 오른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래 봤자 액면가는 그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그러니까 노안이라는 소리였다. 노안의 좋은 점은 나이 들면 동안인 거라던데…….

그래도 이 부분이 콤플렉스였던 모양인지 강하수가 억울함 가득한 얼굴로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왔다.

|Pr. 정령사| : 그리고 따지고 보면 당신이 제일 나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누구보고 아저씨래!!!

|신살자(길드장)| : (૭ ᐕ)૭?

|Pr. 정령사| : 으아아악! 망할 법사 놈!!!!

왜 애꿎은 법사를 욕하고 그래?

나는 도하인이 보지 않는 틈을 타 강하수를 향해 혀를 날름 내밀어 주었다.

“도하운, 대표님께 그게 무슨 실례야.”

근데 이걸 봤나 보다.

나는 삐죽 내밀었던 혀를 집어넣고는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강하수에게 영혼 없는 사과를 건넸다.

“죄송해요, 아저씨. 아! 또 아저씨래! 죄송해요, 대표님!!”

일부러 엿 하나를 더 줬다. 강하수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이는 게 보인다.

하하, 쌤통이다!

강하수가 두 손을 주먹 쥐었다가 펼치는 걸 반복하고는 느릿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하, 아닙니다.”

|Pr. 정령사| : 이렇게 두 번 죽이는 겁니까?

|Pr. 신살자(길드장)| : 내가 그래서 진언 작작 날리라고 그랬지^^?

|Pr. 정령사| : 세상에, 이프리트시여! 우리 길드장님께서 이렇게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사람이었을 줄이야!!

|Pr. 신살자(길드장)| : 뭐라는 거야;;

헛소리를 시전 중인 정령사님은 이제 무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자식이 계속 내 신경을 건드린다.

그렇게 정령사와 메시지로 티격태격하는 사이, 그의 비서가 과자를 내왔다.

나는 도하인의 눈치를 살피며 과자를 집어 먹었다.

망할 정령사님께서 맛있냐며 잘도 먹는다고 메시지로 놀려댄다. 나는 정령사를 향해 가운뎃손가락 하나를 메시지로 날려주고는 과자를 하나 더 집어 먹으려 손을 들었다.

“대표님.”

그러다가 도하인의 목소리에 들었던 손을 얌전히 내렸다. 강하수가 그 모습을 봤는지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웃음을 짓는다.

“네, 도하인 부길드장님.”

“제가 이렇게 대표님을 찾아온 건 일전 센터에 침입한 자에 대해 듣고 싶어서입니다.”

“…….”

나와 강하수는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Pr. 정령사| : 길드장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당신 동생이 왜 갑자기 저걸 묻는 거예요?

|Pr. 신살자(길드장)| : 나도 몰라; 일단 모르겠다고 대답해 봐;;

나는 옆에 앉아있는 도하인을 흘긋거렸다가 황급히 고개 숙였다. 도하인이 고개를 살짝 돌리고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뭔데? 바람 쐬러 나가자더니,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나를 데리고 온 거야?

다행히 도하인의 시선은 얼마 안 가 내게서 떨어졌다.

“저… 도하인 부길드장님?”

강하수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도하인이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강하수는 목 언저리를 긁적이며 애매한 웃음을 보였다.

“이거 곤란해서 어쩌지요? 센터에 침입한 분에 대해서는 저도 아는 게 없어서 말입니다…….”

강하수 대표님, 연기 나이스!

난처하다는 듯이 웃음을 보이는 얼굴이 누가 보면 진심이라고 믿겠다. 엄지라도 치켜세워 주고 싶은데 도하인이 강하수의 얼굴을 굳게 만들었다.

“우마한 길드장님의 동생 되는 분께서 그러셨다죠.”

내 경험으로 보건대 마왕 새끼는 되는 일도 안 되게 만든다.

가령…….

“대표님이 ‘정령사’라고요. 거기에 대표님께서 그 일을 했다고도 하셨다죠.”

지금처럼 말이다.

|신살자(길드장)| : 망할 마왕 새끼.

|마왕| : 짐에게 왜 그러느냐……?

|9서클대마법사| : 마왕님 난데없이 욕 들어먹었죠? 기분 나쁘죠ㅋ?

|마왕| : 신살자가 왜 욕을 한 건지 모르겠느니.

평생 모를 거다, 이 자식아! 마왕님 입단속을 못 한 게 이렇게 부메랑처럼 날아오다니.

나는 치밀어 오르는 한숨을 애써 집어삼켰다.

|Pr. 정령사| : 기ㄹ드장님, 이거 어떻게 합니까?

적지 않게 당황한 모양인지 정령사가 초조함 가득한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결국 작게 숨을 내쉬고서는 답장을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걱정ㄴㄴ

눈치 빠른 도하인이라면 강하수가 아무리 연기를 잘하더라도 어색함을 보이는 그 순간을 낚아채고 말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 진실에 거짓을 섞어 조금 헷갈리게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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