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부탁?”
그런데 말을 잘못 골랐나 보다. 도하인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더니 빼액 소리 질렀다.
“야!! 너는 그걸 또 덥석 받아 오냐?! 위험한 거면 어쩌려고!!”
“위험한 거 아니었어!”
“아니었으면 뭔데!!”
맘마를 애타게 찾아대는 드래곤 새끼였다고는 말 못 한다. 웬 이름 모를 파충류가 태어났는데 어떻게 잡기도 전에 자연으로 도망가 버렸다고 할까.
어떻게 변명을 해야 잘 변명했다고 칭찬을 들을까 머리를 굴리는데 현관문이 열렸다.
“형!!”
나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던 오빠였다.
“하운아.”
오빠는 나를 보자마자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내 앞에 선 오빠가 나를 꼭 끌어안더니 듣기만 해도 간담 서늘한 말을 들려주었다.
“하운이는 당분간 외출 금지야.”
“?!”
“카드도 모두 끊을 테니까 그렇게 알아.”
“!!”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오빠님?
얼떨떨한 얼굴로 오빠를 쳐다보는데 오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걸음을 돌렸다.
“주변에 헌터 배치해 둘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알겠지, 하운아? 하인이는 따라오고.”
멍하니 서있는데 도하인이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지나갔다.
“그래도 폰은 안 끊었네. 다행인 줄 알아.”
저걸 말이라고!
스르륵, 닫히는 현관문에 나는 비딱하게 웃음을 지으며 메시지를 날렸다.
|Pr. 신살자(길드장)|: 드슬이, 너 이 개새끼야 밤길 조심해라ㅎㅎ 내가 네 등짝에 칼 꽂으러 갈 테니까 말이다^^!!
물론, 돌아오는 답장은 없었다.
“아악! 이 시발 새끼!!”
나는 머리를 붙잡고는 기구한 인생에 비명을 질러댔다.
* * *
그렇게 외출 금지 3일째.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라고 하던가. 나는 길드로 들어오는 의뢰를 길드원들에게 모두 맡기며 여유를 즐기는 중이었다.
|Pr. 마왕|: 카페를 옮겼느냐?
의뢰의 절반 이상을 해치우는 중인 마왕님께서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찾으셨지만, 이건 외출 금지가 풀리고 즐겨 찾던 카페를 옮기면 될 일이다.
어디 보자, 외출 금지 풀리면 서하랑 카페 탐방이나 할까.
나는 소파에 몸을 눕히며 TV를 틀었다. 간만의 휴식, 드라마나 보면서 즐겨야지.
우웅―
그런데 내 휴식을 방해하는 메시지는 뭘까.
처음 보는 번호로 메시지가 하나 와있어서 깔끔하게 스팸으로 등록시키려고 했다.
[010―□X□X―X■X■]: 글로리아.
‘글로리아’라는 이름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는 화면에 뜬 메시지에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나를 이렇게 부를 사람은…….
우우웅―
[010―□X□X―X■X■]: 먼저 연락하겠다더니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이 몸이 먼저 연락을 하게 됐다. 이 몸이 네 녀석의 연락을 기다린 건 아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여 보내는 것이니 당장 답장하도록.
“…….”
도비 새끼뿐인데.
긴 장문의 메시지에 나는 턱 언저리를 긁적이고는 화면을 두드렸다. 전화를 걸기 무섭게 상대는 전화를 받았고, 나는 활짝 웃음을 보였다.
“여보세요? 도비 번호인가요?”
―그래, 도비 번호……. 뭐?
강하수 대표님께서는 도비의 목에 목줄을 거는 것에 실패하신 모양이다.
그래도 때를 맞추어 나오는 드라마 재방송에 도비의 얼굴이 보이는 걸 보니 나름대로 노력은 하셨나 보다.
뭐가 어쨌든 간에 나는 정령사의 혀에 명복을 빌어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바로 시간 내봐.”
내가 건넨 말에 돌아오는 답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기가 차는군. 내가 그리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나?
“한가하니까 그런 메시지 보낸 거 아니야?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면서요? 메시지로 장소 보내줄 테니까 거기서 만나.”
안 만나면 그만이고.
사실, 그만이면 안 된다. 어떻게 내가 ‘글로리아’의 귀환자란 걸 알았는지 알아봐야 하니까.
어쩌면 드슬이 새끼를 알지도 모른다. 만났을지도 모르고.
―좋다. 내 친히 네 녀석을 만나주겠다.
음, 도비 새끼가 드슬이 새끼를 알 리가 없을 것 같다. 만났을 리도 없을 것 같다.
나는 그대로 전화를 뚝, 끊고는 메시지를 보냈다.
평소 자주 가던 카페는 마왕님께 점령당한 것 같으니 장소를 옮겨야 했다.
그렇게 정한 곳은…….
[010―□X□X―X■X■]: 안 그래도 이곳에 볼일이 있었는데 기가 막힌 우연이군.
용사님네 가게인데 잘못 정한 것 같다.
용사님께 미리 양해의 말씀을 구할까 하다가 깽판 치러 가는 것도 아닌데 굳이 구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렇게 겉옷을 챙겨 입고 집을 탈출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사람을 불렀다.
|Pr. 신살자(길드장)| : 법사님.
무작정 도비 새끼를 만나려는 게 아니다. 오늘은 도비를 만나기 정말 적합한 날이었다.
첫 번째, 날씨가 무척이나 맑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어찌나 화창한지, 이건 나가서 사진 찍고 인별에 올려야 할 하늘이었다. 즉, 집 나가기 좋은 날이었다는 거다.
그래, 이건 핑계였고 실질적인 이유는 두 번째 때문이었다.
|Pr. 신살자(길드장)| : 법사님.
오늘, 오빠는 법사 놈에게 게이트 관련으로 보상을 해주고 싶다며 도하인과 함께 집을 나섰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도 모르게 잠깐 나갔다 올 수 있는 날이라는 거였다.
|Pr. 신살자(길드장)| : 님아.
|Pr. 신살자(길드장)| : 님.
|Pr. 신살자(길드장)| : 야.
근데 이 자식이 계속 읽씹이네?
|Pr. 신살자(길드장)| : 계속 읽씹하시겠다는 거죠? 마왕님 불러야겠다. 법사님 혀 좀 어떻게 해달라고^^!
|Pr. 9서클대마법사| : 。•́︿•̀。
드디어 답장이 돌아왔다.
|Pr. 9서클대마법사| : 우리 길마님, 지금 법사가 길마님네 가족 되는 분들이랑 대화 중인 거 뻔히 알면서 메시지 보내기 있긔, 없긔?
|Pr. 신살자(길드장)| : 있긔다^^
|Pr. 신살자(길드장)| : 됐고, 포털이나 열어줘.
|Pr. 9서클대마법사| : 우리 길마님, 법사 진짜 살뜰히도 부려먹으려고 하죠?
|Pr. 신살자(길드장)| : (૭ ᐕ)૭?
|Pr. 9서클대마법사| : 아오;
법사는 뿌린 대로 착실히 거두는 중이었다.
곧 눈앞에 붉은 마법진이 나타났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메시지를 하나 더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오빠랑 도하인 좀 오래 붙잡아 주고.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법사한테 원하는 게 너무 많죠ㅠ?
분명 메시지인데 왜 찡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나는 괜히 귓가를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Pr. 신살자(길드장)| : 그리고 오빠랑 도하인이랑 헤어지면 연락도 좀 줘.
|Pr. 9서클대마법사| : •́ㅿ•̀
알겠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싫다는 거면 법사님네 찾아가야지. 오빠한테 물으면 가르쳐주겠지.
참고로 법사님은 연차를 내고 쉬는 중이다. 언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몸 좀 사린다는데… 과연 법사님의 생각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오빠도 그걸 걱정해서 만난다는 것 같던데 어떻게 될지. 뭐, 알아서 잘되겠지!
괜한 걱정을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어깨를 으쓱이곤 그대로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법사님의 포털은 언제나 그랬듯이 인적 드문 골목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누가 알아볼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싶어 후드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바삐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가게 문을 열자마자 보인 건…….
“그대여, 맘마가 맛있소?”
―맘마!!
“그렇군. 입맛에 맞는 것 같아 참 다행이오.”
“…….”
대공의 ‘그대’ 소리였다.
그대로 문을 닫아버릴까 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대공님, ‘그대’라며 말하고 다니는 거 부끄럽다면서? 그런데 왜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그대그대거리고 있는 거야?
딸랑, 울리는 소리에 대공 새끼가 고개를 들더니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다.
“길마님?”
“…제발 입 좀 조심해. 누가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불러?”
“지금 손님 없으니까 길마님이라고 부르죠. 길마님을 길마님이라 안 부르면 뭐라고 불러요?”
뚱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이름을 말해준 적이 없는 것 같다.
“도하운.”
“네?”
나는 뒤집어썼던 후드를 끌어 내리며 말했다.
“사람 있을 때는 ‘도하운’이라고 불러. 길마님이니 뭐니 그렇게 부르지 말고.”
내 말에 대공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가 싶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맘마!!
맘마 귀신도 대공을 따라서 대답한다. 나는 대공의 품에 얌전히 안겨있는 드래곤을 눈짓하며 물었다.
“그보다 드래곤 새끼는 왜 데리고 있는 거야? 용사님이 허락했어? 가게에서 키워도 된대?”
“허락했단다.”
자리를 비우고 있는 줄 알았던 용사님이 부엌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셨다. 용사님이 드래곤을 보며 눈가를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유대공이 저 드래곤 새끼를 가게의 마스코트로 키워보자면서 하도 난리를 부려서 원.”
용사님의 말에 나는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물었다.
“마스코트? 실험체로 잡혀가는 게 아니라?”
“우리 림이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내 말에 대공이 빽, 소리 지른다. 나는 그 목소리에 심드렁하게 대꾸해 주었다.
“하지만 드래곤이잖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곳에서 ‘드래곤’은 흉포한 몬스터일 뿐이다. 누가 보면 놀라 비명을 지르며 신고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라는 거다.
내 말에 대공이 불퉁한 얼굴로 말했다.
“강아지로 보이게 환각 마법도 썼고, 들리는 소리도 개 짖는 소리로 들리게끔 했거든요!”
그 마법이 ‘귀환자’에게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어쨌든 대공은 그러고는 림이인지 뭔지의 뺨에 얼굴을 비비며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우리 림이 덕분에 매출이 얼마나 늘었는데!!”
지랄한다 싶었다.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도비 새끼가 별꼴을 다 본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