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린 무시다. 지나다니는 사람이라곤 없는 골목길로 들어가 포털 셔틀을 불렀다.
|Pr. 신살자(길드장)| : 법사님~
|Pr. 9서클대마법사| : •́ㅿ•̀
|Pr. 9서클대마법사| : 법사 지금 완전 어이없죠? 완전 어이 털렸죠?
|Pr. 신살자(길드장)| : 됐고, 포탈이나 열어줘^^!
|Pr. 9서클대마법사| : 이 망할 길마님이 진짜 나를 포탈 셔틀로 만들어 버리려고 하네^^?
|Pr. 신살자(길드장)| : 잔다면서 안 자고 있던 죄임ㅎ
|Pr. 9서클대마법사| : 법사는 자려고 했죠! 근데 용사님이 진언 날리셨죠!! 법사 완전 놀랐죠!!!
|Pr. 신살자(길드장)| : (૭ ᐕ)૭?
|Pr. 9서클대마법사| : ㅅㅂ;
어서 포털이나 열라고 좌표를 보내줬다. 좌표를 보내기 무섭게 붉은 마법진이 펼쳐졌다.
|Pr. 9서클대마법사| : 법사는 이제 진짜진짜 잘 거죠!!!
자든지 말든지 나는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라 따로 답장은 보내주지 않았다.
그렇게 붉게 펼쳐진 마법진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
가슴 아래를 꿰뚫은 검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틀어막힌 입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돌아보려 했지만 뒤에서 붙잡힌 몸에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내 입을 틀어막은 새끼는 꿰뚫은 검을 느릿하게 돌리고는 단번에 빼내었다.
격하게 올라오는 고통과 함께 몸이 기울어졌다.
[권능, ‘치유’가 활성화됩니다.]
그것도 잠시, 피가 멎으며 꿰뚫렸던 몸의 상처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성검(聖劍), ‘영광의 검’이 주인의 부름을 기다립니다.]
단번에 빌어먹을 검의 손잡이를 잡으며 이를 휘둘렀다.
“……!”
푸르게 이는 궤적을 가까스로 피해낸 남자가 눈가를 살짝 찡그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다 뺨을 타고 흐르는 핏물을 알아차렸는지 손을 들어 그를 닦아낸다.
나는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야.”
해로운 법사님의 말대로다.
“시발, 너 뭐야?”
오늘 일진 왜 이렇게 사납지?
《칭호, ‘검성(劍城)’의 봉인이 강제적으로 해제됩니다.》
[효과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효과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효과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감소가 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지.
|Pr. 9서클대마법사| : (૭ ᐕ)૭?
자러 간다던 법사 놈이 왜 저런 메시지를 보내나 했더니 포털이 닫혀있었다.
나는 법사의 메시지를 무시하고서는 이를 으득 갈며 검을 치켜들었다.
“누구냐니까? 누구시길래 난데없이 뒤에서 칼빵을 놓지? 응?”
길드, ‘하운’을 노린 세력인 걸까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죽이려 들지 않고 납치하려 들었겠지.
그렇다면 저건 누굴까?
좁은 인간관계에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지만 내린 답은 하나였다.
초면에 칼빵을 놓은 댁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소리 없는 내 질문을 들었는지 남자가 느릿하게 입술을 뗐다.
“…성녀.”
“……?”
남자가 밝힌 정체에 나는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다짜고짜 내게 칼빵을 놓은 새끼는 분명 남자다.
창백하게 질려있는 안색이 검에 찔린 건 내가 아니라 저 새끼인 건 같지만 어쨌든 나를 찌른 건 틀림없이 XY 염색체를 가지고 계시는 남성분이 분명했다.
그런데 뭐?
“성녀 같은 소리 하네.”
그보다 ‘성녀’라…….
마법과 같이 은유적인 표현으로 힐 계열의 스킬을 가지고 있는 헌터들을 그렇게 부른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런 의미로 나를 부른 건 아닌 거 같지?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단숨에 이름 모를 새끼의 앞으로 검을 치켜들었다.
“……!!”
죽이고자 달려든 건 아니었지만 간단히 피할 줄은 몰랐다. 곧장 눈앞으로 나를 찔렀던 검이 들이닥쳤다.
치켜들었던 검을 그대로 돌려 눈앞에 들이닥친 검을 막아냈다.
카앙―!
내가 막아낼 줄은 몰랐는지 남자가 놀란 눈을 보인다.
“검성까지…….”
나는 들린 이름에 놀란 눈을 떴다. 혹시나가 결국 역시나가 됐다.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너, 이 시발 새끼. 귀환자(歸還者)구나?”
“…….”
침묵은 긍정이란 건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얼굴을 모르는 귀환자는 두 명뿐이다. 드래곤 슬레이어와 무림 제일고수. 둘 다 길드 채팅에서 더럽게 만나기 힘든 새끼들이기는 하지만…….
“드래곤이나 잡으러 갈 것이지 왜 애먼 사람을 잡으러 왔나 모르겠네?”
무림 제일고수가 기사들이나 쓸 법한 검을 휘두를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놀란 눈을 보이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나는 씨익 웃음을 보이며 곧장 맞대고 있던 검을 힘주어 휘둘렀다.
“―!!”
순식간에 중심을 잃고 무너진 몸에 그대로 발을 올려붙였다.
갈비뼈 하나 부러뜨릴 심산으로 찬 건데 망할 슬레이어 새끼는 뒤로 밀려났을 뿐 멀쩡해 보였다.
길드 메시지에 모습을 드러낸 때는 단 두 번뿐인 읽씹의 대가와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이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장 쥐어 패버리고 싶지만 그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Pr. 신살자(길드장)| : 대공, 가게 주변으로 결계 좀 쳐줘.
|Pr. 북부대공| : ??
|Pr. 북부대공| : 님, 아직 안 가셨어여?
|Pr. 신살자(길드장)| : 안 갔으니까 결계 좀 빨리!!
금색의 마법진이 공중에 펼쳐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드래곤 슬레이어 님께서 어딘지 우수에 찬 눈으로 마법진이 펼쳐졌던 하늘을 바라본다.
대공이랑 똑같은 마력을 지닌 새끼를 차원 이동한 곳에서 만났나 보지. 과거의 기억에 잠겨있는 것 같은 새끼를 향해 나는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누군지는 알아냈고, 그럼 물어볼 건 하나네.”
검을 고쳐 쥐고서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향해 이를 들었다.
“난데없이 내게 칼빵을 놓은 이유가 뭘까, 길드원님?”
저 새끼는 내가 귀환의 길드장인 걸 알면서도 공격했다. 공격한 게 아니라 아예 죽이려 들었다.
성녀니 검성이니 말하는 꼴을 보니 내게 붙어있는 칭호가 봉인되어 있는 줄 알고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평범한 ‘일반인’과도 같은 몸일 줄 알고 죽이려 들었다는 거다.
“…….”
하지만 읽씹의 대가님께서는 면 대 면에서도 읽씹을 시전하셨다.
절로 올라가려는 혈압을 성녀의 이름으로 다스리며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푸르게 이는 궤적에 슬레이어 님께서도 가볍게 검을 휘두르셨다.
반으로 쪼개진 궤적이 옆으로 들어선 건물의 벽에 기다란 상흔을 남겼다. 각 건물의 주인들께 애도를 표하고는 곧장 땅을 박찼다.
드래곤 슬레이어 님께서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검을 드신다.
나는 검을 치켜드는 대신, 모습을 숨기고 있던 사슬을 밖으로 드러냈다.
“―!!”
대화 좀 나누려고 했건만, 끝까지 입을 열 생각을 안 하시니 묶어서 패버릴 수밖에 없지.
물론 말로만 그런다는 거다.
내 주먹 아프게 뭐 하러 때려?
아프겠지만 그래도 한두 대는 저 배때기에 꽂아 넣을 것 같다. 내 몸에 구멍을 낸 새끼한테 주먹 한 대는 그래도 먹여줘야지.
박찼던 발을 멈추고선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팔을 강하게 묶는 사슬 때문인지 드래곤 슬레이어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슬레이어 새끼가 살짝 찡그린 얼굴로 나를 보며 물었다. 아주 느릿하게 말이다.
“…왜.”
“그건 내가 물어봐야 할 말이고.”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찌푸렸다.
아주 느릿하게 짧은 대답만 내뱉는 목소리에 속에서 열불이 일어날 것 같았다.
이 부글거리는 속을 다스릴 방법은 한 대 먹이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사슬을 가까이 끌어당기려고 했다.
“길마님?”
“!!”
망할 대공님께서 골목길 사이로 얼굴을 내밀지만 않았으면 말이다. 사실 대공이 얼굴을 내민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권능, ‘배후 감지’가 활성화됩니다.]
등 뒤쪽에서 느껴지는 살기가 문제였지.
황급히 검을 치켜들며 날아드는 것을 막아냈다. 그것 하나로 끝날 줄 알았는데 커다란 오판이었다.
“…이런 미친.”
하늘을 뒤덮고 있는 푸른 진이 보였다. 눈에 아주 익숙한 것에 잠깐 동요했다가 들리는 목소리에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길마님!!”
내 앞으로 금빛이 어우러진 실드가 쳐졌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들이닥치는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드슬이 새끼를 묶고 있던 사슬을 풀어 내 앞쪽으로 움직였다. 그러기 무섭게 푸른 빛이 번쩍이며 나를 향해 전격이 내리쳤다.
콰광―!!
막아낸 사슬에서 눈 뜨기조차 힘든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이러다 또 등 뒤에서 칼빵 맞는 건 아니겠지.
그런 불길한 생각이 들 때였다.
“실례.”
“……?!”
온종일 귀가 닳도록 들었던 목소리가 바로 뒤쪽에서 들렸다. 잘못 들었나 했지만 아니었다.
“우리 길마님, 길에서 칼질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엄청 위험하죠!!”
“너……!”
올려다본 얼굴은 법사 새끼가 확실했다.
법사 놈이 두 눈을 휘게 접으며 손을 들었다.
“법사는 이러다 포털 셔틀 말고 지우개 셔틀도 될까 봐 정말 걱정되죠.”
왜 저런 말을 하나 싶었는데 법사의 손짓 한 번에 푸른 진이 붉게 변하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내리치던 전격도 말끔하게 모습을 감췄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잠잠해진 하늘이 보였다. 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법사 놈도 보였다.
“잔다면서……! 아니, 이게 아니라. 드슬이는?! 대공!!”
“길마님이 붙잡고 있던 사람이라면 도망쳤어요!”
대공이 다급하게 뒷말을 덧붙였다.
“왜 안 막았냐고 묻지 마요! 저도 벼락 맞아서 죽을 뻔했거든요!!”
누가 뭐랬냐.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구기며 손에 쥐고 있던 성검을 있던 자리로 되돌려 보냈다.
“너는 여기 왜 있는 거야?”
“그거야 우리 길마님께서 열어달라는 포털은 이용도 안 하시고 보낸 메시지에 답장도 안 하시니 걱정이…….”
“개소리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