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정령사의 말에 나는 놀란 눈을 떴다.
“걔가 드라마를 한다고? 드라마 안 망해?”
“우리 애 연기 잘하거든요?! 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죠. 도비가 했던 드라마 망한 적 있잖아. 그때 엄청 욕먹었지 않았어?”
법사의 말에 정령사가 빼액 소리쳤다.
“도비 군 때문에 망한 거 아닙니다! 스토리가 워낙 막장이라서 망한 거지!! 그리고 뭐가 안으로 팔이 굽습니까! 길드장님을 보세요!!”
“팔이 안으로 굽어지지 않는 인간도 있느냐?”
“환장하겠네!”
정령사가 환장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내가 미쳤다고 너희를 좋다고 품어줄까?”
“저것 보세요!”
정령사의 쨍한 외침에 법사가 키득거리며 웃었고 마왕은 새도 아닌데 왜 품느냐고 물었다. 미친, 진짜 환장하겠네.
그사이 막힌 도로를 빠져나온 하얀 SUV 차량은 우리 집이 보이는 골목길에 진입해 있었다.
“나 저기서 내려줘.”
“앞까지 데려다주지 않아도 됩니까?”
“우리 길마님, 혼자서 잘 걸어갈 수 있죠? 법사는 안전벨트 풀기 싫죠.”
“혼자서 잘 걸어갈 수 있고 안전벨트 안 풀어도 되니까 그 망할 입 좀 그만 나불거려!”
법사의 머리에 딱밤을 놓아주고는 차 문을 열었다.
“신살자야, 세 번째 언약은 어떻게 할 게냐.”
“세 번째도 있습니까?! 오, 이프리트시여!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렸군!”
의뢰도 해결했고 망할 놈의 자유로운 집요정 씨도 어느 정도 해결됐다.
마지막 세 번째는 뭐로 해야 할까…….
머리를 굴려봤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마왕님, 언약 나중에 맺어도 되는 거야?”
“가능하도다.”
“그럼 생각해 보고 나중에 맺을래.”
빠앙―
시끄럽게 경적을 울린 정령사가 잔뜩 화난 얼굴로 내게 외쳤다.
“그냥 지금 끝내십시오!”
“한국인은 빨리빨리죠.”
그 옆에서 법사가 깐족거렸고.
나는 눈웃음을 지어주고는 차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아주었다.
“내 맘이다.”
얄밉게 한 소리 내뱉어 주는 건 덤이었다.
정령사가 창문을 내리고 뭐라 소리쳤지만 나는 혀를 삐죽 내밀어 주고는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9서클대마법사| : 정령사님 빡쳤죸ㅋㅋㄲㅋㅋ
|정령사| : 옆에서 웃지나 마십시오!!
|9서클대마법사| : 。•́︿•̀。
|9서클대마법사| : 정령사님, 웃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죠ㅠ나쁜 사람이죠ㅠㅠ
|정령사| : 옆에 있잖습니까! 말로 하라니까요!!
|9서클대마법사| : (૭ ᐕ)૭?
|정령사| : 으아아아아1!!!
|마왕| : 신살자야, 정령사가 난폭 운전을 시작했느니.
어쩌라고다.
나타난 메시지를 무시하며 침대 위에 풀썩 몸을 눕혔다.
|용사| : 너희들 도대체 모여서 뭐 하고 있는 거니?
|9서클대마법사| : 궁금하신가요?! 궁금하면 500원!!
|용사| : 꺼지렴.
|9서클대마법사| : 。•́︿•̀。
정말 잘들 놀고 있다. 길드의 메시지를 다시 끄고는 폰을 들고 화면을 두드렸다. 하인 놈이 집에 도착했냐고 톡을 보낸 게 보였다.
하인 놈의 톡은 무시하고 오빠한테 집에 무사히 들어왔으니 서하를 잘 부탁한다고 톡을 보냈다.
답장이 돌아왔지만 이를 끄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씻어야 하는데.”
1년 같았던 하루였다.
망할 게이트에 법사, 정령사까지. 생각지도 못한 길드원을 두 명이나 만났다.
두 사람과 좋게 일을 해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에 많은 일이 일어난 하루였다.
“피곤하다.”
얼굴을 한 번 문지르고는 침대 위에서 몸을 굴렸다. 길드의 메시지가 여러 개 떴지만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일단 좀 자자,
그렇게 두 눈을 꼭 감아버렸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S급 성물, ‘이름 모를 파충류의 알’이 꿈틀거립니다!]
망할 별님의 선물이 내게 엿을 선사할 것이라는, 그 메시지를 말이다.
* * *
숙면을 취하는 중이었다.
뺨에 촉촉하고 불쾌한 뭔가가 닿기 전에는 말이다. 뒤척이며 고개를 돌렸다.
―…마!!
“……?”
집에서 절대 들릴 리 없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가늘게 두 눈을 떴다.
―맘마!
검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작은 도마뱀이 보였다.
“…….”
두 눈을 끔뻑이다가 도마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잘못 본 거다. 아니, 못 봤다.
―맘마! 맘마!!
하지만 어림도 없다는 듯이 도마뱀 새끼가 아니, 드래곤의 해츨링인 게 분명한 놈이 내 뺨 위에 찰싹 붙어 앞발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찰싹, 뺨을 때리는 발길질에 나는 벼락같이 일어났다.
“흐아악! 시발!!”
해츨링의 앞발을 잡고 냅다 벽으로 던진 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행동이었다.
동물 학대라고 말하지 말자, 저건.
―맘마―악!!
“…….”
저건 드래곤 새끼다.
벽에 내던져진 해츨링이 작은 날개를 휘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나는 검은 머리 짐승을 집 안에 들인 기억이 없는데? 하인 놈인가? 오빠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맘마! 맘마아!!
이 세계에서 드래곤은 괴수종의 하나로 오직 파괴만을 일삼는 몬스터일 뿐이다. 저렇게 배고프다면서 울부짖지 않는단 말이다.
―맘!! 마!!
“아, 알았어. 잠깐만…….”
멍한 정신을 억지로 붙잡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 소란에도 방문이 열리지 않는 걸 보니 오빠랑 도하인은 아직 집에 안 들어온 것 같다.
바삭―
“……?”
바닥을 딛기 무섭게 뭔가가 발바닥에 부서졌다. 뭔가 싶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두꺼운 껍질과도 같은 것이 잔뜩 흩어져 있었다.
“…이건 또 뭐야.”
황망하게 중얼거리는데 푸른빛의 창이 떠올랐다.
[S급 성물, ‘이름 모를 파충류의 알’이 오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그리고 언제부터 드래곤이 파충류에 포함된 거야……?
―맘마!!
일단 저 새끼 드래곤의 입에 뭐라도 물려야겠다. 졸린 눈을 비비고는 드래곤의 뒷덜미를 잡아 들었다.
그렇게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망했네.”
드래곤이 먹을 만한 게 없었다.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피망 하나를 집었다.
“네가 이런 걸 먹었던가.”
―퉤!
이놈이.
이 망할 드래곤 새끼가 입에 가져다주지도 않았는데 침부터 뱉었다.
―맘마! 맘마!!
목덜미가 잡힌 드래곤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애처로운 울부짖음에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망할 별님께서 내게 엿을 줬어. 그것도 커다란 엿을 줬다.
그보다 우리 길드에 드래곤 슬레이어님이 계시는데요. 어쩌라는 거야, 진짜?
그래도 오빠나 도하인이 없는 순간에 도마뱀 새끼가 태어나서 다행이지. 만약 두 사람이 있을 때 태어나서 밥 달라고 난리를 부려댔으면…….
오우,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몸을 부르르 떨고는 밥 달라고 울부짖는 드래곤을 도맡을 놈을 찾았다.
제발 메시지 빨리 읽기를!
|Pr. 신살자(길드장)| : 대공, 지금 ㅇㄷ?
|Pr. 북부대공| : 알바 뛰는 중인데여? 왜여?
나이스!
다행히도 답장이 곧장 날아왔다. 시계를 흘긋거리니 자정이 살짝 지난 시간이었다.
망할! 잠도 제대로 못 잤네!
짜증스레 머리를 긁적이고는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드래곤 키울래?
|Pr. 북부대공| : ??
|Pr. 북부대공| : 드래곤이여? 갑자기 무슨 드래곤??
나는 발버둥 치는 드래곤을 놓아주고는 방에 들어가 겉옷을 챙겨 입었다.
|Pr. 신살자(길드장)| : 의뢰 보상으로 받은 알에서 드래곤이 태어났어.
|Pr. 북부대공| : ???
그래, 황당하지? 나도 황당해.
이 망할 드래곤은 도대체 왜 우리 집에서 태어난 거지? 테이머 칭호 가지고 있는 대공 집에서 태어나면 되잖아?
―맘마!!
“야! 그거 먹는 거 아니야!!”
반쯤 뜯어진 과자 봉투 사이에 도마뱀 새끼가 얼굴을 집어넣고 있었다.
황급히 꼬리를 붙잡아 올리고서는 누가 볼세라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맘마? 맘마!!
“네 맘마 줄 사람한테 갈 거니까 얌전히 좀 있어봐.”
어쨌든 이 녀석은 우리 집에서 절대로 못 키운다.
|Pr. 북부대공| : 일단 데리고 와봐여! 사장님네로 오면 됨!!
다행히도 대공은 내가 보낸 메시지에 흥미가 생겼나 보다. 용사님네 가게의 좌표를 받은 뒤 법사 새끼를 불렀다.
|Pr. 9서클대마법사| : 우리 길마님ㅠ이 야심한 시간에 도대체 어디 가려고 그러죠?
|Pr. 신살자(길드장)| : 신경 끄고 포탈이나 열어.
|Pr. 9서클대마법사| : 돌아오는 건 알아서 하셔야 하죠! 법사는 이제 잘 거죠!!
가운뎃손가락을 날려주고는 법사가 열어준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인적 뜸한 골목길을 나와 곧장 용사님네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만, 가게에 손님 없나?
괜한 걱정에 대공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Pr. 북부대공| : 괜찮아여! 게이트 터진 거 때문에 손님 없어여!!
다행이네.
딸랑, 종을 울리며 나는 용사님네 가게로 들어갔다. 과연 대공의 말대로 가게는 텅 비어있었다. 카운터에서 대공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길마님?”
“다른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렇게 불러?”
“그럼 다른 사람이랑 착각했다고 하면 되죠! 그보다 드래곤이라니요? 드래곤 어디 있어요? 진짜 드래곤이에요?”
대공이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카운터에서 나왔다. 나는 품에서 새끼 드래곤을 꺼내 대공의 눈앞에 들이밀어 주었다.
“여기.”
―맘마!!
새끼 드래곤이 검은 날개를 활짝 펼치며 버둥거린다.
대공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헉, 대박. 해츨링이잖아요? 어디서 데리고 온 거예요?”
“의뢰 보상으로 받은 알에서 태어난 거라니까?”
대공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해츨링을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맘마! 맘마!!
“배고픈가 보네. 잠깐만 기다려 봐.”
대공은 그렇게 말하고는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