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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27화 (27/168)

27화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화랑의 길드장, 우마한이었다. 오빠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우마한 길드장, 노크도 모릅니까?”

“아, 이거 실례. 마훈이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우마한이 우리를 둘러보더니 활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로운 씨도 계셨군요!”

법사가 시선을 살짝 돌리며 영혼 없는 웃음을 지었다.

“…네, 길드장님. 불행히도 제가 아직 여기 있었네요.”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부탁할 것이 있었습니다!!”

우마한이 품에서 하얀 종이를 꺼내더니 법사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게 뭐죠……?”

고개를 갸웃거리는 법사에게 우마한이 오빠와 같이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사례는 두둑하게 챙겨드리겠습니다. 마훈이 좀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집에 데려다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고는 얼굴을 붙여 소곤거린다.

“저 자식 마법은 너무 요란하거든요.”

그걸 또 들은 모양인지 마왕님께서 도도하게 턱을 치켜세우며 말하셨다.

“요란하지 않느니라.”

“시끄러!!”

우마한이 쨍하니 외쳤다.

법사는 한쪽 눈썹을 들썩이며 하얀 봉투 안을 쳐다봤다. 쳐다보기 무섭게 법사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 얼굴에 오빠도 품에서 하얀 봉투를 빠르게 꺼내 법사에게 건넸다.

“로운 씨, 하운 쪽에서도 사례는 두둑하게 챙겨드리겠습니다. 이번 게이트 사건으로 회사 일에 지장이 생기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무슨 자리든 만들어 줄 수 있다며 영입을 시도하신다.

법사는 멍한 얼굴로 오빠와 우마한 길드장에게서 받은 봉투를 보고서는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머니 이즈 뭔들. 믿고 맡겨만 주십시오. 모두 댁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역시 돈이 최고지.

법사의 포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오빠와 우마한 길드장이 정령사의 차에 올라타는 우리를 끝까지 배웅했기 때문이다.

“정령사님아, 님은 뭐 없어요? 내가 이렇게 데려다주는데?”

“데려다주기는 뭘 데려다주는 겁니까? 지금 운전하는 사람 저잖아요?”

강하수의 말에 법사가 입술을 삐죽인다. 불퉁한 얼굴도 잠시, 품에서 하얀 봉투 두 개를 꺼내더니 해맑은 웃음을 보이며 외쳤다.

“법사는 이제 부자 됐죠!!”

“부자는 무슨. 그 돈으로 신분 세탁할 방법이나 찾아보시지요. 이제 회사원 헌터 H 씨라고 불릴 텐데 말입니다, 해로운 씨.”

정령사의 말에 법사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법사는 절대 혼자 죽지 않을 거죠. 강하수 대표님, 밤길 조심하세요. 법사가 곱등이 잔뜩 잡아서 머리 위에 풀어버릴 거니까요!”

끼이익―!

도로를 매끄럽게 내달리던 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안전벨트를 꼭 붙들어 잡았다.

빵빵, 거리는 경적 소리가 들렸다. 핸들과 하나가 됐던 강하수가 희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이프리트시여! 그런 끔찍한 소리 좀 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런 그에게 딱밤을 놓아주었다.

“운전이나 똑바로 해!!”

“왜 저만……!”

“안.전. 운.전. 안.전.제.일.”

조수석에 앉은 법사가 얄밉게 한 글자씩 끊으며 강하수에게 속삭여 주었다.

강하수가 두 눈을 부릅뜨며 법사를 노려본다. 법사는 입가를 가리며 눈웃음을 지어주었다.

사이좋은 두 길드원의 모습에 눈물이 나올 것 같다. 그때 내 옆자리에 얌전히 앉아계시던 마왕님께서 입을 여셨다.

“신살자야.”

“왜.”

“내리고 싶도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집어삼키며 얼굴을 쓸었다.

“…참아.”

나도 내리고 싶으니까.

“파이어볼 따위를 감히 이프리트 님께 비빈단 말입니까!!”

“어차피 같은 불 속성이죠? 충분히 비빌 수 있죠?”

“무엄한!!”

안전 운전 하라니까 정령사는 그사이에 법사랑 다시 싸우고 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창문을 내렸다. 바람이라도 쐐야 할 것 같았다. 안 그러면 속 터져서 죽을 것 같아.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신살자야, 짐의 머리칼이 짐의 시야를 가리느니.”

“머리 묶어.”

“춥습니다!!”

“실프에게 온풍으로 바꿔달라 해.”

“법사님 추워서 뒈질 것 같죠!”

“뒈져.”

인생 피곤했다.

안 그래도 피곤한 인생인데 도로는 또 퇴근길이라고 막힌다.

눈이라도 붙일까 했지만…….

“정령사님아, 도로 좀 시원하게 뚫어봐요! 너무 막히죠! 법사 답답하죠!”

“시끄럽습니다!! 정 답답하면 잘난 마법으로 차 좀 옮겨주시든가!!”

법사 놈과 정령사 놈이 너무 시끄러웠다. 그래도 마왕님께서는 이 상황에서 잘만 주무시고 계셨다.

“신살자야.”

아니었네.

자는 줄 알았던 마왕님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나를 쳐다본다. 찌푸린 얼굴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리는 건 안 돼.”

“맞아요, 마왕님!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줘요! 돈도 받았는데 일을 날림으로 처리할 수는 없죠?”

“더군다나 세울 곳도 없습니다.”

말 한 마디에 두 마디, 세 마디가 덧붙여졌다. 나는 앞좌석에 앉아있는 두 놈들에게 앞이나 똑바로 보라고 두 눈을 부라려 주었다.

“내리고 싶지만 짐이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니라.”

“그럼 뭔데?”

“정령사와의 마법이 아직 끝나지 않았느니.”

“……?”

정령사와 마법?

내가 저 녀석이랑 무슨 마법을…….

“아, 맞다.”

도중에 끊겼던 ‘금단의 언약’이 떠올랐다. 워낙 정신없게 상황이 굴러가서 잊고 있었다.

정령사는 알고 있었나 보다. 핸들을 내리치며 성을 내기 시작하는 걸 보니 말이다.

“마왕님!! 그걸 왜 말하는 겁니까, 왜!!”

“마왕님, 나이스! 법사도 까맣게 잊고 있었죠!”

법사가 마왕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어 주었고 마왕은 입꼬리를 올리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끝을 맺어야 하느니.”

마왕님, 네가 말하니까 굉장히 이상하게 들린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 모양인지 법사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치켜들었던 엄지를 접었다.

마왕이 그걸 왜 접느냐는 듯이 법사와 같이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신살자야, 어떻게 하겠느냐.”

“어떻게 하기는. 네 말대로 끝을 봐야지. 그렇지, 정령사님?”

정령사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고는 대답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렇게 대답해 준다면야 뭐. 마음대로 하는 게 인지상정이지.

“도비한테 목줄 좀 채워줘.”

내 말에 제일 먼저 반응한 건 마왕님이셨다. 마왕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신살자야, 노예를 들이고 싶은 게냐?”

“아니, 미친놈아. 사람 목에 진짜 목줄을 채우라는 게 아니라… 시발! 내가 왜 이걸 설명하고 앉아있어야 해!!”

“아프도다!!”

마왕의 어깨를 있는 힘껏 때린 뒤 크게 숨을 내쉬었다.

|9서클대마법사| : ㅋㄱㅋㅋ마왕님 겁나 웃기죸ㅋㄲㅋ

|정령사| : 마왕님은 좀 이상하신 것 같습니다―^^

|9서클대마법사| : ㅇㅈ이죠!!

날아든 메시지에 마왕이 버럭 소리 질렀다.

“짐은 이상하지 않도다! 신살자야! 저놈들이 나를 놀리고 있느니!!”

억울하다는 듯이 외치는 목소리에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해 주었다.

“마왕님, 너 이상한 거 맞아. 그래도 걱정하지 마. 쟤도 이상하고 쟤도 이상하거든.”

“법사는 멀쩡하죠!”

“저는 또 왜 동류 취급입니까!”

몰라서 물어?

나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해 주었다. 정령사가 내 대답에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크흠. 하지만 길드장님, 도비 군에게 목줄을 채우는 건 힘듭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콘셉트를 잡은 친구라서요.”

“자유로워도 애가 너무 자유롭던데? 연예인이 그래도 되는 거야?”

“그걸 매력으로 삼는 애라서.”

매력 좋아하시네. 매를 부르는 힘이라면 인정한다.

“그보다 도비 군과는 어떻게 만난 겁니까?”

“나도 몰라. 걔가 알아서 찾아왔었어.”

“길드장님을요? 일반인과 스캔들은 곤란한데요.”

사실 누구와의 스캔들도 곤란하다면서 정령사가 덧붙였다.

정령사가 곤란해지는 건 내 알 바 아니다. 그런데 스캔들이라니! 그건 내 쪽에서 거절한다!!

듣기만 해도 끔찍한 말에 질색하고 있는데 법사 새끼가 상황 파악 못 하고 깐족거렸다.

“길드장님은 일반인 아니시죠? 힘을 숨기고 있는 찐따들을 이끌고 계시는 가장 늙은 찐따시죠?”

“죽고 싶냐.”

법사가 내 말을 못 들은 척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런 법사 놈에게 경고의 눈빛을 한번 보낸 뒤 정령사에게 물었다.

“도비 걔도 헌터지?”

“네. 저희 회사에 소속된 연예인들은 모두 헌터로 활동 중입니다.”

“걔는 네가 정령사인 거 알아?”

“알 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헌터라고 해도 아직 그쪽으로는 미숙한 아이거든요. 발전 가능성이 무궁하기는 하지만요.”

“그래? 그런데 내가 귀환자인 건 어떻게 알았지?”

끼이익―!

잘만 굴러가던 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앞쪽으로 쏠렸던 머리가 좌석에 부딪히기 무섭게 외쳤다.

“제발 좀 안전 운전! 새끼야!!”

마왕이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정령사 새끼가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혹감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도비 군이 길드장님이 귀환자인 걸 알았다고요? 어떻게요? 그럴 리가 없는데?”

“길마님 망했죠.”

“안 망했으니까 너는 좀 닥치고 있어줘. 회사원 헌터 해로운 씨.”

해로운 새끼가 시무룩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정령사에게 말해주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으니까 목줄 좀 채워달라고. 만나서 이야기는 해볼 건데…….”

“일단 알겠습니다. 마침 드라마 제의도 들어왔으니까요.”

[두 번째 언약이 맺어졌습니다.]

언약이 맺어졌다는 메시지가 떴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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