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아―악!! 진짜 잡아당기는 거야, 미친 마왕님아?! 손 놔! 안 놔?!!”
붉게 마법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멍하니 입을 벌릴 뿐이었다.
[성좌, ‘내가 바로 악마 파브르’ 님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의뢰를 받아들였다.
|Pr. 북부대공| : 허어어어엌
|Pr. 북부대공| : 저 이제 해방되는 건가여ㅠㅠㅠ?
그럴 리가 있겠냐.
대공의 메시지를 간단히 무시하며 신살자의 권능을 해방시켰다.
“길마님! 마왕님 좀 어떻게 해봐! 내 머리!!”
“마왕님, 법사님 놔줘.”
마왕님의 손에서 풀려난 법사님이 울상 가득한 얼굴로 머리를 정리한다.
“근데 길마님, 의뢰는 왜 맡은 거야?”
“앞에 봐봐.”
“앞? 앞은 왜… 허억.”
법사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떨리는 손가락을 들었다.
[성좌, ‘내가 바로 악마 파브르’가 길드, 귀환(歸還)에게 탈출해 버린 S급 충왕종들의 제거를 부탁합니다.]
언제부터 곱등이가 S급 충왕종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신 거야…….”
내 중얼거림에 별님께서 응답해 주셨다.
[성좌, ‘내가 바로 악마 파브르’가 성소(聖所), ‘염화 지옥’의 혼란을 가라앉히는 과정에서 관리 실수가 있었다고 사과합니다.]
저런 건 똑바로 관리하셨어야죠!
“짐이 처리하겠느니.”
마왕님께서 창을 빼곡하게 가린 곱등이 떼를 향해 걸음을 내디디셨다.
샤샤―샥!
동시에 움직이는 수십, 수백, 수만 마리의 고갯짓에 마왕님께서 걸음을 멈추셨다.
“신살자야.”
“응.”
“못 하겠느니.”
“…….”
깨갱, 마왕님께서 KO당하셨다.
“법사님.”
“건물 날려버려도 되나요, 길마님?”
“…….”
어떻게 도움이 되는 애들이 한 명도 없을 수가 있지.
저 곱등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조용히 잘 처리했다고 소문이 날까 싶었다.
“아이고, 학생들! 아직 안 돌아갔어요?”
“!!”
분명 회의에 들어갔을 강하수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렸다.
“다행이네요! 그게 말이죠, 화장실 가려고 잠깐 나왔는데 도대체 어디가 어디인지… 근데 학생들은 여기 서서 뭐 하고 있어요?”
마왕님을 제외한 나와 법사는 뻣뻣하게 굳은 목 근육을 억지로 움직였다.
강하수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웃음도 잠시, 그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지더니 얼굴에 경악이 일기 시작했다.
이내.
“흐아악! 이프리트시여!!”
“?!!”
나와 법사 사이로 붉은 불기둥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후―웅!!
붉은 불꽃은 창에 붙은 곱등이들을 모조리 태워 죽인 후 거짓말같이 꺼져버렸다.
“…….”
“…….”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를 깬 건 법사였다.
“소, 손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셨네?”
“…….”
자연계 헌터라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강하수 대표는 일반인이다. 이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입증된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프리트’와 함께 ‘불꽃’이라니…….
강하수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법사의 말에 간단하게 부정했다.
“잘못 봤나 보군요.”
“제 시력 2.0인데요. 잘못 볼 리가 없죠?”
“0.2로 떨어지셨나 보군요.”
파지직, 법사와 강하수 사이에서 전기가 튀는 것 같다.
나는 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 답도 없는 상황을 경쾌하게 해결해 줄 메시지를 하나 보내기로 했다.
|Pr. 신살자(길드장)| : 네 머리 위에 곱등이.
“우오오! 운디네시여!!”
강하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치켜들었다. 그와 동시에 물보라가 천장을 뚫으며 솟구쳐 올라갔다.
웨에에이엥―!!
―침입! 침입!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웨에에이엥―!!
“…….”
센터를 요란하게 울리는 비상벨 소리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 닥치지 않는 입이 있었으니.
“도하운아, 저 녀석 정령사인 거 같…….”
아니까 닥쳐줘.
나는 마왕의 입을 찰싹 소리 나게 때렸다.
“저기다!!”
“저기 침입자가 있다!!”
망할!!
절로 욕이 나오는 상황이다. 나는 법사에게 눈짓했고 법사는 마왕에게 눈짓했다.
마왕 새끼가 네 눈짓을 알아듣겠냐!!
있는 힘껏 법사의 귀를 잡아당기며 작게 소리 질렀다.
“빨리 포털 열어!!”
“아악! 알았어!!”
붉은 마법진이 펼쳐졌다. 나는 넋이 나가있는 강하수 대표와 마왕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법사의 포털은 우리가 모여 앉아있던 센터의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S급 성물 ‘이름 모를 파충류의 알’이 창고에 보관되었습니다.]
[의뢰가 종료되었습니다.]
[칭호, ‘신살자(神殺者)’의 모든 권능에 제한이 가해집니다.]
이렇게 의뢰가 끝나버리다니.
힘 안 들이고 간단하게 의뢰가 끝났으니 좋아해야 하는 상황이기는 한데…….
“어째서 이런 일이……!”
“?”
강하수 대표가, 아니, 정령사 새끼가 풀썩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더니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친다.
“곱등이가……! 왜! 왜 머리 위에!!”
“그거 거짓말이었는데.”
“…….”
강하수가 두 눈을 부릅뜨며 나를 노려봤다. 나는 뭐 어쩌라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여 주었다.
그사이 자리에 앉은 법사가 깐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곱등이가 좀 징그럽기는 했죠? 근데 정령사님아, 님은 바로 코앞에서 우리 메시지를 그렇게 무시하고 있었던 거예요? 여러 의미로 대단한데?”
정령사가 한숨을 푹 내쉬며 법사의 말에 대답했다.
“익숙해지면 메시지를 무시하는 거야 일도 아니지요.”
자랑이다.
강하수가 내 눈치를 살피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당신들이 설마 귀환의 멤버들일 줄은 꿈에도 몰랐고 말입니다!”
“마왕님이 그렇게나 존재감을 뿜뿜했는데도?”
법사의 말이 칭찬인 줄 아는지 마왕님이 어깨를 펴신다. 내가 너 때문에 제명에 못 살겠다, 마왕님아.
정령사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저 연예 기획사 사장입니다. 온갖 콘셉트들이 판을 치는데 ‘마왕님’은 놀랄 일도 아니지요.”
“짐은 콘셉트가 아니니라.”
“…….”
정령사가 할 말을 잃은 얼굴로 마왕님을 쳐다본다. 마왕은 무슨 문제 있느냐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럴 때는 내가 나서줘야지.
“너한테도 말해두겠는데 마왕님이랑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려고 하지 마.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계신 분이 아니야.”
“길마님 말이 맞죠. 법사는 마왕님이랑 대화 한번 나누려고 했다가 화병 나서 뒈질 뻔했죠!”
마왕님께서 이번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신다. 법사가 그 고갯짓에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렸고 정령사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보다 정령사님. 아니, 강하수 대표님?”
정령사가 내 말에 멍하니 벌리고 있던 입술을 다물었다. 꿀꺽 침을 삼키더니 불안함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본다.
나는 여유가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대표님께서 회사 굴리시느라 많이 바쁘셨나 보다.”
“그, 그렇지요.”
대표님께서 시선을 내리깔았다.
알아서 고개를 숙인 모습에 만족하며 초록 창을 켰다.
“보자, H-Entertainment 소속 연예인들이 누가 있나…….”
30명이 조금 넘는 연예인을 둘러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콧노래가 멈춘 건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면서다.
“또라이 새끼잖아?”
“네?”
“이 또라이가 왜 여기 있어?”
만날 때마다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한눈에 알아봤다. 정령사가 슬그머니 내 곁에 다가오더니 작게 감탄하며 말했다.
“길드장님께서 우리 도비 군을 아시나 보군요?”
“도비? 도빈이라던데?”
“그건 본명이고 예명이 ‘도비’입니다. 여기 보세요, 도비라고 적혀있지 않습니까?”
“…….”
프로필에 적힌 이름이 진짜 ‘도비’다.
정령사가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연습생 시절부터 숙소 탈출하는 걸 워낙 즐겨서요.”
“도비 이즈 프리(Dobby is Free).”
법사의 말에 정령사가 어떻게 알았냐면서 말을 덧붙였다.
“맞습니다. 어디 한번 연예계 나가서도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보라며 그렇게 지어줬지요. ‘도빈’이나 ‘도비’나 자음 하나 차이기도 하고요.”
정령사의 말에 법사가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성의 없어…….”
“성의 없다니요! 이프리트 님과 운디네 님, 그리고 실프 님과 노움 님께서 매우 흡족해하신 이름이란 말입니다!”
“댁네 정령들 취향이 좀 이상한 거 아니야?”
“어찌 그런 말을!!”
정령사가 불경하다면서 펄쩍 뛴다. 법사는 자기는 불경하다느니 그런 거 모른다면서 혀를 삐죽 내밀었다.
가운데 자리에 얌전히 앉아있던 마왕님께서 입을 여셨다.
“신살자야.”
“응.”
“짐은 나가고 싶도다.”
“안 돼, 참아.”
침입자를 찾으라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는 헌터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이런 소란 중에 마왕님께서 밖에 나가신다면 어떤 소란이 또 일어날지 모른다. 하지만 바깥의 소란보다…….
“그런데 정령사님은 왜 그렇게 길을 헤매고 계셨는지 법사는 모르겠죠? 정령들이 길은 안 가르쳐 주나요?”
“길을 가르쳐 주는 건 노움 님의 관할입니다! 하지만 이 콘크리트 건물에서 노움께서는 힘을 내실 수 없으셨죠!”
“정령님들 쓸모없죠?”
“어찌 그런 말을!!”
당장 눈앞에 닥친 소란에 절로 머리가 아파왔다. 성녀의 권능 때문에 두통이 찾아올 리가 없는데 말이다.
|9서클대마법사| : (૭ ᐕ)૭?
날아든 전체 메시지에 정령사가 뒷목을 부여잡는다. 법사 새끼가 해맑은 웃음을 보이며 키득거렸다. 나는 그런 법사의 귓불을 꼬집어 당기며 정령사를 불렀다.
“강하수 대표,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계약 하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