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오빠가 왜 거기서 나와……?
아니지, 나올 만한 상황인가?
나는 신나게 맘스터치, 아니 브라더터치를 얻어맞는 중인 마왕님을 쳐다봤다.
|Pr. 신살자(길드장)| : 마왕, 여기 게이트 몇 급이야?
|Pr. 마왕| : 형님의 손이 매우 아프도다!!
|Pr. 신살자(길드장)| : 아나, 개소리하지 말고;;
화랑의 길드장과 화운의 길드장인 우리 오빠, 두 사람이 함께 나타날 만한 게이트라면 3급 이상은 된다는 거다.
서하도 구하고 겸사겸사 게이트도 닫아버린다는 게 법사 새끼에게 정신이 팔려 잊어버리고 있었다.
암만 그래도 그렇지! 이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니!
속으로 나의 멍청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는데 오빠가 내 뺨을 붙잡고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하운아, 괜찮아? 다친 곳 없어?”
걱정이 가득 묻어 나오는 목소리에 나는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으, 응, 없어. 나 괜찮아.”
잘못 대답했나 보다. 오빠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없기는 뭐가 없어! 힐러!! 힐러가……! 젠장!! 우마한 길드장! 당신 힐 계열 스킬 없습니까?”
“없습니다. 가지고 있었으면 이 자식 치료하고도 남았겠지.”
“귀 좀 놓아라, 형님!!”
나도 마왕도 멀쩡하다.
“서하?! 서하야!!”
서하도 당연히 멀쩡하다.
|9서클대마법사| : 새새끼 얘네 진짜 끈질기네ㅔㅔ!!!!!
|북부대공| : ??
|북부대공| : 님? 뭐하고 계시는 거에여;;
멀쩡하지 않은 건 법사 새끼뿐이다.
콰―앙!!
하늘에서 터지는 붉은 빛의 섬광에 자리에 있는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도대체 뭐야.”
“법!!”
나비처럼 날아올라 벌처럼 빠르게 마왕 새끼의 입을 틀어막았다.
“……?”
구면이지만 지금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실 우마한 길드장님께서 댁은 누구인데 귀한 남의 집 동생의 입을 그렇게 틀어막고 있냐고 쳐다봤다.
하하, 죄송합니다.
|Pr. 신살자(길드장)| : 우리 게이트 들어올 때 말 맞춘 거 기억하지?
|Pr. 마왕| : 기억하느니.
|Pr. 신살자(길드장)| : 그것대로 움직이자ㅇㅋ?
|Pr. 마왕| : 알겠느니.
마왕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조심스레 마왕의 입을 놓아주었다.
“이봐요,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깨갱, 뒤로 물러났다.
“우마한 길드장, 우리 애가 일부러 그랬겠습니까?”
“우리 애? 아, 댁네 여동생인가 보군.”
오빠와 우마한과의 사이에서 날 선 신경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우마훈, 저 애랑 무슨 사이야?”
“…….”
“마훈아?”
우마훈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왜 그래? 야. 갑자기 왜 넋을 놓고 있어?”
우마한이 어깨를 툭 쳤지만 마왕님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셨다. 그제야 내가 중대한 실수를 하나 더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이트에 들어와 헌터를 만나면 서로 맡은 역할대로 움직이기로 했었다.
마왕님은 충격을 먹어 말을 잃어버린 시민 1, 나는 그런 시민 1을 데리고 헌터에게 도움을 구하는 시민 2.
우마한 길드장께서 희게 질린 얼굴로 마왕님의 어깨를 붙들어 잡았다.
“마훈아! 야!! 갑자기 왜 그래!! 형 무서워! 무섭다고!!”
“…….”
마왕님, 연기 왜 그렇게 잘해?
오빠가 나와 서하를 보호하며 침을 꿀꺽 삼킨다. 눈앞에 보이는 참담한 현실에 그제야 이곳이 게이트 안이라는 것을 다시 인지한 것 같았다.
|Pr. 신살자(길드장)| : 마왕님, 내가 미안해. 저 위에 난리를 치고 있는 법사 놈만 모른다고 하고 그냥 말해.
메시지를 보내기 무섭게 마왕님께서 크게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답답했느니.”
“야! 놀랐잖아!!”
마왕님은 다시 한번 더 귀가 잡혔다.
콰광―!!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부터 무언가 후두둑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오빠가 나와 서하의 머리를 보호하며 얼굴을 찌푸린다. 떨어져 내리는 것이 몬스터의 사체였기 때문이었다.
“와아! 진짜 미치는 줄 알았죠!!”
“……?”
살랑이며 이는 바람과 함께 부리에 쪼이기라도 했는지 닳아 해진 정장을 입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겨우 끝냈네!! 근데…….”
법사 새끼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우리 모두를 쳐다본다.
“…이 상황 뭐죠?”
동료란 위급할 때 버리는 존재. 일단 귀환의 동료는 그렇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법사 새끼를 가리켰다.
“저 헌터가 구해줬어.”
“내가?”
법사 놈이 ‘미쳤습니까, 휴먼?’을 얼굴로 외치며 나를 쳐다본다.
오빠가 나를 한 번, 그리고 법사 놈을 한 번 보더니 감격에 겨워 하며 외쳤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네……?”
그 와중에 마왕의 정체를 알고 있는 우마한 길드장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법사 새끼에게 보내는 중이었다.
|Pr. 신살자(길드장)| : 마왕, 장단 맞춰.
|Pr. 마왕| : 악기가 없느니.
|Pr. 신살자(길드장)| : 아니 시발!! 악기 치는 거 말고!!
|Pr. 마왕| : 그럼 어떻게 장단을 맞춰야 하느냐?
|Pr. 신살자(길드장)| : 헌터!! 법사 새끼 헌터로 만들어!!
마왕이 내 말에 입술을 오므리더니 법사를 향해 검지를 들었다.
“마법을 훌륭하게 사용하는 헌터이니라.”
“……!!”
마법 빼야지, 마왕님아!!
3. 갈수록 태산
마법(Magic).
마력 혹은 마나라 불리는 것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그 힘은, 변해버린 세상에서 꽤 대중적으로 쓰이고 있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은유적인 표현으로 말이다.
“마법이라니……. 자연계 헌터이신가 보군요?”
오빠의 말에 법사가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를 외면하며 메시지를 보냈다.
|Pr. 신살자(길드장)| : 그렇다고 해ㅎㅎ;
|Pr. 9서클대마법사| : 아낰ㅋㅋ길마님 저는 헌터가 아니라 법사죠ㅋㅋㅠ
대충 상황을 보고 빠져나가라고 하려 했는데 마왕님께서 다 망쳐버렸다.
법사가 그린 것만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뭐 그렇죠.”
‘마법’이란 표현은 오빠가 말한 자연계 헌터들에게 자주 붙는 표현이었다.
물과 불, 대기와 대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그것들을 불러일으키고 움직이는 헌터들은 ‘마법사’와 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마법사보다는 ‘정령사’에 가까운 힘인데, 마법사가 좀 더 대중적인 표현이라 그렇게 불리나 보다.
우리 정령사님, 어서 모습을 드러내 주세요. 당신의 이름을 어서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겁니다. 내가 너님을 찾아가 두 발로 의뢰를 뛰게 만들기 전에 말이다, 새끼야.
오빠가 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연계 헌터셨군요. 이 일대의 몬스터가 모두 정리돼 있던데 이것도 당신께서 하신 일입니까?”
“네, 뭐. 퇴근길을 자꾸 막아대서.”
법사가 어깨를 으쓱였고 오빠는 감탄했다.
하지만 화랑의 길드장님은…….
“…9서클 대마법사님?”
“……!!”
역시나!
이래서 눈치 빠른 사람은 싫다니까!!
우마한의 중얼거림에 법사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법사의 놀란 얼굴에 우마한이 탄식하며 말했다.
“마훈이가 이제부터 강해지기 위한 수련을 할 거라고 해서 무슨 개소리인가 했더니…….”
“뭐, 뭐요? 수련? 누가? 마왕님이?”
법사, 너도 입 좀 닫아.
법사의 말에 우마한이 크게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9서클 대마법사님께서 손수 마훈이를 깨우치고 있었군요…….”
“제가요?”
“형님, 나는 법사 놈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 없느니.”
혼돈과 파괴, 망각이라는 이름의 삼종 세트가 완벽하게 완성됐다. 나는 짜게 식은 얼굴로 법사와 마왕, 그리고 마왕의 형님을 쳐다봤다.
“지금 은인분께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우마한 길드장?”
나와 함께 혼파망을 구경 중이던 오빠가 보다 못해 묻고 말았다.
오빠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그제야 우마한이 아차, 실수했다는 얼굴로 입가를 가린다.
우마한과 함께 신나게 말을 주고받고 있던 법사도 낭패 어린 얼굴로 오빠를 흘긋거렸다.
태평한 건 마왕님뿐이다.
“도하운아, 너와 닮은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 인간은 누……!”
찰싹, 등을 때리는 소리가 마왕님의 입을 막았다.
“형님! 아프도다!!”
“아프라고 때린 거다.”
우마한이 마왕님과 같이 태평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오빠에게 말했다.
“도하준 길드장, 이분은 저와 안면이 있는 사이입니다.”
“제가요……?”
법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묻는다.
그의 물음에 우마한이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어주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제 동생과도 친분이 있으신데 함께 게이트에 휘말리셨던 모양입니다. 이분께서 제 동생을 구해주시는 겸 댁네 여동생도 구해주셨나 봅니다.”
우마한의 말에 법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제가요……?”
우마한은 법사의 말을 무시했고.
“형님, 나는 법사 놈과 오늘 처음 만난 사이니라. 친분이 있는 건 저쪽의 도하운이다.”
마왕은 친절히 제 혈육의 말을 고쳐주었다.
나는 나를 향하는 마왕의 손가락을 영혼 없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때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섰다.
“우마한 길드장, 나랑 장난하는 겁니까?”
오빠였다.
오빠가 내 앞을 막아서며 우마한을 매섭게 노려본다.
“저분께서는 당신도, 당신 동생도 모르시는 것 같은데?”
오빠의 말에 우마한이 할 말 많은 얼굴을 보였다.
얼떨결에 둘 사이에 끼어버린 법사가 오빠와 우마한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메시지를 보내왔다.
|Pr. 9서클대마법사| : 길마님, 이 상황 어떻게 하죠?
|Pr. 신살자(길드장)| : 마왕님이랑 아는 사이ㄱㄱ
|Pr. 9서클대마법사| : ㅋㄲㅋㅋㄱㅋㅋ 길마님아ㅠㅠ
|Pr. 9서클대마법사| : 근데 저 사람 도대체 내 정체를 어떻게 아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