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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21화 (21/168)

21화

나는 쓰러지는 서하의 몸을 가까스로 붙잡고는 입을 열었다.

“마왕, 코트 좀 벗어봐.”

“싫도다.”

“법사 새끼 옆에 나란히 걸리기 싫으면 좋은 말로 할 때 벗어라.”

몬스터의 사체로 엉망인 도로 위에 서하를 눕힐 수는 없었다.

법사 새끼 옆에 걸리기는 싫은 모양인지 마왕은 불퉁한 얼굴로 코트를 벗어 내게 건넸다.

마왕의 코트 위에 서하를 눕힌 뒤 몸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가 쏠려 얼굴이 붉어진 법사님이 보였다. 나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법사 새끼님~! 윗동네 공기 어떠세요?”

“야!!”

“길마님, 이라고 부르셔야죠?”

법사 새끼가 있는 힘껏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게이트에 들어올 때 마왕이 지껄인 말이 생각난다.

지옥 불에 뛰어든 불나방 같구나, 법사 새끼야.

“도하운아.”

“왜.”

“저기 위에 비둘기가 내려앉아 있느니.”

“아, 맞다. 저게 있었지, 참.”

7층짜리 상가 건물 위에 거대한 닭둘기가 앉아있었다. 법사 새끼 그만 놀리고 저거나 빨리 잡으러 가야지, 그렇게 생각을 했다.

“…응?”

닭둘기가 법사 새끼를 따라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이지 않았다면 곧바로 잡으러 갔을 거다.

법사 새끼를 묶고 있는 사슬의 끝을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닭둘기의 고개도 같이 움직인다.

“으아악! 뭐야! 갑자기 뭔데!!”

“오!”

“오는 무슨 오야! 그만두지 못해?!”

기겁하며 외치는 목소리에 나는 해맑게 웃어 보았다.

|Pr. 신살자(길드장)| : (૭ ᐕ)૭?

“으아아악! 시발!!”

왜, 오랜 말 중에 그런 말이 있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법사 새끼는 착실히 과거의 과오를 청산 중인 거다. 나는 두 눈을 휘게 접으며 말했다.

“법사님, 쟤가 법사님을 장난감으로 알고 있나 봐.”

휙, 하고 옆으로 돌리자 법사님께서 비명을 지른다.

“왜 그런 거 있잖아. 냥이님 장난감. 그런 걸로 알고 있나 본데?”

또다시 옆으로 휙, 하고 옮겨주었다. 어느새 마왕님도 닭둘기랑 같이 열심히 고개를 움직이고 있다.

너는 도대체 왜……. 아니다, 그냥 생각하지를 말자.

“법사님, 어떻게 할까? 이대로 던지면 쟤가 법사님 물려고 올 거 같은데?”

“스퇍! 제발, 스퇍 잇!!”

비명을 지르는 목소리에 놀리는 걸 멈췄다.

“뭘 원해! 길마님 도대체 뭘 원하냐고!!”

“의뢰 뛰어.”

“나 직장인이야!! 오전 열 시 출근! 오후 열 시 퇴근!!”

“오전 열 시까지 시간 있고, 오후 열 시 이후에 시간 있네. 주말에도 시간 있고.”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럼 말이라고 하지.”

무슨 문제 있어, 매지션?

“월요일만 휴무하시는 용사님도 의뢰 뛰시고 그런 용사님네 가게에서 알바를 뛰시는 북부 대공님께서도 의뢰를 뛰시는데 님도 뛰셔야죠?”

위대하신 대마법사님께서 입을 쩍 벌리신다.

“…인원이 언제 그렇게 늘어났죠?”

“얼마 되지 않았죠?”

“…….”

법사님께서 두 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포기한 모양새에 나는 마왕에게 말했다.

“마왕, 맹세나 약속에 관련된 마법 있어?”

“있느니.”

“나랑 저 새끼한테 좀 걸어줘. 이번 기회에 도망가지 못하게 단단히 붙잡아야지.”

“흑, 망했죠……. 우리 길마님, 불쌍한 회사원한테 자비란 없죠…….”

“닭둘기 한 마리에서 세 마리로 늘어났으니까 닥치고 있어.”

비둘기의 모이가 되고 싶지는 않은지 법사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금단의 언약(Lv. ??), 지정 대상 ‘신살자’와 ‘9서클 대마법사’]

[갑(甲): 신살자 → 을(乙): 9서클 대마법사]

나타난 메시지에 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금단의 언약이라니, 대공의 마법은 엄청 심플하던데.”

“짐은 마왕이니라.”

“음… 그래.”

내가 너한테 뭘 바라겠니. 마왕에 대해서는 이제 해탈의 경지에 올라섰다.

나는 법사를 향해 오래 꿈꿔왔던 소원을 말하듯이 외쳤다.

“9서클 대마법사님, 제가 원할 때는 언제 어디서든 포털을 열어주세요!”

“길마님, 진짜 저를 포털 셔틀로 보는 거죠?”

“회사 때려치우고 의뢰만 죽어라고 뛸래?”

“365일 안전하게 모셔드리겠습니다, 길마님.”

[첫 번째 언약이 맺어졌습니다.]

나타난 메시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법사 새끼는 침음을 삼켰다.

그보다 첫 번째라니.

“마왕, 이거 몇 개까지 맺을 수 있어?”

“세 개까지 맺을 수 있느니.”

“뭐가 그렇게 많아!!”

“딱 좋네.”

푸드득, 날갯짓하는 소리에 법사 새끼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나는 사슬의 끝을 잡고서는 살짝 흔들며 말했다.

“두 번째, 보름에 한 번은 의뢰 뛰기. 불쌍한 자본주의의 노예 같아서 봐줬다.”

“거참 고맙네!!”

[두 번째 언약이 맺어졌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뭐 할까.

7층짜리 상가 옥상을 흘긋거리니 어느새 닭둘기가 다섯 마리로 늘어나 있다.

의뢰도 해결, 포털도 해결됐으니.

나는 사슬을 끌어당겨 법사 새끼를 코앞까지 데리고 왔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길마님, 법사 지금 피 쏠리고 있죠? 빨리 말하고 놔줬으면 좋겠죠?”

“놔줄 거야, 새끼야.”

법사의 멱살을 잡고서는 슬그머니 사슬을 풀었다.

|신살자(길드장)| : 마왕, 나 근력 좀 강화 시켜줘.

마법이 부여됐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신살자’의 칭호가 봉인된 지금, 사용할 수 있는 건 ‘성녀’의 권능뿐이다.

‘성녀’의 칭호와 함께 일시적으로나마 사용할 수 있는 칭호가 하나 더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성녀의 권능으로는 법사 새끼를 있는 힘껏 던질 수 없었다.

어디로?

“아아악!! 미친 길마님아!!”

닭둘기 여러 마리가 모여있는 쪽으로.

“지금, 일해라.”

[세 번째 언약이 맺어졌습니다.]

푸드득, 닭둘기의 날갯짓 소리와 함께 붉은 마법진이 하늘을 가득 뒤덮었다.

쿠구궁―!!

내리치는 벼락에 닭둘기가 튀겨지는 걸 보며 나는 마왕에게 물었다.

“언약인지 뭔지 그거 어기면 어떻게 돼?”

“혀가 잘리느니.”

“……!!”

와, 와우.

나도 모르게 혀가 잘 붙어있는지 확인했다. 뭐, 내가 갑이니 혀가 떨어질 일은 없겠지.

역시 마왕님. 마법 한번 조악하다.

끼에엑!!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닭둘기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는 게 보였다.

헉, 저 미친 마법사가! 처리하려면 제대로 처리해야지!!

서하를 끌어안으며 마왕을 불렀다. 아니, 부르려고 했다. 마왕의 손에 언제 생겨났는지 모를 검은 창이 들려있었다.

마왕이 그것을 가볍게 몬스터를 향해 던지자 푸욱, 살이 꿰뚫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끼엑!!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몬스터는 방향을 틀어 우리 옆으로 추락했다.

몬스터에게 깔리지 않은 건 다행인 일이었다.

불행인 일은 몬스터가 바닥과 하나가 되면서 튀어버린 피에 그대로 맞아버렸다는 거다.

“…….”

나는 말없이 뺨에 묻은 것을 닦아냈다. 그 와중에 마왕님께서 아주 의기양양하게 묻는다.

“어땠느냐, 신살자야.”

“아주 뭣 같았단다, 마왕님아.”

“뭣……!!”

뭐, 왜 그렇게 보는데?

마왕의 시선을 간단하게 무시하며 붉게 펼쳐진 하늘의 새들을 쳐다봤다.

다섯 마리뿐이던 닭둘기는 어느새 하늘을 가득 채울 만큼 늘어나 있었다.

|9서클대마법사| : 망했ㅅ죠1!!! 완전ㅓ망했죠1!!!!

응, 그런 거 같다, 짜샤. 그러니까 힘내라!!

* * *

귀환의 길드장, 도하운이 ‘9서클 대마법사’를 잡았다는 기쁨에 놓친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몬스터를 최우선으로 잡는다.”

자신이 있는 곳이 게이트 속이라는 것을 말이다.

선봉에 선 두 사람이 동시에 얼굴을 찌푸렸다. 하운의 ‘도하준’과 화랑의 ‘우마한’이 서로를 노려보다가 쯧, 혀를 차고는 고개를 돌렸다.

도심지에서 발생한 1급 게이트를 한시라도 빨리 닫기 위해서는 핵을 품고 있는 중추 몬스터를 모조리 잡아야 했다.

유례가 없는 규모인 만큼 중추 몬스터의 수도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니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게이트에 갇혀있는 시민을 구해야 한다. 규모를 키워가며 도시를 좀먹고 있는 게이트도 닫아야 한다.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한 두 사람이더라도 하고 있는 생각은 같았다.

하지만 이상했다.

거리에는 몬스터의 사체들만 가득했다. 그러니까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단체로 증발이라도 해버린 걸까.

도하준과 우마한은 오싹해지는 기분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주위를 경계했다.

그러다 돌연, 휘몰아치는 광풍에 둘은 얼굴을 찌푸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

붉은 하늘에 그보다 더욱 붉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도하준은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고 우마한은 언제인가 본 적이 있던 것이었다. 우마한이 희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귀환자!!”

“……?”

우마한은 주위를 살피는 것도 잊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도하준 역시 얼떨결에 그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형?!”

“하인아! 네가 좀 맡고 있어!!”

동생에게 뒷일을 맡기는 건 잊지 않고 말이다. 우마한의 뒤를 쫓아가는 중에도 보이는 건 온통 몬스터의 사체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내달렸을까.

“우마훈……?! 야!!”

“형님?”

“너 이 자식!!”

쫘―악!!

도하준은 텅 빈 도시를 울리는 찰진 소리에 달리던 걸음을 멈췄다.

“형님! 다짜고짜 왜 때리는지 모르겠느니!!”

“맞을 짓을 했으니까 때리지!! 너 저거 뭐야! 내가 저런 거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했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느니!!”

화랑의 길드장에게 동생이 있다는 건 들었다.

들었지만…….

“…하운아?”

“오빠?”

도하준은 아연한 얼굴로 핏자국이 가득 묻어있는 어린 동생을 쳐다보았다.

“하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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