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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길드는 바르게 커야 합니다-19화 (19/168)

19화

“얘가 어린이 극단에서 일하는 중이거든. 거기서 마왕 역할을 많이 맡아서 그래. 얼굴 봐봐! 얼마나 마왕님같이 생겼어?”

“칭찬인 것이냐.”

“칭찬이야.”

“고마운 일이로다.”

“…….”

서하가 멍하니 입을 벌린다.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어떻게든 말을 지어냈다.

“맡은 역할에… 몰입을 많이 하는 타입이라…….”

“응… 그렇구나…….”

마왕의 형님 되시는 분께 전화하고 싶다.

저기, 같이 신세 한탄 할래요? 마왕님 데리고 사는 거 힘들죠? 저는 이 새끼가 길드원이란 게 너무 힘드네요.

그렇게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서하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뭐 해? 우리 셋이서 뭐 하면서 놀 건데?”

“어?”

놀 생각 없었는데?

도빈을 쫓아내고 그대로 마왕님도 쫓아낼 생각이었다.

“그 전에 네 녀석의 이름도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느니.”

“어? 응? 네 녀석?”

당혹감이 짙은 서하의 얼굴에 나는 황급히 마왕님의 신분을 더욱 조작했다.

“얘가 맡은 대사에! ‘네 녀석’이 많거든!!”

“…그렇구나.”

서하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운아.”

“응.”

“운이 주변에 참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꼬이는 거 같아.”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니라.”

마왕이 서하의 말을 바로잡아 주고는 덧붙이며 말했다.

“마왕이니라.”

“…….”

나는 말없이 얼음만 가득한 잔을 들어 올려 이마에 대었다.

“도하운아, 어디 아픈 것이냐.”

“응, 너 때문에 많이 아파.”

“……!!”

마왕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 놀란 얼굴을 무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나가자.”

“응? 으, 응.”

“나는 아직 저 녀석의 이름…….”

“서하! 배서하!! 내 친구 배서하다, 이 자식아!!”

마왕의 등을 있는 힘껏 내리치고는 서하를 데리고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서하가 뒤를 흘긋거린다. 나는 보지 말라며 더욱 끌어당겼다.

“도대체 저런 애를 어디서 만난 거야?”

“나 홀로 연극 구경 갔다가 재수 없게 만났어.”

“……?”

서하가 개소리하지 말라는 듯이 쳐다봤지만 나는 가볍게 그 시선을 무시했다.

“헉.”

갑자기 서하가 얼빠진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왜?”

“폰 두고 왔어!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줘!”

“천천히 갔다 와. 어차피 이 나라는 자전거만 훔쳐 가는 엄복동의 나라야.”

서하가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마왕님께서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다가오셨다.

“넌 좀 가면 안 되겠냐?”

“친구라 했잖느냐.”

그래, 내 무덤을 내가 팠지.

속으로 이마를 한 번 때리고는 마왕에게 물었다.

“의뢰는 어떻게, 잘 처리했어?”

“성좌 나리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느니.”

“잘 처리했다는 거네.”

“그래서 도하운아.”

“왜, 뭐. 묻지 마.”

하지만 마왕은 굳이 쓸데없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강해진 것 같으냐.”

“의뢰 하나 뛴 걸로 어떻게 강해져? 100번은 더 뛰어야 해.”

“……!!”

충격을 먹은 얼굴에 어깨를 으쓱여 주었다.

“하운아!!”

서하가 두고 나왔던 폰을 보여주며 달려온다. 뛰어올 필요 없다고, 그렇게 말하려는데.

쿠―웅!!

커다란 땅울림에 혀를 씹고 말았다. 비틀거리는 몸을 마왕이 붙잡아 주었다.

혓바닥에 난 상처는 금세 치유됐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지진 아니지?”

“아니니라.”

“서하는? 서하야! 배서……!”

헛숨을 들이켜 마셨다. 한 블록 앞, 붉게 쳐진 불투명한 것이 보였다.

“으아아악!!”

“아아악!”

그와 동시에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중앙 재난 안전 대책 본부]

금일 14시 21분경, 강남 일대에 게이트 발생.

인근 주민들은 즉시 대피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때를 맞추어 울리는 재난 문자에 비딱하게 웃음이 나왔다.

“갈 것이냐, 신살자.”

“당연하지.”

붉게 쳐진 막(膜)은 서서히 그 크기를 키워가고 있었다.

“네가 그렇다면야.”

마왕이 먼저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어디 한번 지옥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이 되어보자는 게다.”

“…….”

누가 들으면 겁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네.

오소소 팔에 돋는 소름을 문지르고는 마왕보다 앞서 게이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 *

[중앙 재난 안전 대책 본부]

게이트 규모 3급.

재난 특별법에 의거해 인근 각성자는 즉시 소집에 응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중앙 재난 안전 대책 본부]

게이트 규모 1급으로 정정합니다.

재난 특별법에 의거해 인근 각성자는 즉시 소집에 응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아.”

붉게 펼쳐진 하늘에 남자는 머리칼을 긁적였다.

“오랜만에 반차 낸 건데, 망했죠.”

* * *

비명이 난무한 가운데서 배서하는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기 때문이다.

“우, 운이. 운이는…….”

겨우 정신을 차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일어나기 무섭게 어깨가 밀쳐져 서하는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기껏 가지고 나온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져 액정이 나가버렸다. 서하는 입술을 꾹 깨물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크르르…….

코앞에서 들리는 짐승의 울음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숨이 멈췄다. 이가 떨리며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면 안 된다.

그러면 안 되는데.

배서하는 두려움 가득한 눈동자를 들었다. 붉게 충혈 된 짐승의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배서하는 죽음을 직감했다.

콰직―!!

들리는 소리에 배서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내 서하는 그 소리가 자신이 아닌 짐승에게서 나는 소리였단 것을 깨닫고 두 눈을 슬며시 떴다.

근처에 있던 헌터가 달려와 줬나 보다. 하지만 살았다는 안도감은 잠시였다.

“아… 망했죠. 이거 버리면 입고 다닐 옷 없는데. 어쩌지? 월급 땡겨달라고 하면 과장님이 지랄하실 텐데.”

잿빛으로 차려입은 정장에 검붉은 피가 잔뜩 튀어있었다. 어떻게 봐도 ‘헌터’로는 보이지 않는 차림새였다.

더욱이 한 손에 들려있는 서류 가방은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잔뜩 튀어있는 검붉은 피만 아니라면 말이다.

서류 가방으로 몬스터를 때려잡기라도 한 모양인지, 유독 그곳에 묻은 피가 짙었다. 서하는 도망칠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저기요.”

“네, 네?”

그러다 자신을 향한 목소리에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남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들었다.

“저기가 출구.”

“……?”

출구라니?

게이트는 중추 ‘핵’을 품고 있는 몬스터를 파괴하지 않는 한 닫히지 않는다.

그런 게이트에 출구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남자가 가리키고 있는 곳에는 붉은 문양이 새겨진 하얀 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상하다.

그 생각에 서하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님이 빨리 가셔야 제가 메테오를 쓰든 어스퀘이크를 쓰든 뭘 하거든요.”

아니면 저것들이랑 같이 밥이 되실?

남자는 짓궂게 웃으며 뒷말을 덧붙였다.

남자의 뒤쪽으로 수십 쌍의 눈동자가 보였다. 하나같이 붉게 충혈된 눈동자에 서하가 히익, 숨을 들이켜 마시고는 문으로 달려갔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서하는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문고리를 잡았다.

덜컹, 소리를 낸 문고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한번 더 잡아당겨 봐도 마찬가지였다.

비상구 잠겼나?

서하가 잔뜩 당황해하는 사이, 남자는 서류 가방으로 몬스터의 대가리를 찍어 내리는 중이었다.

“빨리 들어가라니까?!”

“그게, 들어가고 싶은데……!”

서하는 말을 멈추고 눈앞에 보이는 메시지를 읽었다.

“정원 초과라는데요?”

“네?”

남자가 서류 가방의 모서리로 몬스터의 눈을 찍어 내리고는 순식간에 서하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남자는 눈살을 찌푸리고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01―【999/999】

…15―【999/999】

“허억.”

얼빠진 소리에 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님, 오늘 무슨 요일이죠?”

“금요일요.”

“여긴 어디?”

“강남.”

멀리서 사람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살려달라는 비명 소리 역시 곳곳에서 들려왔다.

남자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서류 가방을 열었다.

―크르르…….

―크륵…….

뾰족한 송곳니를 보이며 몬스터들이 다가온다. 서하는 겁에 질린 얼굴로 주춤거렸다.

“님.”

“네?”

그 와중에 남자는 태평했다.

“여기서 본 거 모두 잊어주기, 오케이?”

“오, 오케이……?”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었는지 남자가 활짝 웃음을 짓더니 걸음을 옮긴다.

여전히 손은 서류 가방을 뒤적이고 있었다.

뾰족하게 송곳니를 보이고 있던 짐승들이 아가리를 벌리며 동시에 남자를 향해 달려든다.

―크아악!!

―크앙!!

그와 동시에 시간이 멈췄다. 서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공에 멈춘 몬스터들을 쳐다봤다.

“아, 진짜. 집에 가면 파일 좀 정리해야지.”

가방 안을 뒤적거리던 남자가 손을 빼내었다.

“총……?”

“이건 님 거.”

권총 하나를 서하에게 던져준 남자는 허공을 향해 샷건의 총구를 겨누었다.

몬스터 주위로 붉은 마법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마법과도 같은 광경에 서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남자의 기다란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콰―앙!!

들려온 소리는 요란했다.

* * *

“아, 진짜!!”

느닷없이 몰아진 광풍에 마왕님의 기다란 머리칼이 내 뺨을 찰싹거렸다.

“마왕 새끼야, 머리 묶어!!”

“끈이 없느니.”

그 말에 나는 마왕님의 머리칼을 한 움큼 잡아 아래로 당겼다.

“신살자, 네 이놈! 짐이 이 머리카락을 관리하느라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는지 아느냐!!”

“몰라, 새끼야.”

그대로 마왕 놈을 끌고 가며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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