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거기다 용사님네 가게에 대공님께서 알바를 뛰고 계셨다니.
웃음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그렇게 헛웃음을 흘리는데 가볍게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대공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문받으러 왔습니다.”
“네?”
“주문요, 주문.”
대공이 나를 보며 방긋 웃는다.
“손님께서 주문이나 받으러 오라고 하셨잖아요.”
|북부대공| : 나가세여!
아나, 이 새끼가.
이렇게 소리 없는 메시지 공격이라니.
대공은 웃고 있는 낯짝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 역시 마주 웃어주며 입을 열었다.
“칵테일은 무한으로, 안주는 일단 감자튀김으로 먼저 부탁할게요.”
“네, 손님.”
|북부대공| : 감자튀김보다 치즈볼인데.
“…치즈볼도 추가할게요.”
“네.”
대공이 활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칵테일은 두 분 다 무한, 안주는 감자튀김이랑 치즈볼 맞으시죠?”
“네.”
서하와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
“칵테일은 무엇으로 먼저 준비해 드릴까요?”
“스크류 드라이버랑 깔루아 밀크요.”
대공이 메뉴판을 챙겨 들고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금방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북부대공| : 님아, 사장님이 잠깐 와달래요.
아오!
억지로 끌어 올린 입꼬리에 경련이 일어날 거 같았다. 대공이 카운터 쪽으로 가는 걸 본 뒤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좀.”
“오키.”
날이 어둑해지자 가게로 들어오는 손님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자리를 찾으려 들어오는 커플을 피하며 카운터 쪽으로 갔다.
“왔니?”
빈 병을 진열해 놓은 장식대에 몸을 기대고 있던 용사가 나를 반겼다. 나는 짜증스레 얼굴을 구기며 물었다.
“여기서 이렇게 알은척을 하고 싶어?”
“당연히 안 하고 싶죠!”
금색의 마법진이 주위로 그려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소리라도 차단시켰나? 아니면 공간 왜곡?
어쨌든 나는 용사와 마찬가지로 진열대에 몸을 기대며 뚱하게 입을 열었다.
“알은척 안 하고 싶다면서 왜 부른 거야?”
용사가 내 말에 눈가를 찡그렸다.
“우리 가게는 왜 찾아온 거니? 무슨 목적으로 찾아온 거야?”
“그런…….”
거 없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 자식들,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나 보다.
애초에 여기가 용사님네 가게인 줄도 몰랐는데요. 알고 있었으면 제가 당신을 보고 안 놀랐겠죠. 얘네, 내가 자기들을 보고 놀랐던 걸 생각 못 하고 있는 걸까?
어찌 됐든 잘된 일이다. 오해를 바로잡아 줄 의무 따윈 내게 없다.
나는 씨익 웃음을 보였고, 용사와 대공은 몸을 움찔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먼저 입을 연 건 용사님이셨다.
“유대공이 말해주더구나. 길드장, 네게 약점이 잡혀있다고.”
용사님의 말에 대공이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의뢰 뛰고 있잖아요! 그거 때문에 오늘 알바도 늦은 거고!”
“내 약점 캐내려고 우리 가게에 손님이랍시고 온 거니?”
약점이고 자시고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약점 하나 잡게 생겼다.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용사님, 가게 오픈 시간이 오전 아홉 시더라?”
“왜 갑자기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새는 거지?”
“문은 새벽 두 시에 닫으시고.”
“그러니까 이야기가 왜…….”
“월요일은 휴무.”
“……!”
그걸 언제 봤냐는 듯, 놀란 눈을 보이는 용사님의 얼굴에 나는 활짝 웃음을 보였다.
“대공, 의뢰 뛰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나면 좋을 거 같지 않아?”
“…좋겠죠?”
대공이 어물거리며 대답했다가 용사의 날 선 시선에 곧장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님 혼자서 잘만 해왔잖아요!”
저걸 말이라고.
진열대에 놓인 빈 병으로 대공 새끼의 머리를 후려치려는 본능을 이성으로 잠재웠다.
데카르트, 칸트! 이성의 별님들이여! 제게 힘을 주세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최대한 거만한 자세로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용사, 월요일마다 의뢰는 네가 뛰어. 모두 뛰라고는 안 해. 대공 새끼랑 나랑 적당히 나눠 먹자.”
“내가 왜 그래야 하니?”
저렇게 나올 줄 알았지.
다른 사람이라면 장사하느라 지친 몸, 월요일이라도 휴식을 취하려고 휴무일을 정했나 보구나 하겠지만 용사 새끼는 다르다.
쟤는 그냥 빈둥거리고 싶어서 휴무일을 정한 거다.
‘성녀’의 칭호를 달고 있는 나도 지금 정신적 피로감에 아주 죽겠는데, 용사님 좀 봐봐.
치유와 관련된 권능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텐데 아주 멀쩡하잖아.
“용사님.”
나는 주머니 안에서 폰을 꺼내 케이스를 벗겼다. 툭, 하고 떨어진 검은 카드를 주워 들고는 용사님한테 보란 듯이 보여주었다.
“건물주의 횡포를 보고 싶어?”
“뭐?”
한국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길드, ‘하운’을 이끌고 있는 게 우리 오빠다.
그리고 그런 오빠의 뒤를 떠받쳐 주고 있는 게 동생 놈이었다.
잊을 만하면 게이트가 터지고 던전이 터지는 세상에서 제일 잘나가는 직업이 ‘헌터’다.
그런 헌터가 두 명, 그것도 정말 잘나가는 헌터가 두 명인 우리 가족이 부자가 아닐 리가 없었다.
대학교 졸업 선물이라면서 미리 받았던 선물인데 그때는 몰랐지.
대학교를 초등학교처럼 다니게 될 줄은.
…생각해 보니 억울하네?
나는 마신 새끼가 지었던 웃음을 똑같이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이 건물 통째로 사서, 월세 올려버릴 줄 알아.”
“…….”
대공이 악마라고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그 목소리에 나는 입을 벙긋거려 주었다.
그대여.
“…….”
대공이 두 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그 모습에 만족스러워하며 블랙 카드를 케이스 안에 집어넣었다.
“너…….”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주었다. 용사가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길드장, 너. 부잣집 아가씨였니?”
“부잣집 앞에 자수성가 붙여줘.”
대공이 나한테 다 들리도록 용사한테 속닥거렸다.
“우리 길마님, 하운 길마님 동생님이실걸요? 하운 길마님은 선의의 천사라던데 우리 길마님은 아주 그냥…….”
“닥쳐.”
“넵.”
대공의 입을 다물게 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럼. 월요일에는 이제 네가 의뢰 뛰는 걸로 알게, 용사님?”
그대로 마법의 영향력 밖으로 나가려다가 용사를 보며 활짝 웃어주었다.
“아, 내 친구가 나 데리고 오면 서비스 많이 준다고 했다던데? 서비스 알지?”
“단골손님 친구가 너인 줄 알았다면 그런 말 안 했을 거란다!”
성난 목소리에 나는 능청스레 말해주었다.
“이미 한 걸 어떡하니?”
와장창!!
진열대에 놓인 빈 병이 부서져 내렸다. 용사의 주먹은 다친 곳 없이 멀쩡했다.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에 나도 대공도 입을 살짝 벌렸다. 대공이 입을 뻐금거렸다.
“사, 사장님?”
“용사의 의무고 나발이고 무시했어야 했는데!!”
아악―!
외치는 목소리에 나는 후다닥, 자리로 달려갔다.
“왔어?”
“응. 손만 씻고 나왔어.”
카운터 쪽을 흘긋거리니 용사를 진정시키고 있는 대공이 보였다. 진열대는 말끔하게 복구된 뒤였다.
찰칵, 가게 내부를 찍은 서하가 카운터 쪽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술이 왜 이렇게 안 나오지?”
“조금 늦을 거야.”
“왜?”
내가 사장님을 좀 빡치게 했거든.
나는 대공이 아닌 다른 알바생이 가져다준 프레즐을 집어먹으며 활짝 웃었다.
아, 기분 째진다.
자본주의 완전 최고!
* * *
|용사| : 길드장.
|용사| : 네가 갑질하는 녀석일 줄은 몰랐는데.
|북부대공| : 갑질만 할까여?
|북부대공| : 아주 못된 사람이라니까여!!
눈앞에 뜨는 메시지를 무시하며 나는 서하와 잔을 맞부딪쳤다.
|9서클대마법사| : 님들 우리 길마님한테 갑자기 왜 그래?
오, 네가 웬일로 내 편을.
|9서클대마법사| : 갑질하고 아주 못된 길마님아 불쌍한 법사한테 포탈 셔틀 작작 좀 시켜요ㅠ
그래, 네가 웬일로 내 편을 들어주나 했다.
“어때? 맛있지?”
“쓰네.”
“그치? 완전 맛있다니까~!”
아니, 진짜 쓰다고.
나는 쩝쩝거리고는 잔을 놓았다.
“네 거 마셔볼래!”
“안 돼. 절대 안 돼.”
“왜~!”
이건 사약이거든.
망할 대공 새끼가 내가 마실 건 뭐냐고 물어서 아무 의심도 없이 가르쳐 줬더니 나한테 사약을 가져다줬다.
|Pr. 신살자(길드장)| : 여기 술이 아주 쓰네^^?
|Pr. 용사| : 인생의 쓴맛을 좀 겪어보라고 쓰게 만들었잖니
인생의 쓴맛은 ‘글로리아’에서도 여기에서도 아주 똑똑하게 느꼈고 느끼는 중인데요, 새끼야.
얼굴을 잔뜩 찌푸리는데 서하가 걱정스레 물었다.
“운아, 맛있는 거 맞지?”
“응. 진짜 너무 맛있다.”
영혼 없이 대답해 주고는 잔을 비웠다. 독한 맛에 목이 타들어 가는 거 같았지만 취기는 하나도 안 올라왔다.
[권능, ‘해독’이 활성화됩니다.]
‘성녀’의 권능이 아주 제 역할을 해내는 중이었다. 칵테일을 음미하고 있던 서하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운아!!”
“맛있네. 한 잔 더.”
“도하운, 미쳤지?!”
미치지 않았다고 친절하게 답해주고는 대공을 불렀다. 내 앞에 멈춰 선 대공이 잔뜩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를 본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두어 번 눈을 깜빡인 대공이 느릿하게 입을 뗐다.
“…네, 뭐가 필요하세요?”
|Pr. 북부대공| : 니임!! 미쳐써여?? 그걸 다ㅏ 마셔버린 거야ㅑ?!!
“같은 걸로 한 잔 더 주세요.”
|Pr. 신살자(길드장)| : ^^ㅗ
메시지를 날리고는 프레즐을 집어 먹었다. 대공이 경악한 얼굴로 대답도 없이 사라졌다.
그 뒷모습에 나는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여기 알바생 교육 다시 시켜야 해.”
“너 완전 진상 손님 같아.”
서하의 말에 어깨를 으쓱여 주었다.
똑똑,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대공 새끼, 이제 말도 안 한다는 거냐.
손님이란 이름으로 한마디 할까 했는데, 서있는 건 대공이 아니었다.